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 한경은

한경은은 사진을 통한 치유의 힘을 믿는 작가이다. 그는 M과 K라고 명명된 인물들의 상처와 회복의 궤적을 사진으로 담은 〈Invisible Vision〉 시리즈로, 제 9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로 최종 선정됐다. 한경은 작가의 멘토를 맡은  강수정 심사위원은 “이 작품은 선명한 기억의 비명이 겹겹이 베여있는 극명한 감성을 벌거벗은 몸의 형태를 통해 표출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평했다. 2년간 두 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조각나거나 왜곡된 기억을 재생시켜 현실을 비추는 과정’에 동행했던 한경은 작가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사진과 치유의 힘’에 대해 들었다.

 
Invisible Vision, 2003년, 2016 ⓒ한경은

KT&G SKOPF 올해의 작가로 최종 선정을 축하한다. 작가 이력 중 사진심리상담사로 심리치료과정을 전공한 것이 눈에 띈다. 어떻게 사진과 심리치료 분야에 관심 가지게 됐는가?
페미니스트 저널 『IF』 지에서 기자로 일할 때, 기사를 쓰다가 사진도 찍게 됐다. 사진을 다시 시작하며 내가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심리학은 스스로 심리 상담을 받으며 편안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치유의 힘을 경험하고 이를 나누고 싶어서 공부했다. 동덕여대 대학원에서 통합예술치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사진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해 예술치료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의식적이고, 의도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 같다.


이번에 수상하게 된 〈Invisible Vision〉은 언제부터 작업했나?
〈Invisible Vision〉은 지난 2014년부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참여자들의 개인사를 인터뷰를 통해 충분히 채록하고, 이를 즉흥적인 연출을 통해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다만 이 작업에서 내 위치는 작가일 뿐, 심리상담사는 아니다. 이 시리즈를 보여주며 내가 늘 강조하는 부분이다. 작업 주제가 심리에 초점이 있고, 치유라는 표현이 나와서 간혹 혼동하는 분들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시리즈를 작업할 때 나는 아티스트이고, 작업 활동과 상담활동은 당연히 별개로 구분돼야 한다. 내 작업에 참여하는 참여자는 내담자가 아니며, 또 모델이란 표현도 적합하지 않다. 참여자는 내게 자신의 상처와 기억을 이야기하고, 나는 이를 듣고 소통하며 시각화한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해 참여자든 작가든 치유가 이뤄지고, 치유적 사진을 모토로 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예술 사진을 작업하는 작가이고, 참여자는 아트워크를 생산하는 적극적인 주체이다.   


〈Invisible Vision〉은 벌거벗은 여성이 바위에 누워 있다거나, 덤불을 헤치고, 포크레인과 맞서는 등 의외의 장소와 오브제가 주는 시각적 충격이 강렬하다. 이런 장소와 오브제는 어떻게 선정했는가?
이 작업은 즉흥적인 부분이 많고, 그런 우연성을 지향한다. 작품의 전체 기획의도, 방향성, 흐름은 내가 잡지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은 참여자의 마음에 맡기고 즉흥적으로 드러나도록 한다.
처음에는 참여자의 인생사를 녹취하는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가 기억 - 몸- 상처- 무의식을 거슬러 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이야기하게끔 한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때론 기억이 중간 중간 끊기는 곳이 있는데, 그럴 때는 거꾸로 내려가거나, 다시 앞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전 생애의 스펙트럼을 인터뷰한다. 이런 인터뷰 기간이 5~6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이렇게 말을 통해 자신을 노출하고, 스스로 발설하는 것도 일종의 치유과정이다. 물론 인터뷰 과정에서 작가는 상담자의 위치가 아니라, 참여자에게 이것이 궁금하다고 질문하는 질문자의 역할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비로소 촬영에 들어가는데, 촬영은 이야기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장소나 공간을 찾는다. 가령 참여자가 아주 추운 곳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 하며, “나는 내가 아주 차가운 돌바닥 위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서, 바닷가의 방파제를 찾는 식이다.
일단 알맞은 장소를 찾으면, 참여자의 마음과 몸이 움직이는 데로 따라간다. 그가 누워있고 싶다고 하면 눕게 하고, 이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할 때는 그 일어나는 과정을 촬영한다. 다만 그 때 돌바닥이 너무 추워 보인다고 생각해서, 바닥에 하얀 천을 깔아준 것은 내 의지였다. 작업과정은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데, 다중노출을 하든, 장노출을 하든, 핸드 헬드로 찍든, 그  촬영 당시 참여자의 몸의 태도, 심리적인 주제에 맞춰 어떻게 적합하게 시각화할 것인가, 그 표현방식을 고민한다.
일종의 즉흥적 퍼포먼스나, 로드무비와도 같은데, 작가가 일방적으로 몰아가기 보다는, 참여자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맡겼다. 때론 마치 로드무비처럼 한 장소를 찾다 전혀 우연인 장소나 오브제와 마주치기도 했다.


