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년 중국 현대 대표사진작가



한국과 중국이 수교 30년을 맞는다. 한국과 중국의 예술과 문화는 양국의 진정한 상호이해와 교류의 근간이자 양국 협력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사진예술」은 한국과 중국 사진계의 활발하고, 한층 강화된 교류를 기원하며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 사진작가 3인으로 스페셜 이슈를 기획했다. 자연과 동화되어 누드 작업을 펼쳐 나가는 롱롱&인리(榮榮&映里), 신체를 위장하여 배경 속으로 숨어드는 리우볼린(刘勃麟), 현대 사회 속 개인을 고대 신화, 역사와 연결시켜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한 양푸동(杨福东)을 조명한다.
 





롱롱&인리 | 자연과 동화된 누드
글 존 탄콕John Tancock

롱롱(榮榮, 중국)과 인리(映里, 일본)는 만나기 전에 각자 사진작가로서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2000년부터 부부로 함께하면서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다.

시리즈
롱롱과 인리가 위대한 자연환경 속에서 서로에 대한 열정을 천명한 일본에서의 (2000-2001)시리즈에서 도시 생활의 혹독함과 그것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 그대로의 풍경 속에서 그들 스스로 누드로 등장한다.(p.50-51)

그들은 200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1년 중 가장 추울 때 후지산에 갔다. 인리는 그들이 거기서 지내는 이틀 동안 일기를 썼다. 2월 15일 새벽 5시, 인리는 “뼈가 시리는 추위는 발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까지 퍼졌다… 영하 15도의 세계.”라고 기록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 45분, 그녀는 “기도하고 싶은 산을 바라보며, 어쩌면 그 산이 내 마음을 정화시켰을지도 몰라. 일본인들만 느끼는 감정인가?”라고 썼다. 인리는 롱롱에게 물었다. 그는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일본에서 다시 만난다면, 후지산에 갈 것이라고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계획했고 이 약속은 지켜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이 전부였지만, 우리의 기다림조차도 일종의 공연 예술로 보일 수 있다.”

시리즈
1990년대 베이징의 혼돈과 도쿄의 반짝이는 거리에 익숙한 도시 거주민인 롱롱과 인리에게 눈 속의 후지산의 모습은 단식, 명상, 긴 산행, 눈과 얼음 폭포에 노출되는 것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모든 방법이라는 일본의 야마부시(산속 수도자)와 비슷한 감정을 일깨우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들의 사진에는 종교적인 동기가 없었지만, 서로에 대한 황홀함의 상태와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은 비슷한 아우라를 풍긴다.

베이징에 돌아가서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옷과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본에서의시리즈와 같은 작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인리는 베이징 동촌이 철거된 후 롱롱이 정착한 마을인 류리툰으로 이사했고, 개발을 위한 도로 건설로 옛 건물과 주변 지역 전체가 철거되면서 삶의 근거지가 점차 사라지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베이징에서의 시리즈(2000-2003)에서 그들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황량한 실내의 얇은 매트리스에서 온기를 느끼도록 몸이 서로 맞닿아 있다.(p.49) 류리툰의 철거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자, 그들은 장례복을 입고 백합 꽃다발을 바친다.(p.46-47) 그리고 이들은 유령처럼 사라진다.(p.54)

시리즈
2012년까지 그들은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고 중국과 일본 양국의 관계가 긴장되어왔다는 사실에도 개의치 않았다. 일본으로 건너가는 중대한 결정은 내린 것은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는 롱롱, 인리 그리고 세 명의 소년이 도시적인 방식을 탈피한 상황에서 2년 동안 간헐적으로 찍은 300장 이상의 사진에서 추려진 작품이다.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독특하게 융합해 확장 개조한 것으로 전통적인 생활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제공했다. 작품의 주제는 빠르게 진행되는 도시 생활의 산만함에서 벗어나 가족 간의 유대, 즉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몽상으로 묘사되어진다. 인간적인 내용은 그들과 세 아들에 의해서 보여지며, 카메라를 외면하는 실체가 없는 존재로 표현된다.

