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Open Road

50년대 이후, 의식이 사회 곳곳, 삶의 곳곳에 스며들고 배양되면서 거리를 주목하게 된다. 사람들의 생활이 바로 길을 통해 이루어지며 삶의 낱낱을 볼 수 있는 곳이 거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계에서 이런 분위기를 이끌었던 사진가는 바로 로버트 프랭크였다. 그것은 거리로 뛰어든 스트리트 사진이고 실시간 거리의 풍경이고 동시대가 당면한 삶의 모습이었다.

로버트 프랭크의 의식과 형식미학을 숙성, 발효시켜 시대풍경에 대한 의식의 결사체로서 등장한 사진가들이 게리 위노그랜드, 리 프리들랜더 등이며 개인적인 시각으로 거리를 통해 일상을 재맥락화하여 ‘스트리트 사진(Street Photography)’이라는 하나의 조류를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현대사진의 원천을 ‘거리(Street)’에서 찾는다. 또 ‘거리미학(Street Aesthetic)’이라고 규정한다.

조엘 스텐펠드, 저스틴 컬랜드, 스티븐 쇼어, 토드 히도는 길을 통해 본 일상 혹은 풍경에 관한 일관된 맥락을 형성한다. 그들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공적인 기록성 못지않게 사적인 표현성을 즐기며 커다란 사회적 이슈보다는 작은 개인의 소소한 이슈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을 다루고 싶어한다.

 


 





 
조엘 스텐펠드 | 미국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글 전경배 기자

2019년 『파리 포토』 포토 페어 행사의 인터뷰에서 조엘 스텐펠드(Joel Sternfeld)는 “1960년대의 미국은 다수의 미국인에게 위대한 나라였으며 『Life』 잡지나 『Reader’s Digest』 등 미국의 주요 언론 매체는 미국이 실로 위대한 나라라고 역설하였다. 1970년대 베트남전, 워터게이트, 경기 침체 등을 거치면서 미국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은 깨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하였을 때에 나는 미국이 위대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란 청년 조엘 스텐펠드는 미국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져왔다. 미국의 실체적 모습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의 간극을 고민하던 중 1978년 구겐하임 재단 지원금(John Simon Guggenheim Memorial Foundation Fellowship)을 바탕으로 정치적, 역사적, 경제적, 환경적 등 여러 복합적 요소들을 생각하며 길에서 미국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자 노력했다. 조엘이 만드는 다큐멘터리 작품은 그의 시리즈마다 접근 방법도 다양하고, 결과물의 모습도 조금씩 다르다. 이번 스페셜이슈에서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American Prospects〉를 중심으로 기사화하고자 한다.

이 시리즈에서 조엘은 관찰자 시점으로 작품화했다. 어떤 사건이나 이벤트를 취재 또는 기록하는 사진작가는 그 모습을 생생하게 담기 위해 대상에 최대한 접근하여 찍으려고 노력한다. 텍사스에서 우주 항공기 컬럼비아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중년의 사내가 비행기의 크기와 비슷하게 찍혀 있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지붕 바닥에 사진의 1/3이 넘게 할애 되어 있어 보도 사진으로는 훌륭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 덕분에 관람객은 멀리서 더 많은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벤트가 벌어지는 상황,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과 그 일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까지 보며 이 일이 진정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Solar Pool Petal(꽃잎 모양으로 태양열을 받아 수영장을 따뜻하게 해준다) 사진을 보면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사람들이 쾌적하게 수영을 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장치가 수영장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또 사진 안 인물들의 의상을 보면 물을 따뜻하게 하더라도 수영할 수 있는 날씨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이 따뜻해져도 수영을 하러 들어가면 곧 물은 차가워질 것이고, 다시 물을 데우려면 수영장을 가득 메우는 태양열 장치를 집어넣어 수영할 수 없는 시시포스✽ 신화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각이 무색하게 인물들이 수영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유토피아(수영장)가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해 디스토피아로 변질하였지만 그러한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이렇게 모순된 상황을 담고 있는 조엘의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기도 하다. 호박을 파는 뒤편의 집에서는 불이 붙어있다. 진화를 위해 출동한 구급차와 소방차가 보이고, 소방차의 사다리는 길게 뻗어 있다. 대조적으로 한 소방관은 호박을 사고 있다. 실소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또한 깨져있는 호박들과 가게에 진열된 호박이 비교되면서 극적인 효과는 최고조에 이른다. 소방관이 소방 현장에서 본인의 임무를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사진이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임을 상기하였을 때 미국의 상황이 현실에서 현실감 없는 장면들을 사진에 찍을 수 있을 정도로 기존의 위대한 미국이라는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말끔하게 깎인 잔디로 둘러싸인 주택가를 걸어가는 여인들의 사진을 보면 이곳이 정돈되고 깔끔하며 안전한 부자 동네라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다. 3명의 여성이 동네의 주민이 아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도심에서 떨어진 전원 마을에 사는 주민들에게 차량이 없을 수가 없고, 짐을 비닐봉지에 들고 산책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 동네가 유지되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이며, 퇴근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작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흑인인 노동자들을 찍음으로 미국의 역사적인 부분을 깊게 건드린다. 1863년 노예 해방 선언 이후 100년도 넘게 시간이 흘렀음에도 부자를 시중들어야 하는 흑인을 보여주고 있다.

