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2018 Biennale, 비엔날레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_제12회 광주비엔날레

2018년 9월 7일부터 11월 11일까지 열리는 제12회 광주비엔날레는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라는 주제로, 1995년의 세계화 정책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투영하는 초기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현재의 경계를 탐구하자고 제안했다. 2008년 이후 예술 감독제로 진행됐던 과거와 달리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는 11명의 큐레이터가 7개 전시에 43개국 작가 165팀의 300여 작품을 선보였다. 제12회 광주비엔날레는, 관람객에게 경계의 정의는 무엇이며, 이는 우리 사회에 어디까지 침투해있는지, 예술은 경계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자고 권한다.


제12회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


 
람 라만 전시 전경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공개된 사진들은 람 라만의 <갈등의 장>, 라팔 밀라치의 <백마를 쫓아서>, 로렌스 서멀롱의 <도시 전설> 등과 같이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선 다층의 경계를 구축하는 지금을 재인식하거나 이정록의 <사적 성소>, 정희승의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 백승우의 <기억연상법>, 염중호의 <피부 깊숙이>와 같이 광주에 있던 사건과 연계된 곳을 촬영한 것들이 주를 이뤘다.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기획 클라라 킴)에서는 새로운 수도, 도시계획 프로젝트, 정부청사, 대사관, 대규모 공영주택 등 설계 및 건축 프로젝트에서 유토피아와 그것이 붕괴되고 재건축되며 희석되며 발생되는 디스토피아를 살폈다. 클라라 킴은 이번 전시에 대해 “거대한 건축물을 짓고자 하는 모더니즘의 욕망을 보여주려고 했다. 다른 건축물도 모더니즘 시대의 건물은 모더니즘을 향한 열망과 좌절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했다.


 

Ⓒ로렌스 서멀롱 Lawrence Sumulong, 도시 전설 Urban Legend, 2012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에 참여한 인도 건축 사진가 람 라만의 <갈등의 장>과 로렌스 서멀롱의 <도시 전설>이 그러하다. 람 라만은 “폐허의 장으로서의 모더니즘 건축”을 촬영했는데, 그의 작업은 건축물, 그 사건들과 연계된 인물들, 뉴스와 같은 실증적인 아카이브로 이뤄졌다. 람 라만은 “이 설치를 구성하는 사진과 포스터는 인도 근대사에서 논쟁적인 장소들의 모음이다. 나는 각 건물이 구현해낸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층위를 벗겨내고자 한다.”고 했다. 사건들을 기록한 신문, 사두(인도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의 생애를 보내는 요가 행자)와 일반 시민, 건축의 탄생과 붕괴 등 대치적으로 배열된 자료들은 그들이 가진 사실만으로 냉기를 풍긴다. 그것을 보며 우리는 그가 속해있던 사회의 유토피아와 그 유토피아의 파멸을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로렌스 서멀롱은 필리핀의 마르코스 독재 시절에 세운 기념비들과 사회 기반 시설에 주목한다. 그의 <도시 전설>은  도시 외곽에 자리 잡은 하나의 특정 기념비, 마닐라 필름 센터를 살핀다. 독재 정부가 추구하던 이상이 붕괴하자 그들의 열망으로 지어진 건축물도 유기됐다. 그 대신 2000년대 초반부터 필리핀의 복장도착자 버라이어티 쇼를 주최하는 한국 기업이 건물을 임대해 사용 중이다. 로렌스 서멀롱은 “무너져내리는 구조물 안에서 내가 찾은 것은 필리핀 역사의 무대, 그 비극적인 과거와 아직 쓰이지 않은 미래가 진행되는 장”이라고 했다.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기획 그리티야 가위웡)에서는 “이주라는 문제를 여러 층위에서 고찰하고 불안정한 특정 지역과 국가주의, 탈영토화 등의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아카이브, 구술 기록 및 여타 문화 자료를 연구해 오늘날 국경과 이주가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참여한 폴란드 출신 시각예술가 라팔 밀라치의 <백마를 쫓아서>는 지정학적 문제에서 비롯된 역사, 국경, 이주, 정체성 이슈가 담긴 장면을 담아냄으로써 우리 삶에 편재하는 현재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과 선전 유물의 부재를 발견한다. 이는 밀라치가 성장한 중부 유럽의 슐레지엔이 가진 특성과 무관하지 않지 않을 것이다. 슐레지엔은 대부분 폴란드 땅이나 일부는 체코 공화국과 독일에 속하는 특이한 지정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라팔 밀라치는 그의 사진 속에서 주목한 것은 건축물과 풍경 사이에 있는 “국가 개념과 자유와 자치를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다민족 집단”이라고 설명한다. 그리티야 가위웡은 “현재의 분쟁, 사회적 변화 그리고 실패한 유토피아를 생상하게 전달한다”고 전했다. 


