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과 뒤의 여성들 ① : 1970년대 아방가르드 페미니스트

지난 1월 21일은 전 세계 여성들이 여성 권익을 높이자고 한 목소리를 내며 거리를 행진한 여성행진(Women's March) 날이었다. 마침 도널드 프럼프 대통령의 취임 1주년 전날 이뤄진 이 행진에서는 미 전역 뿐만 아니라 런던, 파리, 시드니 등 세계 주요도시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양성평등, 여성정치참여 확대 등 다양한 페미니즘적 기치를 내걸고 변화를 촉구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6년부터 문화계를 뒤흔든 큰 이슈는 페미니즘이었다. 인터넷상 불거진 여성혐오 논란에 맞물려, 인터넷에서 문화계 성폭력을 폭로하는 해쉬태그 운동,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살아오면서 느낀 성차별과 폭력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등 페미니즘은 문화출판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이렇듯 페미니즘은 지금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오는데, 이는 전통적인 사진 장르에서도 다르지 않다. 예술계는 실상 치열한 정치, 사회담론의 각축장이며 많은 페미니즘 작가들이 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신념을 반영해왔다. 카메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대상화하며 소모하는데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페미니즘 작가들은 카메라를 들고 주체적인 여성성을 발견하고, 기존 시각문법의 편견을 깨는 매체로 활용해왔다. 이번 스페셜 이슈에서는 1970년대 진행된 아방가르드 페미니스트들의 사진작업과 이들의 시대를 앞서나간 실험작을 소개하며, 이후 인터넷 시대의 여성 사진작가들이 어떻게 사회의 성 고정관념에 도전하는지 살펴본다.

 


1970년대 아방가르드 페미니스트
Feminist Avant-Garde of the 1970s


비엔나 잠룽 페어분트  SAMMLUNG VERBUND Collection, Vienna 주최
칼스루헤 아트 미디어 센터 ZKM | Zentrum für Kunst und Medien, Karlsruhe



Ⓒ Cindy Sherman / Courtesy of Metro Pictures, New York / SAMMLUNG VERBUND, Wien



ⒸAlexis Hunter / Courtesy of Richard Saltoun, London / SAMMLUNG VERBUND, Vienna

'1970년대 아방가르드 페미니스트' 전시는 오스트리아의 예술 컬렉션 잠룽 페어분트(SAMMLUNG VERBUND)에서 선발한 약 400여 점의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잠룽 페어분트는 오스트리아의 전력 산업 업체인 '페어분트(Verbund)'의 문화 산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04년에 설립되었으며 설립과 함께한 가브리엘레 쇼어(Gabriele Schor)가 현재까지 총괄 책임을 담당하고 있다. 쇼어는 비엔나와 샌디에이고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를 거쳐 스위스 신문사(Neue Zürcher Zeitung)의 문화부 자문위원 등의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주로 신디 셔먼(Cindy Sherman), 브리짓 유르겐센(Birgit Jürgenssen), 프란세스카 우드만(Francesca Woodman)와 같은 여류 작가에 대한 책을 출판하였으며 오랜 시간 페미니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번 전시 [1970년대 아방가르드 페미니즘]은 쇼어가 잠룽 페어분트의 책임자로서 컬렉션의 작품을 기반으로 하여 약 13년간의 페미니즘에 관한 연구를 선보이는 전시이다. 유럽, 북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50명의 작가의 약 400점에 달하는 작업이 소개된다. 그녀는 이 전시에서 신디 셔먼과 같은 관객에게 이미 익숙한 유명 작가도 있지만 동시에 아직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가능성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어 더욱 기대해 볼 만한 전시라고 말한다. 작품 대부분은 1970년대에 완성된 것으로 오늘날까지 작가의 에너지와 활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난 40년간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는 신작이 많다.

 


Ⓒ Lynn Hershman Leeson / SAMMLUNG VERBUND, Vienna



Ⓒ Suzy Lake / Courtesy of Georgia Scherman, Toronto / SAMMLUNG VERBUND, Wien

이 전시는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17년 11월부터 2018년 4월 8일까지는 독일 칼스루헤에 위치한 ZKM(Zentrum für Kunst und Medien: Center for Art and Media)에서 소개된다. ZKM은 1989년에 개관한 아트 미디어 센터로 장르의 경계 없이 다양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이는 곳이다. 그 후의 일정은 2018년 6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노르웨이의 스타방거 아트 뮤지엄(Stavanger Art Museum), 2018년 12월부터 2019년 3월까지는 체코의 더 브르노 하우스 오브 아츠(The Brno House of Arts)에서 같은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그만큼 많은 노력이 담겼다는 뜻으로 보인다.

