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사진기자



신문사진은 현실과 밀접히 닿아있다. 매일매일 긴박한 사건·사고뿐만 아니라 기자회견, 기념행사 등 예정된 뉴스들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사진기자에게 사회에 관한 관점, 해석능력 못지않게 위험한 현장에 기꺼이 갈 수 있는 용기와 빼곡한 스케줄을 소화해낼 수 있는 체력이 요구된다. 이런 이유에서 신문 사진기자의 90% 이상이 남성들이다. 하지만 남성들도 힘들어하는 사진기자란 직업을 당차게 수행하는 여성사진기자들이 있다. 「사진예술」은 사진의 제 분야에서 비록 소수지만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중앙일보 장진영 기자, 한겨레 신문 백소아 기자, 서울신문 박윤슬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장진영 | 너무도 평범해서 소중한 이야기

장진영 기자가 소통하고자하는 신문사진에는 분명히 감정이입이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사진은 독자가 몰입하게 된다. 그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지, 사진기자로서 활동하면서 에피소드, 어려운 점, 사진작품 등 여성 사진기자로 취재하면서 느낀 소회를 듣기 위해 만났다.

최근 SNS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존의 신문사진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편집기자가 선정한 올해의 사진상’을 수상한 사진기사인 ‘민혜경 만신’에서도 고민의 흔적이 보입니다. 부감으로 촬영하고, 사람과 도구들을 눕히는 연출 등으로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했습니다. 이렇듯 새로운 신문사진의 방향에 대해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지면과 온라인의 차이는 사진의 컷 수 제한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면은 한 장으로 대부분 승부를 본다면, 온라인에서는 사진 수량의 제한이 없어요. 오히려 이러한 부분은 지면 매체의 한계가 해소되었죠. 하지만, 지면보다 온라인을 다루는 것이 시간 소요도 많고, 아이디어 발굴 등 들어가는 노력이 더 커요.
저는 유의미한 기사를 다루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유명인이 아니고, 우리 주변의 이야기인데 아주 살짝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너무 잘난 사람보다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 혹은 굉장히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더라 하면서 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진기자이다 보니, 사진에 대한 고민이 더 클 수밖에 없는데요, 사진 한 장에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눕터뷰’를 진행했어요. 누워서 이야기하면 편한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법,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 등 온라인으로 인해 저의 무기가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상작 이외에도 기자님의 많은 신문사진은 프레임에서 감정이입이 느껴집니다. 장진영 기자만의 접근 방법이 궁금합니다. 또한, 기자의 관점에서 사진 기사가 특정 사회의 문제에 어떠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까?
그간의 취재방식에는 틀이 정해져 있었어요. 인물사진을 찍을 때는 정면 컷, 왼쪽 컷, 오른쪽 컷 찍어야 하는 것과 같이요. 그리고 기사는 취재기자가 담당하며, 사진은 사진기자가 담당하기 때문에 처음 기획부터 끝까지 흐름을 갖고 가기 쉽지 않았죠. 하지만, 전체의 기사를 담당하게 되는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급한 성격의 제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어요. 그 이후부터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잘 듣고 있으면 물어보지 않은 것도 답이 들리고, 잘 보고 있으면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장면들도 자연스럽게 보이면서, 기존의 틀에 맞게 찍기 위해 요청해서 촬영하는 것보다 더욱 극적인 장면들이 발견되었죠. 그런 점들을 기록하지요.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것에 있어서, 대상에 애정을 갖고 바라보지 않으면 한 글자도 못 쓰고, 카메라의 셔터가 눌러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피사체의 말에 귀 기울여 그의 삶으로 훅 들어갔기에 원하는 앵글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의 관점이 사회문제에 차이를 만드냐는 질문에서는, 최근에는 모두가 좋은 카메라를 갖고, 기자보다 일반인들이 훨씬 더 빠르게 현장에 접근이 가능하며, 단독보도, 특종도 사라지면서, 사진기자의 위치가 더 이상 스페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마음가짐에서 차이를 만듭니다. 지나가다 마주한 현장을 찍는 일반인들과 달리 적어도 사진기자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를 매일 고민하는 그 치열한 감정이 담겨있어야 해요. 그것은 사진기자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자세이기도 하죠. 독자가 보기에 차이를 느끼게 하려면, 더 치열하게 어떻게 접근했는가, 귀찮게 해서 누구를 파고들었는가 인 것 같아요.

