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기본으로 돌아가다 ②수집가 이주용, 대상과 사물의 ‘원형’을 찾다



모든 수집의 시작은 취미이다. 그렇게 시작한 것을  하나둘 모으다 보면 그것은 하나의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된다. 거기다 수집의 대상이 사진, 그것도  한 세기를 버텨온 오래된 사진기와 인화된 이미지의  집합체라면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을  단번에 뛰어넘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 특히  사진이 특정 시기의 사회와 문화를 톺아볼 수 있는  레퍼런스로서 기능한다면 그것의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과거에 현존했던 대상을 오늘이라는  현실로 불러들이는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력한 마법을 걸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19세기, 20세기 초반의 사진기와  사진이미지, 관련 소품들을 30년 넘게 모아온  이주용은 19세기 사진술을 현재로 불러오는  홀로그램 작업으로 유명한 예술가이다. 그에게  이러한 사진의 발자취들은 단순히 취미가 아닌  대상과 사물의 ‘원형’을 찾기 위한 작업의 동력이 된다.  그의 수집품 일부를 감상하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남서울생활미술관의 〈수집이 창조가 될 때〉 (3. 17-5. 25)전에서 예술가이자 수집가인  이주용을 만났다.
 


루이스형 다게르 카메라 Lewis Whole Plate Daguerreotype camera,1857 42×34×85cm

Q. 19세기, 20세기 초반의 사진기와 사진이미지, 관련 소품들을 수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A.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학시절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1980년대 초반 한국에는 사진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정보들이 매우 빈약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 서부에 있는 브룩스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Brooks Institute Of Photography로 유학을 갔다. 그때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중 강한 인상을 받은 수업이 있었다. 사진의 역사에 대한 수업이었는데, 담당 교수가 학교의  사진박물관 관장이었다. 그는 신입생들을 박물관으로  데려가 초기 카메라와 사진부터 스파이카메라와 같은  종류까지 여러 카메라를 보여주면서 사진이 어떤 범주  속에서 산업화, 상업화, 과학화, 예술화되었는지 그  스펙트럼을 읽을 수 있게 해줬다. 그런 다음 어떤 것이든 상관없으니, 박물관 소장품 중 한 점을 선택해 연구 및  조사해서 마지막에 발표하라는 과제를 내줬고, 학생들을 사진에 대한 모든 자료와 정보가 있는 도서관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나는 초기 사진과 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벼룩시장에서 작은 다게레오 타입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 첫 컬렉션이 시작됐다. 내 손바닥에 놓인 작은 사진 하나가 그 당시의 모든 역사를 누적해서 보여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진이 아닌 어떤 과학이  이렇듯 오랜 시간을 설득력 있게, 그것도 감동을 주면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으다 보니 지금에 이르게 됐다.   

Q. 19–20세기 초반 사진과 카메라 수집의 범주가 서구권에서 아시아권, 특히 한국으로 확장됐다.
A. 어떤 과정으로 사진이 전개되어 왔을까 연구하다가  그 관심이 한국으로 옮겨졌다. 무엇보다 사진이 발명된  이후 한국이란 나라에서 사진이 어떤 지점에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조사했다. 다게레오 타입Daguerrotype, 엠브로  타입이 한국에 있었을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는데 아직 그것을 찾지는 못했다. 1880년대는  네거티브/포지티브 방식, 알부민 인화 젤라틴실버 프린트가 일본과 중국에 유입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조선은 폐쇄적이었다. 신문물을 접하던 고관들이 자신을 모델로 사진을 찍긴 했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가 혼을 뺏어가는 것이라 여겼기에 그 시절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Q. 수집을 위해서는 연구와 조사가 필수일 듯하다. 또한그것을 위해 나름의 관점을 가지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A. 1907년 천연당 사진관을 개관한 해강 김규진을 예로 들자면, 나는 그가 사진관을 처음 열었다는 사실보다 그 당시 김규진이  가졌던 관념에 관심이 많다. 그는 폐쇄적이던 시기에 2년간  일본에서 사진을 배우고 돌아와 석정동 자택에 사진관을 차렸고 주로 고관들을 찍었다. 또한 남녀가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자신의 부인을 사진가로 만들어 여성을  찍었다. 이 사람이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시기적으로 조금 차이가 있지만 나다르와 그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찰라의 기억 시리즈 12, Ambrotype


〈사진관, 기억과 영원을 간직하다〉전 전경, 2015

 



Photographic Archiving 07


Q. 컬렉션의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A. 사진이미지들은 약 2,000점 정도이며, 틴 타입Tintype  프린트는 1천여 점, 일본 메이지 시대의 알부민타입은 약 400점이 있다.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의 오리지널 틴타입  사진이 133점, 유리건판 1천 점이 있다. 그 외에 초기 카메라를 비롯해 FSA.사진가의 핵심 작가 중 하나인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오리지널 프린트, 앨범, 액자, 조선 후기 한국 사진들  등이 있다.  

Q.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을 모을 수 있었나?  
A. 내게는 전 세계에 80여 명의 네트워크가 있다. 내가 이러한  것들을 수집하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나를 대신해 카메라와 사진을 구입하고 모아 놨다 보내준다. 나에게 그들은 가장 큰 자산이다.   

Q. 방대한 컬렉션의 일부가 옮겨진 것이 〈수집이 창조가 될 때〉전이다. 그런데 이 전시에 출품한 수집품들 중  몇몇을 사진관을 재현한 공간에 설치한 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A. 나는 이번 전시를 단순히 수집품이 있는 것이 아닌 설치  작업의 한 유형으로 봐 줬으면 한다. 19, 20세기 초반을  동시대로 끌고 와 사진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말하고 싶었다. 사진은 사람의 욕망, 신세계, 환상을 보여주는 출입구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진관은 자신을 처음으로 투영해서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치 조선후기 학자들이 책가도 그림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켰듯, 병풍과 그림을 배경으로 두고 그 앞에 의자를 놓거나 고서를 배치한 이유도 사진관의 배경이 일종의  판타지임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관람객들이 그 병풍 앞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열어뒀다. 사진을 통해  개개인이 자신을 투영하는 태도를 경험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 한 장을 만들어내고 찍어내는 것보다  사진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일전 자신의 작품에 대해 “대상과 사물의 ‘원형’을 찾고 싶은 것”이라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생각은 수집하는 관점에도 반영된 듯하다.
A. 어느 순간 나는 과거를 추적하는,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하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재 홀로그램이란 방식을 통해 근원적인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작업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수집이란  행위를 통해 시간, 역사, 정체성을 누적시키는 일이고, 한편으로는 사진의 기술적인 부분을 연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세 가지가 링크되는 연구자로서의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당 기사는 2015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