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소통과 나눔의 공간, 금보성아트센터

창작의 수고로움을 진 자들에게 자유로운 영혼의 쉼터

 
평창동에 위치한 금보성아트센터를 찾으면, 건물 외관의 플랜카드에 커다랗게 쓰인 이런 글귀가 방문객들을 반긴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는 성경 구절에서 따온 이 말은 금보성아트센터가 추구하는 바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글귀이다.

 

금보성아트센터 외관

지난 2013년 개관한 금보성아트센터는 100여평 가량의 전시공간 4개를 갖추고 있으며, 전시, 강연 등의 문화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는 갤러리이자 신생 예술가들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시의 9할 이상을 자체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의 기획전과 초대전으로 진행하는데, 해당 전시를 위해 작가들에게 전시 관련 비용을 지원하며 홍보도 돕는다. 매년 전시를 한 작가들 중 한 명에서 두 명을 선발해 ‘올해의 창작상’과 3천5백만 원의 창작지원금을 수여한다. 


또한 국내 미술계 발전을 위해 60세 이상의 원로작가들을 대상으로  ‘한국작가상’을 제정해, 한국 미술계를 대표할 예술가들을 조명하고 지원하고 있다. ‘한국작가상’은 상금 1억 원을 지원하는데 현재 국내 미술공모전 분야에서는 국내 최대 상금이다. 금보성아트센터는 이 모든 활동을 드러내놓고 요란하게 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진행하며 한국 미술계에 조용한 태풍을 일으키고 있다.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

금보성 관장은 “내게 ‘금보성아트센터’는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공간”이라 말한다. 그는 지난 30년간  ‘한글회화’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작가이자, 신학대학을 나와 세계 25개국을 돌며 선교활동을 했던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15년 동안 집시로 떠돌며 살았죠. 그 나라의 미술관, 박물관, 작업실을 돌면서 작품들을 보고 다니고, 작가들, 미술계 인사들을 두루두루 만났습니다. 그 때 제가 누군가의 후원과 사랑을 받았기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나 역시 다른 이들에게 내가 받은 도움을 돌려줄 때가 된 거죠.”


오랜 시간 해외에서 미술작품들을 접하며 그는 예술가가 곧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총이나 무기로 지키는 정치적인 국가가 아니라, 예술가들이 대통령으로 있는 문화와 예술로 세우는 국가를 의미한다.


“로마 안에는 바티칸이란 국가가 있어요. 스페인에 가도 그런 국가가 여러 개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스페인 안에 무슨 국가가 있지?’하고 의아해 하는데, 스페인에는 피카소 미술관, 가우디 건축물, 미로 미술관, 달리 미술관 등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스페인에 그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와요. 한 작가의 예술작품을 보기 위해 그 나라를 찾는다면, 그 예술가는 그 자체로 그 나라에 국가를 세운 거죠. 
우리도 우리 안에 그렇게 예술가의 국가를 세워야 해요. 그런 예술인들의 국가가 우리를 부강하게 하고 문화를 융성시키는 디딤돌이 되죠. 미술관, 갤러리, 아트센터가 예술인의 국가를 만들고, 그들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지금 힘도 비전도 없는 젊은 작가들이 클 때까지, 그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 전시를 돕는 거죠.”


이력서가 아니라 작품만을 본다

그는 자신에게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보다는, 젊은 작가들이나, 사람들이 잘 관심두지 않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가가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 유명 작가들은 굳이 이곳이 아니어도 그들을 원하는 공간도 많고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시공간과 기회를 갖기 힘든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금보성아트센터는 초대전을 열 작가를 선발할 때, 공모조건에 어떤 이력서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작가의 이름과 이미지 100장만을 요구할 뿐이다.


“60세 미만 작가들에게는 이미지 100점을 요구하고, 그 외에는 일체 보지 않습니다. 작품을 보기 전에 이력서나 경력 사안 등을 보며, 학교 어디 나왔네, 어느 지역이네, 그런 것들로 모든 것을 평가해버릴 수 있잖아요. 작품을 보면서 ‘아, 이건 좋다, 이 부분은 좀 모자라네’ 이런 이야기가 나와야하는데, 우리는 이력서를 먼저 보는 거죠. 이력서에 눈이 희미해져서 작품을 보지 못하는 실수는 안하고 싶어요.” 


이렇게 선정된 작가들에게는 무료로 전시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전시에 드는 비용과 홍보 등을 도맡아 진행한다. 그 스스로가 작가이기에, 작가 입장에서 불편했던 점들을 잘 알고 그 부분을 최대한 지원하려 한다. 


