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도시① : 김중업건축박물관 〈공간기억: 건축을 향한 다섯 가지 시선〉

삶으로부터 “공간”을 바라봤다. 살았던, 살고 있는, 살고 싶은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사진으로 풀었다. ‘건축의 공간, 사진의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공간의 생성과 소멸, 그 사이에 담기는 삶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풀고 있는 <공간기억: 건축을 향한 다섯 가지 시선>전의 작품들, 복잡하고 화려한 도시의 이미지를 반투명하게 해 입체 구조물을 만들고는 역설적으로 그 안의 “텅 비어 있는 공간”으로써 삶의 찰나와 세계의 허상을 표현한 고명근의 “Building” 시리즈, 도시의 이미지를 수없이 채집해 신화와 상상 속의 공간을 새로운 차원으로 만들어 보여준 장 프랑소아 로지에의 “바빌론” 시리즈, 도시의 빌딩을 도식화시켜 도시의 구조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현대 도시의 본질과 삶을 들여다보는 박찬민의 “CITIES” 시리즈를 소개한다.  - 편집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삶의 어떤 이야기들을 담는지 다양하게 살피는 〈공간기억: 건축을 향한 다섯 가지 시선〉전이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하는 김중업건축박물관(관장 김경수)에서 4월 19일부터 6월 23일까지 열린다. 전시는 ‘시간의 켜’, ‘도시 변주’, ‘공간 영혼’, ‘건축 이후’, ‘기억 기록’ 5개 부문으로 나뉘어, 국내외 작가 44명의 121개 작품을 선보인다. 구본창, 김기찬, 방병상, 이주형, 임상빈, 임수식을 포함한 국내 작가 22명의 작품들과 구와바라 시세이, 르네 뷔리, 마틴 파, 앙드레 케르테츠, 이안 베리, 제리 율스만, 칸디다 회퍼, 토마스 루프 등 국외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인테리어 06, 2007, 110×140cm, archival pigment print ⓒ구본창


브라질, 상파울루, 1960, archival pigment print, 80×123cm Ⓒ르네 뷔리(René Burri), Magnum Photos/Europhotos


건축의 공간, 사진의 기억
〈공간기억: 건축을 향한 다섯 가지 시선〉은 공간을 건축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공간이 시간 속에서 담아내는 이야기에 주목했다. 터를 잡아 건축물을 세우고, 그 건축물에 사람이 머물면서 공간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쌓아간다. 짧은 혹은 긴 세월 동안 쌓인 이야기의 무게만큼 건축물은 낡고 허물어져 간다. 그 사이 건축물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각 공간의 이야기는 도시와 사회의 이야기, 나아가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모든 이야기를 〈공간기억〉전은 사진을 통해 바라봤다. 공간의 과거와 현재를 사진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며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미래를 통찰하는, 다양한 사진적 시선들이다.


 


철거현장 01, 2013, pigment print, 120×160cm Ⓒ정지현

대구의 오지, 2016, pigment print, 50.5×76cm Ⓒ권상원

1부 ‘시간의 켜’는 무엇보다 ‘시간’에 중점을 두고, 건축물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건축물이 들어설 ‘터’를 정해 땅을 파고, 건축물을 세운다. 말 그대로 터전을 일구는 것. 세월의 흐름 끝에 건축물은 낡아지고, 낙후된 건축물을 부수어 새로운 터를 다시 만든다. 인간의 문명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건축과 철거 과정을 추적하여 기록한 정지현과 현대 도시 대구 원도심에 남아 있는 옛 건물들을 촬영한 권상원의 작품을 포함해 심치인, 모이세스 사만 등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보통집(삶의 질), 2017, archival pigment print, 100×83.4cm Ⓒ김민주초원


크라이슬러 빌딩, 2007, lamda print, 152×102cm, 아트스페이스J 소장 Ⓒ임상빈, Courtesy of the Art Space J
 

2부 ‘도시 변주’는 현대에서 건축물이 모여 도시를 이루며 겪는 ‘변화’를 다룬다. 개발과 재개발을 통한 급속한 도시화는 물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의 불안과 위기까지 담고 있다. 1960~80년대 한국의 도시화를 기록한 구와바라 시세이와 김기찬의 사진을 포함해 김민주초원이 기록한 중국의 아파트 창밖으로 내걸린 도시민의 생활, 임상빈과 안 준의 도시 뉴욕의 날선 풍경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수많은 빌딩과 그 사이 도로와 인도,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까지 현대 도시를 함축적으로 담은 르네 뷔리의 작품 “브라질, 상파울루”를 비롯해 이안 베리, 마틴 파, 앙투안 다가타 등 여러 작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바라본 도시화의 풍경을 선보인다.
 


