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제라르 랑시낭(Gérard Rancinan), 인간은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가?
- 2020-04-23 14:54:43
제라르 랑시낭 Gérard Rancinan의 <인간의 운명The Destiny Of Men>은 총 14작품으로 이뤄진 시리즈로 지난 2016년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플로렌스, 독일 베를린 등지에서 전시를 가졌다.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묻는다. 인간은 과연 자신의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가?
The Feast of crumbs, 2014 ⓒGérard Rancinan
프랑스 컨템포러리 아트씬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제라르 랑시낭Gérard Rancinan의 신작
천사인가? 악마인가?
Market Scene, 2014 ⓒGérard Rancinan
하지만 제라르 랑시낭의
그것은 그의 작품 속 천사들이 신의 사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날개를 돋게 해서 생존하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가는 기존의 천사도상을 빌어 하늘 위의 천사와 대조되는, 땅을 딛고 살아야하는 인간의 운명을 강렬하게 압축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이
고전의 차용과 변형, 그리고 반전
Heroes, 2014 ⓒGérard Rancinan
제라르 랑시낭은 이전 <변형 Me'tamorphose> 시리즈에서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부르카를 입은 여신’으로 패러디한 'La liberte devoilee'(2008) 작품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정부가 공공장소에서 이슬람계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는 것을 제지하는 법안을 제정해 논란이 일던 현실을 풍자한 이 작품은 예술만이 가능한 화법으로 사회의 모순을 고발했다. 이 밖에도 그는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이나 앙리 마티스의 ‘춤’ 등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자신만의 사진으로 재해석했다. 이번
The Annunciation, 2015 ⓒGérard Rancinan
‘수태고지 The Annunciation'(2015)는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성령을 잉태했음을 알리는 장면을 패러디했다. ‛수태고지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프라 안젤리코, 루벤스 등 수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주제였다. 성화(聖畵) 속에서 마리아와 가브리엘은 신성한 소식을 알게 된 기쁨과 놀라움, 엄숙함이 함께하지만, 제라르 랑시낭의 ‘수태고지’는 정반대이다. 천사는 분노에 차있고, 잉태한 사실을 고지받은 여인은 경악에 차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 옆의 티비 화면에는 우주에 첫 발을 디딘 인류와 핵폭발의 장면, 인류 역사의 명암이 비춰지고 있다. 제라르 랑시낭의 ‘수태고지’에서는 사진 중앙의 백합꽃보다 남자의 발 아래서 뒹굴고 있는 해골이 더 눈길을 끈다. 이런 해골과 죽음의 뉘앙스는 이 시리즈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를 부각시킨다. 깨진 수박과 엎어진 과일들, 그 위의 행상에 기대 십자가에 메인 듯한 형상으로 누운 남자(Market Scene, 2014)나, 드럼통 폐기물 위에 여인의 머리를 베고 누운 남자는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Descente de croix’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잘 알려진 고전명화에서 차용한 구도는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균형을 주지만, 그보다는 작품에 쓰인 오브제들과 인물의 차림새들이 고전의 상징을 뒤틀고 있어 세세한 부분을 곱씹어 보게 한다.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천사나 펑크족 스타일의 캐릭터와 고전적인 샹들리에의 대비 등 요소요소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현 세태를 반영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사진으로 세상의 증인이 되다
The Guide, 2014 ⓒGérard Rancinan
The Warrior, 2014 ⓒGérard Rancinan
이처럼 고전의 모티브 속에 ‘지금 이 시대’에 대한 메타포를 넣는 것은 제라르 랑시낭의 특징인데, 이는 그가 사진기자 출신이라는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컨템포러리 아트 작업들은 연출성과 연극성이 강해서 이 작품들만을 봤을 때는 간과할 수 있는데, 사실 그는 18세부터 언론사의 사진기자로 활동을 시작해, World press photo에서 84년부터 89년까지 5회를 수상한 베테랑 포토저널리스트이다. 그러나 포토저널리즘만으로는 자신이 겪은 세계를 표현하는데 목마름을 느끼고, 파인아트 작업을 시작했다.
제라르 랑시낭은 “나는 결코 직업을 바꾸지 않았다. 나는 항상 사진가였다. 나는 내가 겪은 사건과 시간들의 증인이 되어 이 세계를 촬영했다. 사진은 내가 살면서 경험하고 마주친 사건들의 집대성으로, 다만 지금 사진이 이전의 사진(포토저널리즘)보다 더 주관적일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사진을 통해 사회를 관찰하고 참여하며 발언하려고 하고 이는 내가 사진기자일 때와 마찬가지다”고 말한다.
The Party is Over, 2014 ⓒGérard Rancinan
그의 작품이 가진 독자적인 세계만큼이나, 사진에 대한 그의 시각은 확고하다.
“나의 소명은 사진으로 남을 즐겁게 하거나, 여흥을 주거나 혹은 작품가격 기록을 깨거나 하는데 있지 않다. 각각의 사진들은 정치적이면서도, 시적인 나의 약속이자 책무이다. 나는 내가 사는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내 생각을 시각화한다. 만약 내가 하는 일에서 그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면 나는 오래 전에 이 일을 그만뒀을 것이다.”
제라르 랑시낭Gerard Rancinan은 18세에 보르도 지역 신문사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Opera Gallery Hong Kong (www.operagallery.com)
해당 기사는 2017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미지 제공 Opera Gallery Hong Kong (www.operagallery.com)
해당 기사는 2017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