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은 영원하다, 노만 파킨슨

한 여인이 카메라 앞에 선다. 사진을 찍기 전 옷깃과 긴 치맛자락을 정돈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선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18세기 귀족들의 장려한 초상처럼 지루한 사진이 찍힌다. 박제된 인형처럼 정적인 사진이나 여성적 우아함을 강조한 사진이 이 시기 패션사진의 경향이었다. 이러한 흐름에 당당히 반기를 들고 나선 작가가 바로 노만 파킨슨이다. 그는 실내에서 정적인 사진을 찍는 대신 모델들을 야외로 데리고 나가 거리를 걷게 하고, 골프를 치게 하며, 심지어 타조를 타게 하거나 해변의 방파제에서 뛰어내리게 하는 등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자유분방하게 이끌었다. 모델들이 가진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각도와 포즈를 서슴없이 요구하기도 했다. 과감한 포즈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포착된 그의 사진들을 보며 '좀 튀는 패션사진‘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PR_NP_Vogue 1975 ⓒ노만 파킨슨


PR_NP_Vogue 1949 ⓒ노만 파킨슨

1935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1956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의 패션지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 영국판의 패션사진가로 활동한 노만 파킨슨은 18세에 견습생으로 패션 사진계에 입문한지 3년 만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이후 그는 1930년대부터 '하퍼스 바자', '보그' 등  패션매거진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어떤 사진작가도 표현해내지 못한 독창성 있었다. 생동감이 넘치고 혁명적이기까지 한 그의 작품 150여 점을 전시한 사진전 <스타일은 영원하다>에서는 이러한 그의 사진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노만 파킨슨의 국내 최초 사진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영국의 낭만적인 전원 풍경과 활기찬 도시, 음산한 런던의 뒷골목부터 왕실 가족이 머무는 화려한 궁전에 이르기까지 50여 년 동안의 작업을 총망라했다.

전시장에는 노만 파킨슨의 예술적 면모가 돋보이는 실험적 야외 배경 작품들이 전시되는 ‘스트리트 사진’을 시작으로 『하퍼스 바자』, 『보그』, 『퀸』 등 패션 매거진과 작업한 ‘커버 및 화보’ 섹션이 이어진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노만 파킨슨이 화려한 패션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이전의 흑백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다. 더블린 다세대 주택가 거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트위드 정장을 입은 영국 모델 웬다 파킨슨, 예거의 트위드 패션을 선보이며 길을 걷고 있는 리틀 콤프턴의 모습, 두보로브니크에서 쾌속정을 타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 등. 흑백사진이지만 사진 속 인물들은 생동감 있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흑백사진의 칙칙함이나 오래된 사진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추억은 느낄 수 없다. 대신 젊음과 열정, 스트리트 포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종전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하던 시기에 영국에 머무르던 그는 이와 같은 흐름을 놓치지 않고 해외 현지촬영을 시도한 최초의 사진작가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된다. 자신만의 색다른 창조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아름다움을 담은 사진들은 정체된 영국 사진계에 변화를 주었으며, 다른 사진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진 속에 자주 등장하는 웬다 파킨슨, 제리 홀, 카르멘 델로비체, 캐서린 파스트리 등 많은 모델들은 노만 파킨슨의 사진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뮤즈이다. 그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남다른 안목을 가진 사진가답게 새로운 모델을 발굴하기도 하고, 이미 최고인 모델들에게 도전적인 미션을 주어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숨겨진 매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PR_NP_Vogue 1958 ⓒ노만 파킨슨


PR_NP_Vogue 1958 ⓒ노만 파킨슨

1973년 앤 공주의 결혼식의 공식 사진사로 활동한 이래 그는 왕가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담아낸 정교한 왕실 사진들을 완성하며 왕가의 공식 사진사로서 영국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쾌활하면서도 동시에 존경을 표하는 공손한 태도 덕분에, 그는 영국 왕실에서 고정적으로 찾는 사진가로 대우를 받았다.

패션사진계에서 그가 아직도 회자되는 것은 활동 당시의 전형적인 실내 스튜디오 촬영 형식을 벗어나 야외를 배경으로 패션 사진을 만들어 낸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비틀즈와 오드리 햅번, 비비안 리, 캘빈 클라인 등 수많은 최고의 셀러브리티들이 노만 파킨슨의 프레임에 들어왔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파킨슨의 이력을 더욱 화려하게 만든 뮤지션과 예술가, 디자이너들의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공간은 그의 열정을 닮은 버건디 컬러와 평소 즐겨입던 실크소재의 블라우스를 닮은 커튼으로 연출되어, 마치 여성들의 파우더룸이나 예술가의 아뜰리에처럼 꾸며졌다. 18세에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노만 파킨슨은 76세가 되던 해인 1990년 싱가포르의 영화 로케이션 현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할 때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이는 사진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사랑을 보여준다. 그렇게 탄생한 사진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패션 사진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노만 파킨슨의 열정이 담긴 150여 점의 사진들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KT&G 상상마당에서 관람할 수 있다.

 

글 김수은 기자  이미지 제공 KT&G 상상마당
해당 기사는 2015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