 

Ⓒ이정록, 사적성소 #3 시리즈, 2018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5·18민주화운동과 연관된 장소특정적인 작업들이 다수 소개됐다.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 지속하기, 변화하기>(기획 백종옥, 김성우, 김만석)에서는 공개된 이정록의 신작 <사적 성소>의 배경지역은 여수 마래터널이다. 이 터널은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노동자들이 만들었으며, 이후 여순 사건 때는 수백 명이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곳이다. 그는 실제 역사와 연관된 장소를 방문해서 느낀 이미지를 육체로 기록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수행했다. 이정록은 “만약 광주 사람인 내가 조금 더 일찍 태어났으면 이곳으로 끌려 왔을 수 있겠더라. 그리고 만약 이곳에서 고문을 받는 상황에 부닥치면 돈과 물질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대한 국가 폭력을 겪는다면 없는 신이라도 만들고 소환해서 기도할 것 같다.”고 전했다. 사진 속에서 부유하는 빛은 이정록이 과거의 환영을 마주하며 느꼈던 기록의 축적이며, 그곳에서 희생당한 이름 모를 이들의 흔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 작업을 “의식의 다큐멘터리”라고 설명한다. 


GB 커미션에서는 직접 광주의 민주화 운동을 다루고 또한 민주화 운동 당시의 장소들에 관람객들이 방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폐쇄됐던 구 국군광주병원과 구 도청 회의실이 일시적으로 개방됐으며, GB 커미션 프로젝트로 구 국군광주병원에서는 장소특정적인 작업이 공개됐다. 카데르 아티아의 <영원한 지금>, 마이크 넬슨의 <거울의 울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별자리>가 그것이다. 구 국군광주병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에 연행돼 심문하는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으로 부상당한 시민들이 치료받았던 곳이지만, 계엄사 수사관들이 파견돼 시민들은 치료 과정에서도 취조를 당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예술과 글로벌 포스트인터넷 조건>(기획 크리스틴 Y. 김, 리타 곤잘레스), <경계를 넘어>(기획 데이비드 테) 등 다양한 경계를 주제로 한 기획전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번 비엔날레는 “인간이 구축해온 국가, 민족, 영토의 경계 그리고 확실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느 곳이든 영향력 있게 존재하는 심리적, 정서적, 감정적 경계”를 살피고자 한다.


정희승, 백승우, 염중호가 2018년 광주비엔날레의 진행형 프로젝트로 옛 국군광주병원을 촬영했다. 정희승의 사진은 ACC에, 백승우와 염중호의 사진은 5.18민주평화기념관(옛 전남도청)에 설치됐다. 이들은 사진가로서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연관된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태도로 작업했으며, 이를 어떠한 시각 언어로 표현했을까.


기억의 앞뒤
정희승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


 

정희승 전시 전경

정희승의 작품이 소개된 전시장은 일시적인 단절이 가능한, 정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이번 시리즈는  실제 사건이 있었던 곳을 촬영했지만, 이미지는 그 내러티브를 고스란히 담지 않는다. 그저 정희승의 미감에 감응을 준 장소 일부만이 집요하게 응시돼 사진으로 남겨졌다. 불탄 벽이 가지고 있는 패턴, 질감의 형태… 정희승은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목격자나 증언자로서 작업하지 않았고, 그저 개인으로서 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봤다.


