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산 사진집 「집, 지상의 방 한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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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사진집
『집-지상의 방 한 칸』을 내면서

 

운명. 운명이라는 생각이다. 다큐사진을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철거를 선택한 것은. 촬영한 사진을 들여다보자니 새삼 궁금해진다. 왜 하필 철거 다큐였을까.
내 집 밖의 ‘집’을 향해 처음 셔터를 누른 게 경기도 고양시 행신리 철거지역이었다. 지금의 일산 신도시이다. 1991년 1월, 한겨울이었다. 신도시 결사반대를 외치는 원주민과 집을 촬영한 뒤, 딱 한 사람이 뒷걸음으로 몸을 굽혀야만 출입이 가능한 ‘개집’ 형태의 판잣집을 도둑질하듯 필름에 담고 왔다. 25, 6년 전의 일이다. 기록성과 사실성이라는 사진의 본성과 사진가의 사회적 책무 따위는 전혀 고민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20년 남짓, 행신리를 닮은 수많은 철거지역을 떠돌았음에도 나는 지금도 철거 소식만 들리면 카메라 배낭을 챙긴다. 운명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대개의 주택 철거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의 명목으로 시행된다. 낙후된 주거지나 기반시설이 열악한 곳,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한 지역 등을 철거하는 사업이다. 철거와 재개발은 당연히 법적 보상이 뒤따른다. 그런데 왜 일부 철거 지역에서 철거민들이 ‘죽어도 못 떠난다’, ‘생존권 사수 투쟁’ 등의 머리띠를 두르는 것일까. 왜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을 하고 그와 상관없이 강제철거가 진행되는 것일까. 철거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인명 피해가 빚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대손손 이웃사촌이었던 고향 사람들이 철거 찬반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서로 등을 돌리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 철거 지역 선정과 철거 과정, 보상 방식, 개발 이익에 따른 갈등 등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배경과 원인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철거재개발사업은 1970년대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화, 산업화와 함께 필연적으로 동반되었다. 격변기를 거친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마찬가지로 철거재개발사업 역시 많은 변모를 겪어 오늘에 이르렀다. 철거재개발사업의 본래 목적은 원주민(기존 거주자)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고층아파트나 대형 건축물을 지어서 특정한 주민이나 일부 기업이 수익을 남기는 사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철거재개발로 인해 깊은 갈등과 하우스 푸어를 양산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철거 현장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확인한 사실을 한 번 더 말하자면 이렇다. 일부 대지주와 같은 주민들이 거액의 보상금을 거머쥐는 한편에서 세입자나 영세 상인들은 이사비용 정도의 보상만으로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그 둘 사이의 희비가 극명해지면서 당연히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하게 빚어지곤 한다. 미래의 어느 시기에도 현재진행형일 철거재개발사업은 그 배경과 목적과 무관하게 절대약자는 철거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다수의 철거 현장에서 미어지는 가슴으로 절감했다. 그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가급적 절대약자에 초점을 맞추어 셔터를 눌렀다.
 

우리는 철거재개발사업이 단순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이라는 명목만으로 치러질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민들에게 반목과 갈등의 상처를 주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가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철거 현장에서 셔터를 눌렀다. 주거환경정비사업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인간적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 한편에서 지금 당장 문명 건설을 위한 자연 파괴가 인류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염려와 더불어 그 극복의 방법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왜 하필 흑백사진이고, 하필 철거 다큐사진인가.’
철거 다큐 개인전을 둘러보던 몇몇 사진가들이 연민 섞인 목소리로 내 사진을 향해 던진 평이다. 그것은 내 자신이 수없이 반문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 왜 하필 흑백 아날로그사진이고 철거 다큐사진인가. 더구나 왜 스트레이트 포토만 고집하는가.
나는 철거 다큐 사진을 동시대 사진가의 책무로 여기며 셔터를 누른다. 전국 각 지역의 철거 현장과 오랜 시간 분쟁이 이어지는 철거 현장을 찾아다닌다. 현장답사와 촬영은 언제나 전장(戰場)의 종군기자 못지않게 전투적이다. 현장 접근이 쉽지 않고 촬영은 더더욱 힘들다. 철거재개발 관계자들은 왜 그토록 현장 촬영을 거부하는 것일까. 유추하건대 단순히 철거 현장의 위험성 탓만은 아닐 듯하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 1동 재개발 지역에 사는 홍은국민학교 2학년 이현상 군은 28일 아침밥도 거르고 잠바도 입지 못한 채 쌀쌀한 등교 길에 나서야 했습니다.
이날 오전 8시20분경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아빠가 출근하고난 뒤 엄마 동생과 함께 아침밥상을 받고 있을 때 갑자기 거대한 포클레인을 앞세운 철거반원이 들이닥쳐 집을 부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가 애들 밥이나 먹이고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철거를 한 시간만 멈춰달라고 눈물로 애원했으나 철거반원은 막무가내였습니다.
-1991.3.29 동아일보

 
25, 6년 전, 나를 철거 현장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던 일간 신문 보도이다. 일산 신도시 철거 현장을 다녀온 얼마 뒤에 읽은 기사였다. 그즈음에 나는 엇비슷한 내용을 담은 주요 일간신문 기사를 인용해서 철거와 관련된 글을 발표한 기억이 있다. 철거재개발 사업의 아픔과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질 않기를 기대하면서. 더 이상 개발의 명목으로 약자의 희생이 강요되는‘경제학의 폭력성’이 반복되지 않길 갈망하면서. 짐작컨대, 지난 20여 년 철거 현장에서 셔터를 누르며 살펴본 결과, 철거재개발사업은 영원히 현재 진행형일 게 분명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어느 지역에선가 철거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오랜 삶의 터전인 집을 떠나기 위해 이삿짐을 싸고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철거재개발의 손익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사진집을 내면서 간절하게 희망한다. 현재 진행형인 철거재개발이 그 인과적 당위성을 떠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아름다운 나눔의 건설’이 되길 희망한다.
끝으로, 철거 다큐 사진 작업의 뜻을 헤아려주시고 촬영에 협조해주신 철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7. 5.
이 강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