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이슈]Photo Collage④

기억의 파편
데보라 켈리 Deborah Kelly


 
“환상도 하나의 사실이다. 환상을 소중히 여겨라.
반숙 달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존재로 거듭날 길이 거기에 있다.” 
 - 칼 구스타프 융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는 슬로건으로 현대 페미니즘 예술의 한 획을 그었던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는 잡지나 광고에서 오려낸 사진 이미지를 조합한 포토 콜라주를 효율적인 정치적 발언통로로 활용했다. 존 하트필드나 바바라 크루거는 사진과 언어의 조합, 혹은 사진과 사진의 조합이 가져오는 이미지의 환기 효과와 강력한 전파성에 주목했다.

 

Death Cult, 2017 Ⓒ Deborah Kelly


호주 작가인 데보라 켈리(Deborah Kelly) 역시 바바라 크루거나 존 하트필드처럼, 매체에서 수집한 사진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담은 포토 콜라주 작업을 제작했다. 일간지 시사만화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다른 매체에서 오려낸 이미지를 조합한 포토 콜라주 작업을 통해, 인종적, 성적 차별 뿐 아니라, 냉전, 교육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논쟁에 대해 발언했다.  Murray Art Museum의 Jacqui Hemsley 관장은 “데보라 켈리의 콜라주는 언어, 문화, 종교, 성별, 인종의 장벽없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이미지의 폭격이다”고 평했다. 그의 작업은 Paper Acquisition Award, Mornington Peninsula Regional Gallery, VIC, Albury Art Prize, NSW, Campbelltown Arts Center, NSW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데보라 켈리(Deborah Kelly)의 콜라주 작업은 <Life In The Ruins>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 스위스 취리히의 Fabian & Claude Walter Galerie에서는 지난 10월부터 오는 11월 4일까지 <Life in the Ruins>전을 열고 있는데, 이 전시에 소개된 작업들은 신화와 우화, 상상 속 이미지들을 결합시켜 새로운 신화적 도상을 만들었다. 작가는 버려진 책이나, 백과사전, 팜플렛 등에서 이 이미지들을 찾아냈는데, 그는 “버려진 책이 내게는 마치 문명의 페허와 같이 느껴졌다. 이 작업은 인류의 기억 속에 남은 파편들을 모으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Red in Tooth, from the series Frøstrup Faerie, 2017 Ⓒ Deborah Kelly


그는 지금까지 싱가포르, 베니스, 테살로니키, 시드니 비엔날레 등 다수의 국제 비엔날레에 초청됐으며, 다양한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온 후, 그는 자신이 방문했던 나라의 문화를 다시 조사했다. 민속문화, 신화, 종교적 이미지에 대해 조사하며, 이 이미지들이 인쇄된 팜플렛이나 백과사전 등의 자료를 취합해 콜라주 작업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온 기억과, 문명의 파편들은 스위스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언급한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을 연상시킨다. 칼 구스타프 융은 집단 무의식을 ‘개인의 무의식이나 개인적 경험과 별개로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공유된 정신적 자료로서, 선행 인류로부터 전해지는 원시적 이미지로 구성된 잠재적 이미지의 저장고’라 설명했다. 그는 또한 “집단 무의식에 나타나는 원형(archetypes)들은 인류 역사의 산물인 신화, 민속, 예술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들로, 출생, 죽음, 마법, 영웅, 어머니, 신, 악마 등 문화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보편적인 심상으로, 상징을 통해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He Watches Himself, 2018 Ⓒ Deborah Kelly


데보라 켈리의 <Life in the Ruins> 에서도 전 문명권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여신, 요정,  나비, 동물’ 등의 도상이 상징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특히 뱀이 자주 눈에 띄는데, 작가는 “내 작업에서 뱀은 광범위한 상징이다. 뱀은 풍요로운 생식력, 여신에 대한 경배, 카톨릭 문화권에서 금기시되던 관능, 프로이드 심리학의 남근(Phallic panic) 등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징적 도상들을 본래 맥락과는 배치되게 결합시키며, 이미지 기호가 가진 의미를 확장하고, 때론 전복(顚覆)시킨다. 

 

Hard to Love, 2017 Ⓒ Deborah Kelly


‘Hard to Love’에서는 서구문화에서 미인의 대표상징인 비너스 여신상과 여배우가 교묘하게 조합된 포즈로 동성애 관계를 암시하는데, 이성애적 욕망 대상인 이미지 기호를 조합해 퀴어 장면을 만듦으로써 본래의 의미를 전복시킨다. ‘Death Kult’는 부서진 여성상과 손, 거미 등의 조합을 통해 여성의 무의식에 내재된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시각화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가치를 외모로 평가받는 압박으로 인해, 젊음을 유지하는데 강박적 집착을 가진다. 사라짐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으로, 부패를 감추고 시간을 지우려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부서진 여신상을 애써 떠받들고 있는 여성의 손은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집착을 드러낸다. 반면 ‘He Watches Himself Being Watched’는 남성의 내면세계를 주목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쉬케(에로스의 부인으로, 인간에서 신으로 승격한 후 나비 날개를 달고 있다, 심리학적으로는 정신, 영혼을 상징)와 같이, 나비날개를 가진 근육질의 남성은 문화적, 사회적, 감정적인 측면에서 남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미지들은 서구사회에서 남성들이 어떻게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남성성을 정의하는지, 그들이 받는 압박에 대해 암시한다.  

 

Spirit of the Hedgerow, from the series Frøstrup Faerie, 2017 Ⓒ Deborah Kelly


이 밖에도 ‘FRØSTRUP FAERIE’ 시리즈는 요정이나 인어 같은 환상의 존재나, 나비, 벌, 새 등 우화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이 시리즈는 작가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1년간 덴마크의 북서부 지역 레지던시에 머물면서 제작했다. 레지던시 근처에는 Jutland라는 크고 어두운 숲이 있었는데, 작가는 “그렇게 놀랍도록 길고 어두운 숲은 처음 봤다. 그 곳에는 나 외에는 어떤 사람도 없었고, 나는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나, 야생 장미 속에 파묻힌 벌, 자애로운 거미, 제비 등 숲 속에서 많은 생명과 마주쳤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스튜디오에서 완전히 침묵에 둘러싸였던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칼 구스타프 융은 우리의 무의식에 대해 “환상도 하나의 사실이다. 환상을 소중히 여겨라. 반숙 달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존재로 거듭날 길이 거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데보라 켈리의 작업은 마치 융이 무의식의 세계를 상징적 원형으로 해석한 것처럼, 다양한 문화권에서 따온 상징적 표상들을 엮어 우리가 그간 보지 못하던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Fabian & Cllaude Walter Galerie


해당 기사는 2018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