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사람들 | 비비안 사센 〈UMBRA〉

길을 걷는 사람, 길에 놓여있는 나무와 사물들. 작품 속 소재는 그저 일상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들이지만 비비안 사센의 시각을 통하면 그 일상적 현실은 초현실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의 작품마다 텅 빈 ‘공백’으로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그림자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림자와는 다르다. 그림자는 대상을 쫓아다닌다. 그러나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했던 그림자가 그 그림자의 주인을 가리고 덮어버리는 순간, 문득 고정된 현실을 찢고 초현실적인 감각이 나타난다.
그림자에 가려진 것들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놓여짐으로써 지금 존재하지만 동시에 부재한다. 그래서 길을 걷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는 얼굴이 없고, 사물에는 형태가 없다. 지금 이 그림자의 존재는 그림자 주인을, 그리고 그림자가 놓여있는 현실을 벗어나는 무엇이다.


 
Red Leg Totem, 2014, C-print ⓒViviane Sassen


Lemogang, 2013, C-print ⓒViviane Sassen
 


당신의 작업에서 그림자는 늘 중요한 요소인것 같다. 이 그림자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나는 그림자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자가 감추고 어떤 것의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것이 나를 흥미롭게 한다.
나는 그것을 통해 나의 작업이 무의식에 대해 말하길 원한다. 우리가 못 보던 것들이 거울에서 다시 튀어 올라 보여지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직접 보기를 원하지 않았던 그들의 생각과 두려움, 희망을 다시 떠올렸으면 좋겠다.

작품 속 몸의 형태가 흥미로웠다. 몸이 분절되거나, 망토로 가리거나, 그림자에 지워져있다. 사라지는 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의 작업들 중에서 가려진 얼굴은 종종 오해를 야기한다. 그것이 타자에 대한 정체성을 지우는 거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보는 사진의 이미지가 타자에 대해 완전히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가려진 몸은 그러한 지점을 보여주고, 그 진정한 연결을 탐색하고, 그것이 가능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타자를 보고 우리가 지금 타자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맞는지 질문해보길 원한다. 우리는 타자에 대해 많은 것을 판단하고 많은 것을 추정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인식한다. 지금도 정체성에 대한 정치와 문화에 대한 횡포, 인종 차별, 젠더 이슈 등 인식과 편견에 의한 다양한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특히 이방인에 대한 혐오 현상(제노포비아)이 지금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종, 피부색, 젠더, 지역을 바탕으로 타자에 대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시각적 편견을 보여주고 싶었다.


 
Marte #02, 2014, Inkjets on hannemeule paper ⓒViviane Sassen


 
Solitaire, 2014, C-print ⓒViviane Sassen

 

이번 〈UMBRA〉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실험적인 요소는 나의 작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가장 중요한 룰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좋은 사진이라고 인식하는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자유로운 마인드로 사진을 즐기려 한다. 나는 자유로운 상태 아래에서 가장 창의적인 작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인식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흐름에 들어가려고 한다. 나는 우리가 잠을 잘 때, 우리가 꿈을 꿀 때 나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사회에서 배워온 단어와 의미, 이미지와 끝없이 관계한다. 우리는 자립적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방식은 과거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내 작업 또한 앞 세대의 작업과 관계있다.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고 그것 없이는 나 또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품에는 당신만의 시각적 언어Visual language가 있다. 예를 들면 컬러풀한 이미지나 빛과 그림자의 대비, 추상적인 형태와 비율 등. 어떻게 당신만의 시각적 언어를 획득했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시각적 언어를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당신이 언급한 그러한 요소들은 내가 어렸을 때 많은 예술 작품들을 통해서 봐왔던 것들이다. 나는 20세기 초반의 초현실주의적인 회화와 조각을 좋아한다. 또한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아프리카의 밝은 빛과 유년 시절의 몽환적인 생각들, 밤에 꾸는 나의 꿈, 그리고 네덜란드의 굵은 그래픽 디자인은 나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신의 작업은 연출적인 효과보다 길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들이 많다. 촬영에 있어서 우연성은 당신의 작업에 중요한 요소인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을 사진에 담아 보여주려고 한다. 나는 그것이 사진이라는 매체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 생각한다.  

어떤 그림자에는 컬러가 있다.
컬러풀한 그림자 또한 추상적인 방식에서 혹은 철학적인 방식에서 어떤 정신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검은 그림자를 찍고 나서 나는 그림자의 무거움을 상쇄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미지는 네덜란드의 유명한 작가이자 예술 사조의 중요한 한 흐름이었던 몬드리안Mondriaan과 리트벨트Rietveld, 그리고 그들이 만든 신조형주의적인 잡지 데스틸De Stijl을 연상시킬 것이다. 또한 이러한 나의 작업에는 마르크 로스코Mark Rothko와 말레비치Malevich의 〈검은 사각형〉과 그가 최소한의 형태와 색채를 강조하며 주창한 절대주의를 연상시킬 것이다.


 
Yellow Vlei, 2014, C-print ⓒViviane Sassen


Axiom GB01, 2014, C-print ⓒViviane Sassen
 


사진의 주 배경이 아프리카라고 들었다. 왜 주로 사진을 아프리카에서 찍는가. 당신의 유년시절을 보낸 아프리카라는 장소가 당신에게 주는 의미가 궁금하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나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은 나의 인생과 작업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아마 그곳에서 내가 처음 감각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케냐에서 떠날 때, 나의 인생도 거기 있었다고 생각했다. 네덜란드는 나에게 어색하고 새로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아프리카에서의 생활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그곳이 많이 그리웠다. 나는 맨발로 걸어 다녔던 것들과 나의 친구들과 강아지, 나의 집, 나의 유모들이 무척 그리웠다. 그곳의 냄새와 햇빛도 그리웠다. 네덜란드는 회색빛이었고 아프리카보다 메마른 곳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소중했던 어린 시절의 판타지를 만들었던 것 같다. 지난 12년 동안 나는 아프리카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고, 아프리카에 대한 나의 생각과 관계도 바뀌고 있다. 그것은 연속된 여행이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여행을 반영한다.

당신은 유명 브랜드와 매거진과의 협업으로 유명한 패션 포토그래퍼로이기도 하다. 패션사진을 찍는 것과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패션 사진 작업은 다소 동시다발적이다. 그것은 팀 작업이다. 패션 작업을 하고 있으면 나는 운동장에서 열정적으로 노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그것은 피상적인 작업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에너지가 있다. 나는 패션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트 작업할 때와는 다른 만족감이다. 순수 사진 작업은 매우 다른 프로세스이다. 순수 사진 작업은 좀 더 센시티브하고 조용하고 내적인 것이다. 그 둘은 내가 가진 두 가지 상반된 성격같다. 패션 사진은 외향적인 반면 순수 사진은 좀 더 내적인 것이다.
나는 패션 사진을 찍을 때와 순수 사진을 찍을 때 다르게 접근한다. 그것은 내가 모순과 모호함을 가득안고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그 두 세계는 서로 이어졌다. 나는 그것들이 서로 경계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세계를 다른 프레임에 가두어두지 않고 서로 관계하는 흐름을 즐긴다. 그것을 가둔다면 그것은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글 오은지 기자 이미지 제공 Deichtorhallen
해당 기사는 2017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