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wid Bjorn Dawidsson 사진으로 쓰는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의 기록

인터뷰를 위해 다비드를 만나는 날엔 모처럼 스톡홀름에 비가 내렸다. 겨울의 어둠이 길고 무거운 만큼 스웨덴의 짧은 여름은 어둠에 불을켠듯 눈부시다. 모처럼의 소나기를 반갑게 지켜보고 있을때 그가 오래된 안틱카 제네럴 모터스의 빨간 오픈카를 타고 마중을 나왔다.

그의 작업실은 스톡홀름에서 남쪽으로 2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하는 피티아라는 교외에 있었다. 작업실 건물은 흰색으로 모터사이클 쇼룸과 커피회사가 이웃하는 얼핏 보기에는 산업사이트의 부분이었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기차길처럼 길게 자리한 작업실의 실내에 미니어터 자동차의 경주용 트랙이 작업실 동서를 경쾌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반 세기가 넘는 그의 작가적 무게와 긴 고민의 시간들을 짧은 인터뷰와 몇 장의 셀렉션된 사진으로 어떻게 전달해야할까 했던 나의 고민은 좋아하는 것을 즐길 줄 아는 그의 아이같은 순수에 그만 기우가 되어 버린다.

길게 자리한 입구는 그가 직접 제작한전시작들의 프레임들이 세계여러 인스티뷰트의 이름을 새긴 꼼꼼한 포장을 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복도에는 50년가까이 동안  가졌던 그의 전시 배너와 포스터들이 프레임되어 영화사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여긴 다비드의 작업 공장이다. 직접 촬영하고 작업하고 프레임까지 혼자 만들어 내는 그의 스타일대로 모든 것은 대가의 가슴에서 시작하고 손끝에서 마무리 된다.

다비드는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모데르나 뮤지엄에서 전시할 당시 절판된 책  로스트Rost(Rust)를 한권 꺼내어 내게 건네 주었다. 빨간 페브릭 커버의 까만 심플한 레터링은 당시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그의 작업처럼 지금봐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모던하고 심플했다. 이 책은 지금은 절판되어 중고로나마 구입하려면 2000크로나가 넘는다. 이날 내가 본 그의 수많은 작품집과 꼼꼼히 정리된 리뷰 스크랩북 보다 나를 더 감동시킨 것은 그의 오래된 작가노트였다. 연대별로 그가 촬영한 모든 작업의 이미지들이 시리얼 넘버와 함께  연필 스케치로 그려져있었고 프린트한 것은 모두 몇 장인지 프린트 한 이미지들은 무엇인지 프린트와 테스트의 노출 정보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후에 작업이 디지탈로 바뀌고 데이터 베이스화 되면서 이 노트는 컴퓨터 속 데이터로 변화해 가지만 그가 가진 작가정신은 대가의 위엄이 아닌 현역의 열정으로 살아있었다.


 
3664 series from M+M Ⓒ Dawid
 

매일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는가
그렇다, 다른 직장인들처럼 아침에 파트너와 브런치를 집근처 카페에서 한 후 최근에 분양받은 강아지 보스턴테리어를 산책시키고 이곳으로 출근하여 저녁에 퇴근한다. 나는 미리 뭔가를 계획하고 작업을 구상하기 보다 이곳에서 이것저것 바라보고, 작업을 정리하며 새로운 구상을 하는 편이다. 나는 모든 것을 혼자 하기를 즐긴다. 세팅하고 촬영하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나는 워킹클라스 출신이다. 우리 가계에 아무도 예술을 전공한 사람이나 미술관에 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작가로서 그저 남보다 조금 더 부지런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읽고 경험해야 하는 것 일 뿐이다. 고등학교때부터 나는 엔제니어링과 더불어 그리고 스케치하고 내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이후 스톡홀름의 사진학교Fotoskolan에 진학하여 안데쉬 피터센Anders Petersen과 수많은 제자를 키워낸 크리스터 스트룀홀름Christer Stromholm에게 사사받았다. 크리스터는 내 재능을 알아보고 바로 파운데이션을 건너뛰고 본과로 월반시켜주었지만 나는 일년을 수학한 후 당시 주류를 이루던 흑백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전통에서 조금 벗어나고자 했고 이후 백만 디자인 스쿨Beckmans Designhogskola에서 시각디자인을 일년 수학한뒤 커머셜한 사진 스튜디오에 어시스턴트로 들어갔다. 사브와 각종 패션광고를 담당하던 이곳에서 나는 조명과 세팅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작가로서의 첫 전시는 언제이고 어떻게하게 되었는가
1973년 릴레박스 갤러리Liljevalchs konsthall에서 열린 스트릿 포토그라피 그룹전에 초대된 것이 나의 첫 전시이다.  이후 곧 이어 모데르나 박물관Moderna Museet에서 Rost시리즈로 개인전을 열게되었다.

