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2018 Asian New Wave 한·중·일 동아시아의 젊은 작가들①

어느 영역이든 젊은 피가 돌아야 지속될 수 있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는 사진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사진예술은 이번 스페셜 이슈에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한다. 한국 이재욱, 조경재, 일본 타이스케 나카노, 켄타 코바야시, 중국 첸 즈어, 픽시 리아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사진 매체에 대해 전세대보다 더 열려있고 유연한 태도를 견지하며, 때론 사진의 물질성을 실험하는 과감한 시도로, 때론 진지한 관찰과 사회 통념에 대한 도전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중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지금 동아시아 사진계에 밀려오는 새로운 물결을 느낄 수 있다.  - 편집자 주



이재욱 JAEUK LEE
조경재 Kyoungjae Cho
켄타 코바야시 Kenta Cobayashi
타이스케 나카노 Taisuke Nakano
첸 즈어 Chen Zhe
픽시 리아오 Pixy Liao

 
 

너의 잘못이 아니야
이재욱 JAEUK LEE


 

Baklava #10, 2016

예술 작품은 우리 안에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이재욱의 사진도 그러하다. 이재욱은 복잡한 국제 관계, 자본, 인종 등 다층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의 단면을 촬영해 개인이 인식하지 못하고, 사회가 은폐하려고 했던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개인의 일상에 무력감을 주입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이토록 무력감을 느끼는 것일까.
 

사회적 위기로 인해 붕괴하는 개인의 존재

이재욱은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하며 난민 문제와 테러 등을 겪었다. 그 당시 독일에는 많은 난민이 몰려오면서 난민 수용소가 생겼고 갈등이 발생했다. 상황을 겪으며 그는 ‘거대한 상황 속에서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이재욱은 목숨을 걸고 망명하는 난민들을 보면서 그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재욱은 독일(inner safety)의 상황을 시작으로, 국제적 위기를 겪는 터키(Baklava), 그리스(Behind the mythology) 그리고 그가 앞으로 살아갈 한국(What remains)으로 발길을 옮기며 작업을 진행했다.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조사했더니 시리아, 터키, 그리스 그리고 유럽으로 오는 루트가 있었다. 난 그 루트를 따라서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스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아테네로 갔고, 그리스 신화의 찬란한 모습 뒤편에 있는 경제적 위기, 난민 문제 등으로 인한 복잡한 사회 문제를 봤다. 다음 루트였던 터키에서도 난민, 종교 갈등 등의 국가적 위기가 산재하고 있는 것을 촬영했다. 그리고 마지막 루트로 한국으로 향했다.”


을 작업하며 이재욱은 한국의 촛불집회, 탄핵 등으로 크게 두 개의 이념으로 갈라진 현실 앞에 허탈감과 무력함을 느꼈다. “정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이재욱의 의도에 따라 이미지들은 역동적이고 폭력적인 장면 대신 그것이 끝나고 남겨진 것들을 보인다. 세월호에서 나온 트럭의 잔해, 태극기를 내린 시위자 등등. 이념에 의해 희생당한 개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이 분쟁에 끝에 무엇이 남았나? 


“난 큰소리는 치지 않고 관찰하고 싶은 거다. 내가 위로를 주려는 대상은 이념과 사회를 뛰어넘은 우리 모두다. 이 작업에서 난 어느 쪽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특정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관찰자로서 촬영 대상들과 거리를 두는데, 이 방식은 모호하지만 그 애매함이 전체적인 것을 설명해줄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작업을 세세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사건 사이사이에 이야기를 비움으로 관객들이 들어올 수 있는 구멍을 넓게 만들고 싶었다.”


