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작가]제16회 동강사진상 수상자, 정동석

해마다 강원도 영월에서 열리는 동강국제사진제에서 동강사진상 수상자가 탄생한다. 올 여름, 제16회 수상자로 선정된 정동석 작가는 지난 30여 년 동안 개인전 12회, 5권의 작품집 출간, 100여 회 이상의 단체전 참여로 꾸준하게 활동을 해오면서도 늘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작가라는 점에서 우선 반갑고 신선했다. 정동석 작가는 아예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사진을 찍는 작가다. 이는 전업 작가라는 뜻이고 삶과 작업을 일체화시키려는 작가라는 의미다. 그는 우리나라의 산하와 도시풍경, 분단풍경 등을 연작형식으로 보통 10년씩 작업주기를 가져왔는데, 작가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그의 생각을 중첩시켜 단순한 풍경사진을 넘어서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서울묵상, Contemplation in city


작가는 그곳에 있었다

수확도 하지 않고 내팽개친 얼어붙은 겨울 배추밭 사진은 영하의 추위보다 더 썰렁하고 황량하게 느껴진다. 정동석 작가가 강원도 횡성에 살면서 찍은 사진이다. 그러나 그가 찍고자 한 것은 배추가 아니라 가격폭락으로 수확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농부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농부의 마음 말이다.


 

ⓒ꿈꾸는 세상-밤의 꿈, Dreamscape-Dreams


하루가 저물고 도시를 밝히는 불빛만 남은 적막한 도시의 밤 사진을 찍을 때는 서울에서 택시기사를 했다. 밤 사진을 찍기 위해 밤 근무만 하는 야간의 택시 드라이버. 야간택시를 몰면서 야밤에 그의 고객이 된 사람들로부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메모를 하고 서울 도심의 밤풍경을 구석구석 골고루 살펴볼 수 있었다. 그 환경에 묻혀 그 공간에서 지내면 어떻게 찍을까가 자연스럽게 생각나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있음”을 먼저 행했다.

 
“내가 서울사람이긴 해도 늘 다녀본 곳만 다니게 되잖아요. 그래서 택시기사를 하면 내게 익숙한 장소가 아닌, 고객들로부터 요구된 낯선 장소를 가게 되겠구나 싶었지요. 3, 4년 운전을 하다 보니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의 삶의 단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꿈꾸는 세상-가득빈, Dreamscape-Full Empty

 

꿈꾸는 세상-가득빈, Dreamscape-Full Empty


그것은 “드림 스케이프”라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14년 동안 이어진 이 작업 기간에 필요하면 택시기사로 일하고, 어느 정도 작업이 쌓이면 택시운전을 쉬면서 그간 작업한 원고를 정리하는 식으로 일을 반복했으니 택시기사로 일한 기간이 합쳐서 4년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밤 어디로 가게 될지 자신도 모르는 채 서울의 밤거리를 달리면서 그가 발견한 것들은 무엇일까. 그는 네온사인이 마치 도시의 암각화 같았다고 말했다. 아주 오래 전 선사시대의 암각화처럼, 선사시대의 암각화를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밤의 네온사인은 현대인의 일상의 흔적, 상처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보였다는 것이다.

 

ⓒ꿈꾸는 세상-밤의 꿈, Dreamscape-Dreams


그에게 일상의 상처와 상처의 극복은 오래된 숙제처럼 그의 사진에서 줄곧 나타나고 있다. 동해안의 아름다운 바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철책선과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불쑥 나타나는 군사시설물 같은 남북분단의 풍경은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상처지만 도시의 꿈꾸는 듯 졸린 듯한 밤풍경마저 그에게는 상처의 상형문자로 읽혔다는 것이 사실은 의외였다. 젊은 시절에 한꺼번에 많은 것을 잃고 절망에 빠졌던 고통스런 기억이 그의 작업을 끌어가는 구심력이 되었던 것 같다.


번뇌를 벗어나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오도(悟道)

그는 형과 누나 다음에 태어난 셋째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리광을 부려보기도 전에 강원도 홍천에 사는 큰아버지 댁의 양자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 서울 본가로 돌아왔다.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 그의 진짜 부모형제라고 했다. 그가 양자 간 이후에 태어난 동생도 있었다. 어쩌면 그 사건이 그의 성격을 결정짓는 단초가 되었을지 모른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낯설고 겉도는 분위기에서 ‘혼자’에 익숙해졌다. 다행이 집안형편이 부유하여 고등학교 시절에 자신의 카메라와 암실을 보유했고 이로 인해 사진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자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놓을 수밖에 없었고 몇 년 후 사업이 기울고 나서야 다시 사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에 가세의 급격한 몰락과 그 과정에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그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지만 반면, 그런 고통스런 기억은 수십 년 동안 고된 사진작업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힘이 되었다.


