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Life① - 오늘날 정물사진은 어떻게 이해되는가?

정물사진은 멈춰져 있는 사물을 찍은 사진을 말한다. 현대정물사진은 단순히 멈춘 사물들을 재현하기보단 그 사물들의 배치와 구성 등, 그 물질성에 주목한다.
이번 호 스페셜 이슈에서는 정물사진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이경률 중앙대교수가 ‘현대 정물사진의 올바른 이해와 그 역사적 진화’에서 정물 사진의 역사와 전개방향에 대해 짚는다. 이와 함께 국내외 동시대 작가들의 정물사진을 살펴본다.  구본창 작가의 ‘청화백자’ 시리즈, 아트스페이스J에서 열리는 <정물 Ⅱ_ representing>전, 오스트리아 Kunst Haus Wien에서 열리는 현대정물사진전 의 작업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Laura Letinsky, Untitled #117 (Hardly More Than Ever), 2007 Ⓒ Laura Letinsky. Courtesy Galerie m Bochum
 

오늘날 정물사진은 어떻게 이해되는가?
현대 정물사진의 올바른 이해와 그 역사적 진화


정물화(still life)는 풍경화, 인물화 등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술 영역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물화는 17세기 종교개혁 이전까지 미술의 독자적인 장르로 언급될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미술이나 비잔틴 미술에도 인간 존재를 배제한 무생물 즉 꽃, 과일, 식기, 책 등을 주제로 한 장식용 프레스코나 모자이크가 있었지만 정물이 작품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은 사실 르네상스 시대부터이다. 이후 화가들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종교적 주제를 탈피한 세속적인 주제를 선호했고, 자연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일상의 물체를 세부적으로 관찰하면서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정물화는 카라바주(M.M. Caravage)의 〈광주리의 과일〉(1595년)과 같이 사계절의 꽃과 열매들을 한자리에 모아 자연의 순환을 상징적으로 그렸던 북유럽 플랑드르 화가들에 의해 발전되고 이태리 북부 미술 수집가들에 의해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특히 정물화는 17세기 인간의 유한함을 암시하는 해골, 촛불, 모래시계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바니타스 정물(Vanitas still life)을 탄생시켰다. 그들이 그린 정물은 중세의 어둠을 지나면서 오랫동안 신의 절대성과 완벽성에 길들여진 인간에게 처음으로 인간의 불완전한 실체와 그 원죄를 역설했다. 이후 정물화는 18세기 과도한 바로크 경향에 대한 비평과 개혁 운동을 경험하지만 19세기 후반 마네, 모네, 세잔 등의 인상주의자들과 20세기 마티스, 브라크와 같은 입체파들에 의해 그리고 뒤샹의 오브제와 팝아트 작가들에 의해 또 다시 미술의 중요한 장르가 된다.

그러나 사진의 영역에서 원래 정물이라는 독립된 장르는 없었다. 왜냐하면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절대 리얼리즘 이외 어떠한 스타일도 형식도 가지지 않기 때문인데, 예컨대 촬영자의 의도에서 지질학 탐구를 위한 촬영이 풍경이 될 수 있고 유물 아카이브를 위한 기록이 정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생물을 촬영한 사진들(대부분의 경우 기능적인 측면에서 광고사진)을 흔히 정물사진(still photo)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사진이 형식적인 측면에서 오랫동안 미술의 유형학적인 장르(특히 20세기 기호 구조주의와 모더니즘)에 끼워 맞추어져 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물사진을 그림의 한 유형으로 간주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화와 소설이 전혀 다른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영화를 소설의 원작으로부터 진화된 장르로 생각하는 것(휴베르 다미쉬)1)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오류에 관해 로잘린드 클라우스는 정물사진을 촬영자의 의도를 배제한 채 오로지 결과로 나타난 유형으로 분류할 때 최초 촬영자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해석학적 오류를 가진다고 한다. 그 예로 19세기 초기사진들 중 하나인 탈보트의 〈서가의 장면〉을 들 수 있는데, 이 사진은 언뜻 전통 정물화(책가도)가 가지는 책의 보편적 의미를 내포하지만 실제 장면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향 즉 향후 사진 활용에 대한 촬영자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드러낸 정신적 지표(index)로 이해된다.