 

Behind the mythology #2, 2015


사진 속 인물은 아테네, 터키, 독일, 한국의 사회적 위기와 연관된 이들이다. 이재욱은 몇몇 장소에 카메라를 덫처럼 설치했고 그곳 상황과 연관된 사람들의 일상을 무선 릴리즈를 통해 잡아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배경에 비해 작은데, 이 때문에 거대한 사회 속에 짓눌린 개인의 모습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념적인 사건이 아닌 ‘사회적 사건이 있었을 때 개인이 어떻게 보이느냐’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범국가적 위기 속에서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이 어떻게 존재할까. 내 작업은 그러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비롯된 개인의 파멸을 건조하지만 낭만주의적 구도로 포착했다”는 올해의 최종 작가 선발 심사평처럼 이재욱의 사진은 불행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이재욱은 “누군가는 이 아름다움에서 위로를,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러니함을 느낄 것”이라고 한다. 이는 사회를 향해 투쟁하려는 것이 아닌 “사실과 기록, 재생 이상의 의미”로 나아가려는 이재욱의 시도에 기반한 표현일 것이다. 


“상황이 암울하고 슬플 수 있지만 그조차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이율배반적인 표현에서 관객은 아이러니를 느낄 수도 있고 그 아름다움에서 시각적 위로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재가 무겁다고 인물과 배경이 슬프게 표현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처한 상황을 극적인 빛, 조명, 혹은 보정이 필요하면 과한 보정을 하기도 해서 내가 생각한 아름다운 장면으로 구현했다.” 


 

Inner safety #2, 2016

 
이재욱이 독일에서 촬영한 셀프 포트레이트(inner safety #2)를 자세히 보면 조명은 인물에게만 비치고 있으며, 그 인물의 그림자는 사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이미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이재욱이 과한 보정과 연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무력감을 주입하는 현실 속, 위로의 시선으로

전체 시리즈 제목인 는 사회적 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개인을 위한 직설적인 위로의 몸짓이며, 거대한 사회의 폭력과 갈등 속에 주눅 들어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에게 전하는 공감의 메시지다. 이 작업은 시대의 단면을 증언할 뿐만 아니라, 그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작업을 보면서 동질감과 위로를 느끼게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강수정의 평문에서 언급됐듯이 이재욱의 이번 시리즈는 “우리에게 건네는 진실한 말 걸기이며 본질을 언급하는 표제어”다.


 

Baklava #6, 2016


“무력감의 원인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었다. 이 속에서 분열된 집단과 개인에게 회복할 힘을 주고 싶다. 그래서 사진의 인물들은 실제의 껍데기를 빌려온 은유의 대상이자 메타포(metaphor)다. 사진 속 인물은 나도 될 수 있고,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고, 모두가 될 수도 있다. 내 사진을 보고 동질감과 위로를 느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며 위로를 건네고 싶다.”


이런 단면을 보여준 사진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재욱의 사진이 눈에 띄는 이유는 학예연구사 강수정의 평문에서 언급됐듯이 개인을 투사나 피해자로 묘사하던 “미술계에서 다뤄 온 사회 비판의 시각과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욱은 짧은 시간에도 계속 움직이는 영상의 화법보다 관객에게 시간을 주면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의 화법이 그에게 더 매력적이며 앞으로도 사진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Baklava #10, 2016


“사진을 매체로 이야기해보니 찍는 과정이나 방법이 심플하다는 점이 좋았다. 영상은 서술적인 표현을 하기에 좋을 수도 있지만 내게 영상은 사진과 비교하면 쉴 틈 없이 주입한다는 인상이 있다. 그에 비해 사진은 작가도, 관객도 그렇고 감상에 시간성을 제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그게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이재욱은 제 10회 KT&G SKOPF 올해의 작가 3인 중 최종 작가로 선발됐으며, KT&G 상상마당 홍대 갤러리 5층에서 개인전 8월 9일부터 9월 9일까지 진행했다. KT&G SKOPF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한국 사진가를 발굴하는 KT&G 상상마당의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2008년부터 노순택, 김태동, 정지현, 노기훈 등 36명의 사진가를 지원해왔다. 이재욱의 작품은 이번 KT&G SKOPF의 심사위원장 정현에게 “경제 위기라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를 개인에게 강요하는 불평등과 모순적 관계를 주목한 작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글 : 김다울 기자
이미지 제공 : KT&G 상상마당

해당 기사는 2018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