부모와 아이 할 것 없이 카메라를 외면하고 있으며 실내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기모노 차림의 인리(p.52), 쇼지 스크린(방을 구분하는 반투명 칸막이)에 담긴 다다미 위에 앉아 있는 세 아이가 진한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p.53) 롱롱과 인리는 구도의 형식적 특성과 그들이 채택한 프린트 과정을 통해 명암을 줄이고 미묘한 톤 효과를 강조하였다.
롱롱은 한 아이의 손을 잡고 현대 생활에 관해서는 어떤 흔적도 없이 찾을 수 없는 무궁무진한 논의 풍경을 바라본다.(p.55) 이와 같은 사진들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에 고착된 것처럼 보이는 작은 인간 형상이 뒤에서 보이는 화려한 풍경들에 의해 압도됨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가로서 롱롱과 인리는 사진을 예술의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에 의무감을 느꼈고, 2007년 베이징에서 별다른 재정적인 지원 없이 이웃이자 친구인 아이 웨이웨이가 디자인한 멋진 건물에 쓰리 섀도우 아트 포토그래피 센터를 설립했다.

롱롱과 인리는 연인으로, 주변 환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쓸쓸한 도시민으로, 쓰리 섀도우 아트 포토그래피 센터의 문화기업가로, 세 아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자랑스러운 부모로 사진에 등장한다

롱롱과 인리에게 카메라는 표면적인 모습을 기록하는 도구라기보다는 여러 연관성과 신비한 이야기나 좁게 정의할 수 없는 환경에서 그들 자신의 페르소나를 창조적으로 사용하여 더 깊은 의미를 찾는 도구이다. 쯔마리 이야기에서, 롱롱, 인리, 그리고 그들의 세 아들은 물과 눈, 얼음이 계절의 흐름을 나타내고 물이 인간의 삶과 우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풍경 속에서 그려진다. 사진은 삶과 자연의 순환 사이의 유사점에 대한 강한 감각을 전달한다.

그들은 “우리가 새로운 장소로 여행할 때,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입력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기 냄새를 맡고, 습도와 온도도 느낍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달하려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영역에 있는 명백한 주제를 고려하는 시간적 차원입니다.” 라고 말했다.

 




리우볼린 | 위장된 신체

글 엠마 톰슨Emma Thompson

리우볼린(刘勃麟)은 “내 작품에서 나는 몸의 실종을 이용해 인류가 창조한 문명과 인간 자신의 발전이라는 상호 제약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리우볼린은 작업을 통해 국제적인 찬사를 받은 매혹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의 작업은 행위와 현장 사진 모두를 통해 일상적인 공간과 장소에 숨겨져 있는 섬세한 인간의 몸을 묘사한다. 매우 사실적인 스타일로 그려진 신체들은 주변 환경의 정확한 색상과 기하학적인 무늬를 모방하지만, 배경과 완벽하게 하나로 결합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계속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의 위장된 움직임이 다소 당혹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인 필리프 다겐(Philippe Dagen)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미장센을 이용해 그린 정물화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물리적인 물체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반면, 위장을 연습하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곳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나 물건은 종종 위협이나 무기이기 때문에 숨겨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왜 몸을 숨겨야 하는지의 이유이다. 리우볼린은 도처에 자신을 위장함으로써 자신의 신체적인 존재가 다소 불안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위장된 신체의 장소
리우볼린의 시리즈는 베이징 동북쪽 외곽에서 독립한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솔가촌 철거에 대한 기록에서 시작했다. 산둥의 집을 떠나 베이징 예술계에 온 그는 중국에서 온 다른 예술가나 이민자처럼 합법적인 거주자가 누릴 수 있는 주택과 공공 서비스를 받지 못했고, 자신이 표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원래의 부지를 허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감을 칠한 채 건물 잔해 속으로 사라졌다.(p.58)