이렇게 작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군광주병원에서 일어난 국가폭력 이후에도 건물이 한동안 사용됨으로써, 그 장소에서 행해진 국가 폭력의 흔적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대량 학살, 항쟁의 공포를 증언하고 증거하는 작업을 하기에는 그 장소는 본래와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장소가 광주에 있던 학살과 항쟁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본 것은 아니다. 


 
“내가 촬영할 당시에 전두환의 회고록이 쟁점이 됐다. 그는 과거 사건에 대해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 백지장처럼 순수한 말이 섬뜩하게 느꼈다. 광주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에게는 아픈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사건은 한 사람의 삶을 부셔 뜨렷다. 하지만 사건을 일으킨 주체자들은 시종일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한다. 역사는 공간에 남겨져 오로지 방치된 그 시간만을 증언하는 텍스처로 앞면에, 사건의 주체자들이 주장하는 백지장 같은 기억을 뒷면에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리즈의 제목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은 전시장에 설치로 완성됐다. 전시장 안, 정희승의 작업은 가진 3m 높이에 수직으로 걸려있는 벽같은 형태를 띈다. 작품 구조의 앞뒤가 교차하며 배치된 설치형태는 몰입보다는 그 이미지 간의 호흡을 타고 움직이도록한다. 정희승의 사진과 함께 전시된 로와정의 5채널 영상과 설치가 가진 특성인 공백의 느낌과 정희승의 벽 같은 사진들이 순환과 단절의 감각을 상기시킨다. 현존했지만 그 흔적이 희미해진 사건은 전시장 안에서 단단한 벽과 같은 이미지로 관람객의 감정을 충돌시키는 것. 이 파트의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김성우는 정희승의 작업을 “역사는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는 않는 어떤 의미도 제대로 파생하지 못하는 상태를 앞면과 뒷면으로 보여준다”며, ”로와정의 작업은 상태나 조건을 이야기하고, 정희승의 작업은 어떤 공간이 가진 어떤 상태나 조건을 촉각적이고,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두 작가가 가진 유사하지만 다른 몸짓을 전시장 안에 충돌시키고 싶었다.”고 전시 구성에 대해 전했다. 


정희승은 본인의 느낀 감각에 따라 작업을 시작했고, 그 결과는 이상적으로 가볍고 추상적인 형태의 시적인 사진이 됐다. 이는 사진이 어디까지 가벼우면서도 과거를 포착할 수 있는지 입증하는 듯하다. 그의 아름다우면서도 정체를 규정할 수 없는 사진 속 이미지를 보며 우리는 어떤 공포와 과거를 바라보아야 할까.


기억의  현재 시제
백승우 <연상기억법>

 
Ⓒ백승우 Back Seungwoo, 연상기억법-#275 A Mnemonic System-#275, 2018

백승우의 사진은 5.18민주평화기념관 3관(옛 전남도청) 1층 로비에 설치됐다. 전시 장소는 일제 강점기와 개발독재 시절,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역사의 중심에 있었고 1980년 5월 27일, 윤상원 열사는 이곳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백승우의 이번 작업은 촬영 지역, 전시장 모두 장소특정적인 성격을 띈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옛날의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기록하거나 포착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의 폐허만을 전시장에 옮겨왔을 뿐이다. 이런 작업 태도를 띄게 된 이유는 그가 역사적인 장소를 마주하며 외부에서 들어가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사진이 한 장씩 인쇄된 종이들이 한데 묶여 나무 지지대 두 개에 나뉜다. 전시된 사진은 총 84점이며, 이들은 벽에 기대거나 함께 묶이거나 쌓여있는 형태로 설치됐다. 이번 시리즈에서 백승우는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에 주목한다. 그는 과거를 소환하는 방법의 하나로 신문 매체를 활용한다. 신문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어제, 오늘을 말하는 매체다. 그 특성을 활용해 백승우는 과거의 상처를 현재로 소환하고 그것을 다시 불특정 다수에게 전송한다. 광주비엔날레 기간동안 매일 백승우의 사진은 매일 신문에 공개되는데, 이는 누군가 광주에 있었던 사건을 회상시킬 연결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갖는다. 전시장 한 쪽에 전남일보에 개재된 흑백사진들이 하루하루 쌓이며 과거를 소환하고 기억의 파편을 수집하듯이.


