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국제사진제 주제전, 공동체란 무엇인가?


동강국제사진제 주제전 
나는 갈등한다, 고로 존재한다(I conflict, therefore I am.)


 
“누구는 공동체 간 대립의 희생양이 되고, 누구는 공동체의 이익을 저버린 적이 되고, 누구는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고, 누구는 느슨한 공동체를 실험하고, 누군가는 공동체를 완전히 등진다. 정답을 말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선 넓게 보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술이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 동강국제사진제 신수진 예술감독


ⓒHanne van der Woude, Jolanda, 2007, Hoek van Holland,the Netherlands


제16회 동강국제사진제가 지난 7월 14일부터 10월 1일까지 동강사진박물관과 영월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동강국제사진제의 주제전은 <나는 갈등한다, 고로 존재한다(I conflict, therefore I am.)>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공동체간의 갈등이나, 공동체와 개인 간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 등 수많은 갈등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진들을 선정했다. 주제전에는 10개국에서 온 14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공동체 간 대립의 극단적 형태인 전쟁과 그로 인해 파생된 난민 문제를 다룬 작품들과, 현대문명인 도시와 공동체를 둘러싼 갈등을 추적한 작품, 그리고 개인적이면서 또한 공공의 영역인 용서에 대해 다루는 작품 등을 선보였다.


이 중, 특히 고하르 다쉬티, 이재욱, 요르디 루이 씨레라, 한느 반 데르 우데, 라나 메시치, 이 5명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공동체와 개인의 삶, 그리고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를 작가들이 어떻게 시각화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빨간 머리 앤’을 위해
한느 반 데르 우데,


ⓒHanne van der Woude, Stefan, 2007, Harderwijk,the Netherlands
 
 

이 시리즈의 제목인 은 빨간 머리색을 결정하는 단백질 유전자의 이름이다. 선천적인 빨간 머리는 전 세계 인구 중 약 2%에 불과한데, MC1R 유전자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돌연변이로 빨간 머리와 함께 창백한 피부를 갖는다. 빨간 머리는 때론 선입견이나 농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골상학(骨相學)에서는 빨간 머리를 범죄인들의 특성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빨간 머리 앤’도 단지 빨간 머리라는 이유만으로 놀림 받고, 친구의 검은 머리카락을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이런 선입견에 맞서 2014년 독일에서는 Tristan Rodgers이 오직 빨간 머리들만을 위한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Hanne van der Woude, Monica, 2007, Kinderdijk,the Netherlands


한느 반 데르 우데는 선천적인 빨간 머리를 결정하는 단백질 MC1R이 유전적 전달과정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네덜란드 전역의 총 150여명에 이르는 빨간 머리를 가진 사람들을 촬영했다. 그는 빨간 머리의 매력과 연약함을 동시에 담기를 원했고, 단지 머리카락의 색깔뿐만 아니라, 그들이 서 있는 풍경과 조화를 이루길 원했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촬영할 때 영화적 스타일의 서사구조를 취하기 위해, 네덜란드 전역을 누비며 적합한 지역을 물색했다. 
 

ⓒHanne van der Woude, Manon, 2007, Doorwerth,the Netherlands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빨간 머리, 창백한 피부와 함께 네덜란드의 서사적 풍경 속에 신비롭게 녹아들며,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비밀스런 이야기를 품은 듯 보인다.
 
ⓒHanne van der Woude, Ilse and Ruth, 2007, Arnhem
 

 

ⓒHanne van der Woude, Lotte, 2007, Lent,the Netherlands
 
한느 반 데르 우데 (네덜란드)는 1982년 네덜란드의 네이머현에서 태어났고, 아른험의 아트스쿨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학업을 마친 후, 수년간을 독립 프로젝트에 몰두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와 <에미의 세계(2009-2015)>다. 


오래된 미래
요르디 루이 씨레라Jordi Ruiz Cirera <메노노스>


 

ⓒJordi Ruiz CIRERA, Menonos series, 2011


요르디 루이 씨레라는 동부 볼리비아에서 사는 메노파 종교 공동체의 삶과 그들이 겪는 어려움, 갈등을 <메노노스Menonos> 시리즈에서 묘사한다. 메노파는 재세례론자들로 불리는 기독교의 한 분파로, 볼리비아에서 자리 잡은 메노파 공동체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이민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16세기 선조들의 삶의 방식을 이어받아, 전화기, 자동차, 가전제품 등 일체의 문명의 이기 없이 살아간다. 아이들은 집에서 읽기, 쓰기 정도의 최소한의 교육만 받을 뿐 학교에 가지 않고, 가축을 키우거나 작물을 키워서 내다 팔아 교류하는 정도로 필요최소한의 물품만을 외부에서 조달한다.

