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사진의 저력에 주목하라ʼ 크리스티앙 꼬졸

크리스티앙 꼬졸(Christian Caujolle)은 ‘프랑스 사진계의 대부’라고 불릴 만큼 교수, 비평가, 예술감독/큐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프랑스 국립사진학교장, World Press photo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프랑스 일간지 ‘Liberation'의 예술사진편집고문을 역임했고, 사진전문 갤러리 에이전트 Vu를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월드 프레스 포토 100주년 기념 특별전, 아를 국제사진페스티벌 등 국제적 전시의 아트디렉터를 역임하기도 했다. 크리스티앙 꼬졸은 지난 2008년부터 캄보디아 포토 프놈펜 페스티벌(Photo Phnom Penh festival)의 전시디렉터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한국을 찾아, 경일대와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동남아시아의 사진’에 대해 강연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작가들의 작품들을 직접 보여주며, 동남아 사진의 과거와 현재 주목할 만한 작가들에 대해 강연했다.

세계 각국의 신진 작가의 발굴에 관심이 많은 그는 지난 4월 8일에 강남의 라이카 카메라 스토어에서 국내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리뷰하기도 했다. 자신은 사진을 찍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보지 못하는 관점을 다른 이의 사진을 통해 발견하고, 그를 통해 스스로 풍요로워질 수 있어서 사진을 사랑한다”는 크리스티앙 꼬졸을 만나 그가 관심 갖는 동남아 사진의 현황에 대해 들었다. 

 
  경일대 〈동남아시아의 사진〉 강연

동남아시아는 한국인에게 관광지로서의 인상이 강할 뿐, 그 곳의 예술이나 문화를 직접적으로 접하기는 어렵다. 이번 강연에서 소개한 작가들 역시 낯선 이름들이 많다. 어떻게 해서 이 지역의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는가?
한국 작가들은 어떻게 보면 동남아시아 작가들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치면 대부분 정보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동남아시아 작가들은 그런 인터넷의 바다에서도 소외돼있다. 인터넷 환경이 안 되거나, 혹은 경제적 여력이 안 되서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에 소개하기 쉽지 않고, 자신의 사이트를 운영하지 못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90년대부터 캄보디아에서 사진교육을 했고, 2008년부터 캄보디아에서 사진 페스티벌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이 지역 작가들을 세계에 소개하는 것에 일종의 사명감을 느낀다. 내가 이들의 작품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일본, 한국 작가들과는 또 다른 독특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아직 세계 사진시장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포토 프놈펜 페스티벌을 지난 2008년부터 기획하고 있다. 여기 참여한 이유도 캄보디아 작가들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인가?
프놈펜은 캄보디아의 수도로, 우리는 관광객이 아닌, 프놈펜에 사는 시민들을 위한 전시와 워크숍을 열고 있다. 이 축제는 유럽과 아시아 사진의 교환의 장으로서 기획됐으며, 우선적으로 캄보디아와 유럽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을 홍보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 캄보디아 작가들에게는 유럽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또 그들의 작업을 다른 축제와 교류를 통해서 세계시장에 선보이려 한다. 젊은 작가들은 다른 문화권의,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보면서 서로 배우고 교류할 수 있다. 현재 예산상의 문제로 작가들을 직접 초대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스폰서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 작가들에게도 참여의 장을 열어놓고 있다. 올해는 캄보디아의 선거 때문에, 페스티벌이 열리는 장소가 협소해서 힘들지만, 내년부터 가능할 것이다.


얼마 전 촉망받던 중국 작가인 렌 항이 자살했다. 그의 죽음에는 동성애, 섹슈얼리티를 가감없이 드러내던 그의 작품세계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중국정부의 압력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분석이 있다.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 국가의 작가들이, 동성애나 누드 등의 민감한 소재를 다룰 경우, 사회적으로 제재 받는 분위기가 있는가? 
동성애에 대해 말하자면, 태국은 그런 부분이 없다. 태국은 일단 작은 도시에서도 일상적으로 동성애자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태국은 연극 문화가 발달했기에, 이런 부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캄보디아의 경우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예전의 경우에는 안 좋게 봤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 프놈펜에는 최근 게이나 레즈비언들을 위한 바들이 있는데 이런 바들은 아직 공식적이지는 않다. 5년 전만 해도 이런 바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드 작업 같은 경우 그들의 일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엄밀하게 누드는 그들의 문화가 아니다. 특히 불교국가 같이 종교가 강하게 영향 끼치는 지역에서는 그런 작업들을 보기 어렵다.


 
Maika Elan
베트남 출신의 Maika Elan은 베트남의 동성애 커플의 일상을 촬영한 〈The Pink Choice〉 프로젝트를 작업했다.
이 시리즈로 그녀는 2013년 월드프레스포토(World Press Photo)와 프라이드포토어워드(Pride Photo Award)에서 수상했다. 
 
