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도시② : 고명근 “Building”

반투명한 건물 표면이 모여 또 하나의 입체 공간을 만들어낸다. 도시의 수많은 건물의 외관을 찍은 반투명한 사진 이미지는 말 그대로 구조물의 ‘피부’일 뿐이다. 시각적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이미지 너머에는 비어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고명근은 도시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빈 공간’을 만든다. 눈길을 끄는 화려한 외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Building-66, 2018, digital film 3D-collage, 73×63×35cm ⓒ고명근



<불로장생長生>(성남큐브미술관, 2018) 전시 전경

<불로장생長生>(성남큐브미술관, 2018) 전시 전경
 

평면에서 입체로
여러 사진 이미지들로 둘러싸여 입체 작품으로 재탄생된 고명근의 작품은 ‘사진 조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반투명한 사진 이미지들은 각각 구조물의 표면이 되고, 서로 연결되어 입체적인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바뀐다. 뒤가 어렴풋이 비치면서 겹쳐지는 이미지들은 보는 이에게 시각적인 유희를 제공한다. 고명근의 작업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로 사진을 찍어서 이미지를 수집하고, 두 번째로 이미지를 어떻게 이용할지 연구하며, 마지막으로 이미지를 연결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고명근은 도시, 그리고 그 도시의 건물들을 바라본다. 세련되고 깔끔하게 디자인된 건물부터 어딘가 지저분하고 정리가 되지 않아 복잡한 골목의 건물까지.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한 걸음 물러나 멀리서 바라보기도 한다. 인간이 만들어내어 무엇보다 인간적이고 인간의 체취가 남아있는 건물과 도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NewYork 2013-2, 2018, digital film 3D-collage, 89×150×33cm ⓒ고명근


Building-39, 2009, digital film 3D-collage, 70×30×30cm ⓒ고명근

고명근이 ‘채집’한 건물과 도시의 이미지들은 투명한 필름지에 인쇄된다. 그리고 완성할 작품의 작은 모형을 만들어서 작품에 사용할 최종 이미지를 선택하고, 전체적인 크기와 모양을 정한다. 그 후에 작가는 사진 이미지가 크게 인쇄된 필름지의 앞뒷면에 플렉시 글라스(Plexi Glass)를 여러 겹으로 부착한다. 이로써 플렉시 글라스 사이에 압착된 이미지는 필름지에 인쇄했을 때보다 두꺼운 두께감이 생긴다. 그렇게 사진 이미지를 품고 있는 플렉시 글라스의 가장자리를 약 350도로 가열된 인두로 열을 가하면 플렉시 글라스가 녹으면서 단단하게 붙는다.

고명근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평면의 사진 이미지를 입체적인 형태로 재구성한다. 실재했던 건물과는 형태나 크기 등 모든 것이 전혀 다른 건물, 전혀 다른 공간이다. 건물이라고 생각해서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면, 어딘가 이질적인 이미지임을 깨닫게 된다. 똑같아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사진,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을 붙여 놓은 외벽 등. 감상자의 눈앞에 있는 ‘건물처럼 보이는 구조물’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왜곡된 공간이다.


 



Taipei 10-4, 2011, digital film 3D-collage, 85×78×78cm ⓒ고명근


 Taipei 10-5, 2014, digital film 3D-collage, 60×200×20cm ⓒ고명근

이미지 너머 텅 빈 공간
“빈 공간.” 고명근의 작업을 관통하는 큰 테마이다. 이미지로 둘러싸여 있는 그의 작품을 보면 공간감을 파악하기 어려워 “비어 있다”라는 말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플렉시 글라스로 만들어진 입체 구조물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겹쳐 보이는 이미지로 인해 내부가 꽉 찬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비어 있는 것이다.

고명근은 세상이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의 개념으로 봤을 때 영속적이라 생각되는 물체여도, 더 넓은 범위의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모두 찰나에 불과한 것이다. 화려하고 무언가로 가득 찬 것 같은 세상은 사실 텅 비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체를 쪼개고, 쪼개고, 하염없이 쪼개다 보면 하나의 파동만이 남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고민으로부터 고명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비어 있는 ‘환상의 세계’라고 판단한다.

“Building” 연작에서 사진 이미지는 구조물의 피부, 즉 표면일 뿐이다. 고명근은 시각적으로 화려한 겉면보다 그 안의 비어 있는 공간이 본질이라고 역설한다. 자신이 촬영한 현대 문명의 산물인 강렬하고 화려한 도시 이미지를 이용하여, 겉이 번지르르한 가짜 표면을 만들어 놓으면서 말이다. 겹쳐진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시선을 잡아끄는 이미지는 보는 이에게 시각적 유희를 주지만, 그와 동시에 혼란을 준다. 재구성하여 왜곡되고 비틀린 공간을 보면서 일상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재구성된 도시 공간은 시각적 흥미로 시작해서 이것이 무엇인지,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인지,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의 물음을 이끌어낸다. 단순한 호기심으로부터, 고명근은 우리에게 ‘비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준다.

 


Stairway-13, 2018, digital film 3D-collage, 45×132×21cm ⓒ고명근



Brooklyn 14-1, 2018, digital film 3D-collage, 90×283×26cm ⓒ고명근
 

고명근은 건물, 도시 공간을 통해서 인간을 본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보기 위해서는 인간이 만든 것을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인간의 몸은 신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들어낸 것은 우리의 생각이다.”라는 고명근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건물, 도시 공간은 곧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얼굴이나 몸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살아가는 환경 그 자체가 인간인 것이다.

고명근은 인간의 손으로 쌓아 올린 도시를 프레임 너머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린다. 화려한 이미지 너머, 이미지로 가득 찬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그의 작품처럼, 우리의 세상도 여러 가지로 가득 찬 듯 보이지만 허상과 같다. 고명근은 우리들이 환상의 세계에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고 표현한다. 화려한 도시 너머로, 비어있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글 팽서연 기자
해당 기사는 2019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