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찾는 방랑자, 김홍희

10년만의 인터뷰다. 한 작가를 10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동안 잘 살아남았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10년 전에 나눴던 이야기들을 기억해냈고 그것이 잘 이어져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 즐거워했다. 그리고 2019년 1월로 60세가 되는 김홍희 작가와 헤어지며 말했다. “10년 후에 또 인터뷰합시다!” 밝은 웃음소리가 뒤따라왔다.
 


“성주가는길” 연작 中 ⓒ김홍희

“성주가는길” 연작 中 ⓒ김홍희

상무주 가는 길
인생이란 어차피 길을 찾아 떠나는 과정이다. 목적지는 다를지라도 그곳에 이르기 위해 애쓰고 방황하고 고민한다. 세상에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여러 갈래의 길이 존재할 것이다. 내비게이션에 물어볼 수도 없는 그 길,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혹은 새로운 길을 찾아 다시 떠남을 반복하는 이들에게 김홍희 작가가 불쑥 “상무주(上無住) 가는 길”을 책과 전시(스페이스22 2018. 10. 10 - 25)로 내놓았다. 세상의 끝이랄까, 최종 목적지랄까, 이상향이랄까, 궁극적으로 다다르고 싶은 자유와 평화의 세상으로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중첩의 의미로 제시한 ‘상무주’라는 단어는 지리산 함양에 있는 한 암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거처가 없다는 뜻의 무주(無主)지만, 아마도 상위개념의 무주는 어떤 것에도 머무르지 않고 매이지 않는 절대자유를 의미할 것이다. 궁극의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길을 사진으로 옮겨놓으니 그것이 현실세계에서는 암자로 가는 길이 되었다. 깊은 산 속에 숨듯이 존재하는 암자는 세상에 등을 보이며 산으로 들어오는 이들에겐 마지막 처소가 된다.

김홍희(1959년~ ) 작가는 세상의 온갖 잡다한 길을 다 싸돌아다니는(?) 사진가다. 자동차로 비행기로, 나이 50이 되어서는 모터사이클까지, 온갖 이동수단을 다 동원하여 국내외 바다와 산과 들과 사막으로 휘젓고 다니며 그의 영혼이 가 닿는 공간을 사진과 글로 묘사해왔다. 글이라는 강한 화력을 장착한 사진가로서 그의 행보는 종횡무진이었고 반짝이는 재능을 속 시원하게 다 쏟아내는 몇 안 되는 사진가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글과 사진만이 아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솜씨도 파워풀이다. 그러다보니 전시와 출판은 물론이고 방송까지 그가 활약하는 영역에는 한계가 없다.

그런데 그의 넘치는 자신감의 근원은 아픈 상처와 맞닿아 있다. 어렸을 적에 심하게 홍역을 앓고 난 후유증으로 한쪽 시력을 잃었다. 애달았을 그의 엄마는 “네가 크면 내 눈을 주마.”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고 한다. “홍희야, 하느님께서 너의 눈 대신 무언가 너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셨을 것이다.”라는 다독거림도 잊지 않으셨다. 스무 살까지는 사실 한쪽 눈을 잃었다는 것이 지독한 상처였다. 그러나 한 눈으로 세상보기에 익숙해지면서 역설적으로 눈에 의지해야 하는 사진의 길을 택했다. 결핍을 극복하자 어렸을 적 어머니의 말씀처럼 남다른 ‘무엇’을 선사받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의 넘치는 자신감과 용기는 그가 늘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데에 큰 힘으로 작용했다.


 


“세기말 초상” 연작 中 ⓒ김홍희


“세기말 초상” 연작 中 ⓒ김홍희


“결혼 시말서” 연작 中 ⓒ김홍희

“결혼 시말서” 연작 中 ⓒ김홍희

서른, 잔치는 시작되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스물일곱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진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서른 살에 일본인 사진 선생님에게 “선생님, 저 사진으로 밥 먹고 살겠어요!”라고 선언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1980년대에 전업 작가로 산다는 것이 일본에서도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러나 부산으로 돌아온 그는 그때 이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 치열하고 분주했지만 ‘폼 나게’ 잘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서면 찍고 앉으면 쓴다.”는 그의 말처럼 사진 찍고 글 쓰는 데에 하루 24시간을 쪼개며 살아온 덕에 그의 사진집 뿐 아니라 그가 사진을 담당하여 출간한 책이 70권에 이른다.

그는 일을 좋아하고 즐긴다. 글 쓰는 작가보다도 더 많은 매체에 기고하고 원고를 쓰지만 마감에 늦어본 적이 없다. 사람을 좋아해서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지만 새벽에 귀가해서도 그날 아침의 마감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 철저한 프로정신이 오늘날의 김홍희를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지금 “상무주 가는 길”을 출간한 지 두 세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곧 두 권의 책이 새로 나올 것이라 귀띔했다. 그런 와중에도 툭 하면 인도에 있다고 하고 몽골의 초원에 있다가도 어느새 실크로드에 가 있다.

10년 전에 김홍희 작가를 만나고 나서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지금과 여일하다. “그의 사진의 핵심에 ‘사람’이 있다. 그는 사람들의 진정한 삶을 찾아서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며 그들과 마음이 소통되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몽골의 초원에서,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캄보디아의 가난한 마을에서 그는 사람들과 가슴으로 만나고 그 만남을 일본의 하이쿠처럼 강렬하고 함축된 이미지로 전달한다. 그의 카메라는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며, 인생을 은유하는 한 편의 시(詩)다. 그의 모든 사진이 ‘서정성’이라는 코드로 압축되는 것은 그의 문학적이고 시적인 감성과 보헤미안 기질에서 연유하는 듯하다. 아무리 빈곤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어도 거기에는 인생을 긍정하는 순정함이 흐르고 있어서 전투적이거나 조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다에 닿을 것을 의심하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순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속으로 깊어가는 인생이 느껴진다. 그가 사진으로 시를 쓰고 시로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업의 교집합(交集合)은 바로 산다는 것, 삶의 여정이다.”