기자님께서 취재한 사진기사 중에 가장 자랑스러운 혹은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에 관한 에피소드도 있다면?
저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 만나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기억이 나요. 그럼에도 가장 두드러진 기억이 있다면, 제가 상을 받고, 결과물도 매우 만족스러웠던 ‘민혜경 만신’입니다. 촬영을 가기에 앞서, 두려움이 먼저 들었어요. 나를 꿰뚫어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두려움이 들었죠. 하지만,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으니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갈 정도였죠.
그리고 두 번째로 기억나는 작업은 패럴림픽 선수들입니다. 패럴림픽이라 하면 소위 주목받지 못하고, 순위권에도 갈 수 없는 선수들이 나오죠. 그들이 왜 그렇게 죽을 듯이 열심히 경기를 치르는지 그 마음이 궁금했어요.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나니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이 기사는 저의 시각적 접근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은 계기가 되기도 했죠. 대개 사람들은 1등, 주목받는 스타들의 이야기에 익숙하고, 계속해서 그러한 이야기만 쫓고, 또 전파력도 높죠. 패럴림픽을 통해서 이러한 유명세를 타는 이야기보다 저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10년도 더 전에 인터뷰를 진행했던 마산의 할머니가 있어요. 당시 70대였으며, 의류를 만들어 봉사를 하셨는데, 어느 날 문득 그 할머니가 궁금했어요. 찾아보니 지금도 여전히 그 봉사를 이어오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91세가 된 할머니를 2~3년 전에 찾아갔죠. 그 연세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봉사를 하고 계셨어요. 박진감 넘치는 현장, 더 스트레이트한 현장도 많이 다니지만, 나와 함께 호흡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아요.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는 시간보다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사진기자는 매우 힘든 직업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직업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나 동기가 있을까요? 그리고 사진기자로서의 갖추어야 할 점과 지향하는 정체성에 대해 의견을 여쭙니다.
먼저, 사진기자가 거친 현장을 다닌다고는 하지만, 17년 동안 근무하면서 단 한 번도 출근하기 싫었던 적이 없을 정도로 즐거워요. 매일 출근하면, 그날의 일정을 받아 보는데,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삶에 감사하죠. 이런 말하면 사람들이 믿지는 않더라고요.(하하) 저의 직업 선택은 굉장히 시기가 적절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대학시절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만들지 않았어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으로 출판사에서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또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이 지금의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죠. 다큐멘터리를 전공했고, 패션스튜디오에서의 어시스턴트 경력 등이 잘 맞물렸던 것 같아요. 사진을 대하는 본질적인 면들은 대학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저의 쓰임은 적절하게 쓰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진기자로서 갖추어야 할 질문의 경우, 대답하기 참 쉽지는 않네요. 하지만,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있어요. 상식과 양심의 선을 넘지 않는 것,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제가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지표이며, 이 직업에서 지켜야 할 절대적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항상 잃지 않으려 해요.

남성이 대다수인 ‘사진기자’라는 직종에서 여성 사진기자의 역할과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아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기자 세계에는 남자도 여자도 없어요. 단지 사람만 있죠. 방송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기자에 대해 고착화된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도 않아요. 분명 일반인보다 먼저 정보를 접하고, 다른 경험을 하지만 사람이잖아요. 회사도 조직이고 성의 경계는 일반 조직과 다를게 없습니다. 아! 분위기는 거친 현장을 다니다 보니 다소 마초적이라 할 수 있어요.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굉장히 강해요. 선배가 후배를 챙기면, 또 언젠가 그 후배가 선배가 되어 새로운 후배를 챙기고, 이전의 선배가 해준 것처럼요. 그 가운데서도 기자 개개인으로는 굉장히 수평적이에요. 성의 경계는 서로 조심하되 개개인은 수평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장진영 사진기자가 ‘민혜경 만신’을 만나러 갈 때의 기분이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거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사진기자인 만큼 그 기가 세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갖고 만났다. 그는 스스로 언급했던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고, 그가 인터뷰이를 만나 귀 기울여 들었던 것처럼 나 역시 경청하니, 더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기사 하나 하나에 얼마나 많은 진심이 담겨있는지 느낄 수 있었으며, 그의 신념과 따뜻한 접근 방식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백소아 | 따뜻하고 정의로운, 백소아의 시선

