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숙, 사진으로 쓴 시 “Meditation”

세계 최고수준의 사진전문미술관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 관장은 사진가로서 대상을 찾고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녹여 어우러지는 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그는 미술관장과 사진가, 두 갈래 길을 조화롭게 걷고 있다.

삶 자체가 끊임없이 세상을 만나고 사람과 만나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지만 사진이야말로 무심코 스쳐지나갈 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만남의 예술”이다. 오빠를 따라 카메라를 들었던 대학시절, 오빠와 “남매전”(1969년)을 열기도 하면서 젊은 날의 열정을 사진에 쏟았던 ‘한때’는 그러나 무의미한 시간으로 끝나지 않았다. 결혼으로 휴지기를 가졌지만 결국 다시 사진가로 돌아왔을 뿐 아니라 200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미술관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올봄, “Meditation”전으로 여전히 사진가임을 재천명했다. 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 관장의 이야기다.  

 


강진 Gangjin, Korea, 2014 ⓒ송영숙  


마음에 불이 올라온다.
몽골에 가본 사람은 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초원에 바람이 불면 풀밭 사이 키 작은 야생화들이 마치 초록바탕에 알록달록 수놓은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 광활한 들판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으로 엄지손톱만한 꽃들을 들여다보면서 그런 말을 중얼거린 기억이 난다. “아, 언젠가 너를 보러 꼭 한 번 더 이곳에 올 것만 같다.” 그 언젠가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송영숙 작가의 사진을 보는 순간, 알았다. “너로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 풀밭에 저 혼자 피어난 꽃들은 송영숙 작가가 몽골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를 가슴으로 전달해주고 있었다. 작가는 몽골들판에서 바람에 살랑거리는 들꽃을 보는 순간 마음에 불이 확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와아, 너 여기 있었구나! 그런 독백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어요. 비로소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사진 찍는 순간의 그 찬란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들판에 엎드려 들꽃의 키 높이에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낮은 자세로 들꽃이 흔들리면서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카메라 파인더를 들여다보았다. 피사체와 작가가 교감하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작가는 피안의 세계, 파라다이스를 본 것 같았다고, 꿈을 꾸듯이 본 그 느낌이 과연 고스란히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만남의 순간에 느낀 떨림, 환희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베니스 Venice, Italy, 2017 ⓒ송영숙



터키 Turkey, 2014 ⓒ송영숙



몽골 Mongolia, 2014 ⓒ송영숙


항상 시간이 여의치 않아 작가로서 늘 애타고 간절한 심정이었다는 그는 긴 시간을 요하는 작업 대신 짧은 조우(遭遇), 예기치 못했고 기획되지 않은 그러나 운명처럼 느껴지는 만남에 마음 속 불덩이를 쏟아내곤 했다. 비록 대상과 만남의 시간은 짧았지만 그 뒤가 오히려 더 긴 여운과 깊은 반추를 남긴다는 점에서 “Meditation 명상”이란 제목은 와 닿는다. 몽골의 들판과 강진 동백꽃 사진에서 색감을 거의 다 날려 현장감과 현실감을 탈색시킨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2014년 봄 강진으로 동백을 만나러 갔을 때 너무 늦었음을 알았다. 이미 동백숲에는 꽃들이 간간이 나뭇가지를 겨우 붙잡고 있을 뿐, 나무보다 오히려 땅에 떨어진 꽃이 훨씬 더 많았다. 실망하여 바라보고 있는데 꽃물로 발갛게 물든 땅바닥이 마치 피멍이 든 것 같이 애잔하게 다가왔다. 순간, 작가는 늦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시간을 놓쳐 개화기를 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뒤로 한 채, 아직 남아 있는 꽃들과 조우하고 이미 바람에 몸을 던진 낙화와 교감하며 생(生)에 대하여 명상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그 사진들은 말해주고 있다.