전시장에는 켜켜이 쌓은 불투명한 유리도 공간 안에서 눈길을 끄는 설치 요소 중 하나다. 백승우는 구 국군통합병원의 바닥에 있던 깨진 유리를 가져와 다시 녹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든 유리는 본래 유리가 가졌을 투명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유리가 성분이 똑같으면 투명해진다. 하지만 내가 모은 깨진 조각은 그 사이로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다시 녹여서 만들어도 불투명한 유리가 되더라. 우리 과거도 유사한 것 같다. 기억은 온전한 사실로 남아 있지 않다.”  


 
“기록이 있으면 누군가 잘했고, 못했는지를 살필 수 있다. 하지만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대부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 내가 경험했는데 이랬어’로 끝난다. 그 기억에 증거는 없다. 결국, 남은 것은 기억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기억은 내 경험에 의해서, 편한 대로 변하기 쉽다. 우리는 대부분 느낀 대로 기억을 재구성하지 않나. 그 상태에서 기억에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실을 보여주고자, 백승우는 과거의 유리들을 수거했고, 이것을 불투명한 유리로 만들어낸 것이다. 전시장에 쌓여있는 유리들은 광주의 되돌릴 수 없는 사건과 기억만으로 완전해질 수 없는 고증을 대변한다.


그는 촬영을 위해 구 국군통합병원을 내비게이션에서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시내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에도. 이곳에서 백승우는 분명 존재하지만 지도에서 사라진 장소는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은폐돼야 했던 현실을 봤다고 한다. 구 국군통합병원은 유령처럼 우리의 주위에서 부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사건은 있었다. 사건에 대한 기록이 없어지니 그것에 대한 불확실한 이야기나 괴담이 생성되는 것이다. 기록이 있으면 누군가 잘했고, 못했는지를 살필 수 있다. 하지만 사라진 증거 앞에서 우리의 기억은 끝없이 조작될 수밖에 없다” 


결국, 백승우는 사건의 본질에서 나와서 맞춰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전시 제목도 ‘연상기억법’이다. 


건물의 안팎에서
염중호 <피부 깊숙이>

 
Ⓒ염중호 Yum Joongho, 피부 깊숙이 under the skin, 2017-2018


Ⓒ염중호 Yum Joongho, 피부 깊숙이 under the skin, 2017-2018

염중호의 사진은 5.18민주평화기념관 3관(옛 전남도청) 지상층과 지하층에서 동시에 보인다. 옛 전남도청은 전라남도 최초의 서양식 건물 중 하나로, 이 건물의 잔존은 현대적 디자인과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염중호는 개인과 집단적 차원에서 재연되는 폭력의 깊숙한 곳을 드러낸다. 그에게 사진 속 건물은 인간의 피부와 유사하다. 

 
“이번 촬영한 장소는 사실은 상상 속에 있는 공간에 가깝다. 사진을 찍지만 결과는 상상 속에 있는 것들이다. 마치 거대한 동굴의 피부 속 같은 느낌이다. 505보안부대, 옛 국군광주병원의 건물 안팎에 주목했는데, 이는 피부의 안팎을 살피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번 작업에서는 사진적 태도와 사진의 허구성에 대한 태도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고민했다.” 


염중호의 장소 특정적 사진 설치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장소뿐 아니라 광주 505보안부대, 옛 국군광주병원을 사진에 담았다. 염중호는 어떤 것도 직접 보여주거나 기록하지 않는다. 옛 국군광주병원 안팎에 “남겨진, 방치된, 버려진 부분들을 드러냄으로써 그는 개인적, 집단적 상처의 생생한 기억과 자취들을 소환”한다. 흔적, 먼지, 빛, 그림자 등등. 


지상과 지하의 설치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지하층에는 사진이 건축물과 같은 형태로 설치돼있는데, 그 구조물에서 우리는 거울을 찾아볼 수 있다. 염중호는 “공간이 거울을 보면서 재생산되기도 하고, 거울을 보면서 사람들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는 효과를 기대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사람들에게 현실이라는 모습을 받아들이게 한다면 거울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투사하고 있는가를 보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사진과 거울을 통해서 자기반영을 하고 공간이 재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건물 혹은 거울 안으로 들어가면서 역사적 장소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른 아름다움을 찾게 된다.