몬드리안의 화실, 1926, gelatin silver print, 25×20cm, 개인 소장 Ⓒ앙드레 케르테츠(Andre Kertesz)



무제, 1993, gelatin silver print, 35×27.5cm,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제리 율스만(Jerry N. Uelsmann), Courtesy of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3부는 건축물의 안, 바로 공간 안에 담긴 이야기를 “공간 영혼”이라는 테마로 묶어 다채로운 작품들로 펼쳐 보인다. 공간의 내부에는 생활의 흔적과 삶의 기억들이 담겨 있으며, 그 기억들은 인테리어나 공간 내 사물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작가들은 각기 다른 사진적 태도로써 대상을 사실적으로 촬영하기도 하고, 공간 안에 감정을 투영하기도 하며, 상상을 더하여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공간 내부의 형식미를 아름다운 흑백사진으로 표현한 앙드레 케르테츠의 “몬드리안 화실”과 실내를 배경으로 독특한 상상력을 피워낸 제리 율스만의 사진을 비롯해 토마스 루프와 칸디다 회퍼의 차갑도록 사실적인 사진, 구본창과 임수식을 포함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건축조각 032, 2014, archival pigment print, 170×120cm Ⓒ원범식



TEXTUS 100-1, 2011, 156×125cm, digital c-print, 아트스페이스J 소장 Ⓒ박승훈,  Courtesy of the Art Space J


제4부 ‘건축 이후’에서는 현대 건축과 도시를 다채롭게 재해석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실재의 재현보다는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새로운 건축과 도시의 차원들이다. 건축물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무한히 변화 가능한 것으로 설계하기도 하고, 도시를 한 장의 사진으로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날로그 필름을 이용해 한 공간의 다른 시간을 얽히고설키게 직조한 박승훈의 “TEXTUS”,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현대 도시의 표상을 하나의 건축물에 쌓아올린 원범식의 “건축조각”을 포함해 신병곤, 윤한종, 추영호 등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상록지구-7, 감시, 2010, c-print, 56×70cm Ⓒ박형근



안양 명학시장 2, 2017, archival pigment print, 31.5×60cm Ⓒ진효숙


제5부 ‘기억 기록’은 지역성을 떠날 수 없는 건축의 공간을 ‘안양’이라는 지역을 토대로 보여준다. 전시 공간인 김중업건축박물관이 자리한 ‘안양’ 지역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들로, 하나의 도시와 그곳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안양에 살았거나 현재 거주하는 사진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의미가 더 크다. 2010년 안양의 ‘덕천마을’ 등을 기록한 박형근의 사진은 김재경의 사진과 함께 ‘안양’의 과거를 기억하고, 안양의 ‘명학시장’ 등을 촬영한 진효숙의 사진은 ‘안양’의 현재를 기록하고 있다. 또 안양지역건축사회 회원들의 기록과 활동을 공유해 전시의 지역성까지 넓혔다.
 











〈공간기억〉 전시장 전경


‘건축의 공간’과 ‘사진의 기억’이라는 범주가 큰 주제를 ‘건축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서 풀어낸 이번 전시는 건축의 직선과 곡선을 이용해 전시 1층과 2층을 각각 구성했다. 또 건축(Architecture)과 예술(Art)을 상징할 수 있는 아치(Arch) 형태의 구조물을 이용해 전시의 테마를 공간 설치로 강조했다. 〈공간기억〉전의 전시 커미셔너 진동선은 “건축이 서는 순간 시선이 생긴다. 건축 밖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 건축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시선, 건축 안에서 안을 바라보는 시선. 건축은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이 세 가지 시선을 선물한다. 이 세 가지 시선을 핵심 콘셉트로 작품들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공간기억: 건축을 향한 다섯 가지 시선〉전의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시선들은 결국 건축의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우리 삶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들에 대한 사진의 기억이자 기록들이다. 공간에 깃든 이야기를 바라보고, 살펴보는 것은 우리 삶의 과거,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통찰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실제 ‘지금’ 머무는 공간의 안과 밖에서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유의미하다. 〈공간기억〉전은 공간의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밖으로, 안에서 안으로 향하는 시선들을 통해 ‘지금’의 내 삶을 확인하는 데 유효한 방법을 제시한다.

 
 
글 정은정 기자
해당 기사는 2019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