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라퐁 〈New company species. Roman〉

수잔 라퐁(Suzanne Lafont)의 사진전 〈New company species. Roman〉이 프랑스 남서부 누벨 아키텐(Nouvelle-Aquitaine)의 보르도 미술관에서 오는 4월 8일까지 열린다. 수잔 라퐁은 ‘현미경’ 대신 ‘카메라’로, ‘보이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 ‘하찮은 잡초에도 꽃은 핀다’는 말이 있듯이 천대와 멸시 속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온 ‘들풀’이 수잔 라퐁을 만나 예술적인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났다.
 


Suzanne Lafont, Nouvelles espèces de compagnie. Roman(détail), 2018 ⓒSuzanne Lafont



Suzanne Lafont, Nouvelles espèces de compagnie. Roman(détail), 2018 ⓒSuzanne Lafont


수잔 라퐁과 오딜롱 르동의 만남
수잔 라퐁은 보르도 시(市) 태생의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하찮게 여겼던 ‘들(野)’에 저절로 자란 ‘풀(草)’의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오딜롱 르동은 ‘자연’을 관찰하며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의식 저편의 ‘몽환적인 세계’를 화폭에 담아냈었다. 때로 인생에서 만남은 모든 것을 결정하기도 한다. 오딜롱 르동이 50세 무렵 흑백 세계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 계기는 식물학자인 아르망 클라보(Armand Clavaud, 1828~1890)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그때 현미경을 통해 미생물 세계를 체험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것’에 빠져들었다. 이후 인간과 동식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파스텔과 유화 물감으로 춤추듯 오색(五色)을 흩뿌려 신비롭고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2012년도 보르도 문화예술 교류프로젝트에 참여 작가로 선정된 수잔 라퐁은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보르도를 자주 방문하였다. 마침 2016년에 보르도 미술관에서 오딜롱 르동 풍경전 〈La nature silencieuse. Paysages d’Odilon Redon〉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작가는 르동의 작품 세계를 좀 더 흥미롭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녀의 이번 전시 〈New company species. Roman〉은 문학과 철학, 과학과 예술 그리고 자연의 신비에 관하여 많은 일깨움을 준 오딜롱 르동이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Suzanne Lafont, Nouvelles espèces de compagnie. Roman(détail), 2018 ⓒSuzanne Lafont




Suzanne Lafont, Nouvelles espèces de compagnie. Roman(détail), 2018 ⓒSuzanne Lafont

 

보르도 미술관 소장품으로 연출
수잔 라퐁의 전시는 1층과 2층으로 구성되었다. 보르도 미술관은 그녀에게 1층 전시의 구성을 전적으로 ‘백지위임(carte blanche)’하였다. 이에 작가는 대중이 문화 관련 지식을 얻고, 예술 작품을 체험하는 도서관, 극장, 미술관을 염두에 두고 보르도 미술관 소장품에서 이와 관련된 16점의 회화 작품을 선별하였다. 또한 오래된 미술관과 극장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전시실 한가운데에 붉은색 원형 벨벳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희곡, 배우, 관객, 무대 등 연극의 4요소를 연출해 현장성을 강조했다.

1층 전시는 르동의 회화 작품 “독서 중인 여성(La Liseuse, 1914년경)”으로 시작된다. 추리 스릴러 개척자인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의 문학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르동의 석판화 “죽음의 종말을 고하는 마스크(Un masque sonne le glas funèbre, 1882)”는 기괴한 분위기로써 혼돈을 암시한다. 이어 먹구름으로 뒤덮인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인상 깊은 야콥 아드리엔츠 벨부아(Jacob Adriaensz Bellevois)의 작품 “해변가, 고기잡이(Marine, La Pêche, 1670년경)”를 포함해 성난 파도에 휩쓸려 난파 직전의 비극 현장을 묘사한 8점의 회화 작품은 관람객을 불안케 한다.  

