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쓴 역사 ① 어둠을 관통하는 다큐멘터리사진 〈소리 없는 기억〉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그의 〈역사란 무엇인가?〉 저서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 내렸다. 역사가 이미 일어나 버린 과거의 것이고 고정 불변의 것이라는 통념에 대해 그는 역사란 ‘과거의 사건과 이에 대한 현재의 해석과 담론의 대화를 통해 변화하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란 측면을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과거 일어난 일들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정의 내리는가에 대해서는 현재진행형의 논쟁이 이어진다. 그것은 역사는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이고, 지금 우리의 모습이 왜 이러한가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실로 있었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시대 사진작가들 역시 끊임없이 역사에 대해 묻고 기록하며 파헤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호 스페셜 이슈에서는 제주 4.3부터 현재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본다. 다큐멘터리 사진부터 영상 작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작가들은 카메라를 통해 빛으로 역사를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 편집자 주

 



2010 ⓒ이시우


월제, 1992 ⓒ송동효

침묵2, 1992 ⓒ김기삼

우리는 흔히 ‘승자의 역사만이 남는다’고 말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살아남은 승자만이 자신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사는 한 순간 승기(勝機)를 쥔 자의 뜻대로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끝까지 기억하고 증언하는, 집단 공동체의 힘은 승자의 역사 속에 묻혀있던, 말없는 죽음, 가려진 진실을 끝끝내 드러나게 한다. 사진은 태생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파헤치고 알리는 강력한 매체였고, 이런 다큐멘터리 사진이 갖는 정치적 힘은 또한 사진의 중요한 의무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지나간 과거의 일을 어떻게 다시 현재로 소환할 수 있을까? 〈소리 없는 기억〉전에 참여한 12명의 다큐멘터리 작가들과 제주 4.3을 망보는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낸 유별남 작가의 다큐멘터리 작업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지난 3월 열린 〈소리 없는 기억〉전은 사진으로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이다. 이 전시는 1948년 4.3 사건부터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질곡을 돌아보게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2명이 우리 역사와 한국 사회의 침묵에 대해 표현한 89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4.3, 5.18, 6.10 항쟁까지 우리 역사의 비극에는 항상 국가폭력에 짓밟힌 희생자들과, 그 희생에 대해 침묵시키는 또다른 폭력이 있었다. 12명의 작가들은 이 침묵과 폭력에 대해 사진을 통해 진실을 묻고 있다.

침묵 속에 갇힌 4.3
올해는 제주 4.3 70주년의 해로, 이 전시는 제주 4.3 발발 7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제주 4.3은 1948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광복 이후 제주에 남아있던 친일파 세력과 미군정, 남로당, 국군, 경찰 간의 충돌로 당시 제주 인구의 1/10인 3만 여명 이상이 희생당했다. 1948년 10월 17일 제주지역 토벌 사령관인 9 연대장 송요찬은 “해안선에서 5km 이상 지역은 적성구역으로 간주하고 그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사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한라산 중간산 마을에는 소개령이 떨어져 페허가 됐고, 살기 위해 산으로 숨어 들어간 이들도 토끼처럼 사냥당해 몰살당했다. 그 학살의 터가 제주 곳곳에 남아있다. ‘바다에 둘러싸인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로 변했다. 그러나 4.3의 비극은 반세기 넘게 누구도 함부로 소리내 말하지 못했다. 4.3의 진상은 제주공항이나 다랭이 굴 등 학살의 유해와 증거들이 발견될 때도 공식적 역사로 인정받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침묵 속에 묻혀 있어야 했다.

소설가 김석범은 이 침묵에 대해 “기억이 말살당한 곳에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가 없는 데는 인간의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이 아닌 주검과 같은 존재입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기억을 말살당한 4.3은 한국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입 밖에 내놓지 못하는 일, 알고서도 몰라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기억의 자살’이라고 불렀습니다.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 자신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이쳐서 죽이는 ‘기억의 자살’인 것입니다”고 지적했다. (4.3이 머우꽈? 中)


사진으로 깨는 침묵
강정효, 김기삼, 김흥구, 송동효, 이시우 등 5명의 작가는 이 침묵을 깨고, 잊혀진 영혼들을 추념하기 위해 4.3의 기억과 흔적을 사진으로 집요하게 추적했다. 4.3의 기억은 철저하게 삭제되고 묻혔기에 작가들은 4.3의 주검과 유해들을 촬영하거나, 그 흔적을 쫓고, 생존자를 만나 증인을 기록하거나 혹은 상징적인 이미지로 4.3의 기억을 전한다.

김기삼 작가는 지난 1991년 제주4.3연구소 조사팀이 주민들이 은신하다 몰살당했던 다랑쉬굴을 찾아냈던 현장을 기록했다. 당시 정부는 발굴된 시신을 급히 화장하고, 굴 입구를 바윗돌로 틀어막고 시멘트로 봉쇄해 접근을 막았다. 당시 발굴된 유해와 그 유해의 급작스런 수습과정을 사진으로 담은 김기삼 작가는 “입이 있어도 침묵을 강요당하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나약한 촬영자로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희생자에 대한 죄스러움이 엉켜있기도 하다.”고 회상한다.