그는 여전히 글을 쓰기 위해 여행하고 여행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했다. 여행을 하면서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게 되고 여행길에서의 생각과 느낌이 또한 글로 재구성된다. 이러한 선순환은 그를 계속 성숙시키며 마흔을 맞이하고 쉰을 지나 이제 예순에 접어들게 해주었다.

 
“사진을 만난 것 못지않은 내 삶의 전환점은 모터사이클을 만난 것이었어요.”

모터사이클을 타기 시작한지 10년이 됐는데, 사실 그에게 모터사이클은 치명적인 만남이다. 원근감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한 눈으로는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자신만이 사물을 ‘보는 방법’으로 모터사이클의 속도에 익숙해졌고, 그것은 그의 사진 작업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자동차로 가기 어려운 길을 누비며 더 많은 것들과 만나고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암자를 다니면서 모터사이클의 기동력이 정말 큰 역할을 해주었다며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연작 中 ⓒ김홍희


암자로 가는 길
비록 크리스마스에만 교회를 나가는 크리스마스 크리스천이라고는 하지만 모태신앙을 갖고 있는 김홍희 작가가 절집과 친해진 계기는 1995년에 정찬주 선생의 “암자로 가는 길” 연재에 필요한 사진을 맡게 되면서였다. 또한 100만부를 넘어선 베스트셀러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에도 현각 스님의 글에 그의 사진이 들어갔다. 그 외에도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 “비구니 산사 가는 길”, “바닷가 절 한 채” 등에서 그의 절집 사진은 영혼을 담은 사진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작가 자신은 큰 스님들과 만나 작업을 해나가며 영혼을 살찌우고 정신을 맑고 가지런히 하는 마음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암자로 가는 길을 처음 알게 된 이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사진가로서 철학을 세우고 정신의 깊이를 더해가며 정진한 결과가 2018년에 출간한 “상무주 가는 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다시 가고 계절을 달리하여 그 길을 다시 또 가보면서 매번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은 마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는 절집을 잘 아는 사람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에다가 아포리즘 같은 짧은 글을 곁들여 그의 깨달음을 은유적으로 토해내고 있다.

 
“산 높아/ 구름 더욱 깊네./ 길은 오래전부터/ 오리에 무중이니/ 상무주를 찾는 이여/ 발밑을 보라.”

350페이지에 이르는 제법 두툼한 책을 덮으려는데 마지막으로 쓰여 있는 글이다. 이쯤 되면 김홍희 작가도 선문답을 나눌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지름길을 찾으려 무진 애를 쓰는 사람, 더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해 아등바등 달려온 사람들에게 그는 발밑을 보라고 말한다. 상무주 가는 길은 나의 발밑에 있었는데 참으로 고단하게 먼 길을 돌아왔다는 말일까. 정호승 시인의 “허허바다”란 시가 생각난다. “찾아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 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떠있네.”

우리가 끊임없이 찾아가고 돌아오고 떠나가는 삶이라는 길에서 겨자씨만한 깨달음이라도 얻는다면, 이미 상무주에 이르러 있는 것임을 작가는 강조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 사이, 길과 길 없는 길 사이”라는 그의 표현처럼 그의 사진은 빛과 그림자 사이를 포착하고 그의 글은 길과 길 없는 길 사이를 더듬는다.


 


“원전에서 사는 법” 연작 中 ⓒ김홍희


“원전에서 사는 법” 연작 中 ⓒ김홍희


당신의 봄은 아직 살아있는가?
작가는 묻는다. “봄 속에 있어도 봄을 모르는 이에게는 실로 봄은 내내 오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어떤가? 당신의 봄은 아직 살아있는가?”라고.

김홍희 작가를 만날 때마다 그에게선 그의 고향인 부산의 자갈치시장에서 펄펄 뛰는 생선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말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했기” 때문일까? 개인전 30여 회, 책 70여 권 출판, 지구촌이 좁다 휘휘 다 섭렵했고, 하고 싶은 말 주저 없이 내놓고, 하고 싶은 일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옮겼으니 그만큼 살았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그런 그가 덜컥 복병을 만났다. 2018년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것이다. 운 좋게 초기 발견이어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수술 후 달라진 게 있다고 말한다.

 
“중요도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 그냥 시간을 썼는데 수술 후부터는 그러기 싫어졌어요.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함을 체험했으니 앞으로는 더욱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겠다는 뜻이다. 아직 봄 속에 있고 아직 삶속에 있을 때 봄과 삶의 귀함과 즐거움과 속 깊은 의미를 속속들이 느끼고 기꺼이 감사하고 자신에게 충실하며 정진하겠다는 것이리라.
 
“새해부터는 전에 발표했던 ‘아무도 보지 못했다’를 더 찍고 싶습니다.”

“방랑” “나는 사진이다” “세기말 초상” “결혼 시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상무주 가는 길” 등 지난 30년 그의 사진작업은 아기자기한 주변 이야기부터 소외된 이웃들, 더 나아가 지구촌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작은 암자부터 망망대해 같은 사막까지 떠돌았지만, 돌이켜보면 결국은 상무주 가는 길을 찾아가는 방랑이었다. 아마 새해에도 그의 낯설음과 새로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랑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니 말이다. 사진을 도반으로 하든지 글을 도반으로 하든지 아니면 결국엔 사진기도 펜도 내려놓고 홀로 떠나든지 어차피 길에서 길을 찾는 그의 방랑은 계속될 것이다.

 


 

글 :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19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