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자, 내 고향 서쪽 바다 태안의 풍경

바다가 그녀를 불렀다. 충남 태안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까지 바다를 보며 자랐지만 서울로 이사한 후 30년 이상을 고향에 대해 무덤덤했다. 그런데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이라는 엄청난 재해가 덮쳤다. 방방곡곡에서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으로 몰려오는데 기록사진을 하는 그녀가 가만히 서울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쩌다 한번 들르던 고향이었는데, 그곳에서 몇 달 동안 사진작업을 하다 보니 비로소 태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녀가 사진가 최경자로서 고향을 기록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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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된 초등학교 매입, 문화공간을 꿈꾸다
그녀는 감동했다고 말한다. 무려 130만 명이 태안해변의 기름때를 제거하기 위해 돌멩이 하나까지 씻어내는 손길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감동 그 자체였다. 기름유출은 엄청난 재앙이었지만 그 재난을 이겨가는 과정과 그것에서 얻은 깨달음은 오히려 커다란 공부가 되었다.

“그 감동을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그리고 참여해주신 전국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어요. 그때 마침 어은초등학교가 폐교가 되어 주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2008년, 겁 없는 그녀는 덜컥 4천7백 평 규모의 학교를 매입했다. “이거다!” 생각하면 저지르는 성격이 한 몫 한 것이다. 그때부터 태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태안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올해는 이 공간을 문화예술 나눔의 공간으로 모색해보려고 해요.”

매입할 당시의 목적은 이 학교에 130만 명 자원봉사자의 기록을 전시함으로써 하나하나의 손길이 모여 어떤 기적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정보가 개인정보보호라는 제약에 묶여 당초의 목적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그 이후 7년 동안 공간의 활용을 깊이 고민해온 그녀는 올해는 그 고민에 결론을 낼 작정이라고 말했다.

“공간에 대한 고민이 무거웠는지 2년 동안 건강이 안 좋아서 고생했어요. 그러나 아파서 웅크리고 있는 동안 앞으로 태안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2013년 말부터 “소도의 진경”(2013), “바다 위를 걷다”(2014)라는 개인전을 열면서 사진가 최경자의 건재를 알린 그녀는 올해는 강원 정선 아우라지부터 서울까지 남한강 작업을 김형수 시인이 한강을 노래한 시와 함께 호미출판사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촬영해온 문인들의 사진을 묶은 책이 발간될 것이라고 한다.

 


ⓒ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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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작업만 20년
어린 소녀는 동네 뒷산에 올라 바다 건너편 마을을 망연히 바라보곤 했다. 저 바다 건너 마을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하는 막연한 동경을 품었었다고 말하는 최경자 작가. 그것이 바다작업의 단초가 되었다. 전국의 바닷가를 다니면서도 어릴 적 추억 속의 바다 이미지를 찾지 못했던 그녀는 강화의 석모도 산꼭대기에 섰을 때 문득 열 살 때 보았던 그 바다와 일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이 1999년 “수평선 너머”라는 개인전으로 나타났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당시 바다 작업 외에도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다큐멘트를 하는 등 “물”이라는 큰 틀에서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홉 남매 중 여덟 번째인 그녀는 아버지가 자녀교육을 위해 엄마와 아이들을 서울로 상경하게 했을 때 고향에 남은 유일한 딸이었다. “아버지 혼자 외로울까봐” 고향에 남겨진 어린 그녀는 엄마와 형제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늘 동네 뒷산에 오르곤 했다. 그곳이 원북면 이화산이었는데, 지금은 그 산에서 바라보았던 가로림만 너머 마을에 살면서 어린 시절 올랐던 이화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우연이 있을까. 우리나라 전국을, 아니 세계 곳곳을 다 돌아다니다가 어린 시절 바라보던 마을에 둥지를 틀었으니 운명처럼 느껴질 만도 하다.

“결국은 고향 바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입니다. 요즘은 가로림만의 변해가는 모습을 계속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보람이에요.”

가로림만에서 평생 낙지를 잡으며 사신 분, 평생 곤쟁이를 잡아 곤쟁이젓을 담아 파는 분 등등, 그녀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그 풍경, 그 사람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 즐겁다. 물론 가로림만의 풍경만은 아니다. 고향 여러 마을의 이야기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도 수년째 해오고 있다.

서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던 사춘기 소녀시절의 감성이 지금도 그녀의 태안사진에서 드러난다. 아스라한 그리움이 배어나오는 안개에 묻힌 태안의 바다는 그 옛날 신성한 국가였다는 소도의 모습이기도 하고, 외롭게 바다를 바라보던 소녀의 물빛 그리움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제는 원숙해진 시선으로 고향을 바라보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눈빛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의 감성이 중첩된 최경자 작가의 바다 사진이 내년에는 한 권의 사진집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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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깊어진 고향 사랑  
그녀는 사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사진을 통해 고향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고, 예전 같으면 구전으로 전해질 이야기들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니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일이 또한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이보다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 있는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기에 한 가지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태안에서 아마추어 작가들을 모아 사진수업을 하면서 각자 자기 동네를 기록하게 하여 태안의 작은 역사를 남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혼자서 태안을 모두 기록하기는 어려우니까 여럿이 지역을 정해서 소소한 것까지 기록으로 남기다 보면 훗날 큰 그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있는 사진을 하고 싶어요. 특히 나의 고향 이야기라서 나에겐 더 가치가 있어요.”

사진촬영을 위해 걸어서 열 번도 더 태안을 돌았다는 최경자 작가는 “사진촬영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샅샅이 고향을 돌아볼 일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사진으로 인해 오랜 세월 떠나 있던 고향과 더 끈끈하게 연결되었고 고향을 더 잘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것을 기뻐한다. 그리고 사진가로서 진정성 있고 명분이 확고한 테마를 갖게 되었으니 또한 커다란 행운이기도 하다.   
 
“퍼즐을 맞추듯이 어릴 적 기억을 따라서 사진 소재를 찾기도 하고, 잊었던 기억이 현장에서 문득 되살아나기도 하니 개인적으로도 유년의 추억을 들추어내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작가에게 고향은 보물창고 같아요.”

창고에 있는 보물을 하나하나 꺼내 빛을 받게 하는 사진가의 특권으로 고향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최경자 작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녀는 고향 바다의 숨결까지 듣고 느낄 수 있어 그녀의 바다 사진은 일반적인 웅장함이나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가슴 밑바닥부터 서서히 젖어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연어처럼 고향의 바다로 회귀한 사진가의 작업이어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15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