사진 기자가 해야 하는 업무는 사진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사진 촬영의 기본이다. 촬영 기획에서부터 뉴스에 대한 자각, 촬영 현장에서 순발력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직관력까지, 사진가라면 함양해야 할 덕목이다. 이 모든 것은 촬영 경험과 비례해서 쌓이는 것인데, 더욱이 기자는 세상의 신호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안테나까지 탑재해야 하니, 사실상 기자가 되는 길은 지난한 여정이 아닐 수 없다. 일간지에서 남성 사진기자 비율이 높은 이유도 현장에서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해야 할 여러 난제 때문이리라. 그런 가운데, 눈에 띄게 주목받는 몇몇 사진 기자도 보인다. 그중 한겨레신문의 백소아기자를 꼽을 수 있다. 첫눈에 들어온 백소아기자의 모습은 헐렁한 덤덤함과 조심스러운 경쾌함이 공존하며 눈에 띄지는 않게 궁금증을 유발했다. 필자는 독자가 궁금해할 질문 속에 속내를 심어가며 마구 질문을 던졌는데, 역시 현답을 쏟아 낸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사진 기자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현장에서 취재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사진이 재밌어서 사진학과에 진학했고 졸업하고 나서도 사진이 가장 재밌다고 느꼈습니다. 대학 시절 특별히 취업 준비를 하거나 소위 말하는 ‘언론고시’를 준비하지는 않았어요. 졸업한 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아시아경제’ 인턴기자를 지원했고, 3개월의 인턴, 1년의 수습 기간을 거쳐 사진 기자가 됐습니다. 힘든 것보다 취재하러 현장에 나가는 것이 그렇게 재밌었어요. 어찌보면 사진기자란 직업을 현장에서 배웠고 새로운 사진의 매력을 만났습니다.

올해로 기자 생활 10년 차에 접어 들었나요? 강산이 변하고, 본인도 충분히 변화했을 것 같아요. 좌충우돌 많은 경험도 했을 것이고. 현장에서 치러야 할 예측불허의 사건 사고 등, 촬영하면서 닥치는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다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 부탁드립니다.
아...아...아직 9년 차라 주장하고 싶습니다. 10년 차가 되면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큰 착각이었습니다. 언제나 취재현장은 어려워요. 많은 사진기자가 취재현장에 가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합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그러면 그에 따라 어떻게 찍을지를 미리 그려보는 것이죠. 이 과정을 여러 번 하다 보면 나름의 예측불허에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여유가 있는 현장이라면 잠시 취재를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지만 빠듯한 현장일 때는 함께 취재하는 사진기자 동료들을 봅니다. 그러면 무엇을 찍을지 어렴풋이 감이 오죠. 같은 현장에 있는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배울 것이 많은 스승이기도 합니다.

취재 활동에서 기억에 남는, 혹은 잘했다고 생각하거나 독자로부터 반응이 많았던 기사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올해 초, 2021년 1월 18일에 취재한 기사입니다. 갑작스럽게 많은 눈이 내린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거리 노숙인에게 자신의 방한 점퍼, 장갑을 벗어주고 있었어요. 노숙인은 ‘그냥 주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 했고 시민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질문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함박눈 녹인 온정” 사진입니다.
두 번째는 2015년 1월부터 6월까지 “5분 지각한 경제부총리”를 촬영한 사진이에요. 6개월 동안 늦었다는 것은 습관이지요. 16일 취임 1주년이 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제조타수를 뚜렷한 경제 방향 없이 자신의 습관처럼 5분씩 늦게 방향키를 돌려 작금의 한국경제를 만들었습니다.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를 약속한 최 부총리가 시간 약속부터 지키는 모습을 기대해 보았습니다. 사진의 왼쪽부터 1월 20일 대외경제장관회의(이하 대외)를 시작으로 1월 21일 경제장관회의(이하 경장), 3월 20일 경장, 4월 7일 대외, 4월 8일 경장, 5월 7일 경장, 5월 8일 대외, 5월 21일 경장, 6월 17일 경장, 7월 2일 경장입니다.
세 번째는 “위안부 보고서 55, 할미꽃 소녀들, 2014년 봄 그리고 여름”입니다. 2014년 현재 위안부 생존자는 국내 50명, 해외 5명 총 55명입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역사이고 시들어서는 안 될 꽃송이들이죠. ‘김양주 할머니’는 치매 때문에 집안에는 잡동사니와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쌓여있었어요. ‘길원옥 할머니’가 가족사진을 보며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효순 할머니’는 노인병원 7인 병실에 있는데, 할머니는 2012년 이후 한 번도 병원 밖에 나간 적이 없습니다. ‘박숙이 할머니’가 봉숭아 물을 들인 두 손을 보이며 소녀처럼 웃고 있죠. 할머니는 몇 해 전 한글학교에 다니면서 그렸던 그림들을 보여주었어요. 할머니의 그림은 꽃이든, 곤충이든 모두가 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옥이 할머니’가 집 앞 평상에 앉아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으며, 인터뷰 내내 신나게 이야기를 하시던 할머니는 아쉬우신 듯 울상을 지었습니다. 병실 한편에 놓인 난화분을 바라보고 있는 ‘김복득 할머니’는 꽃다발보다 화분이 좋다고 하세요. ‘김복동 할머니’가 천천히 담배를 피우면서 지나간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냈어요. 인터뷰 초반 “했던 얘기 또 물으면 짜증 나지 않겠냐”며 인상을 쓰시던 할머니는 이내 시간이 지날수록 흘러간 세월과 다가올 세월을 이야기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2020년 4월 1일에 취재한 “코로나도 막지 못한 100m 손자 사랑”입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지역 교민과 주재원 등이 1일 오후 전세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었어요. 딸과 손자가 외할머니를 향해 하트를 그리고 있어요. 이들은 출국장문에서부터 버스까지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통제선을 사이에 놓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할머니, 잘 갔다 올게”라는 손자의 씩씩한 인사에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입국자들은 입국 직후 전원 특정 시설로 이동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습니다. 여기서 모두 음성 반응이 나오면 자가 격리로 이어지고, 한 명이라도 양성 반응이 나올 경우 전원 14일간 시설 격리됩니다.

