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요세프 쿠델카(JOSEF KOUDELKA), GYPSIES

요세프 쿠델카(Josef Koudelka)는 매그넘 포토스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또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주요 사진가이기도 하다.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프라하의 봄’ 때, 소련군의 침공을 앞둔 프라하 광장과 시계를 찬 손목을 근접 촬영한 사진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불안한 정세 속에서 그는 단지 자신을 ‘P.P (프라하의 사진가)’라는 익명으로 소개했지만, 소련군에게 무참히 짓밟힌 ‘프라하의 봄’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으로 그는 세계적인 사진가 반열에 올랐다.
 

슬로바키아, 1963 ⒸJosef Koudelka/Magnum Photos


그러나 요세프 쿠델카는 정작 자신의 사진을 저널리즘 포토나 예술 사진이라는 하나의 틀로 규정짓지 않는다. 그의 초기작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집시 시리즈는 1961년부터 71년까지 약 10년간 촬영했던 시리즈다. 그는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의 집시들과 함께 여행하며, 그들의 삶 속에 뛰어들어 어울렸다. 그렇게 찍은 이 사진들은, 집시들의 일상과 예술, 음악과 가난, 그리고 삶과 죽음을 담았다.   

 
“요세프 쿠델카는 명예 집시다.” 
매그넘의 창립자,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그의 집시 사진을 두고 이런 찬사를 남겼다. 그의 전시를 본 한 유명한 집시 음악가는 “요세프 쿠델카에게는 집시의 피가 흐르는 게 틀림없다. 집시가 아니고서야, 그와 같은 집시 사진들을 촬영할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가 찍은 집시는 집시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인간 근원을 건드리는 강한 힘이 있다. 


한미 사진미술관에서는 지난 해 12월부터 오는 4월 15일까지 요세프 쿠델카의 ‘집시(GYPSIES)’ 전시를 개최중이다. 이 전시는 그의 ‘집시’ 시리즈 중 24점이 한미 사진미술관에 소장된 것을 계기로, ‘집시’ 시리즈의 전작 111점이 모두 공개된다. 또한 전시를 기념해 작가가 직접 이미지 배열을 정리한 <집시> 사진집 한국판이 발간됐다. 이번 전시에 맞춰 한국을 직접 방문한 요세프 쿠델카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이번 전시를 어떻게 보았는가?
전시에 대단히 만족한다. 나는 공간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 특히 공간의 많은 부분을 살펴보는 편이다. 집시 시리즈 111점을 전시하기 위해, 전시공간이 알맞은지 올해 2월에 방문해서 미리 살펴봤다. 한국에서 전시하는 유일한 기회라 생각했기에, 가능한 많은 작품들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슬로바키아, 1967 ⒸJosef Koudelka/Magnum Photos


왜 집시들을 촬영했는가?
나는 내가 왜 집시를 찍기 시작했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집시들의 음악이 내게 큰 영향을 줬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3개의 필름이 상영되는데, 이 필름에는 집시의 음악이 깔려있다. 그 음악을 들으면, 내가 왜 집시들의 사진을 찍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집시들의 음악, 문화에 대해서 개인적 경험, 감성이 이 작업을 시작하는데 영향 끼쳤지만, 정확히 답하기는 어렵다. 무언가를 즐기고 사랑하는 데는, 사실 그 이유를 모를 때 더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왜 그 여성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다른 누군가와 그녀가 다른 차별성을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그녀기 당신에게 매우 특별할 뿐만 아니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게 집시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슬로바키아, 1967 ⒸJosef Koudelka/Magnum Photos
 

동시대에 촬영했던 '씨어터(Theater) 시리즈'와는 같은 예술인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연관점이 있는가?
'씨어터 시리즈'와 집시는 동일한 시기에 촬영했지만 시각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씨어터 시리즈는 현실의 많은 부분을 왜곡해서 추상적으로 보여줬던 사진이지만, 집시 연작은 가능한 현실 그대로 기록하려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씨어터와 집시 시리즈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집시의 삶도 짜인 각본은 없지만, 하나의 연극이자, 집시들 역시 이미 무대에 선 연극배우들과도 같은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슬로바키아, 1967 ⒸJosef Koudelka/Magnum Photos
 

이 ‘집시 시리즈’를 통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인간의 보편적 가치, 삶에 대해 최종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집시 음악과 집시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집시라는 피사체가 여러 요소에서 굉장히 강렬한 존재, 힘을 가진 피사체라고 생각했다.

사진은 현실 그 자체를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이용해서, 내가 현실을 바라보고 소화해, 하고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물론 사진의 집시는 현실 그 자체의 집시와는 다를 수 있다. 사진에 드러나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모라비아, 1966 ⒸJosef Koudelka/Magnum Photos
 

이 전시가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집시 시리즈로 시작하는 이유가 있는가?
나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전시구성이 있고, 그것을 이번 발간한 <집시> 사진집에도 실었다. 그렇지만 보통 전시공간이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맞을 수는 없기에, 이 배열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 특성에 맞게 배열하다보니 바이올린 집시 사진으로 시작했다. 내게 집시 음악은, 이 집시 연작을 시작하는 큰 계기가 됐고, 그렇기에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집시는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이미지라 생각한다.


 

슬로바키아, 1967 ⒸJosef Koudelka/Magnum Photos
 

촬영할 때 특별히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
나는 사진이 본인의 경험에서 비추어서,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령 내 사진 중, 수갑을 찬 집시 인물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에 대해 한 번도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사진에 얽힌 일화라며 이미 5가지가 넘는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그것은 결국 사진이 보는 이들에 따라, 똑같은 이미지를 보아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피사체에 대한 견해에 거리를 두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으려 한다. 물론 나 역시 피사체에 어떤 감정, 혹은 개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촬영을 하는 당시에는 가능한 그런 감성적인 부분을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이미지 자체를 다른 이들이 봤을 때도, 그들 자신을 생각, 혹은 경험을 투영해서 또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슬로바키아, 1963 ⒸJosef Koudelka/Magnum Photos
 

다양한 지역에서 집시를 찍었는데, 처음 슬로바키아에서 찍었던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다른 장소, 다른 공간의 집시를 찍을 때, 각 집시들의 언어와 문화, 행동양식, 풍습 등 모든 것이 다 달랐다. 여러 국가에서 집시들을 찍어왔는데 처음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사진을 찍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을 만났을 때, 그가 인도에 있는 집시를 찍어보라고 인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준 적이 있다. 나는 그를 정말 존경하고, 그것은 친절과 호의에서 나온 제안이었지만 나는 인도에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브레송이 인도를 가라고 제안을 한 것은, 그가 내 집시 작업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저널리즘적인 시선으로 나를 집시의 현실을 촬영하는 사진가라고 이해했지만, 나는 사실 그런 저널리즘의 시선으로 집시를 촬영한 것은 아니다.


집시라는 피사체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촬영하는 방식이 따로 있었는가? 
항상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집시를 이렇게 촬영했냐고 질문하곤 한다. 사진을 찍을 때 내가 당신을 찍는다면, 나는 당신을 나라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중간에 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영혼이 당신에게 가고, 당신의 영혼이 내게 오는 거다. 이런 상호 에너지의 교감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에 그런 집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나는 사진가가 가장 자신의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초상은 바로 그가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The Best portraits of a photographer are his photographs) 당신이 집시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당신은 내가 찍은 집시 사진에서 나 자체를 보는 것과 같다.


 
글 :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 한미사진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7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