 
“고통과 좌절은 일찍이 나를 오도(悟道)로 안내한 셈입니다. 번뇌의 시간이 없는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경지를 체험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런 과정을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사진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그는 내면의 체험이 일상화 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는 ‘나’와 찍히는 대상이 자연스럽게 같이하는 자연율로 나타나는 그런 사진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작가는 여러 질문에 대하여 ‘그냥’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냥이라고 밖엔 달리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냥 마음과 몸으로 대상과 하나 되어 셔터를 눌렀고, 그 사진들은 자연스럽게 한 흐름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냥’ 이전에 무수한 작업노트가 있었다고 곁에서 작가의 아내 인남선 씨가 덧붙였다. 생각을 메모한 두꺼운 노트가 1년에 두어 권씩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노트에 단편적인 생각들을 적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멈춘 자리에서 ‘그냥’ 찍어지는 단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작업의 결정판을 보여줄 동상사진상 수상자전


 

경-신미에서 경진까지, Project 1991-2000




경-신미에서 경진까지, Project 1991-2000
 


7월 14일 동강국제사진제의 시작과 함께 영월의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열리는 수상 기념전에서는 4, 50년 그의 작업을 총망라하여 마치 회고전처럼 정동석 작가의 평생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된다. 하긴 올해 칠순의 나이에 이르렀으니 회고전이라 하여 하등 어색할 것이 없다. 모두 다섯 파트로 나뉘어 펼쳐지는 이번 전시에서 첫 번째 파트는 남북분단의 상징물들을 보여주는 80년대의 작업 ‘반풍경’이다. 그리고 두 번째 파트는 1990년대에 그가 횡성에 살면서 작업한, 우리의 들과 산, 물, 바다를 보여주는 “경-신미에서 경진까지”다. 신미년에서 경진년까지 작업했으니 10년 작업이다. 흔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세월을 오롯하게 우리의 산하에 집중했다. 세 번째 파트로 “서울묵상”, 네 번째 파트는 “드림 스케이프”이며 마지막으로 신작 “깊은 생각에 잠긴”으로 끝을 맺는다. 그 가운데 “드림 스케이프” 시리즈는 각각 ‘밤의 꿈’ ‘가득 빈’ ‘마음혁명’ ‘묘행’으로 나뉜다.

 

반풍경, Anti-landscape


그의 작품 제목은 참으로 시적(詩的)이다. ‘가득 빈’이란 모순된 두 단어의 결합이 미묘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얼마나 공허하면 가득 비어있는 걸까? 몽골의 초원처럼 끝도 없이 펼쳐지는 빈 들판이 가득 빈 상태인 걸까, 아니면 빼곡하게 건물이 들어찼음에도 쓸쓸하고 허허로운 서울의 밤이 그런 제목을 불러온 걸까. 이런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원성을 하나로 중첩시키는 작품을 즐겨 해온 것 같다. 풍경이되 풍경이 아닌 ‘반 풍경’이 그러하고 채움으로 가득한 게 아니라 빈 것들로 가득한 도시의 밤이 또한 그러하다.


 

반풍경, Anti-landscape


유년기 작가의 체험처럼 떠나고 돌아오는, 또한 많이 가졌다가 빈손이 되어버린 극단의 기억들이 작가로 하여금 모순된 것들이 서로 중첩되며 사이좋게 합일하고 화해하고 평화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갖게 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자유롭고 평화스럽고 행복한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의 발현이라고 말했다. 모순을 극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는 것이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작품세계이며 삶의 지향점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통을 원할 수는 없지만 그는 고통을 겪어야 극복하는 힘이 생기고 내 안의 나를 느낄 때 진정한 삶의 깊이를 알고 오도(悟道)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작가가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시험대


 

꿈꾸는 세상-마음 혁명, Dreamscape-Mind Revolution


그런데 그의 시련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동강사진상 수상을 축하할 겸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날, 축하로만 끝낼 수 없음을 알았다. 중대한 수술을 닷새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상식장에도 아들이 대신 나갈 것이란 귀띔을 했다. 본인이야 환자니까 못 나가려니 했지만 평생 그의 사진동지가 되어준 사진과 출신 아내도 환자의 곁을 떠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하다. 이제 막 7월호 잡지가 나와서 느긋해도 좋은 6월 말일에 서둘러 8월호 인터뷰 일정을 잡은 것은 나도 알지 못할 어떤 ‘끌림’이었을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진보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 그러나 이제까지 작가의 살아온 날들이 결국 사진작업과 연결되고 일치되어왔으므로 결국 사진 이야기와 다름없었다.


이번에 동강국제사진제의 포스터로도 쓰인 그의 최근작을 보면 나무의 한 기둥에 살아있는 가지와 죽은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작가의 생각이 나타난 사진이다. 죽음은 삶의 연장이고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과정이므로 삶과 죽음이 한 뿌리에서 나와 한 기둥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처럼 삶과 죽음의 순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상이 있을까. 겨울의 죽음을 넘어 다시 생명의 봄으로 환원하면서 하나의 나이테를 완성하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 작가는 겨울은 봄의 시작임을 보고 있는 것이다.


 

깊은 생각에 잠긴, In deep contemplation


우연의 일치처럼 이번엔 작가 자신이 새로운 생명의 봄을 맞이하기 위한 고독한 겨울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평생해온 고단했던 사진작업에서 잠시 벗어나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 퇴원하면 그가 어떤 꽃을 피울지 조심스럽게 기대를 품어본다. 겨울이 추울수록 봄은 찬란하듯이 거의 삶의 끄트머리까지 여행하고 돌아온 그의 체험은 신작 “깊은 생각에 잠긴”을 더욱 깊고 진실하게 발전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작가가 사진예술 8월호 잡지에서 이 기사를 읽게 될 때쯤에는 완쾌되어 빨리 다음 작업을 하고 싶어서 안달을 내고 있는 시점이길 바란다.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2017년 7월 14일 - 10월 1일
동강사진박물관 제3전시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이미지 제공 동강국제사진제


해당 기사는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