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베르그모저 Walter Bergmoser

발터 베르그모저는 한국 사진계에서 친숙한 이름이다. 2008년부터 약 4년 반 동안 안성과 서울에 살면서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서 순수사진을 가르쳤고 한국의 사진계 인사들과 교류를 나누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주제전을 기획하였다. 2012년에 독일에 돌아간 그가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한국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를 베를린에서 만나보았다.
 



walter bergmoser_ms.kitty_2013


walter bergmoser_ms.kitty_2013

Q. 어떤 경유로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한국에 오게 된 경위와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기억이 어떠한지 듣고 싶습니다.
Walter Bergmoser (이하 W). 저는 카셀(Kassel)대학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했고 사진에 관심을 가진지는 정말 오래 되었습니다. 제가 8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께서 집에 있던 카메라를 생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으며 놀고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아이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래 전부터 삶의 50%는 예술 작업을 위해 쓰고, 50%는 학생들을 위해 쓰기로 마음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한국에 가기 전에도 체코, 핀란드, 독일의 여러 학교에서 계속해서 사진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고 항상 인생에 한 번 쯤은 아시아의 문화를 깊숙히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처음으로 한국에 가게 된 것이 2006년이였습니다. 그 때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게서 너무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앙대학교라는 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쳐 볼 의향이 있느냐는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중앙대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도 몰랐고, 어떤 수준의 대학인지도 모른 채 승낙을 했습니다. 독일에서는 대학에 순위를 매기지 않기 때문에 대학들은 다 존중을 받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진을 가르치며 학생들과 교류를 하고 새로운 문화를 배워보자는 단순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승낙을 했습니다. 사실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도 저는 제가 어떤 조건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계약서도 받지 못했고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말 가방 하나를 달랑 가지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중앙대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치며 한국 학생들의 순수함과 열정, 천진함과 솔직함, 그리고 정직함에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사함을 표현하는 학생들의 진심과 때묻지 않은 인간성에 반해버렸습니다. 그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경험했던 것들은 유럽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정말 다른 것들이였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했던 대화들, 면담들, 작업에 대한 고민들, 모든 것들에 깊이가 있었습니다. 예술에 대한 이해도 있었고, 삶의 문제들을 고민하는 생각의 깊이도 깊고 진지했습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독일 학생들보다도 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진솔함과 진정성에서 말이지요.

제가 한국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어를 제외하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감각기관과 지성과 직감을 이용해서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정서와 감성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교수님들은 저의 교육철학들을 지지해 주었고, 우리는 친구처럼 즐겁게 함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교수님들과의 교류와 함께 일했던 시간들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초기에는 너무 좋아서 학교에 가는게 행복했습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 전시 감독으로 일을 했던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였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고 밤낮으로 울리는 전화문화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너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010년 국제 동강 사진축제에서 독일의 현대 사진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던 것도 제게는 의미있는 일이였습니다.

한국은 저를 성장시켜준 나라입니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한국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Q. 한국과 독일 사이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매해 12명의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독일의 Bauhaus 대학, BTK대학, Bielefeld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문화권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얻게 된 셈인데요, 교환학생 제도 뿐만이 아니라 양국 간의 교류를 위한 전시를 기획하고 여러가지 활동들을 해 오셨는데 그 부분에 대한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일인으로서 한국 문화와 사회를 경험하신 분으로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 주셨으면 합니다.
W. 제게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한국의 사진 교육 수준을 향상 시킬 수 있을까.’ 였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데리고 이윤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교육과 관련하여 단 한 번도 사적인 이익을 추구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학생들에게 유럽과 서양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들의 안목이 어떤지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 학생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삶과 예술을 향한 안목이 풍부해지기를 바랬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 주고 공유하고 왔습니다.