조엘 스턴펠드는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등과 함께 컬러 사진을 예술사진에 적용한 사진작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게 조엘이 사용한 색채는 강하지 않다. 그의 이러한 방식은 감상자가 실재적인 모습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아직 이웃집이 공사 중이라 간이식 화장실이 도로에 나와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유홀(Uhaul) 트럭을 빌려 이삿짐 인부 없이 직접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 소파에 앉아 모유 수유를 한다. 트럭 뒤쪽 그림자 부분에 가려진 여성을 찾아냈을 때 감상자가 받는 놀라움은 넉넉하지 않은 서민의 삶을 직면하기 때문이다.

조엘이 찍은 사진들은 그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찾아가서 찍은 사진들이 아니다. 그가 길에서 우연히 지나치며 찍은 사진들이다. 그는 로드 트립(Road Trip)을 시작하기 전에 그가 생각했던 장면들을 미국의 각지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그는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유토피아적인 모습의 실체와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거리에서 찾아 사진으로 담아내었다.
 










저스틴 컬랜드 | 나그네가 되어 바라본 길
글 노희영 기자

흔히 인생을 ‘길 위의 나그네’와 같다고 말한다. 신이 허락한 시간동안 아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겪는 고통과 선물처럼 찾아오는 기쁨을 번갈아 맞으며 나아가야 하는 인생을 빗댄 말일 테다. 만약 인생이 정답이 없는 짧은 여행길과 같다면,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 어디에 시선을 두고 나아가야 할까 되묻게 된다. 이번 기사에서는 스스로 나그네가 되어 삶에 대한 메시지를 사진으로 전하는 미국의 사진작가 저스틴 컬랜드를 소개한다.

저스틴 컬랜드는 미국의 자연적인 풍경과 주변 지역 사회를 ‘유토피아’적으로 담아낸 사진가로서 12년에 걸쳐 세월 대부분을 길 위에서 로드 트립을 하며 보냈다. 로버트 프랭크, 스티븐 쇼어, 조엘 스턴펠드의 계보를 이은 컬랜드의 작업은 아메리칸 드림과 현실의 장벽을 작업을 통해 탐구하며 도로, 서부 개척지, 탈출, 비주류적 가치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을 드러낸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컬랜드는 미국을 횡단하며 많은 사람과 자유롭게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2004년 아들이 태어난 후, 작가는 엄마로서 육아의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길 위의 여행에서 진행해왔던 자신의 작업 방식에 갈등하기도 했지만, 아들을 통해 오히려 사진작가로서 새롭게 세상을 읽어내는 시야를 얻었다. 이것은 작품에 깊이 스며들었고 아들 캐스퍼는 작품 속에서 여러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 6년 동안 쉽지 않은 생활이었으나 균형을 맞추어 갈 수 있었다. 솔방울 밭에서 분유를 먹는 캐스퍼를 보면 그들의 자유로운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Highway Kind” 시리즈 이전 작업에서 컬랜드는 아름답고 원시적 자연 속에서 ‘여성’, ‘신화’를 주제로 자신만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구축하고 표현해왔다. 그러나 아들 캐스퍼가 태어난 이후 작품 세계는 ‘현실’을 기반으로 길 위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캐스퍼가 기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장면 뒤로 실제 기차가 지나가는 사진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아이와 장난감 기차는 실제 기차와 크기가 비교되면서 인간이 지닌 가능성과 삶의 확장성을 보여주며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역사적으로 철도를 통해 인류의 본격적인 개척과 발전이 시작되고 네트워크가 확장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진은 상징적인 사회적 풍경사진이다.