예술의 역사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국제적으로는 물론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전시 총괄 책임자인 가브리엘레 쇼어는 이를 예술사적인 맥락에서 접근하였으며 단순히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여성 작가들을 한데 모으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1970년대 완성된 작품이 개념과 방식 등 다양한 면에서 얼마나 선구적이고 강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참여 작가 50명은 1930년에서 1958년 사이에 출생한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 태어난 여성들에게는 다양한 예술 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며 이들은 1950년대 전쟁 이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 안정감을 필요로 하며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성이 강조된 사회구조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접근하였다.

 


Ⓒ Renate Eisenegger / SAMMLUNG VERBUND, Wien



Ⓒ Annegret Soltau / VG Bild-Kunst, Bonn, 2016 / SAMMLUNG VERBUND, Wien

1970년대의 여성 작가들은 사회 구조 속의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을 벗어버리고자 했으며 여성과 남성을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감각, 사유, 의지 따위의 모든 주관이나 주체의 작용 대상이 되는 객체로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흔히 광고판에서 성적인 대상으로 인용되며 '물질화' 혹은 '사물화' 되었던 여성의 몸을 주체적으로 표현하며 사회의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종래의 사고방식을 바꾸고자 한 것이다. 물질적인 대상으로써의 제한된 범위에 있던 여성성을 해방해 또 하나의 주체로써 여겼으며 이러한 예술적 활동은 여성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과정 일부로 자리 잡았다.

전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가장 큰 키워드는 ‘여성성의 발견’, ‘개체로서의 몸’, ‘전형적인 예술에서 그려진 여성성의 파괴’ 그리고 ‘여성 폭력에 대한 인식’ 증진으로 정리된다. 참여 작가들은 1970년대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은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와 같이 규범화된 인식을 부정하고 그 시대의 여성 작가로서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찰하고 사회의 변화와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음 4개의 주제로 전시가 진행된다.
1.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상의 축소 (Reduction to mother, housewife and wife)
2. 또 다른 자아 (Alter Ego: Masquerade, Parody and Self-Representation)
3. 여성성, 그것의 사물화 (Sexuality and Objectification)
4. 아름다움과 규범 (Normativity and Beauty)

수년간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며 연구를 진행해 온 쇼어는 “서로 알지 못하는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여성 작가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맥락의 개념을 추구하고 작업으로 선보이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점이었다.”라고 말한다.


 

Ⓒ Katalin Ladik / acb Gallery, Budapest / SAMMLUNG VERBUND, Wien / Foto: Imre Poth



Ⓒ Ulrike Rosenbach / VG Bild-Kunst, Bonn, 2016 / SAMMLUNG VERBUND, Wien


참여한 여성 작가들이 활동한 배경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바람이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여성의 권리가 증진됨에 따라 실질적인 사회 분야의 참여도도 올라갔으며 이는 활발한 여성 운동으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억압되었던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수 있는 시기였으며 무엇을 요청하는지의 내용이 공공연히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통하여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핵심적인 개념을 발견하였다.

예술가로서 그들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자신들이 사회 변화에 함께하기 위한 노력을 선보였다. 다방면으로 페미니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사회에 새로운 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전시를 기획하였으며 사람들의 인식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매거진이나 신문에 수많은 기사를 썼다. 이러한 노력으로 여성 개인으로서의 요구가 사회적 목소리로 더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들의 진취적인 생각이 담긴 행동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는 매체의 다양성도 확대 되었다. 전통적으로 남성 회화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예술의 역사가 그려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여성 작가들은 회화는 물론이며 사진과 영상뿐 아니라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여성 운동을 포함하여 이를 기록한 영상물을 모두 예술의 범주 안에서 표현하였다. 개념과 더불어 방식 면으로도 큰 변화와 성장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전시가 진행되는 공간인 ZKM에서는 기존의 프로젝트와 연결된 맥락의 전시라고 소개한다. ZKM은 2014년 선구적인 미디어 작가인 린 헤어슈만 리존(Lynn Hershman Leeson)의 사진전을 진행하였으며 2015년에는 칼스루헤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인 프라우엔페어스펙티벤(Frauenperspektiven: 여성의 관점으로)에 ZKM 비디오 작업 컬렉션과 울리히케 로센바흐(Ulrike Rosenbach)의 작업을 선보였으며 영상작업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전시 여성 작가 비디오 작품전(Frauen Video Arbeiten)을 진행하였다.

가브리엘레 쇼어는 다시 한번 거듭 강조하였다. 이 전시는 단순히 참여작가의 성별로 구분하는 여류 작가들의 그룹 전시가 아닌 1970년대의 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참신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자리라고 말했다. 관객은 이번 전시를 통하여 오랜 시간 페미니즘을 이야기해 왔던 유명 작가들은 물론 앞으로 눈여겨볼 만한 숨겨졌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전시기간  2017년 11월 18일 – 2018년 4월 8일
전시기획  가브리엘레 쇼어(Gabriele Schor)

 

글 조희진 Heejin Cho 이미지 제공 ZKM
해당 기사는 2018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