 

ⓒJordi Ruiz CIRERA, Menonos series, 2011
 

ⓒJordi Ruiz CIRERA, Menonos series, 2011
 

요르디 루이 씨레라가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은 단순히 그들의 삶의 방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어떻게 이 소비주의 사회에서 외부 문명을 차단하고 16세기 삶을 고수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또한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들이 어떤 변화에 처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내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그들은 더욱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16세기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메노파 거주민들에게는 카메라 역시 익숙치 않은 바깥 세계의 물건이었고, 그들을 처음부터 카메라에 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작가는 약 두 달간을 메노파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이 카메라와 이방인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는 “그들 집단 안에서 개개인이 가진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하는데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인물들을 같은 장소, 같은 거리, 같은 프레임으로 촬영했다”며 “그들 중 일부는 카메라를 보기도 했고, 피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찍은 아이와 여인의 초상 사진을 보면 아이들이 나이가 어릴수록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지만, 나이 든 성인이 될수록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치 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카메라를 보며 가장 경계심 없이 활짝 웃는 사람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 정도이다.  
 

ⓒJordi Ruiz CIRERA, Menonos series, 2011



ⓒJordi Ruiz CIRERA, Menonos series, 2011



 
그는 “메노파 사람들 중에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나기도 하지만 얼마 안가 돌아온다”며 “그들은 가족 간의 강한 연대가 있고, 또 언어문제로 바깥 세상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다시 그들은 돌아오게 마련이다”고 설명했다.  
 

ⓒJordi Ruiz CIRERA, Menonos series, 2011



ⓒJordi Ruiz CIRERA, Menonos series, 2011

 


요르디 루이 씨레라(스페인)(1984년생)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독립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로, 현재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다. 루이 씨레라는 런던 국립초상갤러리에서 수여하는 테일러-웨싱 인물사진상, 매그넘 비상기금의 지원사업, DB어워드의 사진부문상, 30세 미만의 30인의 매그넘 사진가, AOP올해의 학생 사진가상, 올해의 사진상(POYi), 루시어워즈 등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독립출판사인 LIC에디션(Edition du LIC)과 메노노스 시리즈를 다룬 첫 번째 사진집인 <로스 메노노스(Los Menonos)>를 출판했다. 


어쨌든 삶은 계속된다
고하르 다쉬티 <오늘의 삶과 전쟁>


 

ⓒGohar DASHTI,Today’s Life and War
 

ⓒGohar DASHTI,Today’s Life and War


고하르 다쉬티Gohar Dashiti의 <오늘의 삶과 전쟁>은 전쟁터를 배경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커플의 모습을 통해 전쟁터에서도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시리즈는 이란과 이라크 간 전쟁에 8년간 참전했던 경험에서 비롯됐는데, 이 전쟁은 작가를 포함 그가 속한 세대에게 심리적인 거대한 낙인을 남겼다. 작가는 “우리가 모국의 담벼락 안에서 안전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전쟁은 여전히 신문, TV,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다”며 “이 사진은 전쟁과 전쟁이 남기는 유산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허구의 전쟁터 안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TV를 시청하고, 생일 파티를 하고, 결혼을 자축하는 남녀의 모습이 “비록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인내력, 결단력, 생존력을 상징한다”고 전한다. 

 

ⓒGohar DASHTI,Today’s Life and War




ⓒGohar DASHTI,Today’s Life and War


한편으론 전쟁 막사 앞에서 신문을 펼치고, 탱크의 포신 바로 앞에서 식사를 하는 남녀의 무표정한 모습은 전쟁에 대해 체념하고 익숙한 모습으로도 보이며, 또는 전쟁은 담 밖의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바로 코앞에 닥친 전쟁의 위험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상 같기도 하다. 

 

ⓒGohar DASHTI,Today’s Life and War

고하르 다쉬티 (이란)는 2005년 테헤란 미술대학에서 사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란에서 사진 공부를 마친 후, 그녀는 12년간 역사와 문화의 틀 안에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스케일 큰 작업을 해왔다. 특히 그녀의 작업은 인류학과 사회학적 주제들을 다루곤 했다. 그의 작품은 런던 빅토리아앤앨버트 미술관, 도쿄 모리 미술관, 보스턴 뮤지엄오브파인아츠, 시카고 현대사진미술관(MoCP) 등에 소장돼 있다.


이방인의 초상
이재욱


 

ⓒLEE Jaeuk, Innere Sicherheit #2


이재욱은 시리즈에서 그가 독일에 머물던 시절 만났던 난민들을 초상 시리즈로 담았다. 사진 속 인물들은 패스트 푸드점을 청소하며 고단한 표정이거나, 공중전화기를 앞에 두고 수심에 잠긴 표정이다. 인물들은 하나 같이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고, 이런 감정은 사진의 한 쪽 편에서 들어오는 주황빛 조명에 의해 더욱 부각된다. 


