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가]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Spaces of Enlightenment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Spaces of Enlightenment 전시가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8월 한 달 간 열렸다. 도서관, 공연장, 미술관 등 공간 자체가 가진 조형적 아름다움과 그 구조에 집중하는 그의 작업은 보는 이의 시야를 확장시키고, 공간 그 자체를 새롭게 인지케 한다. 

칸디다 회퍼(b.1944)
C-print 180 x 193.4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광장으로의 초대  
칸디다 회퍼 Candida Höfer



칸디다 회퍼 Candida Höfer는 독일 베허 학파(Die Becher-Klasse)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이다. 베른트 베허 부부 아래서 수학한 안드레아 구르스키,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슈트루트, 칸디다 회퍼 등은 유형학적 사진 1세대로 분류되며, 90년대 이후 전세계 사진계를 휩쓸었다. 이들은 오브제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여 이것을 사진에 반영하는가를 통해, 사진매체의 가능성을 개념미술의 영역까지 확장시켰다. 

 
 

칸디다 회퍼(b.1944)
C-print 180 x 200.6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칸디다 회퍼는 지난 1990년대 말부터 특정 공간을 대형사진으로 촬영하며 공간이 가진 아우라를 사진 속에서 재구현했다. 그의 사진은 사적인 영역보다는, 도서관, 미술관, 공연장, 박물관 등 개인들이 모여 교류하고, 지식과 예술의 소통이 있는 일종의 ‘광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에 주목한다. 그에게 이런 공간들은 깨달음과 인지(Enlightenment)의 공간이다.


그의 작업이 ‘서구 계몽주의,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모더니즘의 정점’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그의 작품 속 공간들이 서구 모더니즘의 초석이 된 지식과 깨달음의 공간이며, 이 공간을 냉철한 시선으로 엄격하게 계산된 구도에 맞춰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은 소실점을 중앙에 두고, 좌우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구도로 시야를 확장시키며, 동시에 수직과 수평의 균형이 엄격하게 지켜진다. 이렇게 촬영된 공간의 사진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아우라를 가진다.

 

칸디다 회퍼(b.1944)
C-print 180 x 217.9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그가 찍은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등의 공공 공간은 평소라면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칸디다 회퍼는 이 공간들이 비어있는 시간-각 기관이 허락하는 제한된 시간-에 재빠르게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그 짧은 시간에서도 그는 자신의 직관에 의지해 구도를 잡고 완벽한 한 순간을 포착한다. 때문에 평소라면 사람이 가득했을 공간이 그의 사진 속에서는 비어있다. 그 적막함 속에 오롯이 그 공간이 가진 에너지와 아름다움이 부각되며, 관객은 실제라면 보기 힘든 비어있는 공간들 속을 거닐게 된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달간에 걸쳐 칸디다 회퍼의 개인전 
Spaces of Enlightenment을 개최했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한한 칸디다 회퍼를 만나 그의 작업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진 안천호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 도서관, 박물관 등의 공간사진을 공개했다. 어떤 계기로 이 공간들을 찍기 시작했는가?

처음부터 공간만을 찍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과 공간의 관계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을 구성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또, 공간과 공간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도 흥미롭다. 특히 네거티브 대형카메라 포맷으로 바꾼 후, 공공장소 성격을 가진 곳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 속 공간에는 인물이 없다. 일부러 인물을 배제하고 찍은 이유는?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사진을 찍으면, 그들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사람이 없을 때 찍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사람이 없을 때 이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 공간일수록 공간 자체에서 특성을 읽어낼 수 있다. 가령 도서관의 경우, 비어있는 도서관 공간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구조를 발견하고 읽어낼 수 있었다. 빈 공연장의 경우, 그 공간 자체가 공연장 본연의 기능을 오롯이 보여준다. 예전 공연장에서 작업할 때, 직원식당에서 배우가 “왜 우리를 안 찍고 공연장 건물만 찍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웃음)

처음부터 내 사진에 인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독일에 이주한 터키 2, 3세들을 찍기도 했다. 터키인들이 경영하는 식료품 가게나, 채소가게 등에 가면 독일 문화와는 달리 터키인들의 문화가 반영된 장식이나 인테리어가 있었다. 터키 가족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그들의 찬장에 식기와 유리잔을 진열하는 방식이 독일인들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이런 터키인들의 공간을 찍다가 반성이랄까, 고민이 생겼다. 내가 저 사람들을 작업에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저 사람은 나로부터 얻는 게 없는데, 내가 그들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이후에는 사람 없는 공간만 찍었다. 공간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타인의 삶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공공장소를 찍을 때도, 기관의 협조를 받아, 최대한 이용객들에게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촬영한다. 


