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페이스 ⦁ ⦁ 이형순 《因果 緣 인과 연》
- 2025-01-14 09:20:34

이형순은 현대 사회에서 대가족의 해체와 가족 간의 빈번한 갈등을 바라보며 가족의 의미와 부모가 남긴 진정한 유산에 대한 깊은 고민을 전한다. 단순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연의 고리와 그 깊이를 탐구하고 부모의 희생과 가르침, 그리고 가족 간의 화목과 우애를 통해 얻은 삶의 교훈을 시각적 언어로 풀어낸다. 《因果 緣 인과 연》(2024.11.14.~11.27. | 무늬와공간 갤러리)에서 이형순 작가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전시 《因果 緣 인과 연》의 주제는?
부모가 남긴 정신적 유산과 가족 간의 인연을 탐구한 작업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 간의 화목과 연대가 약화되고 있다. 어머니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가족과 이웃을 위한 배려, 성실함, 희생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질적 유산은 사라질 수 있지만, 정신적 유산은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삶의 방식을 기억하고 계승하고 싶다. 부모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배운 진정한 유산이 무엇인지 조명하고 이를 통해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했다.

인과 연 101, 2024, Archival Pigment Print, 60x45cm ⓒ이형순
작가가 생각하는 정신적 유산은 어머니의 삶과 가치관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작업에 어떤 형태로 투영되었나.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머니는 늘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였고 삶의 가치를 몸소 보여준 분이다. 오 남매의 생일이 오면 언제나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들의 안녕을 빌거나, 농작물과 음식을 나누며 이웃을 도운 모습들은 단순히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내 작업에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화목’ ‘성실함’ ‘공동체를 향한 배려’라는 형태로 투영되어 작품 속에서 실꾸리나 달항아리와 같은 상징적인 오브제로 나타난다. 각각의 오브제는 어머니가 남기신 정신적 유산을 담아내는 매개체이자, 그 가치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도구다.
‘인과’와 ‘연’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다가갔나.
‘인과’와 ‘연’은 관계와 연결의 개념이기 때문에 사물 간의 연속성과 흐름을 강조했다. 달을 받치고 있는 항아리는 우리가 빛날 수 있도록 부모님이 아낌없이 내어주신 자신들의 삶과 희생을 상징한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간직할 매개체로 사용했다. 실꾸리는 얽히고설킨 실처럼 사람과 사람 간의 복잡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연의 흐름을 나타낸다. 밀 이삭, 보리, 돌탑 같은 자연적 소재로 부모님의 농사와 공동체적 삶을 표현했다.

인과 연 201, 2024, Archival Pigment Print, 18x25.4cm ⓒ이형순

인과 연 203, 2024, Archival Pigment Print, 18x25.4cm ⓒ이형순
‘빛의 연쇄 고리’라는 말을 강조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빛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무엇인가.
나에게 빛은 시간과 인연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요소다. 물방울 속 빛은 한순간에 반짝이지만, 그 작은 반짝임이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며 관계를 형성한다. 달항아리 위에 조명은 과거의 삶과 현대의 감각을 연결해 주는 상징이다. 빛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계속 이어지는 존재인 것처럼 우리의 삶 속 인연도 빛의 연쇄처럼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알려달라.
인과 연에 대한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작업은 내 부모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다음은 내가 형성해 나간 인연들에 대한 내용을 다루지 않을까 싶다. 20년, 30년간 쌓아온 그들과의 관계를 사진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전시를 보러온 손님들이 벌써부터 입을 모아 얘기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이형순은 정물화적 배치를 통해 사물에 내재된 정서와 이야기를 강조한다. 그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서 그 속에 담긴 가치를 현대적 문맥에서 새롭게 연결한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을 만들어내고 가족 간의 깊은 정서적 유대와 세대 간의 인연을 탐구한다. 그가 선택한 오브제들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 나아가 미래로 이어지는 인연의 고리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보편적인 인간 관계의 본질과 그 속에서 이어져 오는 삶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 우리가 이어가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글 장진아 기자
해당 기사는 2025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