컬랜드의 시선은 아들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조엘 스턴펠드와 윌리엄 이글스턴처럼, 컬랜드는 미국 뒷길의 평범한 일상적 측면에 주목하며 이전부터 천착해왔던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산 등 미국의 자연 풍경을 달리는 기차를 포착하며 아메리칸 드림 신화의 뒷면을 끄집어낸다. 야영지에서 제집처럼 편안히 바이올린을 켜는 남성과(p.61) 화로 앞에 앉아있는 붉은 머리 소녀의 사진에서 낙후 지역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로드 트립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며 이들의 하위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흰색 트레일러와 함께 선 두 부부는 로드 트립 중에 만난 이주자 가정으로 단기간 일을 하며 아이 셋을 데리고 차에서 생활한다. 이들의 사진은 하위문화를 잘 보여준다. 이 사진은 미국의 대공황 시기 이주노동자로 몰락한 가정의 이야기를 그린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 의 “그들은 더 이상 농부가 아니라 이주자였다. 그리고 생각, 계획, 오랜 침묵이 들판으로 나갔고, 이제 도로로, 먼 곳으로, 서쪽으로 갔다”는 문장을 컬랜드에게 떠올리게 했고 이러한 사진 작업을 하게끔 하는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다.

잎이 떨어진 나무 아래서 캠핑카도 없이 짐을 싸고 있는 남성은 사회에서 내몰려 의지할 곳 없는 나그네로서 불안정성을 안고 살아야 하는 소외된 사람과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에 대한 비판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그 어떤 나라보다 번영과 성장을 일궈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존 스타인벡이 목도했던 어두운 사회의 단면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컬랜드는 작품을 통해 지적한다. 트렁크 뒤에 앉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소녀는 여행자로서 자유와 생존의 불안한 현실을 담담히 전해준다. 사회에서 내몰려 떠도는 이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인자하고 걱정 어린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한다.

12년 동안 대부분의 삶을 길 위에서 보낸 컬랜드가 포착한 사회적 풍경사진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 아래서 굽이진 사연을 지닌 인생이다. 작품에는 그 어떤 편견도 들어있지 않다. 컬랜드의 사진에는 히피와 떠돌이 일꾼, 할렘 등 사회에서 비주류로 낙인찍힌 인생의 모습을 주어진 시간 동안 땅 위에 머물다 가는 나그네로서 다른 나그네의 삶을 이해하려는 따뜻한 시선과 현 사회가 그들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무거운 질문이 담겨있다. 작가의 작품은 인생이 결국 길 위의 나그네와 같다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같은 처지의 나그네임을 깨닫게 한다.



 









스티븐 쇼어 | 길에서 기록한 미국의 사진 그림
글 전경배 기자

천재들은 유소년기부터 두각을 드러내는데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도 그러하다. 그는 10살이 되기 전부터 사진을 찍었으며, 불과 10살 때에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사진집 『American Photographs』을 보고서 영감을 받았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사진큐레이터인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당시 14세인 스티븐 쇼어의 사진 3장을 구매하면서 사진작가로서의 경력이 시작되었다. 16세가 되었을 때 앤디 워홀(Andy Warhol)을 만나 팩토리(The Factory)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는데, 교육시스템보다 팩토리에서 더 많은 배움과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를 중퇴하였다. 1971년에 사진작가로는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구겐하임 등의 주요 예술지원단체의 지원을 받아 젊은 시기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왔다. 이번 스페셜 이슈에서 그의 사진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1970년대 전반에 잡지나 TV 등 많은 매체가 흑백이 아닌 컬러로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였음에도 예술사진은 여전히 흑백사진으로만 작품화되었다. 스티븐 쇼어는 예술사진이 흑백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고, 나아가 예술사진의 전통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다’라는 경험을 사진으로 찍고 싶었으며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전통을 탈피한 컬러사진 시리즈 〈American Surface〉를 완성했다. 하지만 35mm 카메라로 완성한 시리즈에서 한계를 느끼고 대형카메라를 가지고 〈Uncommon Places〉 시리즈를 작업했다. 처음에는 4×5 카메라를 사용하였지만, 프린트를 보았을 때 색감 선명성의 한계와 입자가 생기는 문제를 인식하고 8×10 카메라로 바꾸었다. 2000년대 초기에 그는 다른 사진가들과 비교해 빠르게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인스타그램을 이용한 활동, 드론을 이용한 촬영 등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은 그의 작품을 살아 있고 신선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스티븐은 촬영할 때 대상과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셔터를 누른다. 이러한 태도가 그를 현대의 영향력 있는 사진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평범한 순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삶의 곳곳에서 주변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로드 트립(Road trip) 중 길에서 1970, 80년대 미국의 텍스쳐와 색채를 담으려고 하였다. 그가 여행 중 머문 모텔에서 두 발을 뻗으며 휴식을 취한 모습이나, 식탁에 차려진 팬케이크나(p.70), 미래에 아내가 될 진저 쇼어(Ginger Shore)의 뒷모습을 촬영한 수영장 이미지는 로드 트립을 하면서 자신의 소소한 삶을 기념하는 작품이고, 이전의 시리즈처럼 자기 반영성을 짙게 이미지화 한 것이다.