서울역대합실, “노숙인과 신사” 사진으로 유명해졌습니다.(웃음) 그 사진을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걸까요?
아마 사람들이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 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연일 계속된 한파, 거기에 경제도 어려워져 어느 때보다 몸도 마음도 추운 겨울이었어요. 감사하게도 이 사진이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된 거 같아요. 유명한 사람이나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과 일상의 공간에서 찍힌 따뜻한 모습이어서 더욱 가깝게 느낀 게 아닐까요. 아, 그날 펑펑 내렸던 눈도 빼놓을 순 없는 것 같습니다.

사진기자가 되려는 후배들에게,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는 팁을 준다면요?
백 : 제가 좋은 기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렵습니다. 스스로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사진기자를 꿈꾸는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일단 도전 하세요’ ‘스펙이 안 된다고 전공자가 아니라고 미루지 마시고 기회가 있다면 일단 시작하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매체가 다양한 채용과정을 가지고 있어요. 꼭 시사상식시험, 논술시험을 거쳐야 기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평소에 보도사진을 보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해당 사진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추천합니다. 온라인 기사나 지면 기사에는 항상 그 사진을 찍은 기자의 이메일 주소가 있기 때문이죠. (생각보다 많은 사진기자들이 기자가 되기 전 이런 방법으로 조언을 구합니다.)

(위 질문에 이어) 사진기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로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요?
매번 바뀝니다. 지금은 ‘관찰력과 끈기’를 꼽고 싶어요. 사진은 눈에 보이는 것을 찍는 것이지만 좋은 관찰력을 가진 기자들은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찍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능력은 사진기자에게 큰 장점이죠. 그리고 취재현장에서 상황이 끝날 때까지, 혹은 본인이 원하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끈기도 필요합니다.

한겨레신문사는 사진기자가 활동하기에 어떤 회사입니까? (솔직한 답변이 궁금합니다. ‘좋다, 나쁘다, 괜찮은 것 같다’라는 답변 말고 좀 더 상세하게 회사 분위기 등 …)
2012년에 아시아경제에 입사해 2017년 한겨레신문으로 이직했습니다. 그때 한 사진 기자 선배가 축하 인사를 건네며 했던 얘기가 기억나요. “한겨레신문은 사진기자라면 꼭 한 번 욕심 내는, 가고 싶은 곳이다” 그 말의 뜻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단 신문사진에 대한 가치를 높게 인정해주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요. 콜라주 기법으로 인물을 표현하기도 하고, 오브제로 사회문제를 표현합니다. 중요한 사진이라면 신문 앞뒤를 터서 쓰기도 해요. 사진 기자 개개인의 관심 분야를 존중해 주는 분위기도 좋습니다.

종이신문을 보는 일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신문 시대에 조응하기 위해서는 ‘기사를 잘 작성하는 사진기자’가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부캐’로 사진작가로 활동할 수도 있고요. 본인의 욕망이 궁금합니다.
아직 ‘부캐’를 생각할 만큼 능력이 되지 않아요. 사진도 잘 찍고 글도 잘 쓰는 선후배들을 보면 ‘난 아직도 멀었구나’ 싶습니다. 지면이든 온라인이든 좋은 사진을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게 내 욕망입니다.