지상층에서 소개된 사진들은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것들의 안에 있는 디테일에 주목했다. 그는 전체를 보여주는 것보다 사물의 작은 디테일 안에서 사물의 속성 또는 사물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은 사진들은 부분이고 큰 사진은 전체”다. 염중호는 이번 작업에서 사건보다는 시간에 주목했다. 그 공간은 10년 이상 버려져 있었기에 정치적인 의미들은 더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퇴색돼있었다. 결국, 염중호가 그곳에서 본 것은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는 먼지 같은 것들이었다. 염중호가 촬영한 이미지는 치유, 기억과 같은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편견을 갖게 되지 않나.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의미와 구 국군광주병원, 505보안부대라는 장소. 이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사적지라서, 그곳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막상 그곳으로 들어가면 정치적으로 어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는 남아 있지 않다. 이미 퇴색됐기 때문에. 단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지나가 버린 시간 그리고 먼지들, 부서진 공간들이다. 그것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장소가 가진 막연한 공포들을 벗어버리고 싶었다고 한다. 염중호에게 중요했던 것은 ‘상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였다. 문제에 매달려서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었다. 그는 그 사건들은 잊혀서는 안 되지만 얽매여있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 그래서 사건을 극복하고 나아가기 위해 이번 작업에서 염중호는 공포, 국가적 폭력보다는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 아름다움이 막연한 공포를 상쇄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에.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에서 공포만을 상기한다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잘 벗어날 수 있는 지인 것 같다. 어떤 상처의 치유는 그것들이 해결되고 나면 그것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 남는다. 아픔으로만 기억한다면 이 과거를 치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것을 잊어서도 안 되겠지만.”


 
글 : 김다울 기자
이미지 제공 : 제12회 광주비엔날레



Bloody Bundan Blues
노순택 <핏빛 파란>


 

광주시립사진전시관, <핏빛 파란> 전시전경

 
여기 그을린 몇 점의 사랑, 아니 삼겹살이 있다.
이 사랑은 익다 말았다. 아니 타다 말았다.
삼겹살은 그저 음식이기에, 우리는 그저 바라본다.
이것이 타다 만 사람의 살이라면,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북한포격으로 불에 탄 연평도의 가정집 냉장고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이성은 차이를 구분하고, 감성은 공통점을 모색한다고 했던가.
내 눈엔 여전히 불에 탄 사람의 살로 보인다. 그을린 사랑의 살로 보인다.


아리구나. 너와 내가 힘겹게 칠한 파랑이 핏빛 파란이라니.

 
- 노순택, <핏빛 파란> 작가노트 中


전시장의 입구에는 거대한 붉은 고깃덩어리의 사진이 있다. 그 고깃덩어리가 흔한 ‘삼겹살’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이 삼겹살은 노순택 작가가 북한군의 폭격을 맞은 연평도 한 가정집의 냉장고에서 발견한 것이다. 작가는 폭격에 그을린 삼겹살을 두고 “이것이 타다 만 사람의 살이라면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묻는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지난 9월 4일부터 문화예술회관 내 광주시립사진전시관에서 노순택의<핏빛 파란 - Bloody Bundan Blues>전을 개최 중이다. <핏빛 파란>이란 전시 제목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을 붉은색,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남한을 파란색으로 상정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트는 제목이다. 노순택이 지적하듯 ‘분단은 우리 안에 오작동’ 하고 있고, 그래서 ‘너와 내가 힘겹게 칠한 파랑’은 핏빛으로 물든다. 분단 이후 ‘빨갱이 사냥의 논리’하에 자행됐던 ‘4.3 학살’이나 ‘광주학살’은 그렇게 자유의 파랑이라고 믿고 싶었던 우리 남한의 모습 역시 ‘북의 빨강’과 다르지 않은 ‘핏빛’임을 증명한다. 그래서 ‘핏빛 파란’의 ‘파란’은 자유의 색인 파란색이자, 동시에 우리가 겪어왔던 피로 물든 ‘파란(波瀾)’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같은 시기 개막한 2018 광주비엔날레를 기념하는 초대전이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상상된 경계들’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수많은 ‘경계’를 예술로 살펴본다. 이 ‘경계’를 탐색하는 예술순례는 노순택의 <핏빛 파란>전에서, 먼 길 돌아 다시 거울 앞에서 자신을 마주하듯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경계는 무엇인가?’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붉은틀 III, #BGJ1101, 2005 Ⓒ 노순택