리우볼린의 모든 작품에서, 위장된 신체의 장소와 사회, 정치적 맥락에서의 특정한 위치들은 그의 작품에서 의미를 창조하는데 있어 핵심에 해당한다. “작품의 필수적인 요소는 행위를 위해 사용되는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 장소가 담고 있는 사회적 주제를 고려한다. 그것을 통해 전달될 수 있고, 따라서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메시지를 생각한다...” 시리즈는 중국, 즉 마오쩌둥 시대 이후와 그에 따른 베이징의 사회 지형의 극적인 변화에 배치되어야 하며, 특히 2001년 이후 국가 전략으로서 도시화의 채택에 이은 급속한 도시화 현상은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미지는 시공간을 효율적으로 초월한다. 리우볼린이 관광객이든 아니면 중국 시민이든 간에, 그의 무대 미학은 정적인 건물, 문화 관광지, 마트의 매대나 당일 뉴스를 방송하는 텔레비전 스튜디오 등을 통해서 우리의 눈에 즉각 들어온다. ‘Great Wall’(2010년)(p.65), ‘Forbidden City’(2010년)(p.57), ‘Bird’s Nest’(2009년) 등의 작품과 ’Demolition’(2007)(p.58) 당대 중국의 대규모 아파트 건축물에서 리우볼린의 몸은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며 시각을 바꿔가며 이러한 역사적 랜드마크를 모두 흡수하고 있다.

역사·문화·계급 제도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
리우볼린의 이미지 속 신체와 연관시킴으로써, 우리는 또한 감상자로서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우리는 중국의 문화적, 경제적 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현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릴 수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인가? 오늘날의 건물들이 예전처럼 수 세기 동안 유지될까? 아니면 그들이 갑자기 왔듯 갑자기 사라질까? 리우볼린의 모든 작품에서 모순과 상반된 대립에 직면한다. ‘Red Door’(2012)은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변증법의 완벽한 예이다.(p.56)

문 위의 구리로 만든 구면경(球面镜)은 수나라(581~618년)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것은 한 눈에도 중국의 전통적인 문임을 알아볼 수 있다. 직역하면 ‘주문(朱门)’ (红门)은 ‘주홍색의 대문, 부잣집만이 가질 수 있는 홍칠문’이라는 뜻으로 ‘부잣집 문’을 뜻한다. 따라서 붉은 문은 전통적인 중국 상류층의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적인 자물쇠와 버클, 리벳이 촬영대상의 몸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문이 중국 전통 건축의 현대적인 모방으로 보여진다. 눈을 꼭 감고, 몸을 곧게 펴고, 움직이지 않으며, 순종적이나 비굴하지 않은 자세로, 위장된 몸은 중국 전통이 강요하는 사회적 계층화와 순응의 압도적인 무게에 맞서는 조용한 투쟁임을 깨달을 수 있다. 동시에 이 기법은 지능적으로 전시될 때 역사, 문화, 계급 제도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똑같이 미묘하고, 몰입하는 신체와의 관계는 다른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Demolition’(2007)에서 리우볼린은 다시 철거 현장에 가게 되는데, 이번에는 전형적인 농민의 평범한 1층 가옥의 폐허에서 머지않아 먼 곳의 현대적인 고층 빌딩으로 대체될 이전의 건물을 상징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층 빌딩과 사진작가의 신체 사이의 딱딱하고 직립적인 시각적 연관성은 그러한 결말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친밀한 재현의 공간적 의미
미국의 공연예술학자 레베카 스나이더는 “위장의 정밀도에 가까워질수록 자기와 타인의 관계의 구별을 유지하는 것이 더 위협적이다”라고 주장한다. 모방의 정확성은 시선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다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향하게 한다. 자아와 배경의 미러링이 정확할수록 공간의 순서가 분명해지고 대상과 공공 공간의 관계도 더욱 깨우친다.