특히, 17세기 화가 니카시우스 베르네르트(Nicasius Bernaerts, 1620~1678)의 가시 돋친 설치류 산미치광이(豪猪, Porcupine)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불길한 예감마저 준다. 마지막으로 수잔 라퐁은 극장의 관객을 의미하는 3명의 여성 초상화와 옛 보르도 미술관 내부를 묘사한 2점의 회화를 소개해,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미술관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특이점은 작품 설치와 배치, 벽 보수 등 이번 전시의 준비 과정을 직접 촬영해 컬러 프린터로 인쇄한 사진을 프레임 없이 전시한 것이다. 마치 연극의 ‘무대 뒤’에서 볼 수 있는 현장성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Young June Kim



ⓒYoung June Kim


식물로 보는 이상 세계
2층 전시는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뉜다. ‘낮’과 ‘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원색’과 ‘보색’, ‘색채’와 ‘음영’, ‘객관적 관점’과 ‘주관적 관점’을 포함해 서로 다르지만 대립을 넘어 미적 균형을 이루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시 첫 부문에 소개된 작품은 언뜻 보기에 인간이 만든 ‘예술의 원형’을 자연에서 찾아냈던 칼 블로스펠트(Karl Blossfeldt, 1865~1932)의 식물 표본이 마치 컬러로 재탄생한 인상을 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블로스펠트의 도록 사진과 똑같은 개수인 12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슬라이드 필름에 빛이 투과돼 색채와 음영이 그대로 구현된 ‘포지티브’를 완성했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마치 식물 표본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잘 펼쳐놓은 책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체나 사물에 엑스선을 통과시키면 반사하는 빛을 통해 겉으로 보이지 않았던 대상의 내부가 나타난다. 이처럼, 수잔 라퐁은 직접 채집한 꽃과 잎사귀를 라이트 박스 위에 올려놓고 근접 촬영하였다. 이러한 조명 장치를 이용한 촬영은 사진의 ‘평면성(Flatness)’을 극대화하며 식물 표면의 속성(색, 질감, 투명도)과 형태(생김새, 구조, 크기) 등 식물 세계의 다양함은 물론 일정한 구조와 기하학적 질서를 보여준다.

게다가 1층 전시와 마찬가지로 연극을 형성하는 기본 요소(극장·배우·관객)와 무대 지시(등장인물이나 시간과 장소 등의 해설)의 형식을 빌려 연출함으로써 관람객이 마치 극장에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이를테면 원래 식물의 학명 대신 “Vivaldi(비발디, 작곡가) | Impasse–Mérignac”, “Jules Verne(쥘 베른, 소설가) | Rue–Bègles”, “Neil Armstrong(닐 암스트롱, 우주 비행사) | Rue–Bègles”, “Gutenberg(구텐베르그, 금속 활판 인쇄술 발명가) | Rue–Pessac” 등으로 들풀을 채집한 장소의 도로명에 유명 인사의 이름을 조합하여 더 이상 이름 모를 꽃과 풀이 아닌, 연극의 주요 배역처럼 잡초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극장의 무대 배경(기차역, 경마장)을 연상시키는 단어들과 소품(빨간 모자, 아카시아 꽃)을 뜻하는 이름을 붙였다. 이로써 연극의 연출 요소와 현장성을 극대화해 몰입을 확장시키고, 여러 감각을 자극해 전시에 대한 총체적 경험을 이끈다.
대각선으로 마주한 두 번째 부문에서는 마치 원본 필름이 반전된 컬러 네거티브처럼 작품이 전시되었다. 낮에서 밤으로, 따뜻한 톤에서 차가운 톤으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물질에서 비물질로…. ‘보색’으로 반전시킨 16점의 대형인화는 마치 강렬한 빛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솟구쳤다가 곧 어둠의 장막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생명을 보는 듯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수잔 라퐁은 원본의 색조나 명암의 ‘반전’ 프로세스를 이용해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관람객이 조금이나마 보이지 않는 ‘이상 세계의 초자연적인 세상’과 소통하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Young June Kim
 

글 : 김영준 통신원
해당 기사는 2019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