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nko Kawauchi | 삶의 평범한 순간을 시적으로 승화




일본 사진작가 린코 카와우치(Rinko Kawauchi, 1972~) 개인전 《A Restropective》(10.27~3.11)이 취리히 크리스토프 구예 갤러리(Christophe Guye Galerie)에서 회고전의 형식으로 열렸다. 이번 전시에는 , , , , 등 총 8개 시리즈의 작업과 최근작인 , 시리즈까지2001년부터 2021년 까지의 작품 중 40점이 전시됐다.

자연의 신성한 본질에 헌신하는 일본 종교인 신도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너무 보잘것없거나 평범해서 촬영할 의미가 없는 피사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사진 경력을 시작한 이래로 카와우치의 작품은 주변 세계의 친밀하고 시적이며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과 분위기로 담아 내는데 주력해 왔다. 그녀의 사진들은 종종 꿈과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제공해 주고 밝고 빛나는 후광을 많이 사용하여 촬영되었다. 그녀의 사진 세계를 일관하는 하나의 주제는 영원할 수 없는 우리 존재의 취약성이다. 작가는 이러한 존재의 취약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일상에서 미미하고 보잘것없어 지나 치기 쉬운 오브제에 집착하여 촬영을 한다. 카와우치의 작품이 반복적으로 굉장히 고요하며 시적으로 묘사되고 특정한 ‘일본성’이 그녀의 작품에 귀속되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소소한 것들에 대한 그녀의 접근 방식 때문이다. 한편, 사진평론가이자 역사학자인 이이자와 고타로(Iizawa Kōtarō)가 지적하듯이, 그녀의 사진이 반드시 ‘일본식’이라는 범주에 순조롭게 속하는 것은 아니다. 린코 카와우치의 사진은 일본인이라는 한계를 넘어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고 표현해 낸다. 그녀의 작품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도 그녀의 작품이 하나의 울림이 되어 우리의 보편적인 가치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번 회고전에서 만난 그녀의 작품들을 시리즈 별로 하나하나 소개해 보고자 한다.
 


the eyes, the ears, 2003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완벽한 일치에 있다. 작품 전체에는 작가가 직접 쓴 짧은 하이쿠 시가 이
미지와 함께 제시된다. 그 시들은 봄날 오후 나비가 흩날리듯 부드럽게 이미지 사이로 우리를 이끌며 섬세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프로젝트는 들리고 보이며 느껴지는 우리의 감각에 전념하고 있으며 세상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잊고 더 깊고 친밀한 차원에서 작품을 느낄 수 있도록 관객을 초대한다.

‘Ametsuchi’ 2013
에서 작가는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으로 관심을 옮겨 신도(神道) 의식의 장소로 유명한 일본 아소산의 화산 풍경에 초점을 맞춘다. 제목 ‘Ametsuchi(아메츠치)’는 ‘천지(天地)’를 의미하는 두 개의 일본어 문자로 구성된 단어이다. 작가는 이 단어를 일본어에서 가장 오래된 팬그램 중 하나인 일본어 음절의 각 문자를 사용하는 성가의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작업에서 카와우치는 경작과 회복의 주기가 수십 년과 세대에 걸쳐 있는 전통적인 방식의 제어 화상 농업(Yakihata)을 촬영한 사진들을 결합하여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가 전통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시도해 왔던 불교 의식 및 기타 종교 의식의 이미지이다.

Halo, 2016 - 2017
에서 카와우치는 영적 탐구 를 확장 한다. 2013년 시리즈로 시작된 영적 세계에 대한 관심은 이 작업에서 더욱 깊어진다. 시리즈는 서로 다른 영적 전통에 초점을 맞춘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부분 중 이번에 전시한 한 작품은 겨울에 유럽 전역에 나타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철새들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인데, 그 움직임이 거의 춤과 흡사하게 나타나 있다. 이 사진은 인간 사회 자체를 반영하는 이미지로, 큰 무리의 일부가 됨으로써 야기되는 알 수 없는 힘을 표현하고 있다.

Illuminance 2009 - 2011
시리즈에서 카와우치는 삶의 근본적인 주기와 자연계를 형식적인 패턴으로 무심코 구성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파편과 같은 조직에 이끌려 특별한 것에 대한 탐구를 계속한다. 축소, 겸손,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인 와비-사비(wabisabi)의 미묘한 미학에서 영감을 받은 이 빛나는 이미지들은 우리 주변의 세계에 매혹적인 시선을 제공한다.

Utatane 2001
1960년대 일본 사진을 연상시키는 카와우치의 작품 은 진부함 속에서 숭고함을 찾는 작업이다. 하늘로 날아가는 풍선, 수면에 반사된 태양, 날아다니는 나비 한 쌍, 찢어진 그물. 이것들은 너무 쉽게 놓치는 일상의 디테일에 관한 것들이다. 그러나 카와우치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이는 이러한 평범함이 보석처럼 장식된 빛의 패턴으로 살아난다.

Hanabi 2001
는 불꽃 쇼에 대한 작가의 비전을 묘사한다. 여름 밤의 산들바람, 강둑을 따라 뛰어가는 아이들의 발걸음, 따뜻한 소나기를 예고하는 구름들은 우리에게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아름답고 동시에 멜랑콜리하다. 우리는 빛과 색상의 춤에 이끌려 눈 깜짝할 사이에 우아하고 감각적인 사진 작품들에 매혹된다. 그리고 카와우치가 이 불꽃놀이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M/E, 2020
는 카와우치의 신작이다. ‘M/E’는 ‘Mother’와 ‘Earth’를 의미하며 두 단어가 결합하여 ‘Mother Earth’, 즉 ‘Me’를 형성한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아이슬란드의 화산과 유빙, 홋카이도의 눈 덮인 풍경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관람자가 인간의 삶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재고하도록 초대한다.

As it is, 2020
푸른 하늘. 반짝이는 강. 새로운 삶의 탄생. 이것은 린코 카와우치의 신작 『As it is(있는 그대로)』의 작품집 맨 앞에 나오는 세 장의 사진이다. 이 새 작업은 가족, 기억, 시간을 다룬 그녀의 개인 세계에 대한 것인데 카와우치의 초기 사진과도 연결된다. 이 작업은 거미줄, 밥그릇, 곤충을 가리키는 작은 손 등과 같은 일상적인 순간을 기록했고 딸의 첫 발걸음, 가족 나들이, 가까운 친척의 죽음과 같은 중요한 순간을 촬영했다. 카와우치는 그녀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순간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 권지현 특파원
해당기사는 2023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