백소아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날은 마침 기자가 비번인 날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어디로 가냐는 필자의 물음에, ‘석간마감을 한 동료를 만날 거라고’, 목인사를 가볍게 한다. 필자의 눈엔 무거워만 보이는 백팩이 기자의 등에서는 가볍게 출렁이는 듯하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든든함과 안도감을 느낀 지 오래였는데, 백기자가 필자에게 선뜻 보여주었다. 진지하고 발랄하고, 뚜렷한 소명과 직업의식을 갖은 ‘백소아’의 멋진 기자 생활을 응원한다.




 



박윤슬 | 소망을 담은 셔터, 세상을 바꾸는 사진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정치, 사회, 연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갖가지 이슈가 쏟아진다. 그 현장에는 사진기자가 있다. 현장을 주시하는 관점은 사진기자마다 다르고, 사진이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다르다.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을 통찰하고 사진으로 취재하는 서울신문의 박윤슬 기자를 만났다. 그가 들여다본 세상의 기록들은 따뜻한 온기와 예리한 시각이 동시에 느껴진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도 매사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그였기에 그가 들려줄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신중한 언어로 유쾌하게 풀어낸 그의 취재 스토리를 들어본다.

사진기자로서 갖춰야 할 태도나 필요한 자질에 대해 여쭙니다.
신문사 소속 사진기자는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게 됩니다. 기자라고 하면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다 만나 볼 수 있는 직업이다’라고 하는데 사진기자라고 다를 바 없어요. 다만 펜 기자들은 출입처가 꽤 명확해서 부서마다 특정 분야를 담당하게 됩니다. 사진기자는 국회, 청와대 등 일부를 제외하곤 낮은 연차부터 국장급까지 모든 분야에 투입되죠. 따라서 사회 이슈에 늘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좋아요.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떤 이슈로 취재하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 정보에 의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무엇이 야마(기사의 주제나 핵심을 이르는 기자들의 은어)일지 생각해보고 취재에 임해야 소위 말하는 ‘물을 먹지’않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물을 먹다’는 타 신문사들이 찍은 사진을 못 찍는 것을 말해요. 한편 남들이 다 똑같은 곳을 볼 때 다른 시선을 가지고 다른 곳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실 보통 물은 그렇게 먹이거든요.(웃음) 뻔한 사진 속에서 눈에 띄는 사진은 다양한 관점으로 현장을 해석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사건·사고 현장, 시위 현장, 천재지변 등 위험한 현장에도 늘 사진기자는 최전선에 있습니다. 거친 환경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진기자란 직업에는 분명 여러 고충이 있을 거라 짐작됩니다. 사진기자로서 어렵거나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사진기자라는 특성상 위험한 현장에 빨리, 더 가까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을 딱히 고충이라 느껴본 적은 없어요. 다만 비극적인 현장에서 피해자에게 다가갈 때 여전히 어렵고 고민스럽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앞설 때가 있고, 또 한편 사진기자로서 현장을 기록해서 알려야 한다는 직업의식도 있습니다. 수습을 갓 떼었을 때 다양한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특히 세월호 사고는 그런 부분에서 혼란이 많아 어려웠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기자가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기자 생활을 몇십 년 한 선배들도 많은 사건사고를 겪어봤지만 ‘세월호 사고’는 그동안 겪었던 현장 중에서도 손에 꼽을 큰 사고라고 했었죠. 요즘은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레기 소리를 듣고, 욕도 많이 먹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현장을 알리고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기자가 해야 할 일이고요. 다만 선을 넘지 않는 게 중요하겠죠. 그 부분이 참 어렵지만요.

