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e/상상 ① : Erik Johansson

살아가는 데 있어 상상은 큰 힘이다.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하기에 지루함 속에 재미를 찾을 수 있고, 현실 너머를 꿈꿀 수 있게 하기에 고단함 속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가장 초현실적인 사진들을 완성해가는 네 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동화적 상상과 탁월한 디지털 리터칭을 통해 환상의 세계를 펼치는 에릭 요한슨(Erik Johansson), 사회적 현상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유머와 위트로써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여주는 휴 크레치머(Hugh Kretschmer), 과거의 상처와 오늘의 어긋난 현실을 우주의 별빛과 성운의 이미지로 찬란하게 승화시키는 사타(思他, SATA), 내면의 기억과 감정을 꺼내 현실에서 실제의 풍경으로 만들어버리는 이지영의 상상이 우리를 맞는다.  - 편집부
 
 


Erik Johansson, All Above the Sky, 2017 ⓒErik Johansson



Erik Johansson, Impact, 2016 ⓒErik Johansson



Erik Johansson, Groundbreaking, 2012 ⓒErik Johansson


우리는 종종 판타지 세계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현실 속에서 비현실을 꿈꾸며 살아간다. 에릭 요한슨(Erik Johansson, 1985년~)은 우리의 동화적 상상력을 현실에 그대로 재현해놓는다. 상상을 찍는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이 만들어낸 판타지를 만나볼 수 있는 개인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다. 〈Impossible is Possible〉(6.5-9.15), 불가능을 가능으로, 상상 속 환상의 세계가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다.

상상의 구현
에릭 요한슨은 디지털 리터칭을 통해 현실에서 본 적 없는 그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초현실주의 사진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사진 속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종잇장처럼 찢어지는 도로, 뫼비우스의 띠마냥 왜곡된 마을, 허공에 생긴 문. 어딘가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비현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피사체와 풍경 그리고 소품 간의 경계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실재하는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뛰어난 리터칭 실력과 함께 섬세한 구성에 있다. 에릭 요한슨은 작품의 제작 과정을 모두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자신의 유튜브(Youtube) 계정에서 공개하고 있는데, 영상을 통해 과정을 지켜보면 그저 놀랄 수밖에 없다. 달이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달을 교체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담은 “Full Moon Service”(2017)의 제작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면, 먼저 에릭 요한슨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린다. 그리고 촬영할 장소를 물색하고, 사진에 들어갈 달 모형들을 직접 제작한다. 처음에 그린 그림처럼 화면을 구성하여 촬영하고, 그 후 포토샵을 이용해 100개 이상의 레이어를 쌓아 올려 판타지 이미지를 완성한다. 이미지 구상부터 완성까지, 작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과정이 없다.

그리고 또한 놀라운 것은, 이미지에 사용하는 모든 이미지 소스를 직접 촬영한다는 것이다. 촬영 현장을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세팅하여 사진을 찍고, 사진을 더 꾸미는 데 필요한 소품들은 별도로 촬영하여 이미지에 얹는다. 마지막에 완성된 이미지와 처음 그렸던 그림을 함께 보고 있으면, 작가의 동화 속 세상을 정말 현실로 끌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에릭 요한슨의 작업 비하인드 영상은 〈Impossible is Possible〉 전시장뿐만 아니라 작가의 홈페이지 및 유튜브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전시장에서는 길게 늘어뜨린 작업 레이어 목록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초현실주의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먼저 자연스러운 리터칭 실력에 놀란다. 그러나 그들이 에릭 요한슨의 사진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무엇보다 작가가 구현해내는 기발하고 충격적인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때문이다. 에릭 요한슨은 단순히 리터칭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닌, 그가 보여주는 풍부한 상상력과 함께 소품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구성하여 표현하는 점에서 더욱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초원 위를 노 저어 나아가는 사람들, 발 아래에서 조각조각 깨져버린 바다, 액자에서 쏟아진 배들이 바다를 떠돌아다닌다는 식의 이야기들. 에릭 요한슨은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볼 수 있는, 혹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환상적이고 흥미로운 판타지를 현실에 가지고 온다.

 


Erik Johansson, Under the Corner, 2017 ⓒErik Johansson



Erik Johansson, Set Them Free, 2012 ⓒErik Johansson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Impossible is Possible〉에서는 에릭 요한슨의 초기 작업부터 2019년 신작까지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에릭 요한슨은 작업을 선보인 초기부터 특유의 뛰어난 아이디어로 금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가 초기에 작업한 사진들은 어딘가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듯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화려하게 꾸며 놓지는 않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것이 마치 동화책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 작업으로 갈수록 이미지가 세련되어진다. 초기 작업이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여 상상하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놓기만 한 것이라면, 최근 작업들은 그만의 환상의 세계를 새로 창조해낸 것 같다.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구석구석 섬세하게 화면을 정돈하면서 더욱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선보이는데, 이는 새로 공개한 신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국내 처음으로 진행되는 이번 개인전은 에릭 요한슨의 2019년 신작을 최초로 공개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매번 작품을 인터넷상으로 발표하는 에릭 요한슨이 전시장에서 신작을 공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공개된 “Stellantis”(2019), “The Library”(2019) 두 점의 사진은 에릭 요한슨의 리터칭 실력과 경험이 집대성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사진 옆에는 사진 속의 소품을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서, 사진 속 주인공과 같은 포즈를 취하며 직접 에릭 요한슨의 상상 속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볼 수 있다. 

에릭 요한슨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어른들에게 꿈과 재미를 선사하는 어른스러운 판타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사진에는 ‘어른’인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 그 사람은 왜곡된 공간을 헤매기도 하고, 꿈속을 걷기도 하며, 풍선을 잡고 허공을 향해 발을 내딛기도 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앞에 어린 시절 꿈꿔온 일이 펼쳐지는 것만큼 마법 같은 일이 어디 있을까. 에릭 요한슨은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꿈속의 세계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도록 마법을 건다. 하늘, 땅의 모습이 신비롭게 변하고, 때로는 악몽에 갇힌 듯 미로가 나타날 수도 있다. “Impossible is Possible.”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전시장에 발을 들인 순간 당신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별처럼 빛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에릭 요한슨의 새 작품을 전시장에서 만나보기를 바란다.



Erik Johansson, Full Moon Service, 2017 ⓒErik Johansson



“Full Moon Service” 작업 과정 ⓒErik Johansson



Erik Johansson, Dreamwalking, 2014 ⓒErik Johansson
 

글 팽서연 기자
해당 기사는 2019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