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용 | 시간과 기억의 보물창고


사진발명 초창기인 19세기 대형카메라들은 이주용 작가가 애지중지하는 수집품들이다.


작가에게 작업실은 작업을 품는 그릇이다. 그 안에서 사유하고 고민하며 치열하게 자신과 싸운다. 그래서 때로는 밤을 하얗게 밝히고 새벽을 맞이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문득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환호성을 지르며 벅찬 심장의 소리를 듣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를 온통 품어주는 우주가 되었다가 길을 잃어 헤매는 미로가 되기도 한다. 이 달부터 새로 연재를 시작하는 ‘작가와 공간’은 작가의 정신과 결이 담긴 작업 공간을 통하여 작가를 만나보자는 의미다. 그 첫 번째로 이주용 작가의 평창동 작업실을 찾았다.

 





1층에 설치된 홀로그램 랩과 홀로그램을 이용한 작품.




꿈꾸는 역사, 홀로그램 설치, 1999 ⓒ이주용

 


사진박물관같은 작업실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평창동 위쪽에 위치한 이주용 작가의 작업실은 사진의 초창기 다게레오 타입의 대형카메라부터 은판초상사진 등 귀중한 사진자료들이 가득하여 작업실이라기보다 사진박물관에 들어선 느낌이다. 3층 건물의 공간에 오르내리는 계단까지 빼곡한 수집품들이 이주용 작가의 작업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귀띔해준다. 그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20대 청년 시절부터 골동품 같은 오래된 사진과 카메라를 열심히 수집하고 보관해왔던 결과가 수십 년 후 오늘의 작업으로 발현하여 풍성한 작품으로 결실을 맺어가는 것을 보면, “그에겐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창동 이전에 이주용 작가의 첫 작업실은 1993년 용인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의 창고를 개조한 곳이었다. 거주지가 서울인데도 시골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홀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랩으로 특성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홀로그램을 제작할 때 외부의 진동 발생을 초기에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서울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면서 조용한 용인의 시골 마을을 선택한 것이다. 그때가 유학에서 돌아와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홀로그램 작가로서 기업이나 엑스포 등에서 홀로그램을 이용한 프로젝트를 맡아 활발하게 작업하고 홀로그램 사진작품을 선보이던 무렵이었다.

작가는 시골의 한적한 곳에 홀로그램 광학 테이블을 설치한 그곳이 국내 최초의 홀로그램 작업실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바크롬 컬러 확대인화, E-6, C-41 필름현상이 가능한 현상기도 설치해서 전문 랩에 현상의뢰를 하지 않고 직접 컬러, 흑백의 인화와 현상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대형 촬영이 가능한 조명 장치와 스튜디오도 설치했다. 당시에는 그곳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작업실을 설계한 것. 그러다보니 텃밭에 다양한 작물도 재배했고 사슴과 4마리의 반려견을 키우기도 했다. 필자도 당시에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한적한 시골에 엉뚱하게도 최첨단의, 당시엔 설명을 들어도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홀로그램 사진을 한다는 것이 참 생경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2000년 초부터 서울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작업실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지금은 고인이 된 전수천 작가를 만났다고 한다. 그분이 평창동에 작업실을 새로 건축해 오픈 초대를 하면서 평창동을 강력 추천했던 것. 결국은 전수천 작가와 서로 마주보이는 지금의 평창동 집으로 작업실을 옮기게 되었다.


 

그의 수집품 중에는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은판 초상사진들이 많다.


3층 작업실 밖으로 평창동과 그 일대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작업실은 또 다른 작가의 초상
용인의 시골에 최첨단 작업실을 꾸민 것도 특이했지만 평창동 작업실 또한 그 이상으로 독특했다. 집 자체가 경사진 비탈에 매달려 경사로의 윗길과 아랫길 사이에 위치하면서 윗길에서 옥상으로 들어오는 대문이 있고 아랫길에서 3층 건물로 진입하는 대문이 있다. 이에 따라 집주소가 두 개다. 아랫길에서 대문을 열면 3개 층 높이의 계단을 올라와야 집의 현관이 나타나고 현관 안으로 들어서면 3층 건물의 내부가 나온다. 이게 끝이 아니다. 3층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또 옥상 주차장으로 통하는 계단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계단으로 따지면 총 8층 높이다. 이사 와서 처음에는 아랫길 대문으로 들어와 올라가더니 지금은 윗길 대문으로 들어와 아래로 내려간다.

접근 방식은 이상한 집이지만 측면과 전면 통유리로 내다보는 창밖 풍경은 일품이다. 평창동 동네와 그 너머 인왕산과 북한산이 보이는데 눈이 내려도 비가 내려도 절경이다.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내려야 하는 수고를 상쇄하고도 남는 풍경인데다 암반지대라서 진동이 없어 홀로그램 랩을 설치하기에 무리가 없으니 이주용 작가에겐 ‘딱’이다. 1층은 홀로그램 랩, 2층은 책 보고 일하는 곳, 3층은 수집품을 보관하고 연구하는 기능을 한다.

“어느새 거의 20년이 되어가요. 작가로서든 개인으로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같이 해온 곳이죠. 좋은 일, 슬픈 일 뿐 아니라 작업의 고민도 이 공간에서 같이 해왔습니다. 개인으로서 혼자 감내하거나 담아내야만 하는 모든 것들을 아마도 이 작업실은 유일하게 알고 있을 거예요. 작가와 함께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고 있으니 아마도 나의 작업실은 앞으로 나의 작업에 관련해서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나에게 은유하거나 암시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거운 짐을 같이 나르고 있다고 믿어요.”