 
La corbeille de fruits - Fin XVIe - debut XVIIe S.Pinacotheque de Milan 카라바주 <광주리의 과일>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19세기 정물사진들은 그림의 주제와 테마를 재현했다. 주지하다시피 1822년 니세포르 니엡스의 첫 실험인 〈식탁〉은 그림에서 빌려 온 정물이었다. 이후 1839년 다게르의 〈조개 콜렉션〉, 1845년 이폴리트 바이야의 〈실내 아뜰리에〉, 1858년 로저 펜톤(Roger Penton)의 〈과일과 꽃〉(도판 1)과 같이 당시 많은 사진가들과 일부 실험사진가들이 촬영한 것 역시 석고상, 천, 과일, 꽃 등 전통 아카데미 작업실에서 볼 수 있었던 정물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진은 예술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엄밀히 말해 그들이 촬영한 것은 ‘부동의 오브제’로서 당시 기술적 한계로 인한 필연적인 선택이었고 게다가 완전한 작품으로서 정물이 아니라 대부분 그림이나 데생을 위한 습작으로 촬영된 것이었다.

19세기 또 다른 정물사진의 오해는 흔히 살롱사진(photo de salon)이라고 하는 픽토리얼리스트들(pictorialistes)이 인위적으로 만든 합성사진(photographie synthétique)에 있다.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집착한 그들은 1907년 클로렌스 허드슨 화이트(Clarence Hudson White)의 〈정물〉과 같이 의도적으로 당시 상징주의와 자연주의 정물화를 모델로 흐린 효과(sfumato)와 덩어리 효과(effets de masse) 특히 빛을 반사하는 유리와 거울을 활용하면서 언뜻 ‘그림 같은(picturesque)’ 정물을 만든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들이 지향하는 예술적 의도는 전통 정물화의 미적 모방이 아니라 사진이 예술로 인정되는 합법적인 유형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물사진은 오랫동안 예술성이 결여된 판박이 살롱사진의 원조로 간주되어 왔다.


 
도판 1 로저 펜톤, 〈과일과 꽃〉, 1858년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영향으로 정물사진은 장르로서 뚜렷한 양식을 가지면서 작품이 지향하는 예술적 메시지 역시 분명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때 정물은 상징(symbol)의 카테고리에서 현실을 번역하는 오브제 역할을 하며 더 이상 이미지를 왜곡하지 않는 스트레이트 사진이 된다. 큰 구도로 나타나는 에드워드 웨스톤(Edward Weston)의 〈조가비〉(도판 2), 칼 블로스펠트(Karl Blossfeldt)의 〈식물〉 시리즈와 같이 일상의 대상을 크게 기록하는 것은 곧 형태의 탐구를 통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정물사진은 미술의 정물화에 동화되어 대상을 변형시켜 현실을 다양하게 번역한다. 또한 초현실주의 작품 계열에 나타난 정물사진 역시 주어진 현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주술적이고 무의식적인 특징을 가진다. 이때 정물은 응시자의 환기를 유도하는 연상의 매개물 역할을 한다. 예컨대 1937년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숟가락을 사진으로 촬영한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미친 사랑〉은 심리적인 의미 작용(상징, 의태, 유사, 전이 등)에서 응시자 각자의 내적 욕망을 부추긴다. 게다가 1950년대 이후 소비사회의 비약적인 발전과 컬러 슬라이드의 대중화와 함께 나타난 광고사진 역시 정물사진에 새로운 길을 연다.

