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이미지의 슈퍼마켓

가 파리 주 드 폼(Jeu de Paume Paris)에서 2월 11일부터 6월 7일까지 열린다.(임시휴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토마스 루프(Thomas Ruff), 라즐리 모홀리-나기(Lázló Moholy-Nagy), 막스 데 에스테반(Max de Esteban),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 소피 칼(Sophie Calle),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를 포함한 세계 유명 작가 48명의 67개 작품을 ‘이미지의 슈퍼마켓’이라는 타이틀로 전시한다.



이미지의 경제, 경제의 이미지

 

Andreas Gursky, Amazon, 2016
ⓒAndreas Gursky/Courtesy of the artist and Sprüth Magers/ADAGP, 2019


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에서 공유되며 넘쳐나는 디지털 이미지부터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상품화된 자본주의 경제 속 이미지까지 포함한다. 전시는 대량의 상품을 싼 값에 판매하고 구매하는 슈퍼마켓을 자본주의 경제의 대표적 공간으로 상징화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이미지가 무엇을 표상하며 어떻게 생산, 유통, 소비되고 가치 평가되는지를 좇는다. 동시에 하나의 예술 작품이 이것을 어떻게 반영하고 표현하며 비판하는지를 보여준다. 물리적인 현실 세계는 물론 실체 없는 디지털 세계에서 일어나는 경제의 이미지, 또 이미지를 둘러싼 경제 이야기가 사진, 그림, 비디오, 영화, 미디어 아트, 설치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표현됐다.


전시는 거대한 저장 공간과 이미지의 과잉을 다루는 ‘Stock’, 원자재의 변화와 고갈을 보여주는 ‘RAW Materials’, 인간 노동의 변이를 담은 ‘Work’, 자본과 그 가치의 변동을 드러내는 ‘Values’, 경제에서의 교환과 이미지의 순환을 통찰한 ‘Exchanges’를 포함해 총 5개의 섹션으로 구분된다. 각 섹션은 예술의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해당 주제를 표현하고 탐구하는 작품들로 시대와 시기를 초월해 구성했다.


전시 작품 속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에 암암리에 숨겨진 또는 암묵적으로 침묵한 자본주의 민낯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또 가히 급속도로 생산되는 디지털 이미지의 저장, 유통, 순환, 관리, 교환의 과정을 살피며, 그 속에서 변화해가는 인간의 삶을 환기할 수 있다. 더불어 예술에서 무형의 비물질적인 재료와 그것의 순환이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살필 수 있다. 각각의 작품은 예술로서의 미적 가치를 넘어 동시대 우리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조망과 함께 우리 미래에 대한 전망과 재고를 제시한다.


예술과 경제 그리고 이미지

‘Stock’ 섹션은 디지털 이미지의 과잉 생산과 저장, 공유, 순환의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실재하는 현실세계의 물품(상품)의 과잉 생산, 저장, 유통의 경제 시스템을 살피고 있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Amazon”(2016)은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IT 기업 아마존의 다국적 거대 창고를 세로 2m, 가로 4m 대형 크기의 사진으로 보여준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판매돼 배송 대기 중인 엄청난 양의 상품이 정교한 수직, 수평의 구조 안에서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빼곡히 정렬되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비가시적인 새로운 판매와 유통 시스템에 가려진 실물 세계, 즉 인간이 배제되고 있는 경제 시스템의 단면을 스펙터클하게 폭로한다.


 

Ruff Thomas, Substrat 8 II, 2002
ⓒADAGP, Paris 2019/CNAP
ⓒPhoto Galerie Nelson, Paris


자원(원자재) 고갈과 환경 파괴와 함께 ‘RAW Materials’ 섹션은 디지털의 비가시성과 끊임없는 유동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토마스 루프의 “Substrat 8 II”(2002)는 디지털 이미지의 기본 물질(substrat)에 대한 탐구이다. 그의 작품은 마치 오로라나 무지개 빛깔로 추상화되어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인터넷에서 주워 모은 폭력과 섹스로 점철된 일본만화의 단순한 한 선, 강렬한 한 색채로부터 따와 뭉개버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작품은 새롭게 인식된다. 임의로, 무작위로 취해 조작과 변형이 가능하고, 실체 또는 실재와는 상관없이 떠도는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전복적 실험이다.

