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남아 역사가 되다 ③ 1946년 새해 첫날 한국의 38도선


1946. 1. 1 Ⓒ Alfred Eisenstaedt / Life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는 38도선의 미군 방어벽 앞에서 자유롭게 오가던 마을길을 지나가게 해달라며
허리를 굽히고 애걸하는 키 작은 농부의 모습과 그를 가로막고 서있는 키 큰 미군의 모습을 대비시켜 카메라에 담았다. 

‘라이프’지 창간 멤버인 ‘라이프’지의 대표 사진기자,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는 1946년 새해 첫날 한국의 38도선을 왜 기록했을까? 

 
Life ⓒAlfred Eisenstaedt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걷던 수병이 2차 세계대전의 승전을 알리는 소식을 듣고서  너무 기쁜 나머지 길을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들고 키스를 했다. 포옹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간호사의 허리가 휘고 한쪽 다리가 들릴 정도였다.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종전의 환희를 함께 나누는 젊은 남녀를 거리속의 군중들도 행복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 사진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사진을 역사에 남긴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Alfred Eisenstaedt)가 1946년 새해 첫날 한국의 38도선을 기록했다. 1936년에 창간된 ‘라이프’지는 정신적지주로서의 카메라를 표방하며 시대의 시각적 양심의 흐름을 잡고자 한, 당대 최대부수의 포토저널리즘 매체였다. ‘라이프’지 창간 멤버이자 ‘라이프’지의 대표사진기자인 아이젠스타트가 왜 새해 첫날 38도선을 찾았을까? 그만큼 한국의 분단이 그해 세계적인 이슈라는 반증이 아닐까싶다.

아이젠스타트는 38도선의 미군 방어벽 앞에서 자유롭게 오가던 마을길을 지나가게 해달라며 허리를 굽히고 애걸하는 키 작은 농부의 모습과 그를 가로막고 서있는 키 큰 미군의 모습을 대비시켜 카메라에 담았다. 하루아침에 마을과 마을을 가르고 대대로 일구어 온 일가의 논을 두 동강 낸 38선. 땅만 나뉜 게 아니라 잠시 일을 보러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발길도 묶였다. 지척에 집을 두고 70여 년간 돌아가지 못한 1000만 이산가족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대일 . 대독 선전포고문을 발표하였고 1943년 이후에는 광복군을 버마, 인도전선까지 파견, 참전시켜 영국군과 연합작전을 수행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국은 전후 세계질서재편 과정에서 마땅히 승전국의 일원으로서 위치지워져야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당사국인 패전국 일본이 분단의 대상이 아니라 식민지였던 한국이 부당하게 분단 상황을 떠맡게 되었다. 식민지시대에도 민족의 분단은 없었건만, 우리에게 광복은 일제의 종말과 동시에 분단을 의미했다.  

분단의 외적인 원인은 열강들의 국제정치역학과 미.소의 냉전상황으로 치닫는 이데올로기의 상충이 주요했다. 이러한 상항은 독일에 합병되어 독일 제3제국의 한 주였던 오스트리아와 비슷하다. 연합군에 의해 분할 점령된 오스트리아는 연합국의 신탁통치를 받는 동안 모든 정치세력들이 신탁통치의 종식을 위해 단합하였다. 보수정당, 공산당, 여타 정치세력들이  서로 알력하지 않고 연합세력으로 똘똘 뭉쳐 외교 협상을 펼쳤고 결국 오스트리아를 영세중립국인 통일된 나라로 지켜내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분단의 외적인 원인 보다 내적인 원인인 우리민족의 분열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모든 정치지도자들이 김구선생 같았다면 분단이 되었을까? 김구선생은 미.소 양군의 철수와 남북지도자간의 협상에 의한 자주적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냐 사도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해야 합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일체의 자주독립을 정도로 보았고 그것을 저해하는 다른 모든 행위를 사도로 취급하였다. 미소가 분할점령한 상황은 뜻을 합쳐 자주독립을 추구할 시기이지 분열을 해가며 권력쟁취를 시도할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김구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떠나기 전 그의 앞을 가로막는 군중들에게 ‘여러분, 나에게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주시오’라고 한 말은 우리 민족의 행동방향을 단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우리는 광복이후 이데올로기가 지닌 자기절대성의 모순을 충분히 겪어왔지만 아직도 대립된 사상의 이중자물쇠에 잠긴 채, 최후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선거철마다 분단체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있고 북한 또한 분단체제를 한층 더 강화하여 세계 최장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시민이 분단이후 오늘에 이르는 시간적 거리만큼 사실을 객관화할 수 있는 냉정한 안목을 획득하고 있기에,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눈멀었던 미망의 시대를 넘어 민족 동질성에 바탕한 통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오늘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되뇌어 본다.

 

글 이기명 (발행인 겸 편집인)
해당 기사는 2017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