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우 《무게 The Weight》 MoPS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2020년 10월 30일 - 2021년 1월 10일

천경우, 퍼포먼스와 공공미술로 확장된 사진

직접경험을 통하여 내면의 진실과 만나게 하는 과정, 천경우 작가의 작업방식이다. 사진이면서 영상이고 설치, 퍼포먼스, 공공미술의 영역이기도 한 그의 작품은 사진의 가능성을 한껏 확장한 결과물이다. 지금 전시 중인 《무게 The Weight》 (MoPS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2020.10.30.~2021.1.10) 또한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사진 프로젝트인데, 작가 특유의 장노출 기법으로 인해 개인의 개별성은 뭉개지고 서로 업고 업히는 행위를 통해 지각되는 무게감만이 물이 종이에 스미듯 인화지에 깃들어 있다. 작가는 미술관 벽에 걸리는 한 장의 사진 이전에,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자기를 재발견하고 변화의 계기를 갖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사진을 시각적 재현 이상의, 과정과 결과에서 시작되는 공간체험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The Weight #2, 2016 ⓒ천경우


25개의 프로젝트
천경우 작가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고, 경험해본 적이 없는 기억을 만들어주고, 밀도 있는 오롯한 시공간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유럽과 아시아, 한국 등지에서 진행한 25개의 프로젝트에 대한 작업노트 『보이지 않는 말들』(현대문학)을 보면 한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과 기획력 그리고 그것을 작업으로 풀어내기 위한 참을성과 진지함, 참여자들에 대한 꼼꼼한 배려와 철저한 진행까지, 과연 한 사람의 작가가 이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었을까, 감탄한다. 물론 이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즉시 돌아온다. “이 모든 것들은 나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과 함께 하여 얻어진 것”이라고.

물론 그렇다. 그래서 힘들다. 혼자 잘하기는 쉽지만 여럿이 잘하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구체화하여 실행하기까지 함께 진행할 기관, 또는  초대한 미술관을 이해시키고 설득하여 일이 시작되도록 한다. 그 다음에는 퍼포먼스에 참여할 지원자를 모집하고 퍼포먼스가 잘 진행되도록 스태프들을 숙련시키고 퍼포먼스에 필요한 소품과 장치를 차질 없이 준비한 뒤에 참여자들과 함께 실행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하기까지는 보통 몇 개월 내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기다림입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낯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과도 같아요. 첫 번째 누군가는 작업의 대상이 되거나 작업에 참여하여 공동주체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자료와 더불어 작가의 구상을 반복하여 전달하고 긍정적인 답변이 오길 기다리고 …”

지금 MoPS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에서 전시 중인 ‘무게 The Weight’라는 프로젝트는 프랑스의 한 고등학교에서, 각국에서 프랑스로 이민 온 가정의, 프랑스어가 서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2016년 작품이다. 서로 업어주고 업히는 퍼포먼스를 통해 물리적인 ‘무게’만이 아니라 타인과 관계의 무게, 살아 있음의 무게를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까지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 것일까. 그들은 실제 행위를 통하여 반드시 기운이 센 친구가 몸무게가 가벼운 친구를 업을 때 더 오래 버티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업는 사람의 힘도 중요하지만 업히는 사람이 편안하게 몸을 맡기는 것도 중요함을, 무게 또한 상호교감과 공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미술관 벽에 걸린 사진으로는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오히려 흐릿하게 뭉개진 사진을 통하여 우리는 더 자유롭게 상상하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무게〉와 함께 전시된 또 하나의 시리즈 〈Nine Editors〉는 아홉 명의 에디터가 각자 함께 일하는 동료의 옷을 한 벌씩 선택한 후 총 아홉 벌의 옷을 겹쳐 입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사이즈도 취향도 맞지 않는 옷을 어떻게든 입거나 걸치거나 껴입은 거북스러운 모습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나와 타인의 관계, 그 불편함과 부조화를 상기시킨다.