김흥구 작가는 헛묘, 말질, 동자석과 같은 상징적인 사물들로 제주 4.3의 아픔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그는 “애써 지워진 것들, 지금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바람과 덩그러니 이름만 적힌 비석뿐이지만, 이 구멍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 다시 현재의 이곳과 현재가 은폐한 얼굴들을 들여다 본다”고 설명한다.

제주 4.3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비로소 4.3을 다시 보기 위한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 4.3 특별법이 제정됐으며,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사과가 있었다.  제주 출신의 송동효 작가는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제주 4.3이 공식적인 논의의 장으로 올라서 마침내 정부의 공식사과를 받기까지,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있었던 추모의 움직임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기록했다. 제주 예술인 중심으로 시작된 제주 4.3 추모제와 유족들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결국 2014년 정부가 4월 3일을 국가 지정 추념일로 공식 지정하는 결실을 맺었다.

이시우 작가는 제주 4.3 때 제주 남로당의 피난장소로 쓰인 큰곶검흘굴을 촬영했다. 단추, 안경, 부러진 칼 등 당시 사람들이 남긴 물건들에 작가는 조심스레 카메라를 들이댄다. 깨지고 짓밟힌 안경을 찍으며 작가는 “아마도 끌려가며 떨어뜨렸을 깨진 안경을 보며 세상을 바로 보기 힘들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라고 적었다.

 


정병하(1921~), 2014 ⓒ김흥구


망월동 4, 1984-2000 ⓒ이상일


 망각기계 #나종기, 2011 ⓒ노순택



4.3부터 5.18까지
이번 전시는 4.3의 기억 뿐 아니라, 이들을 침묵케 했던 그 거대한 폭력이 우리 현대사 여기저기에서 여전히 존재해왔음을 보여준다. 노순택 작가의 ‘망각기계’ 시리즈 1장 ‘죽은 이의 얼굴’은 5.18의 희생자들이 묻힌 망월동 묘역 앞에 놓인 망자들의 사진들을 다시 찍었다. 노순택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이 사진들은 살아있을 적에 찍힌 것이지만, 죽음을 증거하기 위해 망월동 묘역에 놓였다. 눈비와 햇살 아래 다채롭게 훼손된 사진들은 그 죽음의 원인을 상상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있을 적 다채로운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기억은 말하는 것이며 망각은 침묵하는 것일까. 기억은 입 여는 일이며, 망각은 입 다무는 일일까. 어쩌면 망각이야말로 말을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과하고 굳어버린 말들을.”이라고 반문한다.

이상일 작가의 망월동 시리즈도 5.18 희생자의 묘역과 그 곳을 찾은 유족의 슬픔을 주목한다. 그의 사진 속 망월동 묘역에는 ‘망월동의 피울음으로 5월은 계속되고 있다’는 피켓과 체념한 듯 지긋한 슬픔을 물고 돌아서는 유족여성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그처럼 망월동에 묻힌 자들과, 그들을 다시 찾아 눈물 터뜨리는 유족의 모습을 통해 폭력이 끝내 침묵시키지 못하는 한 맺힌 서러움을 묵묵하게 담아냈다.

임종진 작가는 5.18 광주항쟁 고문 피해자와 조작간첩 고문 피해자들이 다시 그 고문 받고 짓밟히던 현장을 찾아 카메라를 들고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전히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그 곳에서 피해자들은 카메라를 꼭 쥔 채 기록하고 있다. 이 때 이 카메라는 그들이 홀로 감내했어야 했을 폭력에 대한 고발이자, 이제는 알릴 수 있다는 회복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박승화 작가는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던 민주화 시위 현장을, 이상엽 작가는 제주 강정마을부터 DMZ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주류의 횡포와 주변부의 저항을, 안세홍은 위안부 여성의 한 맺힌 삶을 각각 보여주며,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거대한 폭력과 그 희생자거나 혹은 맞서왔던 이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김유정 미술평론가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은 현장성을 가짐으로써 역사성을 갖게 된다. 한 장의 사진이 고발하는 사회적 가치는 어떤 장르보다도 높다. 이 사진전에는 모두 12명의 사진가들이 참여했다. 각기 역사적 장소, 사건, 사람, 건물, 나무 등의 대상을 통해 보이지 않았던 실체들에 접근한다. 사실성과 상징성은 존재했던 사실에 접근하는 진실에 대한 고발의 장치이다”(침묵의 세월을 기억하는 묵시의 나날들 中)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4.3부터 5.18을 넘어 현재까지 폭력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침묵해야 했던 아픔을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때론 사실적으로, 때론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이때 사진은 아픔과 침묵을 감싸고 위무하는 초혼(招魂)이자, 긴 어둠의 시대를 관통하며 빛으로 쓴 역사이다. 우리는 이 사진들을 통해 가려진 역사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제주 4.3 평화재단
해당 기사는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