 
“갤러리를 시작할 때 크게 자신은 없었어요. 아는 컬렉터도 없고 미술계 인맥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다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전시 관련해서는 비용이 들지 않도록 돕고, 또 전시 기간 동안 잠자리와 먹는 것만은 보장해줘야겠다, 마지막으로 작품판매를 통한 수익내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판매가 되면 거의 100프로 작가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하자, 그 약속만은 지키자고 결심하고 시작했어요. 나도 작가이기에 열심히 작업하고, 경쟁하고 전시하고 해야 하니까, 그 처음 가진 마음만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간송 전형필이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문화재의 유출을 막고 우리 것을 지켰듯이,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돕고 싶다고 한다. 전시를 하고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바로 작가를 작가답게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잘 그린 표절보다 못 그린 창작이 낫다

금보성아트센터는 장르와 상관없이, 작가의 출신이나 이력과 상관없이 모든 조건을 열어놓고 작가들의 작업을 후원하고 있다. 장르 제한을 두지 않기에, 지금까지 사진작가들도 여러 전시회들을 가졌다. 올해만 해도 김정언, 하춘근, 창남 작가가 개인전을 가졌고, 2015년 휴스턴 포토페스트에 초청받은 정정호 작가도 두 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다. 또한 러시아 현대미술전이나, 크리스티앙 꼬졸 강연, 아를 국립예술대학 교수 초청강연 등 사진관련 행사들도 활발하게 개최하고 있다. 


그는 장르에 관계없이, 작가들의 작업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표절하지 않는 것”이라 강조했다. 예술의 가장 기본은 창작이기에, 잘 그린 표절작보다는 그보단 좀 못하더라도 자기 생각이 담겨있는 창작이 낫다는 것.


“예술에 있어, 어떤 것이 옳다는 기준을 두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금이 단색화 열풍이니 단색화를 전시하자, 그런 식은 아닙니다. 그럼 나머지는 다 붓을 놓아야하게요? 정물이면 정물, 추상이면 추상, 미니멀리즘이면 미니멀리즘, 다 인정하고 열어놓습니다. 다만 오랜 시간 여러 나라 미술관을 돌고, 작가들을 만나면서 보고 배웠기에 비슷한 것은 놓치지 않아요. 어떤 그림은 보고, 바로 ‘안됩니다’ 하는 이유가 이미 내가 봤던 그림들이라 그래요. 표절은 안돼요. 기본적으로 소통과 나눔을 같이 하고, 창작하기 위해서는 표절하지 말아야 해요. 이것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성공이란 부와 명예를 지키는 것보다는,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요?”


 

금보성아트센터 전시 전경


그가 갤러리를 시작한지 이제 6년째가 됐다. 작가들을 전적으로 지원하면서 갤러리를 통해 수익을 내기보다는, 작가들에게 수익을 돌려주겠다는 그의 첫 생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처음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그에게는 목표라면 목표라고. 또, 지금보다 더 많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청년작가상의 수혜자를 늘리거나, 혹은 금액을 늘리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작가의 장르를 구분하지도 않고, 특별한 취향이나 작품을 편식하지도 않고, 작가의 나이, 학교, 직업, 종교, 이런 데는 전혀 관심 없이, 오로지 작품으로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 창작의 힘겨움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을 꿈꿉니다.” 



금보성 金寶星 Kim Bo Seong 


 


 
금보성은 1966년생으로 여수 출신이다. 그는 2011년 그로리치 화랑을 인수한 후 작업실로 활용하다, 2012년 갤러리 평창동을 개관했다. 지난 2013년부터 김흥수 미술관을 인수해 금보성아트센터를 개관하며 ‘올해의 창작상’, ‘한국작가상’ 등의 수상 지원제도를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7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자, 회화, 조형예술 작가이기도 한 그는 지난 33년간 한글을 조각으로 해체해 재구성한 회화, 조각 등의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한글회화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왔다. 프랑스 평론가 장루이는 그의 작품세계를 두고 “시인인 금보성 작가는 언어와 문자의 관계를 잘 알고 있으나, 파괴의 위험 앞에서의 종이의 연약함 역시 잘 알고 있다. 한글을 다양한 조형적 형태로 작품화하면서, 그는 언어의 시각화를 통해 단순히 읽히는 언어 이상으로 언어 자체를 빛내고자 했다. 작가는 언어가 글에서 파생된 의미 이상을 가졌음을,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조형적 표현임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금보성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글자들은 오랜 세월동안 천천히 쌓인 색채들의 바탕에서 말 그대로 단번에 표면으로 솟아 올라온 것 같다. 글자들은 예술의 역사에 의해 축적된 기억 속의 침전물들의 지층에서 추출되었고, 오늘날에 이르러 금보성 작가에 의해 새로이 태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평했다. (장 루이 뿌와트방, ‘La lettre, la maison, le monde 글자, 집, 세계’ 中)
 

한글 신혼집. 2017.철부식 ⓒ금보성


ⓒ금보성


ⓒ금보성

 
그는 관훈갤러리, 학고재갤러리, 대전예술의전당 등에서 개인전만 45회를 열었고, 지난 2015년에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대형 풍선 조형물인 방파제 <테트라포드>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2008년 올해의 작가상, 2009년 올해의 인물- 미술대상과 함께 2013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대상, 대한민국 미래 경영대상 문화예술부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했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제공 금보성아트센터


해당 기사는 2017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