 
Mak Remissa
캄보디아 출신의 Mak Remissa는 킬링필드의 생존자로, 그때 가족을 대부분 잃었고, 40년 가까이 그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작가는 종이를 오려 자신의 유년시절 기억하는 장면들을 재현했고 담배연기를 통해 전쟁터의 화약 연기를 묘사했다. 
 

 

우리가 동남아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캄보디아의 작가들은 세계 미술시장과 교류가 거의 없지만, 때문에 외국 문화에 의해 영향 받지 않고 그들만이 가진 문화나 정체성이 뚜렷해졌다. 캄보디아 작가들에게는 섬세하고 강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문화가 자리잡혀있다. 이는 미적인 부분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들 특유의 문화적 특성과 미적 감수성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또한 미적인 부분 이외에도 그들의 사회와 정치적인 면을 다루는 작업들이 많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종종 보이는, 일종의 장식품(decoration) 같은 사진들을 이곳에서는 오히려 찾기 어렵다. 


캄보디아는 크메르루주(Khmer Rouge) 정권하에서 전 인구의 1/4이 살해당했다.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동남아 지역은 근현대사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런 역사가 이 지역 사진작가들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캄보디아의 경우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모든 이들이 개인적인 감정이나 의견을 표현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인구의 1/4 이 죽었다. 캄보디아 작가들, 특히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캄보디아 작가인 마크 레미사Mak Remissa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는 어린 시절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가족을 잃고 무장 세력의 캠프에서 자랐다. 그는 아버지와 4명의 형제, 3명의 친족을 킬링필드 학살 때 잃었으며, 이것은 이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캄보디아의 일반적인 이야기다. 이 작가는 40여 년간 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종이를 오려 기억 속의 킬링필드 상황들을 재현했고, 담배연기로 그 때 날리던 포탄, 총탄의 연기를 표현했다. 이렇듯 전쟁, 학살 등의 역사는 직간접적으로 이후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준다. 
태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조금 상황이 다른데, 메콩강 유역의 나라들 중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고, 서양과도 일찍 문물을 주고받았기에 태국 작가들은 자유롭게 주제를 다루며, 다양한 문화교류를 통해 자신들만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켰다. 


동남아시아는 전쟁, 내전 등으로 주로 서구권 사진기자들의 취재 지역, 즉 찍히는 대상이었다. 그런 지역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시각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동남아 시장에서 사진에 대해 연구하고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데, 특히 동남아 작가들이 찍는 관점과 보는 관점이 어떠한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예전 에이전트 Vu를 운영할 때, 중국에 사건이 터졌을 때 유럽이나 미국 사진작가가 아니라,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사진작가를 보낸 적이 있다. 외국인들이 보는 관점에서 촬영하는데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작가는 중국인들만이 알 수 있는 문화와, 그들만이 볼 수 있는 관점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외국 작가들이 메콩강 유역을 촬영할 때, 그들은 비주얼적인 면, 이국적인(exotic) 면만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다. 불교 사원의 이국적인 아름다움, 표면적으로 예뻐 보이는 이미지 등을 말이다. 아무래도 문화권이 다른 곳에서 온 방문자의 관점에서는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만약 프랑스 작가가 한국에서 작업을 한다면 한국의 전통적인 소재를 주로 다룰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주제를 아름답게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사진은 단지 아름답고, 예쁘다고만 해서 좋은 사진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장식품에 그칠 수도 있다. 그 이상의 주제를 다루며,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


이번 한국 방문 때 한국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리뷰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보았으며, 어떤 부분이 발전해야한다고 보는가?
한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많은 교류가 있었다. 예전에는 이갑철, 정연두, 이명호의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했었다. 이번 한국 방문 일정에는 시간이 없어서 많은 곳을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미술관이나 대학에서 한국작가들의 작업을 보며 수준이 상당하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많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알리고, 전시에도 도움을 주며, 또 한국에서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들이 부족한 부분은, 구조상의 문제이다. 이들이 세계 시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갤러리와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데, 가령 미술관의 경우 다른 나라의 미술관과 전시를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작가들의 작품들을 알릴 수 있다. 이런 제도적인 보완이 뒷받침돼야한다.


 

Pha Lina
캄보디아 출신인 Pha Lina는 캄보디아 사회에 포커스를 둔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는  Ratanakiri에서 만난 6명의 가족들의 초상을 촬영했는데,
그들의 온 몸에 노란색 줄자를 감았다. 이는 숲 속에서 생활하는 이 부족민들이, 국가의 토지개발정책의 변화로 인해 잃어버리게 돼는 땅을 상징한다.
 
 
Neak Sophal
Neak Sophal은 캄보디아 출신 작가로 그는 소품으로 얼굴을 가린 초상을 통해 정체성의 혼란을 표현한다.
대학살 이후 세대에 속하는 작가는 “우리는 누구인가? 세계화의 대혼란과 피폐한 경제 속에서,
킬링필드 대학살의 트라우마를 가진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얼굴 없는 포트레이트를 통해 묻는다.

 

 
글 석현혜 기자  사진제공 크리스티앙 꼬졸 
해당 기사는 2017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