붉은틀 III,#CEC1701, 2014 Ⓒ 노순택

 

붉은틀 III, #CIC1401, 2018 Ⓒ 노순택


붉은틀 III, #CAJ1701, 2010 Ⓒ 노순택
 

데마고기, #BIL2001,2008 Ⓒ 노순택
 

데마고기, #BIL2001,2009 Ⓒ 노순택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간 진행해온 작업 중 분단 문제와 비교적 직접적 관계를 갖는 7개의 작업을 추려서 구성됐다. 북한 속 남한과 남한 속 북한이 어떻게 거울처럼 마주하며 닮았는지 북한과 남한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붉은틀> 연작과 ‘삐라’ 살포 현장을 포착해 남북한 선전전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데마고기>, 보수우익단체 시위현장 사진을 통해 ‘외국보다 낯선 애국’을 보여주는 <애국의 길>, 중국에서 북한 접경지역을 달리며 북한을 찍은 <분단인 멀미>, 연평도 포격 및 천안함 사건 현장을 기록한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와 <가면의 천안함> 등 연작으로 구성돼있다. 전시 시작이 북한에서 촬영한 <붉은틀>이라면 전시의 마무리는 <분단인 달력>이다. 분단 이후 70년 동안 분단 관련 사건들을 기록해 이제 더 이상 쓸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해진 <분단인 달력>은 한반도의 시계가 결국 분단을 중심으로 돌고 있음을 반증한다. 


최연하 사진평론가는 전시 서문에서 “노순택에게 사진은 세계를 동일하게 옮겨 온 그림이기도 하지만, 세계에 대한 텍스트이자 흔적이기에, 수집한 사진들이 (문자와 기호를 획득하여) 기술(記述)되는 방법으로, 이미지 간의 배열과 편집은 매우 중요해진다. 사진은 최종 출력되는 인화지의 매질도 중요하지만 크기, 배열의 순서, 사진 간의 거리, 텍스트와 이미지의 배치 정도 및 간격, 인화지의 여백, 사진이 만나는 프레임, 사진이 걸리게 될 벽면(혹은 지면)의 높이와 너비에 따라 그 맥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략- 기존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획득한 언어들의 대부분이 사건을 기승전결, 즉 선형적으로 나열하여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면, 노순택은 사태들을 조합하고 재배치를 통해 그가 언급한바, ‘분단 시스템의 작동과 오작동의 풍경’을 다만 제시할 뿐이다.”(최연하, <쓰여지지 않은 것을 읽다 - 핏 빛 파란 얼룩들>)고 지적한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사진뿐만 아니라, 텍스트와 설치작업도 주요한 역할을 한다. <분단인 달력> 앞에서는 <분단인 달력>의 5월 달력을 대량 인쇄해 바닥에 쌓아놓고,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가져가게 했다. 5월 달력에 2000년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18 추념식이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4.3사건과 노근리 사건 진상보고서가 사진과 함께 배치되며, 관람객들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사진과 함께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생각토록 한다. 


 
데마고기, #CEK1001, 2014 Ⓒ 노순택

전시장 중앙에 놓인 붉은 조형물에는, 김일성 3대로 내려오는 북한의 세습과,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진 남한의 세습을 지적하는 텍스트가 적혀있다. ‘세습의 사각’이라 이름 붙은 이 조형물은 북한의 주체탑과 남한의 롯데월드타워를 병치시키는 노순택의 사진처럼, 전시 전체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전달하는 일종의 선전탑이자, 남북한 닮은꼴의 ‘주체탑과 황금탑’에 대한 통렬한 야유와 다름 아니다. 


이번 전시는 오는 11월 11일까지 열리며, 10월 17일에는 전시장에서 노순택 작가와 최연하 평론가가 참여해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글 :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 광주시립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8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