그러나 정물사진은 1980년대 포스터모더니즘 이후 사진의 본원적 기능인 기록과 증거로 복원되어 대부분 비평을 위한 조형적 도구로 활용된다. 왜냐하면 모더니즘이 부여한 장르로서 정물사진은 대중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광고에서 합법적이지만 오늘날 많은 작가들이 사진과 함께 실행하는 탈-장르와 보편화된 매체의 혼용에서 이미 전통적 미적 개념(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함축적인 의미 connotation)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진에서 정물이라는 전통적인 형식은 더 이상 장르가 아니라 일종의 개념적 도구로서 그림의 형태로 나타난 사진 즉 그림-사진(forme-tableau)으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물사진은 모더니즘의 심미적 미학과 해석학적 상징을 넘어 대부분의 경우 의미의 교란과 혼동을 야기하는 반 -미학(anti-aesthetics)과 평범미학(banality)을 지향한다. 이러한 경향은 곧 전통 미학의 역행임과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행자 역할을 하는데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도판 2 에드워드 웨스톤, 〈조가비〉, 1927년

우선 정물사진은 연출 혹은 미장센으로 만들어진다. 거기서 의도적으로 기획된 장면은 억압, 금기, 죽음, 폭로 등 현실에 내재된 삶의 어두운 측면(simulacres)을 드러내는 지표로 나타난다. 노부요시 아라키(Nobuyoshi Araki)의 〈꽃〉 시리즈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백합〉 혹은 조엘-피트 위트킨(Joel-Piter Witkin)의 〈광인들의 향연〉은 단순한 상징의 차원을 넘어 오랫동안 집단으로부터 억압된 존재를 우회적으로 폭로한다. 특히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위트킨의 정물은 억압된 심연의 세계를 이어주는 전이-오브제(objet transitionel)로서 이성의 벽을 넘게 하는 일종의 자극-신호(signs-stimulis)로 이해된다.  

현대 정물사진에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아우라(Aura)의 복귀를 들 수 있다. 현대 조형사진에서 토니 카타니(Toni Catany), 드니 브리하(Denis Brihat), 로렌스 쉬드르(Lorence Sudre)등 일부 작가들(신-픽토리얼리즘 neo-pictirialism)은 꽃, 화분, 과일, 채소 등과 같은 전통적인 정물을 촬영하는데 공통적으로 아우라를 복원시키면서 응시자로 하여금 전통 정물화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들의 정물사진은 가짜 정물에서 구닥다리 골동품까지 촬영하면서 오히려 조롱적인 방식으로 모더니즘의 역설을 보여준다. 예컨대 1988년 토니 카타니의 〈정물 n°157B〉는 언뜻 그림과 사진의 경계에서 17세기 북유럽 정물이나 19세기 인상주의 정물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의 예술적 행위는 모더니즘 미술이 지향하는 양식의 새로움과 창의성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 있게 된다.


 
 
André Breton, L’amour fou

끝으로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영역에서 정물사진의 모험은 설탕, 감자, 숟가락, 포크, 청소도구 등 일상의 하찮은 대상을 탐구하는데 있다. 예컨대 파트릭 토자니(Patrick Tosani), 조침 모가라(Joachim Mogarra), 파스칼 토마스(Pascale Thomas) 등과 같은 작가들은 정물의 형태와 빛을 탐구하면서 예상치 못한 엉뚱하고 기발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모든 인위적인 효과를 배제하면서 정면성, 자연광, 절제된 공간, 단순한 배경 등을 활용하여 예컨대 숟가락 표면, 한쪽 구두 끝, 나무와 쇠 조각, 과일 등 지극히 평범한 부분을 큰 구도로 촬영한다. 이때 사진은 엄밀히 말해 정물사진이 아니라 무의미의 파토스(Pathos de non-sens)2)로서 대상과 교감하는 모든 감정을 벗어내고 베른트 엔 힐라 베허(Bernd and Hilla Becher) 부부의 유형학적 물탱크와 같이 냉정하게 대상을 면밀히 조사하는 일종의 일상 아카이브가 된다.
 
글: 이경률(사진이론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교수)
해당 기사는 2019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