이주용 작가는 수집과 발굴을 통하여 지나간 역사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현재화 하는 작가다. 그가 작가로서 전환점을 이룬 2016년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천연당사진관》은 그가 수집하여 수십 년간 동거해온 19세기의 빈티지 카메라가 없었다면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카메라를 통하여 1900년대 초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진술이 들어왔던 시기를 재현했고, 당시의 사진술이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어떤 역사적 의미로 작동했는지를 탐구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천연당사진관>프로젝트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발전하여 2018년에는 역사적인 그때 그곳의 장소성과 현장성을 시각화하면서 서사를 만들어가는 <항해1> 프로젝트로 진화했다. 그 프로젝트는 인천항에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한국과 중국이 역사적으로 중첩되는 공간과 시간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업들이 전시장을 떠나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극장에서 선보였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의 전시인 인천 미림극장의 《극장 디오라마_환대의 장소》프로젝트도 그 일환인데 이 전시에 앞서 청계천의 바다극장에서도 《극장 디오라마_푸른 바다가 붉게 물드는 사유》를 개최한 바 있다. 결국 평창동 작업실은 작가에게 한없이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실타래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약속, 한라에서 백두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장면, 2021


극장 디오라마_환대의 장소, 미림극장, 양키시장 전시장면, 2022


항해 2, 호랑이를 죽여라展, 선광미술관 전시장면, 2021


보더리스 사이트, 극장 디오라마_장소, 사물의 기념비, 문화역 서울 284 전시장면, 2021
 


시간성 장소성 역사성
이주용 작가는 매우 다양한 면모를 가진 작가다. 그는 최첨단의 과학사진에 흥미를 갖고 홀로그램의 영역을 독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진의 역사에 충실한 아날로그 사진에서도 독보적이다. 철저하게 존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는 암실작업에 열중했고 사진사를 꿰뚫는 한편, 사진발명 초기의 카메라와 초상사진 등을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예술사진을 지향하는가 하면 또한 역사의 궤적을 따라 현재로 이어지는 삶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성격의 사진방식으로 작업한다. 언뜻 보아도 서로 모순되거나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요소들을 작가는 능숙하게 한데 뭉뚱그려서 한 편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업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최근 3년여 동안에 극장을 무대로 펼쳐 보인 《극장 디오라마》는 한 편의 영화 같은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청계천 바다극장, 인천의 미림극장에서 이미 선보였고, 다음엔 광주극장과 마닐라 타임스극장에서 판을 펼칠 것이라는데, 이 극장의 특징은 대부분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곧 사라져버릴 퇴락한 장소라는 것이다. 한때는 문화와 교유의 장소였을 오래된 극장의 장소성에 천착한 작가는 자신의 <항해> 프로젝트와 유사성을 갖고 있는 장소를 물색한 것이다. 인천의 미림극장은 한때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애쓴 양키시장과 연결된 공간으로서 인천항을 떠나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이어지는 항해 프로젝트가 닻을 내리기에 적당하다.

그의 최근 작업들을 보면 박물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역사의 한 조각을 단초로 하여 역사의 저편에 있는 장소로 항해를 떠나는,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역사의 한 조각을 찾아내 복원해내는 시간의 추적자 같다. 깊은 우물에 줄을 내려 물을 긷듯 과거에 두레박을 내려 현재가 된 과거를 끌어올리는 그의 작업은 상당 부분 평창동 작업실의 귀중한 수집품들에서 출발한다. 단순한 수집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아카이브는 오랜 시간을 뚫고 작품으로 개화하고 풍부한 서사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작가에 있어서 작업실은 그 작가의 개인적 성향뿐만 아니라 작업의 성격을 규정짓기도 해요. 작가가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필요조건들이 작업실 공간에 그대로 녹아 있어서죠. 소위 작품이라고 일컫는 결과물보다도 작업의 과정을 가장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에 작가와의 관계성을 이해할 수 있는 원형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업실의 역사는 그 작가의 작업 맥락의 흐름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이주용 작가의 작업실 커다란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석양이 참 곱다. 곧 해가 넘어갈 인왕산의 자락도 아직 추운 바람 속에 있지만 봄의 기운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여기서 창밖을 보면 하루해가 저물고 한 계절이 가는 것을 체감할 수밖에 없겠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 서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의 작업실 곳곳에 있는 100년 전, 150년에 살았던 사람들의 초상사진을 바라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까? 기나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비록 한 순간일지라도 여기, 머물렀음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긴다면 오늘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 같다. 그의 평창동 작업실은 이주용 작가에게 영감과 사색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청작의 보물창고다.


 

<천연당사진관> 아트 프로젝트, 인물, 틴타입 핸드 컬러링 ⓒ이주용


인물사진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과거의 사진을 실마리로 시간을 추적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주용(1958-)은 중앙대와 미국 브룩스대학 사진학과 출신으로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홀로그램 전시를 보여주었고 항상 새로운 보여주기 방식으로 기록과 기억을 채굴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작업과 관련된 3권의 책 『유예된 시간을 기념하다』(2018), 『천연당 사진관 Workbook 1편, 2편』(2016, 2017)을 출판했다. 프랑스 말리코트 사진 박물관, 철원 양지리 리얼DMZ 등 레지던시 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