 

ⓒLEE Jaeuk, Innere Sicherheit #3


이재욱은 다큐멘터리 소재를 순수 사진 형식으로 작업하는데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난민 출신이거나 이주자 출신이라 독일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이들과 자신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자신과 난민, 이주자들의 포트레이트를 촬영했다. 초상 사진과 함께, 폭탄이 터지는 연기나, 주황빛 조명이 깔린 배경의 사진도 찍어 함께 배치했다.


 

ⓒLEE Jaeuk, Innere Sicherheit #6


그는 “모델들에게 특정한 연출을 주문하기보다는 그들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찍었다”면서 “가령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점원은 실제로 1년 넘게 그 곳에서 일하는 점원을 섭외해서, 그가 일하는 직장에서 직접 찍었고, 전화기 앞의 인도 여성도 오랫동안 친분을 쌓고 관계를 맺으며 촬영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사진들을 잘 보면 주황색 조명이 터지고 있는데, 이는 유럽에서 일어났던 폭탄 테러 때 폭탄이 터지는 빛을 연상 시킨다”며 “난민이 들어오고 테러가 벌어지면서, 이방인들을 향해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나 역시 유색인종이면서 다른 유색인종을 겁내고 경계하며 정체성의 갈등을 느꼈다. 이런 일상생활 속의 고뇌를 표현하려 했다”고 전했다. 


 

ⓒLEE Jaeuk, Innere Sicherheit #4


이재욱(한국)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홍익대학교에서 수학하며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전공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베를린 오스트크로이츠슐레에서 사진을 수학했고, 2016년 3월 브레멘 예술대학을 사진전공으로 졸업했다. 현재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고 2017 제10회 KT&G SKOPF의 올해의 작가 3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오는 8월에는 독일 브레멘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독일-터키작가 교류전에 참여할 예정이다. 
  

네 이웃의 죄를 용서하라
라나 메시치Lana Mesic <용서의 해부학>


 

ⓒLana MESIC, Juvenal and Cansilde, Anatomy of Fogiveness series, 2014


라나 메시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탐구하고 시각화하는 예술을 추구한다. 그는 르완다 학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을 통해, 용서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시각화 한다. 

 

ⓒLana MESIC, Celest in and Phillipe, Anatomy of Fogiveness series, 2014


르완다 학살은 1994년 르완다 내전 중 후투족이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들을 집단 학살한 사건으로, 4월부터 7월까지 약 100일 동안 최소 100만 명이 살해당했다. 학살 이후 20여년이 지났지만 학살자와 피해자는 지금도 나란히 이웃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서로를 용서했을까?


 

ⓒLana MESIC, how much did you forgive I, Anatomy of Fogiveness series, 2014


라나 메시치는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일종의 연단을 제공하고 싶었다. 내 선입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원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짝지은 후 용서의 순간이 어땠는지 물었고, 그 순간을 재연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지 물었다”고 작업과정을 설명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들은 그의 카메라 앞에서 나란히 서서 악수하거나 끌어안기도 했고, 뺨을 맞대고,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작가는 이 작업 후 피해자에게는 상대를 얼마큼 용서하는지, 가해자에게는 스스로를 얼마만큼 용서할 수 있는지 대략의 숫자로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 바나나 잎이나 나무 조각에 수치를 써놓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시에 숫자를 짚고 있는 이 사진은, 서로 상이한 수치를 보며 어느 쪽이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를 생각토록 한다. 가해자에게 상대가 어느 정도 용서해줄 것 같은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을 얼마나 용서할 수 있는지 묻는 점도 인상적인데, 용서를 비는 것이 상대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임을 시사한다.  


 

ⓒLana MESIC, how much did you forgive IV, Anatomy of Fogiveness series, 2014


라나 메시치는 “르완다 학살에서 ‘용서’란 달콤하고 훈훈한 분홍빛의 개념이 아니다”며 “르완다에서 ‘용서’란 사람들이 ‘이후’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필수재이다. 가짜 미소가 등장하지 않는 이 르완다식 용서야말로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용서가 존재함을 알려 준다”고 말한다.

 

ⓒLana MESIC, Francois, Anatomy of Fogiveness series, 2014


라나 메시치 (크로아티아)1987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라나 메시치는 2012년 브레다의 세인트요스트 예술 및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사진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더치 다큐멘터리 포토상, 폴허프 어워드, ING 사진 뉴탤런트 상, 로마상 사진 부문 등에서 수상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뉴욕, 도쿄, 르완다 키갈리, 상파울루,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글 : 편집부
이미지 제공 : 동강국제사진제

해당 기사는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