차량 수리소 근처로 보이는 사진은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붉은 차량 수리소 사인(Garage) 밑으로 보험사 트리플에이사인(AAA)과 버스표 판매소 사인이 있는 애리조나를 여행하면 드문드문 볼 수 있는 평범한 장소이다. 작가는 이러한 평범한 공간을 인식의 공명(Resonance of conscious attention)으로 채워 특별한 장소로 만들었다. 마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삼등 선실을 찍을 때 사진에 채워질 모든 디테일을 신경 쓴 것처럼 스티븐도 사진을 구성할 때 모든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작가는 이 이미지를 포함한 〈Uncommon Places〉 시리즈의 이미지를 8x10 대형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래서 기존에 사용했던 35mm 카메라가 잡지 못하는 디테일을 표현할 수 있었고, 단순히 보고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감상자들이 탐험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었다.

그가 찍은 빌보드 사진 역시 미국 애리조나에서 외곽지역을 차로 달리다 보면 볼 수 있는 흔한 간판 사진이다. 자연을 가리고 자연을 그려 놓은 대형 광고판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깊게 생각하게 되고, 글이 쓰여 있던 자리로 보이는 곳에 색감을 맞추지 않고 덧그려진 파란색 라인 안에는 어떤 글이 있을지 상상하게 된다. 그 당시 미국에서 말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진정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며 미국의 실상을 담고 있다.

그가 최근에 발표한 〈Town&Country〉 시리즈는 드론을 활용한 조감도 사진이다. 그의 이전 작품들과는 시점이 다르지만 내용적인 측면, 즉 미국에서 길을 통해 조망한다는 면에서는 이전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땅에 있는 자연과 인간이 세운 건축물, 구조물들을 사진에 조심스럽게 배열하였다.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지속해서 보여주는 완벽한 구도, 그 안에 있는 마을의 모습과 하늘 위에 있는 구름, 구름 때문에 생긴 그림자 등을 통해 작가의 친숙한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다. 또 길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게 이미지를 찍었다는 점에서 ‘Open Road’를 잘 표현했다.

스티븐 쇼어는 기존에 있던 관습들에 대해 조각가가 정을 내려칠 때 보여주는 섬세함과 정교함, 집중력을 통해 자신만의 해답을 길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면서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구성한 미적 세계를 구축하였다.


 








토드 히도 | 길 위에서 마주한 내면세계

글 노희영 기자

토드 히도의 거리사진은 의식의 흐름과 닮아 있다. 작가는 끝없이 펼쳐진 자연에 놓여있는 외딴 길 위에서 홀로 마주했던 감정을 사진에 표현한다. 혼잡한 도시와 군중 속에서 알 수 없었던 내면은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와 자아를 한층 더 깊은 성찰의 단계로 데려간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거리사진이 사적인 일상에서 시대적 사고의 흐름을 포착했다면 토드 히도의 작품은 개인의 경험과 의식에 집중하는 현대사진 사조가 반영된 듯하다. 깊은 성찰과 회상을 따라가는 의식의 흐름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거리사진을 통해 개인의 내면에 천착한 사진작가 토드 히도를 소개한다.