 



The Weight #13, 2016 ⓒ천경우



The Weight #3, 2016 ⓒ천경우


유럽과 만남
그의 프로젝트는 진행자와 스태프를 빼더라도 보통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많은 참여자로 이루어진다. 작가가 거듭 자신의 힘만이 아니라 숱한 조력자가 있었음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지휘자가 기존의 음악을 재해석하여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부터 새로운 연주를 끌어내듯이 참여자들이 세상의 관념과 관습과 선입견으로 인해 미처 놓치고 있던 것들을 일깨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그에게 몸을 쓰는 ‘체험’은 아주 중요한 키워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궁금증이 많았는데 그것을 책을 통해서 해소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걸 좋아했다고 말한다. 대상과 직접 만나야 하는 사진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법하다. 결국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한 그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물사진에 관심을 가지면서, 음악가들의 프로필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한다. 당시 유명한 리차드 아베돈(Richard Avedon)의 인물사진을 연구하며 기술적 고민에도 빠져보았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끝내기도 전부터 여러 의구심과 마주쳤다.


 
“인물사진을 찍고 나면 ‘과연 이게 진짜 그 사람인가’라는 회의가 생겼어요. 의뢰인이 어떤 사진을 마음에 들어 할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사진이 본인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사진의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사진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런 근본적인 고민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사진 밖의 창작방식이 관심사였고 그중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현대음악 작곡가의 작업방식이었다. 그들의 지적인 접근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들과 교유는 훗날 그의 퍼포먼스 작업에 영감을 주었다. 특히 1989년 대학 2학년일 때 첫 유럽여행인 40일 간의 혼자만의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해마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유학준비를 했고 마침내 1995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말이 유학이지 사실은 독일에서 살 생각이었어요. 낯선 곳을 좋아해서 독일에 있으면서도 유럽의 각국을 자주 여행했는데, 아마 미국보다 유럽을 더 선호한 것도 유럽에서는 여러 나라를 넘나들기가 더 쉬워서였을 거예요. 물론 유럽의 오랜 역사와 문화에 마음이 끌렸지만요.”

어쩌면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계속 살아갈 곳이므로 더 열심히 언어를 익히고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그곳 사람들과 더 친하게 사귀었으리라. 특히 독일에서 작곡가와 무용안무가들과 진지한 어울림은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 많은 도음이 되었다. 한편, 두 번째 학업을 마친 2000년 이후부터는 독일을 중심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폴란드 등의 여러 유수한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본격적으로 퍼포먼스 작업을 펼치면서 어느새 유럽은 그의 주요 활동무대가 되었다.
 


Nine Editors #1, 2014 ⓒ천경우



Nine Editors #9, 2014 ⓒ천경우



Nine Editors #3, 2014 ⓒ천경우


치유의 예술
천경우 작가가 지난 20여 년 동안 작업한 사진과 퍼포먼스 그리고 공공미술 작품을 들여다보면 사람과 사물에 대하여 사무치게 깊은 애정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인도에서 작업한 〈도시락 배달원의 도시락〉과 서울에서의 〈Pause〉라는 작업은 특히 감동적이다.

인도에서 도시락을 배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50명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고 도시락에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를 적게 한 후에 그 음식이 든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이 프로젝트는 늘 타인에게 배달만 해주다가 처음으로 평소에 먹고 싶었던 음식 한 끼가 담긴 도시락을 배달 받아서 먹는다는 퍼포먼스 자체가 행복감을 준다.

 





