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역사 ③ 남북한을 둘러싼 반신반의 〈파킹찬스 PARkingCHANce 2010-2018〉

사진은 한 장으로 사건을 압축한다면, 영상은 서사를 통해 사건의 전후와 좌우 구조를 살피게 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훑어보면 가장 근원적인 갈등의 부분에는 해방 이후 좌우 이념갈등과 이로 인한 남북분단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찬욱, 박찬경 ‘파킹찬스’의 〈반신반의〉나 임흥순 작가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영상 작업은 때론 아이러니와 풍자로, 때론 기록과 재현을 통해, 분단과 전쟁을 거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고 있다.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은 오는 7월 8일까지 〈파킹찬스 PARkingCHANce 2010-2018〉전시를 진행 중이다. 〈파킹찬스 PARkingCHANce 2010-2018〉 는 박찬욱 영화감독과 박찬경 현대미술작가의 프로젝트로 두 사람의 성인 ‘박Park’과 돌림자인 ‘찬Chan’에서 따와 이름 지었다. ‘파킹찬스’는 ‘장르와 매체, 이윤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하기가 서울에서 주차할 기회를 찾는 것처럼 어렵고, 또 그만큼 반가운 일’이라는 뜻이다.

〈파킹찬스 PARkingCHANce〉는 현대미술과 영화라는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고정관념에 도전해왔다. 이번 전시는 2010 년부터 2018 년까지 파킹찬스가 제작한 신작을 포함한 총 7 편의 중단편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한 자리에 모았으며, 여기에 박찬욱 감독의 사진과 박찬경 작가의 미공개 사진이 공개됐다. 영화로는 최초의 아이폰 영화 〈파란만장 (2011)〉을 비롯해, 판소리 스승과 제자의 하루를 다룬 〈청출어람 (2012)〉, 서울을 주제로 한 크라우드소싱 다큐멘터리 〈고진감래 (2013)〉, 몰입형 3D 사운드-이미지 작품인 〈격세지감 (2017)〉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커미션 한 〈반신반의(2018)〉가 상영중이다.  




 ⓒ파킹찬스, 반신반의 BELIEVE IT OR NOT (2018), 복합 매체 설치, HD 단편영화(31분 33초), 가변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모호필름 제작





ⓒ박찬경, 소년병 CHILD SOLDIER (2017-2018),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 35mm 필름 연속 상영,
가변크기, 16분 9초, 3개의 사진 라이트박스(각 84x120cm), 작가 제공
 

두 작가는 이전부터 분단현실에 대한 주제를 깊이 다뤄왔는데, 신작인 〈반신반의〉는 남북한을 오가는 이중간첩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이다. 북한에서 넘어와 남한에서 탈북 팟 캐스트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주인공은 다시 북한으로 넘어오라는 지령을 받고 갈등한다. 다른 주인공은 탈북한 사람을 남한으로 안내하는 일을 맡았다가 졸지에 북한에 붙잡히고 포섭 당한다.

영상은 남한과 북한의 취조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벽 하나를 두고 마주선 남북한의 취조실 무대 세트는 영상이 상영되는 전시장 안에 그대로 재현돼있다. 영상이 상영되는 공간은 남한의 취조실 공간이고, 반대편의 공간은 북한의 취조실 공간으로, 여기에는 주인공이 북한에 재입북해 정치선전용 영상을 찍는 무대세트장을 재현해 관객들이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벽을 마주하고 있지만 닮은꼴의 남북한 취조실은, 마치 분단 이후 상황에 따라 필요한대로 진실을 호도하고 대중을 기만해 온 두 정권의 모습을 닮았다. 서로 거울을 마주하고 대치하는 쌍둥이 형제 같은 이 모습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풍자한다. 남한과 북한, 어느 쪽도 완전히 믿을 수 없고, 그렇다고 양쪽을 다 부정하고 살아갈 수는 없기에, 의아해하면서도 지령에 따를 수밖에 없어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반신반의(半信半疑)라는 제목 그대로이다.   

이 밖에도 3D 비디오 및 몰입형 사운드 단편영화 〈격세지감〉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촬영했던 세트장의 현재 모습과 영화 속 대사를 오버랩 시킨다. 황폐하게 버려진 〈공동경비구역 JSA〉의 현재 모습은 영화가 촬영되던 200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롤러코스터처럼 급변해 온 남북한 관계를 연상시키며, ‘격세지감’이란 제목을 실감케 한다. 또한 박찬경 작가의 단독 사진작업 〈소년병〉은 디지털 이미지와 사진 라이트 박스 형태로 전시됐다. 하모니카를 불고, 문학책을 읽는 앳된 북한 소년병의 모습에서 우리가 적군으로 생각하는 비정한 이미지는 없다. 이런 이미지의 역전을 통해 적과 우리는 과연 다른가에 대해 반문하고 있다.

 

해당 기사는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