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남아 역사가 되다 ② 소년, 광복의 날을 기록하다


창문 너머에서 바라보는 두 사내아이는 회의장의 긴장감을 깨뜨리며 해학과 여유를 자아낸다. 동시에 큰 아이가 왼쪽을 쳐다봄으로써, 
이 시선을 중심으로 안경을 쓴 이은상선생과 긴밀하게 연결시켜 회의장면에 집중하게 한다. 
 

1945년 8월 15일. 전국에 걸쳐서 자발적으로 ‘새나라 만들기’를 위한 지역 모임이 열렸다. 
민초들은 압제 속에 살면서 해방의 준비를 해왔으며 통일된 자발성과 신속한 실천력으로 새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나라를 바꾸려는 사고력과 행동력은 우리민족의 DNA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싶다.     

1945년 8월 15일. 침략자 일제가 마침내 연합국에 항복하여 우리 민족은 오랜 식민통치의 쇠사슬에서 해방되었다. 그날 전국에 걸쳐서 자발적으로 ‘새나라 만들기’를 위한 지역 모임이 열렸다. 사진은 1945년 8월 15일 오후에 전남 광양경찰서 무덕전에서 열린 시국수습군민회의 모습이다. 왼쪽의 안경 쓴 이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뒤 광양에 내려와 있던 노산 이은상 선생이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광복을 맞자마자 항일 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새나라 건설을 논의하였다. 

이 회의는 주로 치안확보에 관한 사항을 다루었다. 해방의 기쁨으로 흥분된 사회분위기는 필연적으로 치안의 문제를 초래하였으며 치안 유지는 중앙차원이든 지방차원이든 긴급한 과제였다. 여운형은 16일에 청년학생을 중심으로 건국치안대를 조직하여 서울의 치안확보를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지역별 및 직장별 치안대를 조직하여 각각 그곳의 치안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광양의 시국수습군민회의에서도 청년들로 치안대를 만들어 친일행위자나 악질지주들에 대한 폭력적인 보복을 막고 질서를 유지했다. 이렇듯 8월 15일 해방된 날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지방의 시국수습군민회의는 뒤에 결성하게 되는 건국준비위원회 지방지부의 초기 형태가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질 때에 폭력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예컨대 2003년 3월  대량 살상무기 보유를 이유로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자 바그다드는 무법천지의 상황이 되었다. 대다수의 이라크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상점과 은행, 사택에 들어가 약탈하였다. 심지어 국립박물관에까지 침입해서 총을 쏘며, 값진 유물을 선점하기 위한 쟁탈전을 벌였다. 91년 미국 LA에서 과속으로 질주하는 흑인 로드니 킹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백인경찰관 4명의 무차별 폭행이 있었다.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이 백인경찰에게 무죄판결을 내리자 이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했고, 점차 폭동으로 변해 곳곳에서 건물에 불을 지르고 차량을 파괴하고 상점의 물건을 약탈했다.
이경모는 해방이후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기록하여 역사적 증거자료를 남겼다. 불과 17세였던 학생이 남긴 1945년 8월 15일의 기록은 우리민족이 충분히 스스로 정부수립의 자생력이 있었음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공적인 기록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기록도 중요한 역사가 될 수 있다. 

 

글 이기명 (발행인 겸 편집인)
해당 기사는 2017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