미국의 상징 중 하나처럼 여겨지는 드넓고 광활한 길 위의 로드 트립은 히도에게 있어서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특히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지역의 오래된 국도라고 한다. 히도는 고향인 오하이오 주의 탁 트인 겨울 들판과 시골 지역의 목가적 풍경이 주는 적막한 느낌을 꾸준히 이미지에 담아왔다. 황량하고 시린 눈밭에 앙상한 숲이 있는 거리사진을 포함하여 “A Road Divided” 시리즈의 작품은 기존에 규정되어왔던 미의 기준에서 탈피하여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무드를 그대로 전해준다. 그런 점에 있어서 히도는 비가 오는 날이나 폭풍이 몰아치는 날, 혹은 한밤중에 나가서 작업을 하는 것이 작가가 원하는 느낌을 사진에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작품 속의 풍경에는 잔뜩 낀 구름과 비를 맞아 질퍽한 길 위에 진흙을 연상케 하는 흔적이 함께 겹쳐져 있다.

“A Road Divided” 시리즈에서 히도의 스냅샷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거리사진과 달리 사물과 풍경의 경계가 흐릿하게 묘사된다. 히도의 거리사진은 감각적이며 뚜렷한 주관성이 강조되는데 빠르게 지나쳐간 듯 눈 덮인 호수인지 들판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숲의 잔상은 운전석에서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히도는 운전하며 가던 길에서 자신의 시야를 흐렸던 자동차 창문에 서린 김과 물방울 너머로 보이는 거리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이러한 사진적 표현은 작가의 시선과도 직결된다. 히도는 작업할 때 수평선을 바라보면서도 중간에 빗방울이나 창에 서린 김과 같은 응축물을 자신의 눈앞에 두어 풍경을 입체적으로 관찰한다.

히도에게 있어서 ‘본다(watching)’는 것은 전체적인 풍경에서 우리가 관심을 둔 대상이 추상적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과정으로, 단지 어떤 것을 선명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통해서 훑어보는 것이다. 예컨대, 또렷하게 포착된 나무와 햇빛에 비쳐 오렌지빛으로 반짝이는 빛 망울이 조합된 이미지나 뿌연 김 뒤로 가려진 나무와 전봇대가 있는 거리풍경처럼, 이러한 표현을 통해 작가는 마치 우리가 추억을 떠올릴 때 어렴풋이 생각나는 모호한 잔상과 강렬히 남은 장면이 뒤섞인 것과 유사한 것을 묘사했다.(p.80) 특히, 어딘가는 뚜렷하고 어느 부분은 불분명한 의식의 흐름처럼 그려낸 이미지들은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으로 다가온다. 이를 통해 작가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통해 분위기와 무드를 감상자에게 전하고자 했다. 이러한 지점은 히도의 작품이 개인의 일상성을 포착해낸 ‘거리사진(street photography)’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히도는 사진을 통해 분위기와 감정적인 무드를 전달하는데 있어 ‘색’과 ‘여백’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한다. ‘색’은 감상자가 사진을 볼 때 감정을 미리 잡아줄 수 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작품들 중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얼어붙은 듯한 이미지는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을 연상하게 하지만 이와 반대로 구름 사이로 동이 트는 햇빛과 하늘을 담은 사진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히도는 촬영할 때 골든아워에 찍힌 사진들은 그 자체의 색을 보존하지만 대체로는 사진에 담긴 느낌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색을 보정한다고 한다. 특히, 작가는 회색빛의 흐린 날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고유의 색을 주변으로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백은 히도의 모든 작품에서 나타난다. 일부러 여백을 촬영하기 위해 작가는 그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한 시간 이상 운전을 하며 탁 트인 공간을 찾아 나선다고 한다. 사진에 일부러 비워둔 이 여백은 히도가 추구하는 ‘공허감’을 드러내며 과거 고향인 ‘오하이오의 적막하고 황량한 느낌’과 의식 속에 혼재된 추상적인 기억, 그리고 뚜렷한 기억의 잔상을 표현하는데 역할한다. 히도는 이미지에 아카이빙 넘버를 붙이는 것 외에 다른 기록을 남겨두지 않는다. 이미지에 많은 정보를 제공할수록 감상자의 해석 과정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감상자가 “이 사진의 장소가 ‘무엇인가’를 생각나게 해요.” 라고 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고 전했다.

토드 히도의 작품은 어딘가로 이동 중에 포착된 순간의 사진이다. 하지만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지나쳤을 것만 같은 익숙한 풍경과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연상되는 추억, 그리고 그 시절에 나의 마음을 보게 된다. 의도적인 흐릿함과 여백을 통해 개인의 사색이 곁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토드 히도의 작품은 인생이라는 길 위의 여행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해당 기사는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