이 시리즈가 사진계뿐아니라 미술계에 까지 큰 파장을 일으키며 지금의 작가적 입지를 만든 전시 아니었나_ 당시 기억나는 비평이 있는가
지금보다 그때 더 강했던 일간지의 아트 크리틱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력을 끼칠 만큰 중요한 전시 리뷰였는데 SvD SvenskaDagbladet에서나는 이 전시로 일주일 만에 상반된 논의를 일으켰다. 나도 모르는 사이 모더니스트의 후자에서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선구주자가 되었다. 이 후의 시리즈들도 모두 발표시 마다 논란의 중심이 되었고, 이는 작가로서의 나를 많이 발전 시킬 수 있게 하였다.

2001년에 발간되 작품집  뷰티풀 프레임Beautiful Frame에관해 더 알고싶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바라보고 하는 첫마디가 바로 ‛아… 프레임이 아름답네요’이다. 그들은 내 사진의 시각적특징을 넘어 내제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비평해야 하는지 잠깐 망설인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만든 독특한 프레임을 보고 가장 안전하게 칭찬한다. 나는 이 반응이 내 시리즈 전반에 걸친 작업의 특징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고 작품집의 제목으로 선정하였다.

 
Stol Ⓒ Dawid

Stol Ⓒ Dawid


M+M시리즈에 관하여 이야기 해 달라
이 작업은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외조부의 댁에 있던 공구박스를 작업의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스웨덴어는 영어와 달리 외조부와 친조부를 구분하여 부른다 즉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mormor와 morfar이다) 시리즈는 이의 줄임말 M+M이다. 공구함은 외조부가 평생 생업에 사용하신 도구이며 내 어린시절의 기억이기도 하다. 공구가 갖은 단순한 구조와 실용적인 디자인은 기능과 내구성이 최우선시되는 스웨덴 제품의 기본이 된다. 많은 것들이 이 연장의 끝에서 탄생되고 정비되고 고쳐졌다.

특별이 숫자에 관심이 많은가_ 제목에서도 숫자들이 등장하고 그 숫자들이 지닌 의미가  궁금해 진다
그렇다. 나는 숫자를 좋아한다. 136-35시리즈는 알다시피 필름의 포멧과 컷의 숫자이고, 49시리즈는 특별히티벳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사후 49일 동안의 여정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49개의 이미지와 49일의 기록이다. 이 작업은 49퍼센트의 포션으로 프레임되었다. (다비드는 사진뿐 아니라 프레임도 직접 제작하는 작가이다. 전체 프레임의 수치와 이미지의 비율이 49프로가 되도록 사이즈가 제작되었다. 그저 평범한 이미지와 여백의 파스타투가 아닌 전체 프레임과 이미지 사이에 치밀하게 계산된 작가의 노력이 숨어 있다. )

Merit에서 작업이 칼라로 전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디지탈화되는 것과 동시점인가
맞다. 나는 암실 작업과 그 특징을 누구보다도 즐겼지만 디지탈 기술을 이용하여 색과 다양한 실험을 하는데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현재 내 작업에는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디지탈 사진기술과 올드 스쿨의 전통이 공존하고 있다. 젤리를 이용한 이 작업은 달콤한 사탕을 뜻하는 스웨덴어 Godis에서 딴 시각적인 사탕Orongodis이라는 평을 받으며 빌드 뮤지엄에서 발표, 전시 되었다.

작년에 뉴욕의 맥길 갤러리와 스톡홀름Amells에서 있었던 칼라한, 다비드, 수기모토 Callahan, Dawid, Sugimoto삼인전은 흑백사진의 한계를 밀어내는 전시였다는 평이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전시 이기도 한데 이 전시는 어떠했는가
작년 파리포토에 초대된 프로젝트이기도 한 이 전시는 내게도 흥미로운 작가들이다. 수키모토의 프린트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같은 흑백이지만 나의 시리즈는 보다 미니멀하고 유럽적인 전통을 따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서로의 작가적 공감과 차이를 잘 나타낸 전시라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시리즈에 대해 알고싶다
어머니는 아무도 모르게 아마추어 페인터로 여가 시간을 이용해 다양한 그림을그려오셨다. 나는 이 그림을 관찰하고 클로즈업 촬영하며 생전에 미처 몰랐던 어머니의 관심사와 심미안을 떠올린며 그녀를 추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글 허수경(스웨덴 통신원) 이미지 제공 Dawid Bjorn Dawidsson
해당 기사는 2017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