도시락 배달원의 도시락 Dabbawalla's Lunch, 2017, performance and installation, Mumbai


〈Pause〉라는 프로젝트도 그렇다. 서울도심을 오토바이로 누비며 속도와 전쟁하는 배달 기사 25명을 미술관에 초대하여 전시를 관람한 다음에 ‘지금 달려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종이에 그 경로를 그리도록 했다. 그리고 그곳을 향하여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 출발, 그곳에 도착하면 한 장의 사진을 찍어 전송하도록 했는데 타인을 향해 달리던 그들이 정작 자신을 위해서 달려간 곳은 어디였을까? 누나가 일하는 회사, 어린 시절에 다니던 학교, 친구의 이발소 등등이었다. 멈출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질주하는 그들에게 잠시의 멈춤, 또한 도시락을 배달만 했던 이들에게 주어진 맛있는 도시락 한 통은 얼마나 가슴이 따스해지는 사건이었을까? 물론 작품의 콘셉트는 이런 개인적이고 소소한 행복의 나눔, 그 이상의 철학을 피력하고 있지만, 참여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보다 값진 결과가 어디 있을까?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시작해도 익명의 많은 사람과 움직이는 퍼포먼스의 경우 빈틈이나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작가는 그런 점이 좋다고 했다. 실수할 기회가 없는 꽉 짜인 현대사회에서 우연성이 나타나고 빈틈이 생김으로써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 실수하니까 인간이다! 따라서 실수까지 포용하는 그의 퍼포먼스는 한 마디로 ‘인간다움’이다. 기계화 되어 가는 이 시대에 사람이 만나 서로 몸으로 부대끼고 사람의 향기를 느끼고 서로의 마음을 더듬어볼 수 있다는 것, 천경우 작가의 퍼포먼스는 결국 인간다움을 환기시키고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인 것 같다.


 






pause, performance with motorcycle delivery drivers, MMCA, Seoul, 2015


사진과 공공미술
작가는 사진의 장점이 공공성이라고 말한다. 공유가 가능하고 대중적인 소통 능력이 강력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공공미술의 영역에서 사진은 소외되어왔다. 사진의 내구성이 공공미술의 개념인 영원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던 탓이다. 그런데 공공미술의 개념이 영구성과 장소성에서 점차 일시성, 시간성으로 바뀌고 있다. 공공미술의 작품도 소멸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어요. 왜 공공미술의 작품은 영원히 그 자리에 서 있어야만 하는 걸까?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광장의 동상처럼 꼭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걸까?”

한번은 독일 괴핑엔(Goeppingen)의 공공미술관이 천경우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며 내건 조건이 “어떠한 작품도 좋으나 ‘남아있지 않고 사라질 공공미술 작품’을 제작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많은 예산을 들여서 제작하는 작품이 사라지길 원한다니 얼마나 신선하고 매력적인 제안인가. 사실 요즘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곳곳에 공공미술 작품이 넘친다. 과잉이다. 그러나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남길 원하는 게 당연할 텐데 섭섭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반문했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듯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소멸되지 않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요? 파괴의 가치도 있는 거지요.”

따지고 보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유한성이 있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애틋한 것이 아닌가.  유한성을 조건으로 시작한 〈Place of Place〉라는 2014년의 이 프로젝트에는 괴핑엔에 사는 300명이 참여하여 자신이 사는 괴핑엔이란 도시의 윤곽을 하나의 선으로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특별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의 위치를 표시하도록 했다. 각자 그린 지도는 큰 입체로 옮긴 뒤 하나씩 쌓여 도시의 중심가에 거대한 조형물로 세워졌는데 약속한 몇 개월이 지난 후 파괴되었다고 한다. 미래의 새로운 기억과 생성을 위해 자리를 내준 셈이다.

 


Place of Place, 2014, public art project-performance, installation and book, Goeppingen and Changwon, 2014


독일에서 계속 살리라 생각했던 그는 2012년 모교인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로 돌아왔다. 작업을 위해 교수직을 주저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서울과 유럽을 오가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촬영을 할 때 카메라 뒤의 공간까지도 깨끗하게 정리한다는 천경우 작가의 말에서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진에 나오지 않더라도 카메라 앞에 선 인물이 카메라의 뒤까지 바라보게 되니까 신경을 쓴다는 것. 사각 프레임 안에 들어가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한 마음을 쓰는 그가 일종의 고행처럼 느껴지는 지난한 프로젝트를 기어이 성사시키는 저력은 그런 성실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는지. 결과보다 과정에 더 중점을 두는 그의 작업은 결국 작가의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과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확신이 든다.


천경우 작가(1969~ )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부퍼탈Wuppertal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에서 디플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사진, 영상, 퍼포먼스, 공공미술 작품 등 폭넓게 활동하고 있고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막발Macval 현대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을 비롯해 네덜란드, 미국, 덴마크, 폴란드, 독일, 스패인 등의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영구 소장되었다.
 

글 : 윤세영 편집주간 이미지 제공 : 한미사진미술관
해당 기사는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