‘Laid Off’ (2006)에서는 6명의 베이징 주민들이 현재 798 예술 지구로 알려진 곳의 배경이 되는 옛 공장의 벽에 기대어 줄을 서 있다.(p.60) 배경 한쪽 벽에는 문화대혁명의 슬로건이 걸려 있다. “우리의 사업을 이끄는 핵심 세력은 중국 공산당이다.”라는 구호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여섯 사람의 신체이다. 한때 그들은 이 공장의 노동자였지만 1990년대에 중국이 경제 지향적으로 생산을 재설계하면서 이 주민들은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과 함께 해고되었다. 여전히 제복을 입은 이 유령 같은 신체들이 배경과 어우러진다. 지저분한 건물들 (건축가가 설계한 현대식 798개 건물보다 훨씬 뒤떨어진 건물들) 안에 그들의 시선과 포즈가 함몰되어 있다. 연령별로 퇴색된 파랑과 노란색의 블록의 색이 마치 중국의 과거와 현재의 갈림길인 것처럼 공간을 규제하는 것 같고, 이들 주민은 거기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장소의 사회정치적 특수성, 신체가 차지하는 위치, 그리고 신체가 공간과 장소를 차지하는 모방적 정확성 외에도, 스나이더가 말하는 “친밀한 재현의 공간적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해석학적 관점에 발맞춰 캐나다의 공연예술학자 로라 레빈은 ‘Instant Noodles’(2012)와 ‘Green Food’(2011)를 언급하는데, 이 마트의 장면은 중국이나 호주에서도 우리 모두가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모든 로고와 각종 국수와 친환경 식품,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로 가득 찬 캐비닛은 또 다른 상징이다. 변덕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원하는 물건은 무엇이든 소비하려는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이 된다.(p.62-63)

신체는 전시 장소에 서 있어 거의 완벽할 정도로 통합됐지만, 주름들은 질서정연한 자아를 향한 우리의 인식을 교란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생긴다. 레빈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이 극단적인 ‘위치’가 인정하지 않는 것, 즉 중국이 저항력이 있고 세계의 많은 소비재를 생산하는 환경적인 비용에 직면하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레빈은 이러한 요구가 제조업체들에 비용 절감을 압박하고, 이는 전 세계가 직면한 생태학적 문제와 안전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도 그가 말했듯이, 해로운 형광체는 중국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모든 유명한 상표의 패스트푸드 라면 포장 컵에서 발견되었다.

리우볼린의 활기찬 작품들은 명상과 냉정함을 하나로 묶고, 우리의 관심을 끌고 참여하도록 유혹하는 희화적 요소들이 있다. 장자의 이야기처럼, 이 작품들은 광범위한 사회, 나아가 우주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요구한다.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대한 반대, 저항 화가들의 행동, 고통, 폭력 또는 상실의 흔적을 남긴 장소에서 그들의 특정한 퍼포먼스 등을 면밀히 조사하는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작품의 감상자인 우리는 국제적인 인권 문제에 관여하게 된다. 전시에서는 리우볼린의 독특한 예술작품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인간과 인간이 아닌 세계)을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그들은 우리의 도덕적 관심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양푸동 | 사진은 하나의 고정된 영화이다

글 편집부

양푸동은 중국현대미술 35년 이래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는 영상, 사진 작품으로 카셀 도쿠멘타 (2002), 카네기인터내셔널 (2005), 베니스 비엔날레(2003, 2007) 등에 참여했고, 피닉스 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덴버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양푸동은 초기 회화, 드로잉을 공부하다 이후 사진과 영상 작업으로 매체를 바꾸었고, 그런 이유로 그의 많은 작업은 중국 전통 회화에 뿌리를 두며 동양화 화법을 사진과 영상에서 보여준다. 그는 중국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의 빠르게 변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현대 인물들을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한 듯 연출하거나 중국의 역사 혹은 신화적인 장면들과 교차시키며 과거와 현재를 초월한 듯한 영상들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세계는 ’1930~40년대 중국 초기 영화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이고 우아한 영상미와, 이미지 단위로 끊어져 분절되는 내러티브 연출을 통해 한 편의 동양화 같은, 이미지 세계를 구축했다.’라는 평을 받는다. 양푸동은 “그림과 사진, 영상, 영화는 사실 같다.”라며 “재료만 다를 뿐이고, 촬영 방식이 다를 뿐이지, 예술가의 생각을 그에 맞는 재료를 통해 표현하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다.”고 자신의 작품관을 밝혔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시리즈
<죽림칠현>은 본래 5편으로 이루어진 양푸동의 대표적인 영상시리즈로,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려는 7명의 젊은이의 모습을 몽환적인 영상으로 담았다. 죽림칠현은 영상뿐만 아니라 영상 스틸컷이나 영상을 촬영하며 동시에 찍은 사진으로 전시되기도 한다. 죽림칠현이 중국 위·진 교체시기의 혼란한 정치를 피해, 죽림에서 사상을 논한 지식인들에 대한 고사라면, 그의 <죽림칠현>은 자본주의가 유입되며 급격하게 변해가는 도시를 떠난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p.66-71)

