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도시③ : 장 프랑소아 로지에, 꿈속의 도시들 “BABYLONES”

꿈속에서 공간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다. 공간은 다른 공간으로 연결되면서 몸을 합치기도 하고 분리하고 변이하면서 스스로 움직인다. 우리가 언젠가 스쳐간 공간들, 아마도 유년의 기억, 지운 기억, 혹은 이야기로 들었던 상상 속 기억들이 만나 꿈속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든 것 같다. 사진작가 장 프랑소아 로지에(Jean-François Rauzier)는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공간의 흐름을 한 장의 사진으로 ‘건축’한다. 그가 여행에서 찍은 수천 장의 이미지들은 마치 꿈을 꾸듯 결합하고 이동하면서 새로운 기억의 공간으로 재창조된다.

로지에는 2002년부터 ‘하이퍼 포토(Hyper-Photo)’를 작업하면서 가장 작고 동시에 가장 큰 무한대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이미지를 복제하고, 병합하고, 비틀어 우리가 보고 믿는 것의 시야를 새롭게 구성한다. 그의 작품 중 “바빌론(BABYLONES)”시리즈는 2000년대 도시의 이미지를 뒤섞고 흔들어, 이야기와 상상 속에서 존재하던 ‘바빌론’을 구축했다. 신화 속 상상의 공간, 바빌론에 가기 위해선 그의 사진적 환상을 통과해야 한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로지에 작가에게 그가 꿈 꾼 ‘바빌론’이라는 도시에 대해 물었다.


 

BABYLONES, Babylone blanche, 2010, 150×250cm ⒸJean-François Rauzier



BABYLONES, Chapelle Royale, 2010, 150×250cm ⒸJean-François Rauzier



BABYLONES, Voyages extraordinaires, 2009, 180×300cm ⒸJean-François Rauzier
 
당신이 작업하는 ‘하이퍼 포토(Hyper-photo)’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나는 30년 이상 필름을 사용하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기존의 기술을 넘어서는 새로운 기술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2000년경에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자, 기존 전통적인 방식에서 표현하기 어려웠던 정밀성과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으로 이미지들을 조합한 모자이크 작업을 진행했다. 그 첫 모자이크 사진 작업들을 사소하고 세밀한 이미지 표현에 몰입했던 초현실주의 화가들을 참조해서 ‘하이퍼 포토’라고 지칭했다. 전통적인 사진 작업은 내가 보는 것 혹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그렇게 부분적으로 완성된다. 우리가 어떤 장소를 방문했을 때 고개를 돌려 장소를 바라보고, 그곳을 지나간다. 그때 우리의 눈은 수천 개의 ‘익숙한 이미지’들을 인식하고, 그 이미지들을 뇌로 전송해 기억의 형식으로 저장한다. 반면 사진은 매우 독특한 한 장의 이미지다. 그래서 나는 ‘하이퍼 포토’를 통해 기억을 다시 재구성하고자 노력한다. 그것은 일종의 판타지 혹은 꿈과 연관이 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최근에 본 대상에 대해 정신적으로 재구축하는 것이다. 하나의 선택으로 결정된 한 장의 사진은 독단적이고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사진을 고를까?”에 대한 질문이 대답하기 가장 어렵다는 걸 안다.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했다. 나는 모든 사진을 다 선택하기로 했다!

작업방식이 독특할 것 같다. 보통 어떻게 작업하는가.
처음 이미지를 조립할 때는 특별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포토샵의 초기 버전의 프로그램으로 촬영한 이미지들을 하나씩 붙였다. 심지어 그때는 ‘레이어’ 기능조차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모든 이미지들의 ‘총합’을 만들어냈다. 이 ‘총합’의 이미지는 내가 한 장소에 대해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앵글부터 전면과 후면, 내부와 외부까지 모두 담아내는 것이다. 포토샵 다음으로, 이미지들을 조합하기 위해 ‘Kolor Autupano’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나는 촬영한 이미지들을 각각 오리고, 보정하고, 변형한다. 그리고 전선이나 거리에 있는 차와 벤치 등을 지운다. 이 과정은 나만의 ‘하이퍼 포토’를 얻기 위해 마치 큰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다양한 표현을 거쳐 마침내 나의 상상력이 구현된다. 나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내가 찍은 인물 캐릭터와 나무, 동물과 같은 이미지들을 배치한다.

몇 년 전 「My Modern Met」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작업을 시작할 때 아이디어와 감정은 있지만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많은 ‘왜곡’이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다. 대상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보고 결과물이 나타나기까지 당신의 작품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사진에 대한 오랜 논쟁 거리 중 하나가 “사진을 완성하는 것은 사진작가인가 피사체인가”이다. 물론 대답은 다양하다. 나는 피사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선입견 없이 대상에 다가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 대상에 나를 맡긴다. 내가 모르는 도시에 갈 때는 미리 책을 읽고, 사진들을 보고, 그 장소에 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현장에서 발견한다. 또한 작업의 대부분은 매우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을 찍을 때 거의 로봇처럼 일한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한 상태로 하루에 약 만 장 정도 찍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사진들이 적절하게 나열이 가능할는지, 노출과 포커스에 문제는 없는지에만 집중한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은 오직 컴퓨터 앞에 있을 때이다. 나는 마치 꿈을 꾸듯 이미지를 구축한다. 판타지와 기억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미지는 스스로 만들어진다.