 
 
Invisible Vision, 2007년, 2015 ⓒ한경은

참여자들이 긴 시간에 걸쳐 내밀한 기억들을 꺼내야 하기에, 작가와의 호흡이나 신뢰감이 중요한 요소였을 것 같다. 어떻게 참여자와 관계맺기를 했는가?
참여자들과는 2년간 작업을 진행하며, 서로 신뢰관계가 형성됐다. 그들은 자신의 기억이나 상처를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생각하기에 참여한 것이고, 자기 신체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신뢰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상처에 관한 작업인데, 그 작업과정에서 참여자와 작가간의 신뢰가 깨지면 더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호기심이 먼저 들고, 질문하는데 익숙하다. 사람 만나는데 두려움이 없기에 가능한 일 같다. 내가 내담자로 상담을 받을 때, 내가 신뢰하는 누군가가 내 인생과 아픔에 관해 물어봐주는 것이 고맙게 느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은 필요하다. 내가 이야기 할 때 누군가 잘 들어주는 것, 그런 경험과 믿음이 사람을 열리게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단, 자신이 비판받지 않거나, 비난받지 않을 거라는 전제하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뢰가 쌓인다. 그런 신뢰가 있었기에, 이 작업을 하면서 질문하고, 제안하고, 요청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 작업과정을 통해 참여자나 작가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작업을 장기간 진행하면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는가?
이 작업 자체가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다. M과 K는 작업을 진행하며 시각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전시에서 굳이 드러내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한 장 한 장의 이미지만으로 보이는 것이 좋을지는 아직 고민중이다.
가령 M 같은 경우에는 작업 초반부에 웅크려 있거나 누워 있고, 몸을 수축시키는 태도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작업 후반부로 가면서 카메라 쪽으로 몸을 돌린다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고,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태도의 변화가 있었다. K의 경우에는 무엇인가를 얼굴에 뒤집어쓴다거나, 소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하려고 했는데, 작업 후반부로 갈수록 소품을 쓰지 않고, 자연 속에 몸을 눕히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태도로 바뀌었다. 그는 작업 후반부로 갈수록 죽음을 많이 이야기하며,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줬다. 이는 죽음을 통한 회복의 의미이기도 하고, 죽어야만 다시 살 수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참여자가 자기는 이 작업을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그 느낌-자유로움, 아프고 힘든 과정, 그리고 치유를 통한 편안하고 좋은 느낌-을 알아보면 좋겠고, 보는 이들도 이를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비록 인생에 완전한 치유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느낀 자유로움과 치유의 감정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작업 과정에서는 참여자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다고 해도, 촬영 후 컷을 선택할 때는 작가의 감수성이 많이 반영됐을 것 같은데?
수잔 손택이 한 말 중 ‘사진은 인물을 특별하고 신비롭게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처럼 나는 내 카메라 앞에 선 인물들이 특별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그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에 신비롭고, 더 질문하고 싶고, 존중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찍은 사람이 특별하기에, 그 사람의 상처가 아름답게 드러났으면 좋겠다. 상처로 인해 비틀거리거나, 처절할지 몰라도, 꼭 상처가 아프게 드러나지는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원래 상처 자체는 아름답다. 고름이 나고, 피가 나고 뜯겨지지만, 그 상처 없이는 원래 내 고운 피부의 소중함, 아름다움을 알 수 없지 않나? 상처는 때론 나의 면역력을 높이기도 하고,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Invisible Vision, 2006년, 2016 ⓒ한경은
 

KT&G SKOPF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것이,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이번에 선정됨으로써 개인전과 도록 출판을 지원받게 되는데, 그 경제적 지원금이 안정적인 작업여건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 오는 8월에 KT&G 상상마당에서, 10월에는 고은 사진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릴 예정이고, 작품 도록도 함께 출판되는데, 이 역시 고맙고 소중한 기회이다. 결국 작업의 목적은 전시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인데, 이런 전시와 도록 출판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
사진이 예술매체로 가지고 있는, 시각적으로 강력하게 드러나는 파워풀함, 이를 믿고 가고 싶다. 사진이야말로 예술이 가진 본질적인 치유력, 가능성과 잠재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치유의 가능성을 믿고 이를 잘 활용하면서, 사진을 통해 표현하고 질문하는 것이 가장 나다운 창작활동이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한경은
해당 기사는 2017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