대상과 불꽃을 일으키는 그 순간
전시된 사진 아래 촬영장소가 적혀있지만 사실 그곳이 어디였든 크게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 강진, 제주, 몽골, 터키, 이태리, 그밖에 여러 나라들은 작가가 미술관장으로서 동선이 길고 넓었으며 그 와중에 전광석화처럼 마주친 영감을 사진으로 담았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일 뿐 장소성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다만, 작가가 그때 그 순간에 마주친 대상과 불꽃을 일으키며 대상에 어떤 감정이입을 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아마 내 마음이 절실했던가 봐요. 동행한 사람들은 그저 그런 풍경이라는데 나는 그 대상들에서 간절한 무엇이 보이고 쉽게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어요. 대상을 관조했다기보다 대상에 나를 투사한 것 같아요. 사실 사진은 순간 결정이잖아요. 과감하게 버리고 선택하는 사진 본연의 명쾌함, 그렇다면 참 단순한 매체일 것 같은데도 무한한 표현 가능성을 갖고 있고, 작업이 스피디하고 간결하다는 점도 나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송 관장은 1968년에 두 살 위 오빠를 통해 사진을 배우게 되었다. 그때는 주위의 모든 것이 다 사진과 연관하여 보였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진 유학을 꿈꾸는 그녀에게 집안에서는 결혼을 해서 같이 유학을 가라고 했다. 엄격한 집안의 5남1녀 고명딸이었던 그녀는 어른들의 권유대로 결혼을 했지만 결혼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진의 꿈을 접게 되었다.
 

“애들을 키우는 것에는 때가 있으니 잠시 쉬어가자,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습니다. 원래 내게 주어진 역할을 대충 하지는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일단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이 주어졌으니 충실히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한동안 잠재웠던 사진에 대한 꿈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숙명여대 시절의 숙미회 활동으로 맺어진 사진가들과 인연들이 깊고, 무엇보다 사진에 대한 애착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1980년에 “폴라로이드 SX-70”을 시작으로, 1981년, 83년, 84년, 98년 그리고 2000년에 “또 하나의 진실”(갤러리 사간)까지 여섯 차례의 개인전을 열며 작품 활동에 탄력을 받아 활동할 무렵인 2003년, 한미사진미술관을 개관하면서 자신의 작품발표는 또 한걸음 물러서게 되었다.   

 


내파 밸리 Napa Valley, USA, 2015 ⓒ송영숙



제주 Jeju, Korea, 2015 ⓒ송영숙



마이다네크 나치수용소,Majdanek concentration camp, Poland, 2014 ⓒ송영숙


한미사진미술관 개관 15년
번듯한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몰두해온 세월이 벌써 15년이다. 사진미술관으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수장고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외관보다 소장품에 주력했던 시간이었다. 그 결과 이제는 자신 있게 소장품을 자랑해도 될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해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은 기념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컬렉션해서 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 있는데 세계에서 한 점 밖에 없는 1841년의 탈보트 사진입니다. 1867년 쥴리엣 마가레트의 포트레이트, 1930년대 브랏사이의 작품도 있어요. 소장품이 수천 점에 이르렀으니 이제부터는 천천히 공개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는 대단히 귀한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사진가가 아니라면, 사진에 미치지 않았으면 모를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에 그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때로는 너무나 힘겹게 소장하는 과정을 거쳤다면서 그 에피소드만 모아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술관으로서 전시기획은 기본이므로 그보다 아카이브의 내용이 더 중요하고 교육과 출판까지 복합적인 기능을 갖추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미술관이라고 믿기 때문에 지난 15년 동안 전시와 컬렉션 외에도 책을 90여 권 출판했고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사진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미술관은 공익사업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산이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지요. 언젠가 내 손을 떠날 때까지 반듯하게 잘 만들어서 공공자산으로 넘겨주는 게 목표입니다. 내가 시작했으니 잘 정리하여 마감하는 것도 내 몫이지요.”


