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기본으로 돌아가다 ①과거로 가는 미래 손끝에 맴돌다

 


급속한 하이테크화는 몇 년 전의 문화가 그렇게 오래된 과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추억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하이테크가 일상화된 오늘날 느림의 미학을 즐기며 추억에 잠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을 요즘 말로 ‘레트로retro’ 혹은 ‘복고’라 부르는데, 라틴어의 접두사에서 유래된 이 용어에는 미래가 아닌 과거로의 지향성, 향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현재 추억에 잠기게 하는 레트로 현상은 세대를 아울러 나타난다. 70-80년대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과거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기촉제가 되고, 반대로 90년대부터 현재까지 최첨단 기술에 빠르게 적응한 젊은 층에게는 신선한 문화로 자리한다. 그 이유는 레트로라는 모습이 과거에서 모티브를 끄집어내더라도 과거의 복사판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반복을 거듭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과거의 일부 혹은 과거의 이미지를 현재의 요구와 목적에 맞게 접목해서 보여준다. 즉, 현실적 요구에 의해 과거가 새롭게 변형된 새로움과 낯섦의 미학을 동반한 재창조인 것이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보여주는 것, 과거의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는 새로운 가치가 바로 레트로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레트로 현상은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디지털 사진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최신 기술과는 상반되는 오래된 필름 카메라의 외양과 흡사해 보이는 카메라들이 속속 출시된 것은 물론, 기능에 있어서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조절이 가능한 수동 기능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손으로 직접 초점을 맞춰야 하는 수동 초점 렌즈를 디지털카메라에서 사용하는 수고까지 마다치 않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똑똑해지고 간편해져야 할 디지털 사진 관련 기기들이 이렇게 과거를 ‘지향’하게 된 것은 왜일까?

간단히 말해 사용자들은 디지털 사진이 더욱 편리해지면 질수록, 이미지가 점점 더 선명해지면 질수록 과거의 사진을 더 찾기 시작했다. 특히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창조적 쾌감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차 반감되고 있다는 아쉬움이 더욱 커져만 갔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불완전할지라도 온갖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사람의 손으로 창조한 것들은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았지만, 셔터를 눌러 이미지를 얻는 사진은 ‘고귀한 손의 개입’ 없이 만들어진 단순한 기계적 복제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디지털 사진에서는 사람의 손이 하는 일이란 셔터를 누르는 일만으로도 충분하게 되었으니 자기만의 사진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손의 역할을 되찾고 싶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셔터스피드와 조리개를 조절하고, 초점 및 초점 거리를 마음껏 선택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리터칭하면서 자기 손의 창조성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 그들의 이러한 욕망은 디지털 사진이 아날로그 시절의 사진을 버리지 못하게 한 이유가 아닐까.

결국 이러한 사람들의 요구는 “카메라는 카메라다워야 한다”는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유행처럼 번져나가 잃어버린 ‘손의 개입’을 다시 갈망하도록 만든다. 즉, 하이테크화가 가속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아날로그적 감성을 더 원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이 디지털 기술에 원하는 것은 간편하고 빠르고 정확한 이미지가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최종 이미지라는 결과물의 생산에 개입할 여지를 넓혀주는 데 있으며, 사용자에 따라 표현의 폭을 무제한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다양한 기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진 관련 앱app들과 수많은 이미지 보정 앱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공유하는 SNS의 등장은 창조적 이미지를 생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한다. 기술은 발전해도 ‘손맛’을 향한 이들의 희구는 시들지 않은 것이다.




카메라 브랜드들 역시 사용자들의 요구에 맞춰, 또는 전통을 소환하면서 과거 카메라가 가지고 있었던 모양새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마치 유행처럼 모두 같은 모습에 같은 기능으로 카메라의 과거를 불러들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실적 요구에 맞춘 재창조의 모습으로, 카메라 브랜드의 개성과 철학을 각각 담아내며 사용자들에게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손이 카메라 자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외관뿐만 아니라 기능에도 반영하고 있다.

«사진예술»은 이번 5월호에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은 카메라와 사진을 찾아 나선다. 카메라와 사진 수집가부터 이 세상의 단 하나뿐인 카메라를 제작하는 수제 카메라 메이커, 사진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카메라 브랜드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든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감성에서 출발해 시대의 공유감각, 나아가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문화현상을 사진이란 매개체로 조명해본다.

 

해당 기사는 2015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