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럽거나 혹은 매혹되거나, 피에르 앤 쥘

“만약 우리가 마음대로 현실로부터 상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기쁠 것입니다. 노란 나비 떼 속에서 깨어나고, 쏟아지는 별들 아래에서 사랑하고, 자욱한 불길 속에서 춤을 추고, 작은 해골들의 보호 속에서 잠드는 일 등 말입니다. 그건 불가능하기에 상상의 가치가 있으며, 그렇기에 상상이 훨씬 더 매력적인 거겠죠. 일상은 또 다른 시와 음악이에요. 현실 역시 이러한 힘이 있죠.”
- Pierre et Gilles

 

 
Le Petit Bal, 2015, Ink-jet photograph printed on canvas and painted Ⓒ Pierre et Gilles



Le petit Bizut, 2018, Ink-jet photograph printed on canvas and painted Ⓒ Pierre et Gilles


K현대미술관에서는 피에르 앤 쥘의 전시 〈Pierre et Gilles - Looking at the Pictorial World, Seemingly Old and Voluptuous〉가 지난 해 12월부터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아티스트 듀오인 피에르 앤 쥘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로, 그들의 작품 원본 211점을 선보인다.

피에르 앤 쥘의 듀오 활동은 사진가인 피에르 꼬모이(Pierre Commoy)와 회화를 전공한 쥘 블랑샤르(Gilles Blanchaer)가 1976년 파리 겐조 부티크 파티에서 처음 만나면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작가 듀오이자, 평생의 파트너로 지금까지 함께 해왔다. 1977년부터 장 폴 고티에, 앤디 워홀, 입생 로랑, 마돈나 등 유명인들의 포트레이트 사진을 피에르가 촬영하고, 그 위에 쥘이 페인팅 작업을 해서 완성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피에르 앤 쥘은 사진을 찍고, 그 위에 회화를 그리며, 액자를 직접 만드는 방식으로 사진과 회화, 설치가 혼합된 작품을 제작한다. 그들은 인물 사진을 찍지만, 단지 인물의 재현이나 전통적 방식의 초상화를 제작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길거리에서 캐스팅한 평범한 인물부터 마돈나나 앤디 워홀 같은 셀러브리티까지, 그들은 인물의 가장 특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이를 극대화하는 배경을 연출하고 사진을 찍는다. 인쇄된 사진 위에 물감을 흩뿌리거나 붓 터칭을 하는 식으로 회화를 덧칠하고, 다시 이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는 액자와 장식을 제작한다.

마치 10대 소녀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오려 벽이나 책장에 장식하거나, 혹은 남미 지역에서 카톨릭 성화(聖畵)에 화려한 장식을 해서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식이다. 그들은 이런 작업 방식에 대해 “어린 시절 우리는 스타의 엽서와 음반 등의 이미지, 종교적 이미지, 그림 등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림을 그리고, 복사하고, 자르고, 앨범에 붙여넣기를 좋아했다”며 “침실 벽은 온통 그런 이미지들로 뒤덮였다. 작품에서 우리는 애정을 갖고 있는 오브제를 초자연적 차원으로 옮기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차원 속에서 오브제는 우리에게 꿈의 멜로디가 된다”고 설명했다.



Le petit clown, 2009, Ink-jet photograph printed on canvas and painted Ⓒ Pierre et Gilles



La Vierge à l’enfant, 2009, Ink-jet photograph printed on canvas and painted ⒸPierre et Gilles

작품은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때론 유머가 넘치거나 노골적으로 게이 섹슈얼리티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성화(聖畵)를 패러디한 작업은 금기를 건드리기 보다는, 오히려 종교적, 신화적 도상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유머를 섞어 재현한다. 실제로 피에르와 쥘은 둘 다 프랑스의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며, 이런 종교적 분위기에 많이 영향 받았다. 카톨릭 성화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나 인도 종교 등, 세계 각지의 종교적, 신화적 이미지를 차용해서 재해석한 이들의 작업은 ‘사랑과 죽음’이라는 삶의 근본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그들의 밝고 희망찬 이미지 속에서도 한 줄기 어둠은 깔려있는데 이는 ‘사랑과 죽음’의 이중적 상징이다. 작가들은 이 ‘사랑과 죽음’의 이미지에 대해 “빛의 이미지와 행복한 외양 속에서도 사랑과 죽음은 여전히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다.”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생은 좀 더 잔혹하고 비극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처럼 우리는 죽음이 인생과 교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죽음의 존재로부터도, 죽음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동성애 성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데, 어떤 작업은 그 노골적인 섹슈얼리티가 보는 이를 당혹케 하기도 한다.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사진작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게이 포르노 잡지에서 오린 사진으로 콜라주 작업을 했듯이, 피에르 앤 쥘의 몇몇 작업은 게이 포르노와 예술 사이의 아슬아슬한 지점을 줄타기 한다. 그러나 관객에게 심한 거부감을 주지 않는 것은 그들의 발랄하고 재기 넘치는 상상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 아닌, 남성성과 여성성의 모호한 조합을 찾아왔다. 수많은 남성과 여성의 스타일이 있고 이것이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성, 남성이 아니라) 독립된 개인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다”고 강조한다.