길이 남을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달려오는 동안 작품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했지만 업무 사이사이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세계 유수의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사진에 대한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음을 확인했고, 짧은 시간만 허락되는 만큼 그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이번에 발표한 작품들도 4, 5년 동안 업무 차 방문하는 곳곳에서 가슴 뛰는 대상을 만날 때마다 집중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마음을 열면 모든 것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일반 주부들도 나를 보며 용기를 냈으면 하는 생각도 있고요. 그런데 막상 사진을 걸기 전날에는 허무한 마음도 들고, 미술관장이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더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미술관을 하면서 사진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책임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한다. 사진 자체의 순수함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전시한 “명상”이 그러하다. 회화적이면서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은 서정성을 드러낸다. 사진가 제리 율스만(Jerry Uelsmann)은 사진집 “Meditation” 서문에서 “그의 작품은 목초지나 거칠게 일렁이는 바다 또는 한여름의 청명한 하늘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광경을 담고 있다. 이 일상의 장면을 한순간으로 대치하여 사진 속에 붙잡아둠으로써 보는 이에게 자연이 가진 무한한 생명력을 전하는 것이다.(중략) 송영숙의 Meditation 연작은 그가 자연과 사적이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인 것 같다. 그는 폭넓은 감성을 시적 이미지로 풀어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쓰고 있다. 동서양의 시선과 공감대가 같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사진 ⓒ곽명우


사진 ⓒ곽명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50년 전인 1968년에 사진을 만난 이후 막상 사진과 헤어졌던 적은 없었다. 집안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에도 틈틈이 장을 보아온 물건들, 생활소품 같은 정물을 찍었다. 폴라로이드 작업을 했던 것도 주부로서 사진의 끈을 놓지 않고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는 묘안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술관 관장이 된 후에도 수많은 사진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야 할 자리라서 작가로서 개인적인 활동을 내세우진 않았지만 사진작업만큼은 계속해왔다.  

“이제는 미술관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이번 전시를 계기로 차차 더 사진가로 활동할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 작업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나는 오랜 시간이 축적된 공간이나 사물을 좋아해요. 전에 발표한 “차이나”도 그런 흐름이었습니다. 먼지가 쌓인, 시간을 머금은 공간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누구에게나 가장 귀한 것이 시간이다. 그는 시간은 귀하기도 하지만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놓은 흔적들, 일상이 밴 공간들에 대한 기록은 굳이 삶의 현장에 직접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아도 나직하게 들려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사진은 내 평생의 파트너 같아요. 사진과 만났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사실 그가 사진에 애착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사진작업도, 사진미술관 개관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돈이 있으니까”라고도 말하지만 그가 한미사진미술관을 개관하기까지 돈이 있는 누구도 사진전문 미술관을 만든 적이 없으니 말이다. 2006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2011년 국무총리 표창,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장 등의 수훈이 그의 공헌에 대한 답일 것이다.
 

“세상에 몇 점 밖에 없는 귀한 사진을 구하게 되고 그것을 한국으로 가져오게 되었을 때의 그 짜릿한 기쁨은 사진가로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을 때의 기쁨에 버금갑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 이룰 수 있는 일, 세상에 남기고 갈만한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송영숙 관장의 삶은 의미가 있다. 삼남매의 어머니로서, 사업가(한미약품 임성기 회장)의 아내로서, 사진가로서, 그리고 사진미술관 관장으로서 소홀한 구석이 없이 꽉 채운 삶을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주어진 다른 숙제를 거의 다 마쳤으니 다만 끝이 없는 작가로서의 길만 남은 셈이다. 앞으로 대상을 찾고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녹여 어우러지는 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에게는 사진에 집중하는 그 시간이 바로 명상의 시간이고 또한 사진작품 자체가 남과 다른 나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므로.    

사진술 발명을 공표한 지 200년이 되는 2039년이 되기 전에 “사진발명 이후 귀중한 사진원본을 보려면 한국의 한미사진미술관에 가야 한다.”는 것이 널리 회자되고, 사진의 역사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멋진 상상을 해본다. 한국사진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그 날이 거의 준비완료 상태에 와 있는 지금, 송영숙 관장의 사진가로서 재천명은 그래서 더욱 큰 울림을 갖는 것 같다.


 

글 :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18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