한국은 굉장히 역동적이고 속도가 빠른 나라입니다. 그런데 정작 교육에서는 그 빠른 속도의 흐름이 그다지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감히 한국의 문화나 사회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굳이 제 의견을 묻는다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한국의 강한 유교문화가 조금은 사라졌으면 합니다. 그러나 아예 사라져버리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에서, 그리고 교육에서 유교주의가 너무 강하게 발현된다면 동시대 예술과 교육의 질적인 발전과 변화를 추구하기가 어려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직위가 있다고 해서 그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존중 이상의 막대한 권위를 부여해 주는 것에 조심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질서도 필요하고 체계도 중요하고 서열도 인정하지만 재벌 중심의 경제나 사고가 약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중소기업이 잘 되고, 그리고 나이나 지위가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람됨이 한 인간을 정의할 수 있는 한국 사회를 보고 싶습니다.

 



Broken Mind_Walter Bergmoser 2015


Broken Mind_Walter Bergmoser 2015


Q.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베를린의 BTK 대학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일에 돌아온 이후의 삶과 활동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W. BTK대학교(Hochschule für Gestaltung)는 2007년에 베를린에 설립된 예술대학교입니다. 미국의 Laureate International University라는 전 세계 72개국에 수백 개의 학교를 가지고 있는 그룹이 BTK를 유럽 예술방면에서 가장 좋은 사립 국제 대학교로 만들겠다는 비젼을 가지고 2011년에 인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BTK 대학교는 독일의 베를린(Berlin), 함부르크(Hamburg), 이설론(Iserlohn)에 캠퍼스를 가지고 있고 2017년에는 뮤닉(Munich)에 네번째 캠퍼스가 오픈될 것입니다.

BTK 대학은 철저하게 국제대학교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독일에서 유일하게 학사부터 영어로 사진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BTK대학교의 총장은 제게는 참 도전적인 일입니다. 총장직을 맡고도 동시에 사진 수업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소통 통로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재능있고 잠재력있는 학생들을 훌륭한 예술가로 키워내기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보다 유연성 있게 융합과 통합의 방향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오래된 커리큘럼으로는 동시대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이 이루어 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대에 맞는 예술가들을 길러내고 양육하는 것, 어디를 가든지, 교육현장에서나 작업 현장에서나, 그리고 예술 시장에서도 유연성 있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창의력을 그대로 발현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BTK의 비젼입니다.

하지만 총장이기 이전에 한 교수로서 양질의 강의를 하는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제 강의에 들어온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입니다. 더 이상 학생들이 제 강의에서 눈을 반짝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저는 과감하게 강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고의 예술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학생들에게 원합니다. 제가 이것을 이룰 수 있다면 최고로 행복할 것입니다. 한국이 그립기도 하지만 이 곳에서 저의 삶은 행복합니다.


Q. 작업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W. 여러가지 작업들을 해 왔는데 그 중에서 ‘Ms. Kitty (2013)’라는 작업과 ‘Broken heart (2015)’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영감을 얻고 작업해 온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Ms. Kitty (2013)’ 작업에서 저는 헬로 키티 잠옷을 입고 등장합니다. 이 작업은 젊음에 대한 동경, 그리고 하찮고 유치한 것(Kitschy)에 대한 애착, 그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내 자신과 사회적 지위에 맞게 처신을 배워가는 나에 관한 작업입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헬로 키티 파자마를 파는 것을 보고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그런 파자마를 잘 입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살면서 처음에는 유치하다고 생각하던 그 파자마가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고 눈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50살이 훌쩍 넘은 독일 교수가 젊은 여성들이나 입는 촌스러운 파자마를 입고 전 세계를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장으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장소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셀프를 찍으며 사진을 통해 사회적 경계와 선을 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눈총도 받았고 타자(他者)의 조언도 들어왔습니다. 저는 늙어가지만 내면은 여전히 이렇게 유치한 사람입니다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Broken heart (2015)’는 개인적인 감성과 정서에만 집중해서 폴라로이드로 작업한 신작입니다.  

한국에서의 4년 반은 어쩌면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였던 것같습니다. 한국은 작가로, 교육자로, 한 인간으로 저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준 곳입니다. 항상 그립고 계속해서 함께 가고 싶은 나라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www.btk-fh.de/en/
http://www.bergmoser.net


글·사진 권지현Kwan, ji-hyun 독일특파원
해당 기사는 2015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