Pierre et Gilles의 작업과정


이번 전시를 기획한 윤상훈 기획자는 피에르 앤 쥘의 작품세계에 대해 “그들은 세상이나 현상을 작가 본인들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하며 재해석했다. 현실과 판타지, 사진과 회화, 여성과 남성을 별개의 것으로 규정짓거나 한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보다 폭넓은 사고와 환상에 대한 예술적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관람객에게 제시하는 아름다운 작품 속에 동성애라는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어 소수자에 대한 세상의 차가운 편견과 차별에 맞서 자신들의 판타지를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평한다.

한국에서 열린 첫 개인전은 이들의 형형색색 화려한 작업에 맞춰, 마치 캔디 바나 놀이공원에 들어선 듯 화려하고 역동적인 공간을 구성했다. 특히 관객들이 피에르 앤 쥘의 작업과정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촬영무대를 연출해놓은 포토 존이 돋보인다. 이 곳에서는 마치 피에르 앤 쥘의 사진 속 인물처럼, 화려한 배경에 파묻혀 자신만의 초상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K현대 미술관에서 3월 17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피에르 앤 쥘: 더 보헤미안〉 전시전경
 
〈피에르 앤 더 쥘: 더 보헤미안〉
전시일정 2018.12.21 - 2019.03.17
전시장소 K 현대미술관


 
 

“우리의 작품은 거대한 ‘가족사진 앨범’”
피에르 앤 쥘 Pierre et Gilles


작가들의 작업과정에서 서로 역할 배분은 어떻게 하는가?  
우리의 작품에는 디지털 보정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즉, 같이 미장센을 연출하는 것부터, 피에르의 사진 촬영, 캔버스 위에 인화된 사진 위에 채색 및 그림, 그리고 액자 제작 까지가 우리의 작업 과정이자 방식이다. 쉽게 말해 피부톤 보정부터, 실제로 배경에 연출 되지 못한 요소들을 추가하는 것 등 다른 작가들이 포토샵으로 하는 작업을, 우리는 쥘이 실제 붓과 물감으로 진행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인물 사진을 주로 작업하는 이유가 있는지?
쥘은 십대 때부터 즉석사진부스에서 찍은 사람들의 증명사진을 좋아해서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피에르가 자신이 찍은 친구들의 증명사진의 색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관심 있게 보고 있던 쥘이 직접 원하는 색을 그려서 표현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시험해 보다가 피에르가 인물 사진을 찍고 쥘이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방식이 시작됐다. 우리는 작업 과정에서 모델들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고 우리가 모델들의 삶에 들어가는 식으로, 서로 교류하는 경험을 중요시 한다.

사진과 회화, 조형 작업이 함께 들어가면서 더욱 이미지가 풍부하게 해석된다. 작업 첫 단계부터 최종작업의 시안을 함께 논의하는가? 아니면 촬영을 전후해 즉흥적으로 바뀌기도 하는가?
우리는 완성된 구상을 토대로 그에 알맞은 모델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가 그에 알맞은 모델을 마주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고 이미지를 만든다. 일례로 (한국 가수이자 배우인) TOP의 작품에서 입고 있는 피로 물든 셔츠는 그가 직접 가져와 촬영할 때 사용한 셔츠이고 담배를 무는 것 또한 탑이 제안했다. 그의 어두운 면을 표현 하는 데 효과적인 장치라고 생각해서 TOP 본인의 의견을 수렴했다.

아티스트 듀오로 오랫동안 함께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예술적 견해나 방향이 다를 수도 있고, 사적인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두 작가가 약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우리는 함께 살고, 같이 일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작업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하는 삶이 작품에 투영된다. 때론 관계의 어려움이나 의견차이가 있더라도, 이것 역시 계속해서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Pierre et Gilles이라는 이름은 주변 친구들이 흔히 부르던 이름을 채택하여 두 명의 창의력을 하나의 독립체(one entity)로 표현하는 이름이라 생각한다.

모델은 어떻게 선정하는가?
에이전시를 통한 모델 섭외는 하지 않는다. 유명세가 아니라 직접 만남을 통해, 대화를 통해 얼마나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지가 모델을 선정하는 기준이다. 이처럼 모델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의 작품을 아주 거대한 ‘가족사진 앨범’이라고 표현한다. 동시에 작품 속 모델들에게 우리의 생각과 욕망, 그 순간의 친밀함을 투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열린 첫 전시를 어떻게 보았는가?
작품들을 분류한 방식부터 디스플레이까지 미술관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작품이 걸리는 벽에 스프라이트를 그리거나, 작품이 액자를 넘어 확장된 것처럼 벽화가 그려진 전시 형태는 처음이며, 이때까지 했던 전시 중 손꼽을 만큼 인상적이다.

 


피에르 앤 쥘 40ANS, 2016, Ink-jet photograph printed on canvas and painted ⒸPierre et Gilles
 

글 :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 K현대미술관
해당 기사는 2019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