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페이스 ⦁ ⦁ 정민순 《노년의 초상》
- 2025-01-14 09:42:32

오래된 것을 볼 때의 고유한 감흥이 있다. 무수한 세월이 스쳐 가면서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시간이란 존재가 체감될 때는 종종 경이롭고 조금은 성스럽다. 정민순의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랬다. 그녀의 사진에는 오랜 시간을 건너온 인간이 서 있다. 단순히 노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름이 깊게 패인 한 인간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대항할 수 없는 시간의 밀도와 무게를 생각하게 한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던 어느 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응축된 시간의 흔적을 감상해 보자.
둥근 형태의 전시 공간에 인물 사진이 나열되어 있어 입구부터 압도하는 기분이다. 이번 전시 《노년의 초상》(2024.11.28. ~ 12.4. | 의정부 문화재단)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나는 시골에서 팔 남매 중 일곱째로 자랐다. 기억 속 부모님은 항상 늙어 있는 모습이었다. 한 번도 부모님의 젊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후에도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이번 전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씨앗이 되어 피어난 작품의 모음이다. 나에게 노인은 진실하고 아름다운 피사체이면서 동시에 지혜, 강인한 인격, 평생의 꿈을 묘사하기 위한 암시다. 그들이 나를 보며 지어 준 미소에서 내 부모의 모습을 찾기도 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주름에는 삶의 경험이, 거친 손에는 고단함이, 반짝이는 눈에는 슬기로움이 있다.
한눈에 봐도 작업량이 많다. 어르신을 설득하고 카메라 앞에 세워서 얼굴을 담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을 거라 짐작된다.
작업을 시작한 지는 2~3년 정도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겹친다. 시골에 있는 시장과 지역 축제장을 주로 찾았다. 그곳엔 사람이 그리운 노인이 많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셨고, 덕분에 작업 과정도 수월했다. 물론 결과물도 더 좋았다. 그분들이 카메라를 통해 웃어주시면 마음이 편안했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가장 중요하고 그 시작은 대화로부터 이뤄진다. 의정부에서 오랫동안 장수 사진 촬영봉사를 한 덕분에 현장에서 어르신을 섭외하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촬영까지 진행하는 모든 과정이 빠르고 익숙했다.

노년의 초상 ⓒ정민순
한국 1세대 리얼리즘 사진가 임응식의 〈구직〉이란 작품이 있다. 1953년 명동 거리에서 한자로 쓰인 ‘구직’이라는 팻말을 몸에 감고 벽에 기대어 있는 청년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감상자에게 당시 한국의 시대상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힘이 있다. 정민순 작가가 황학동에서 촬영한 3장의 사진이 비슷한 감상을 전해주었다. 트립틱으로 표현한 작품에는 후드 모자를 덮어쓴 남자가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고, 길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남자와 파지를 모으는 듯 카트를 끄는 남자가 있다. 이 작품 앞에서 전시의 제목을 다시금생각해 봤다. 그녀가 바라본 노년의 초상은 어디까지 향하고 있나. 그 범위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진한 감동을 주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은 어르신이 많을 것 같다. 그분들의 모습으로 감상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번 작업을 시작하기도 훨씬 전인 40년 전에 절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있다. 기억 속에서 그분은 표정이 정말로 인자하셨어서 최근에 수소문해서 직접 찾아뵈었다. 포천 요양원에 계신다는 그 어르신은 올해로 102세, 아쉽게도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셨지만 표정만큼은 옛날보다 더 인자하고 따뜻했다. 눈물을 흘리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굽은 허리로 가마솥에 물을 끓여 목욕하는 어르신을 보고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했다. 주름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우리의 부모님 혹은 미래의 자화상을 생각하면서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음미하길 바란다.
글 강성엽 객원기자
해당기사는 2025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