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옥현의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본 세상

안옥현은 1998년 개인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시작으로 2000년 사진비평상을 수상하였으며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과 영상을 병행하며 사랑과 성, 환상과 욕망 사이에 관계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시각화해 왔다. 여성의 눈으로 점철된 욕망의 시선과 프레임 구조가 눈에 띄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눈이나 귀는 육체로 즐긴다〉(2005), 〈미러볼〉(2007), Space22의 전시작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본 세상〉(2014)이 있다.



갈대밭에 커플 1, 2013, Digital C Print, 100×150cm

갈대밭에 커플 3, 2013, Digital C Print, 100×150cm

15여 년 간 한 길을 걸어오며 이제 중년의 여성 작가가 된 안옥현. 일상에서 조우하는 인물들에 천착해 온 그의 작품들에는 언제나 일관된 대상이 등장한다. 그건 바로 고전소설이나 영화, 또는 TV 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에 자주 나올법한 ‘통속적’이고 ‘진부한cliché’ 여성의 이미지이다. 집 안 거실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여자, 한쪽 가슴을 활짝 드러낸 여자, 한 남성에게 부둥켜안긴 채 곧 갈대밭 너머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질 것 같은 여자 등 그의 사진에는 하나같이 남성의 욕망 중심에 서 있는 여성의 몸뚱이가 주요 피사체로 등장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적 제약과 금욕은 여성이 주체로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유혹하는 것을 극히 꺼려 왔다. 그것은 세기적 아름다움으로 불릴 수 없었으며 ‘팜므파탈’적이고 치명적인 유혹으로 치부되곤 했다. 사랑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욕망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언제나 남성만이 소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층위에 놓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본 세상〉에서 안옥현은 여성의 은밀한 욕망과 향락적인 중년의 사랑애愛를 정면으로 앞세운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성을 무기로 삼을 수 있으며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의 몸짓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다. 안옥현이 표현한 여성상은 성욕을 자극시키면서도 남성을 군림시키는 성애적 사랑을 다룬다. 이는 젖가슴을 내놓은 모성애적 사랑이며 중년 여성이 갖는 자신감의 발로이다.



석양에 커플 1, 2014, Digital C Print, 100×150cm


석양에 커플 2, 2014, Digital C Print, 100×150cm

갈대밭에 커플 2, 2013, Digital C Print, 100×150cm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의 정상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범접할 수 없는 대자연, 그 극한에 도전하고 점령을 꿈꾸는 쪽은 누구인가. 그리고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그 산꼭대기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쪽은 누구인가. 평소에 소설책이나 영화 보는 것을 즐긴다는 안옥현에게 사랑은 관념도 순수함도 아니다. 오히려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건 지금 한국인의 사랑과 성에 드리운 권태감”에서 발로한 여성의 자위행위로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가부장적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는 적잖은 파장으로 말이다.
 

인터뷰 김선경 기자
해당 기사는 2015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