“<죽림칠현>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시간이 걸려 완성했다. 작업 내내 일종의 꿈을 만드는 느낌, 꿈을 형상화하는 비현실의 느낌이 있었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긴 시간동안 차근차근 느리게 풀어나가야, 작가의 생각을 작품속에 더욱 투영할 수 있다. 작품 속 젊은이들은 어디로 갈지 모르고 방황한다. 젊은이들은 하나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투명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고, 상상을 통해 불안하지만 희망을 준다.”

그는 <죽림칠현>이 영상이 아닌 사진으로도 보여지는 것에 대해 “사진도 하나의 ‘고정된’ 영화이다. 1초에 24컷 정도의 사진이 흘러 지나가 영화가 되고, 때문에 한 장의 사진도 하나의 영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사진은 한 장면이 멈춰져 있으니까 관객으로 하여금, 사진 한 장으로 상상할 수 있게끔 만든다. 어떻게 보면 ‘영화 안의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영상으로 촬영한 것과 사진으로 촬영한 것 모두 하나의 작품이다.”라고 답했다.

죽림칠현 시리즈 전체가 현대 중국에 대한 성찰과 진행 중인 급진적인 변화가 개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예고하고 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은 중국을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양푸동은 중국에서 사는 것을 선택한 예술가 세대에 속하며, 문화 개방의 새로운 혜택을 받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작업을 통해 기여하고 있다. 예술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스스로 부지런히, 세심하게, 심지어 열심히 작업하는 것이다.”라고 양푸동은 강조한다.


프로젝트는 작품 촬영을 라이브 공연으로 만들었는데 상하이 롱뮤지엄내에 2개의 대형 세트를 만들어 한 달에 걸쳐 관객들 앞에서 촬영했다.(p.##) 그 작품은 송나라 시대 (960~1279년)의 의식과 예술 생활을 다룬다. 매일의 마지막에 작가는 비디오 일기의 한 형태로 그날의 작품을 편집한 단편 영화를 선보였는데, 각각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최종 영화를 향한 진화의 과정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Beyond God & Evil’ 작품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과 악을 넘어(1886년)을 각색한 것이다. 작가는 중국어로 “선(善)은 훨씬 더 넓은 의미를 지닌 shàn으로 발음된다. 이는 신(神)과 발음이 비슷하다. 제목을 다시 영어로 번역했을 때, 나는 중국어에서 shàn의 더 넓은 의미와 종교적인 함축을 다루기 위해 영어 단어들을 조금 만져보자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p.72-73)

작가는 “중국인들은 그들의 전통 문화를 잘 이해하고, 도교, 유교, 불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나 철학을 통해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서양 철학을 포함한 세계에 다른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과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의 철학은 또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니체와 불교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특히 회귀와 환생의 개념에서.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동정적이다.”

그의 라이브 공연 작업은 고대의 이야기이고 배우들이 시대 의상을 입지만, 관객은 세트의 가장자리와 붐 마이크, 조명과 카메라, 제작진을 볼 수 있다. 작가는 관객들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스토리인지, 아니면 촬영 과정인지 ‘진정한’ 것인지 고민에 빠뜨린다.

양푸동은 역사를 고려하는 예술가이며 이런 류의 작가들은 현대 미술이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예술가의 작품이 독립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며 작품이 그 역사적 요소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공동체의 역사와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작품으로 증언한다.


 


해당 기사는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