김경숙 사진집 「도시, 생태학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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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생태학적 풍경


김경숙


찢겨 버려진 비닐 장판을 얼기설기 덧대 비를 막은 지붕, 크고 작은 세월의 상처를 받아내어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래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벽돌 벽, 빨간 고무다라에 담긴 싱그러움이 가득한 푸성귀, 옥상에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외줄로 꼰 빨랫줄의 빨래는 의지할 곳 없이 흔들린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모른 체 여전히 한쪽 귀퉁이에 정답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들, 궁둥이 붙일 자리도 없는 땅에는 작고 연한 생명체가 할머니의 손길로 커가는 텃밭……. 바로 이번 《도시, 생태학적 풍경》을 작업하며 둘러보게 된, 재개발이 예정된 주택가의 모습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한 옛날 주택가의 모습은 새롭게 조성된 획일적인 신도시와 달리 저마다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각기 다른 형태의 지붕 안에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인간들이 거주하면서, 그들의 인생과 추억을 공간 속에 켜켜이 눌러 담고 쌓아올리며 공존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건축을 “인간이 죽을 자로서 지상에 거주하는 한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하이데거는 한 지붕 아래 여러 세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어 사라지는 일련의 삶의 행보를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포착해냈던 것이 아닐까? 나 역시 많은 인간의 삶이 공간의 재활용으로 극대화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색적인 풍경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우리나라의 옛날 주택가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깊은 감동과 울림으로 다가왔다.
옛집의 풍경이 이토록 살갑고 아름다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후유증으로 주택난을 겪으면서 1970년대부터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고, 이후 80년대, 9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재개발 열풍이 불어 나라 전체가 획일화된 아파트촌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아파트에 집착하게 된 것일까? 매일 접하는 신문기사와 뉴스조차 재개발 아파트에 관한 보도를 연일 쏟아내기에 바쁘다. 마치 우리나라의 경기는 아파트가 끌고 가는 것처럼…….
그래서 지난 50여 년 동안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온 대한민국의 모습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려 했다.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뿌리’라고 평가받는 프랑스 사진작가 으젠느 앗제(Eugène Atget)처럼 도시를 기반으로 나의 예술적 관심을 표현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업 순서는 먼저 카메라 앵글에 원하는 구도로 사진을 담고, 다시 그 사진을 디지털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각색하였다.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의 사진으로 조합하여 재개발이 예정된 낡은 주택가와 해당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를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이번에 준비한 작품들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나아가 나만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각 도시별 건축물의 특징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