 

칸디다 회퍼(b.1944)
C-print 48.2 x 47 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공간이 대상이다 보니, 아무래도 계속 움직이는 대상을 찍을 때와는 셔터 타이밍이 다를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 공간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셔터를 누르게 되는가? 그 때의 타이밍이 있는가?

내 작업에서는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공간에 처음 카메라와 삼각대, 지지대를 설치할 때부터, 특정한 크기와 공간감을 느끼고 이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위치와 공간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이 너무 작거나, 전면에 무언가 오브제가 많으면 사진으로 포착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나는 조명은 이미 그 공간에 설치된 조명이나, 혹은 자연광만을 활용해 사진을 찍지,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내가 조명을 추가로 설치하진 않는다. 이미 그 공간에 설치된 조명과 자연광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햇볕이 있어야 할 때 찍어야 해서, 이 장소들이 문을 열기 직전이나 직후에 찍어야했기에 항상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20년간 이 작업을 해오면서 소형 카메라에서 대형 필름 카메라로 바꿨고, 최근 몇 년간에는 디지털 작업과 흑백 촬영도 시도하고 있다.


 

칸디다 회퍼(b.1944)
C-print 184 x 174 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작품을 보면, 공간의 바닥과 천장이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작업이 많다. 또 소실점이 정 중앙에 위치하며 대칭적으로 퍼져나간다. 구도를 잡을 때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가?

처음 카메라를 어느 위치에 놓고 어떤 높이로 설치하는가가 중요하다. 카메라의 렌즈가 대상을 보기에 알맞은 구도여야 한다. 이 때 천장에서 바닥까지 밸런스를 조절한다. 카메라를 바닥에 세우면, 공간의 아래와 위가 다 잡히지 않기에, 높은 지점에 올라서서 카메라를 설치한다. 공연장의 경우에는 관중석의 위에서 아래까지, 천장까지 다 잡히도록 한다. 균형적인 조화로움, 완벽함, 질서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구도와 밸런스가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그 작업은 나에게 완벽하지 않다. 

소실점을 중앙에 둠으로써, 보는 이들이 그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가령 우리 집의 다이닝 룸에는 내가 찍은 공연장의 사진을 걸어놓았는데, 그것은 이 공간 자체가 깊어지고 확장되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특별히 선호하는 건물이 있는가? 어떤 공간을 촬영할 때, 그 공간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공간에 처음 들어가면 강한 인상을 받고, 마음이 움직이고, 감동을 받고, 존경스런 마음도 들고, 그런 공간을 찍는 것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건물 내부의 반복적인 부분, 패턴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작업한다. 쾰른의 오페라 하우스 건물사진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공간의 역사적인 것과 현대적인 부분이 관심을 일으키는데, 옛 공간은 역사의 특정시대를 반영하고, 그 곳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이 담겨있다. 현대에 지어진 공간은 비어있는데, 이 역시 그 자체로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 공간이 가진 질서와 구조가 중요하고, 그 공간의 아름다움을 내가 직접 지각하고 느껴볼 수 있어야 한다.


주로 유럽의 건축물을 찍었는데 아시아 등 다른 문화권의 건축물을 찍은 적도 있는가? 또 최근 진행하는 작업이 있는가?

아시아를 여러 번 방문했다. 아시아의 건물 역시 매력적이지만, 그 공간을 천천히 경험하면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다. 또 현실적으로 촬영까지의 과정이 힘들다.

지난 몇 년간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하고 있다.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산책 나가, 우연히 발견한 대상들을 찍고 있다.


 

칸디다 회퍼(b.1944)
C-print 184 x 222 cm
Courtesy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뒤셀도르프에서 수학할 때 가장 중요하게 배운 것은 무엇이었는가? 또 그 때는 베허 학파의 사진이 이후 사진계를 휩쓸 것이라 생각했는가?

그 당시 어떤 기술적인 것을 배운 것이 아니다. 선생님의 인간성, 학생들과 함께 갖는 관계가 중요했다. 함께 하나로 배우고, 해나가는 것이 중요했고, 그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소중했다.

당시에는 우리가 사진으로 유명해져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우리 학생들끼리는 졸업하면 (돈을 벌기 위해) 함께 회사를 차리거나, 사업을 하자는 등 이런 저런 일을 하자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웃음)
 

20년간 한 주제로 작업해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선배 작가로서, 후배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일단 인내심을 가지고 해야 한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이 때 논리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자의적으로 이러 저리 헤매거나,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아이디어를 일관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해당 기사는 2018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