 

László Moholy-Nagy, Construction in Enamel 1, 2 and 3 (Telephone Pictures), 1923 (2012 reissue)
ⓒCourtesy of Almine Rech Gallery,
Paris, and the Estate of László Moholy-Nagy


한편 기술의 진보는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하기도 하고 또 소외시키기도 한다. ‘Work’ 섹션은 경제와 예술에서 인간의 노동 및 행위의 변이, 그 가운데 발생하는 새로운 가능성과 인간의 소외 등을 살핀다. 1923년에 처음 제작된 라즐리 모홀리-나기의 ‘전화 그림(Telephone Pictures)’은 당시 굉장한 파격으로, 기계화된 회화를 보여준다. 산업용 간판 제작자에게 전화를 걸어 원하는 그림을 지시해 완성하게 한 그림으로, 원격 예술(remote art)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는 예술가의 직접적인 행위(노동)없이 전화라는 기술을 사용해 산업용 도료인 자기 에나멜(porcelain enamel)로 기계화된 회화 5개를 만들었고, 그 중 하나를 세 가지의 크기로 배송을 받아 색과 크기 사이 관계도 연구했다.

 

Max de Esteban, Twenty Red Lights, 2017, Courtesy of the artist ⓒMax de Esteban


네 번째 섹션 ‘Values’에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의 자본과 금융, 암호화폐를 비롯한 새로운 전자화폐, 주식 시장의 급변 등을 주요 이슈로 다룬다. 그중 막스 데 에스테반은 “Twenty Red Lights”(2017)에서 공공의 장소나 거리와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판, 조명 패널, 포스터 등에 적힌 금융 문구를 주목하게 한다. ‘Credit Default Swaps(신용부도스와프)’ 등이 쓰인 광고판이 보이는, 사람이 사라진 황량한 흑백 풍경에 강렬한 붉은 색 원이 마치 경고 표지처럼 붙어 있다. 그는 정부의 사회적 책임을 줄이고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급진적 신자유주의의 확대에 대해 우려하며, 미래를 위한 재고를 요청한다.

 

Martha Rosler, Cargo Cult, 1966-1972, From the series: Body Beautiful, or Beauty Knows No Pain,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Nagel Draxler, Berlin/Cologne
ⓒMartha Rosler
 


마지막 섹션 ‘Exchanges’는 경제시장에서의 무역, 기계와 인간의 역할 전이, 대형 슈퍼마켓 등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판매와 소비의 교환, 인터넷에서 대가 없이 도용되는 이미지 등을 면밀히 관찰한다. 마사 로슬러의 “Cargo Cult”(荷物儀禮, 1966-1972)는 규격화된 백색 화물 컨테이너마다 화장하는 백인 여성의 얼굴 이미지를 오려 붙인 포토몽타주 작품이다. 상품의 생산, 제작 과정은 은폐된 채 친밀하고 환상적 이미지로, 서구 상품에 대한 맹목적 숭배와 환상을 부추기는 현실을 예리하게 통찰했다. 또한 여성을 상품화하는 시장구조와 서양 중심의 패권주의적 무역경제에 대한 날 선 비판 또한 잊지 않았다.


는 예술과 경제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기술과 경제가 발전할수록 시스템은 정교해지고 교묘해져 비가시화된다. 인간 삶의 환경이 윤택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과잉생산,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부의 불평등, 계층의 급격한 차이, 인간의 소외 등이 숨어 있다. 예술은 이러한 현실 세계의 장면들을 꿰뚫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동시대 여러 문제를 이미지로써 가시화한다. 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아래 대부분의 것이 상품화돼, 이미 슈퍼마켓이 되어 있는 우리 삶의 환경을 이미지의 슈퍼마켓을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글 정은정 기자
이미지 제공 Jeu de Paume Paris


해당기사는 2020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