기자님이 폭우로 엉망이 된 재난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 ‘망연자실’이 제57회 한국보도사진전에서 입상했습니다. 사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날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주로 밖에서 일하다 보니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등 상황에 따라 옷차림과 마음가짐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 뿐만 아니라 오늘은 어떤 취재를 하겠구나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날 아침도 관련 뉴스를 취재하게 될 거라 생각은 했었어요. 지난해 여름, 며칠 동안 전국적으로 물폭탄이 쏟아졌었죠. 역대 최장기간 장마였다고 합니다. 전날 경기도 연천 쪽에 큰비가 내렸고 데스크가 현장에 가보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라 내려가면서 관련 뉴스를 찾아봤어요. 그러다 본래 목적지였던 마을로 가는 길목에 다 무너진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진흙탕에 엉망이 된 게 누가 봐도 전날 폭우가 남긴 상흔이었죠. 처음엔 멀리서 지켜봤습니다. 아주머니는 다 망가진 건물을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잔해에 주저앉아 얼굴을 파묻었고, 그 장면을 망원렌즈로 촬영했습니다. 이후 다가가서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봤고 함께 건물 안까지 둘러보며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도 더 찍어서 마감했고요. 신문 특성상 그날 단 한 장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사실 신문 지면에 실린 사진은 이 사진이 아니라 울먹이며 하소연하는 아주머니의 사진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주저앉아서 얼굴을 파묻은 이 장면이 더 신경에 쓰였고, 사진기자협회에서 주관하는 ‘이달의 사진기사’상에 이 사진을 냈습니다. 운 좋게 ‘제57회 한국보도사진전’에서 수상을 했네요.
그곳은 살림집과 목재 가게가 함께 있던 공간이었대요. 밤새 급격히 내린 비에 몸만 간신히 피했다고 하소연했어요. 그러면서 기사로 꼭 내보내 달라고, 그래서 빨리 복구 지원 좀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주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세세하게 내보낼 순 없었지만 아주머니의 망연자실한 모습은 아마 당시 모든 수해민의 막막함과 맞닿아있었을 겁니다.

기자님의 ‘소녀상에게도 우산을’이란 사진도 ‘제25회 신문사진인간애상’을 수상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사진을 포함해 기자님의 다른 사진도 함께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소녀상에게도 우산을’은 수요집회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수요집회는 그 이름처럼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집회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사실 매주 비슷비슷한 행사로 진행되죠. 그래서 이런저런 스케치를 더 많이 촬영하는 편인데 한 학생이 자신의 우산을 소녀상에 씌워주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사실 흔한 스케치 사진인데 ‘인간애상’이라는 주제에 맞아서 운 좋게 수상한 것 같아요.(웃음)
‘코로나 교민입국’은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 초기,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교민들에게 우려스러운 시선이 많을 때입니다. 전세기를 동원해 교민들을 입국시켰지만, 곧바로 격리시설로 가야만 했죠. 교민들을 싣고 격리시설로 가는 버스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보통 버스 내부가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는데, 이때는 한 아기가 창밖을 보고 있었어요.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방역복으로 무장한 의료진과 한 프레임 안에 두고 촬영했습니다.
‘광화문 바닥분수’는 <코로나로 사라진 여름, 사라진 동심...마스크 벗을 날이 올까요.>란 주제의 다큐멘터리 사진 중 하나입니다. 광화문 바닥분수는 대표적인 공원 바닥 분수지만 올여름은 운영이 중단돼 마른 땅이 되어버렸죠. 사라진 분수와 함께 아이들도 사라졌습니다. 코로나로 여름의 추억을 뺏긴 아이들에게 어서 여름 이야기를 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기자를 꿈꾸는 미래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나 준비과정의 팁이 있을까요?
다양한 전공자들이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사진기자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한 건 아니에요. 공채를 통해서 언론사의 일원이 됩니다. 다만 일반회사처럼 (흔하진 않지만)일부 언론사에서 인턴을 모집하기도 합니다. 공채시험은 회사마다 다른데, 토익 등 기본 점수를 요구하는 곳도 있고, 일차적으로 기본시사상식과 논술, 작문, 기사 쓰기 등의 필기시험을 보기도 해요. 실기시험은 현장에서 주제를 주고 사진 취재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서류는 시험점수나 기본 자격증은 사전에 준비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필기시험은 평소에 뉴스 등을 통해 시사상식과 이슈를 익혀놓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사진은 적어도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이해해야 할 거고, 일반적으로 예쁘다고 하는 사진과 신문사진은 다르기 때문에 신문사진을 많이 보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 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박윤슬 기자는 밤낮없이 바빠 보였다. 야근과 주말 출근까지, 그는 항상 ‘일하는 중’이었다. 수시로 보낸 문자와 전화가 귀찮을 법한데 그는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언제나 친절했다. 그런 박윤슬 기자에게 사진기자로서 지향점을 물었다. 답변은 간결하고 분명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세상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면 뿌듯하겠죠. 작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사진을 찍고 기록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더 좋은 사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는 이리도 바빴나 보다. 박윤슬의 사진과 그가 남긴 발자국이 더 나은 세상의 양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해당 기사는 2021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