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역사 ④ 모든 소외된 존재들의 역사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임흥순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전(2017. 11. 30~4. 8)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네 번째 현대차 시리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가가 아시아 여성 노동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 〈위로공단〉으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장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다. 임흥순은 그동안 한국현대사 속에 희생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담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1945년 해방 전후 시대를 살아온 네 여성의 삶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돌아보고, 역사의 사건들을 전시장으로 소환한다. 그는 전시장을 한국현대사의 중요 시기별로 범주화한 영화 세트장으로 구성하고, 이곳에서 각 시대별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세트장 형식의 전시장은 한국현대사를 재현하고, 과거의 이야기를 재구축한다. 한국근현대사 속의 전쟁과 분단은 사회를 극단적으로 갈라놓았다. 작가는 이념, 젠더, 정치, 세대 등에 의해 극단적으로 나뉜 사회를 구술, 심리, 공간, 이미지 등을 통해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한다.
 


전시장 설치전경(제 5전시실)

전시장 설치전경(제 5전시실)


할머니들의 부서진 시간
임흥순의 과거작이 그러했듯 이번 전시의 주인공도 여성이다. 남성에 의해 쓰여진 이야기 속에 여성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방인이다. 그가 보기에는 세상의 외부자였기에 여성은 더 넓은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역사는 지금까지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 했던 적이 없다.

1920년 상해로 망명해 26년 동안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정정화(1900~1991) 할머니, 제주 4·3 사건 당시 일본 오사카로 밀항해 평생을 일본에서 산 김동일(1932~2017) 할머니, 한국전쟁 이후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3년의 시간을 보낸 고계연(1932~) 할머니, 10대 때 한국전쟁, 20대 때 베트남 전쟁을 겪은 뒤, 이후엔 테헤란에 정착해 살다가 이란·이라크 전쟁을 목격한 이정숙(1944~) 할머니. 그들은 기록된 역사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굴곡진 역사를 살아낸 승리자이자 목격자이다. 네 할머니의 삶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지만 모두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국가의 분단 이데올로기에 의해 고통받고 희생당했다. 그들의 삶은 외부에 의해 갈라지고 부서졌다. 작가 임흥순은 객관적 사실보다 경험으로 이뤄진 역사가 복잡한 사회를 풀어낼 수 있는 ‘키워드’라고 한다. 역사 속에는 고통 받은 할머니들이 있었고, 이들은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사회 속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관객을 낯설고 생경한 과거로 데려가며 시공을 초월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영화스틸, 2017 ⓒ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영화스틸, 2017 ⓒ임흥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 이계(異界)
이번 전시는 역사와 개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현재 진행형의 열린 프로젝트다. 작가는 미술관을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곳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공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이계(異界)로 설정했다. 관객은 이곳에서 시공을 거닌다.

주 전시장인 5 전시실은 크게 3개의 파트로 구성됐다. 5-1 전시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존재하는 일종의 경계이자, 중간 지대이다. 제주 금능석물원에서 모티브를 얻은 사천왕상 문을 지나면 전시장 밖의 속세와 전시장 내부의 중간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계(異界)에는 할머니들의 삶과 관련된 장소들이 실험연극의 무대처럼 펼쳐진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산은 3채널 영상작업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 현장에 있는 설치물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할머니들은 모두 살기위해 산으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다. 그외에도 임시정부 때 정정화 할머니가 중국땅으로 향하던 수단이자, 고계연 할머니의 상처를 치유해 주던 낚시의 매개체인 배, 망루 등의 설치물은 할머니들의 삶에서 일부 발췌한 것들이다. 전시장 안에 실체화된 오브제들은 할머니와 할머니, 할머니와 관객 등을 이어주는 기능을 한다.

3채널 영상작업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세 할머니(정정화, 김동일, 고계연)의 삶은 인터뷰와 연기자들의 연기로 재구성됐다. 누가 이야기하는 지에 따라 같은 말도 다르게 느껴진다. 작가는 세 할머니의 삶을 재연하는 배우 중 한명으로 정정화 할머니의 손녀를 택했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할머니가 삶을 이어갔기 때문에 정정화 할머니의 손녀도 살아 있다. 과거와 현재는 이렇게 다시 한번 이어진다. 그는 거창한 무언가를 해내며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의 질긴 생명력으로 사소하게 반복되는 매일을 덤덤히 살아냈다. 다른 할머니 또한 그렇다. 그러한 이들의 역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이지만 주류의 역사와 다른 감동과 숭고함이 느껴진다. 이름을 남기는 것에 집착하는 역사 속 남성들과 달리 여성은 전쟁 이후에도 삶을 이어가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역사도 조명받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5-2 전시실에는 일본에서 생을 마감한 김동일 할머니의 옷과 뜨개 소품이 전시됐다. 항일운동가의 자녀로 제주 4.3 사건 당시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에 올랐던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중에 생을 마감했다. 고통의 삶과 역사의 아픔을 감내하면서 만든 수공예 작품이기에 어둡고 정적인 것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화려한 색상과 아기자기한 맛이 살아있다. 칙칙하고 어두운 역사를 겪었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삶을 치유했고, 삶을 살아냈다. 그 사소하지만 위대한 투쟁법은 작가에게 특별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임흥순은 이를 전하기 위해 의상실에서 옷을 스치고, 만질 수 있게 했다. 공간은 김동일 할머니의 사적 이야기가 관객에게 스며들도록 구성됐다.

5-3 전시실은 소품실 콘셉트로 할머니들의 ‘유품’도 현재와 과거를 연결한다. 낚시, 자수, 독서, 뜨개질 등 각자의 취미 활동을 통해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했던 그들이 한편으로 얼마나 평범한 생을 갈구했는지 살필 수 있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영화스틸, 2017 ⓒ임흥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영화스틸, 2017 ⓒ임흥순

역사 그 이후, 이야기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결국 우리를 갈라놓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다수의 개인이 사회를 구성하고, 역사를 만든다. 임흥순의 작업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확한 실증적 구현이 아닌 과거의 기억을 상기해 뿌리깊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해소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는 과거의 이야기를 회자하지만 그 해석을 과거에만 두지 않는다. 그에게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특정 시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최근 고계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시네마그래프에 ‘영면’이 추가됐다. 전시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서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이고 있다. 전시장에 구현된 서사를 체험한 관객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될까.

 

글 김다울 기자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