BABYLONES, Cour de marbre, 2011, 180×300cm ⒸJean-François Rauzier



BABYLONES, Dédale 2, 2010, 120×200cm ⒸJean-François Rauzier



BABYLONES, Versailles, 2009, 180×300cm ⒸJean-François Rauzier

 
‘바빌론’ 시리즈는 그러한 주제 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바빌론’이라는 도시에 대해 듣고 싶다.
나는 꿈꾸는 사람이다. 많은 것들을 어린 시절 책에서 배웠다. 특히 신화적 이야기들을 많이 읽었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 문명에 대한 역사를 비롯해,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과 만화가 에르제(Herge). 그리고 나중에는 판타지 영화와 프랑소와 스퀴턴(François Schuiten)과 같은 만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읽었다. 바빌론은 그렇게 접한 가장 강력한 이야기 중 하나였다. 그것은 자만과 허영을 의미한다. 도시는 매우 아름답고 신비로운 도시였지만, 허무하게 사라졌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도 그러한 판타지이다. 나는 삶의 무용성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우리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놀라운 만한 무언가를 만들지만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진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주제 의식에 대한 알레고리(allegory)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는 프랙탈(fractal) 구조로 만든다. 그 이미지들은 부분을 복사해서 그룹화하고 다시 그것을 축소한 후, 그 축소된 이미지들을 다시 결합한 것이다. 이러한 프랙탈 이미지를 좋아한다. 가장 최소한의 상태는 항상 무한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없지만 동시에 무한한 ‘무’의 상태로 말이다.

‘바빌론’ 시리즈에는 마치 파리의 우울을 관찰한 산보객 보들레르처럼 도시를 바라보고 산책하며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그 사람을 ‘검은 남자’ 또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Andrei Tarkovsky)의 영화 제목을 따서 ‘잠입자(Stalker)’라고 부른다. 누군가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뒷모습이기도 한 익명의 상태이며 가능한 중립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는 인간이자, 당신, 또는 나의 모습이다. 그의 모습은 배경 이미지의 광대함을 역으로 강조함으로써 무한한 우주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에 불과한 인간을 드러낸다. 두 번째로, 그는 우리를 작품 속으로 안내하는 사람이다. 작품은 매우 디테일하고 정밀하기 때문에 이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작품 안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리의 시선이 입구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남자의 검은 실루엣이 열쇠 구멍 모양이라는 점 또한 그러한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도시와 공간에 대해 오랫동안 작업해왔다. 이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다면 알려 달라.
인간이 성취한 업적은 나를 매료시킨다. 특히 그 규모가 클수록 말이다. 나는 세 개의 도시들을 각각 비교하기도 한다. 가령 베르사유와 브라질리아, 아스타나와 같이 3개의 다른 대륙에 놓인 도시들이 각자의 역사적 시간과 통치권자의 결정으로 개별적 도시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비교하는 것이다. 나는 이 도시들에 대해 작업하면서 인간보다는 그 유산에 대해 보여주길 원한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증언하고 우리의 기억과 존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어 갔지만, 이러한 유산은 남아 있다. 파리와 이스탄불, 로마와 같은 도시는 역사적 교훈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도시는 마치 팔림세스트(Palimpsest;흔적 위에 덧쓰기) 구조처럼 2000년 전의 유산과 함께 오늘날의 건물들이 계속해서 건축되고 있다.

당신은 사진 작업을 하지만 조각도 하고 페인팅도 한다. 이러한 작업들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는가.
나는 사진과 함께 오랫동안 회화와 조각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디지털 작업을 시작하면서 ‘하이퍼 포토’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하이퍼 포토’ 작업에는 기존의 전통적인 사진 테크닉뿐만 아니라, 회화와 조각 예술까지 결합되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대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조각가로서 대상을 다양하게 움직이며 모양을 잡기도 한다. 예전에 누군가는 나에게 나의 ‘하이퍼 포토’가 얕은 돋을새김 같아서 내가 조각가 같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최근 당신의 작품에서는 메가시티의 문화적·인종적 다양성이 엿보인다. 앞으로 당신이 표현하고 싶은 도시 공간의 모습이 있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해줘도 좋다.
나는 요즘 ‘박물관’에 대해 작업하고 있다. 수천 개의 회화와 조각 작품이 있는 가상의 도서관 이미지를 표현해보고 싶다. 또한 ‘파리의 산책자’를 약 10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꽤 오래 걸리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 대해 더욱 깊이, 그리고 완벽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나는 빌딩보다는 거리와 아름다운 건물들을 모은다. 거리를 새롭게 탄생시키기 위해 파리의 풍경을 해치는 자동차들을 지우고, 동물 이미지를 추가하면서 새로운 서사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업은 꽤 큰 이미지로 만들어질 것이다. 아마 높이가 6m, 길이가 20km 이상이 될 것이다. 파리 올림픽 때까지 완성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글 오은지 기자
해당 기사는 2019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