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획기사 ⦁ ⦁ 제9회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 《사진의 영원한 힘》 | 열 개의 밝은 통로를 따라서




에두아르 타우펜바흐, 바스티안 뿌르투, 피라미드_Edouard Taufenbach, Bastien Pourtout, Pyramides, 2021, 150x150cm, Archival pigment print


2000년 이후 한국 사진계의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동시대 사진 흐름에 발맞추며 글로벌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90년 이후 한국 미술계가 해외 전시와 비엔날레 붐에 부응하며 그 보폭을 세계화에 맞춰나가자 한국 미술계의 세계화 바람은 잇따른 비엔날레 제도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광주비엔날레(1995)에 이어 미디어시티서울(2000)과 부산비엔날레(2002)의 개막, 그리고 청주와 인천 등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국제 전시가 줄지어 개최되면서 문화예술의 국제적 교류, 급진적인 예술실험의 무대, 동시대 담론의 장인 이른바 ‘비엔날레 시대’가 개막했다.

이처럼 세계화라는 시대적 과제와 국내외 미술계의 변모하는 지형 속에서 2006년 대구에서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의 활성화와 지역의 문화적 입지 제고를 염원하며 대구사진비엔날레가 출범했다. 국내 최초의 사진비엔날레가 대구에서 열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구는 한국 근현대 사진의 창작열을 선도적으로 고무했던 구왕삼, 신현국, 김재수 등 대표적인 사진가들의 활동 본거지이자 대학의 사진학과가 가장 많이 설치된 곳이다. 공모전 시대의 수많은 당선작은 당대 사진예술을 주도했으며, 폭넓은 실험과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사진 문화의 기틀이 일찍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대구사진비엔날레는 대구의 지역적 정체성을 시대적 요구에 맞춰 문화적 가치로 이어 나가는 주요한 제도로 이어지고 있으며 올해 아홉 번째를 맞이했다.


 



김규식, 진자운동 실험 n45011_Gyoosik Kim, Test of Harmonograph n45011, 2023, 115X91cm, Gelatin silver print


킹가 브로나, 85_Kinga Wrona, 85, 2022, 60x90cm, Archival pigment print


이고은, 사라지고 존재한다_Goeun Lee, Vanish and exist, 2023, 193x145cm, Archival pigment print


제1회 《다큐멘터리 사진 속의 아시아》부터 제8회 《누락 된 의제(37.5 아래)》까지 여덟 번의 대구사진비엔날레는 문화 정치, 문명과 인간, 노동과 사회, 약자와 소수자, 재난과 환경 등 동시대의 첨예한 이슈를 다룬 사진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국내외 비엔날레가 애호해온 거대 담론은 동시대가 안고 있는 이슈에 대한 다각도의 사유를 공유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비엔날레의 팽창과 경쟁 속에서 반복적이고 획일적인 전시 내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올해 제9회 대구사진비엔날레(예술총감독 박상우)는 이와 같은 거대 담론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거부했다. 보편적 서사를 주제로 당대성을 표상하는 기존의 접근 방식은 그 틀과 형식에 있어 이미 사진비엔날레뿐만 아니라 여타 국제전을 표방하는 대규모 전시들이 숱하게 다루어온바, 두 기획자 박상우(서울대 미학과 교수)와 미셀 프리조(Michel Frizot, 프랑스 사진학자)는 자칫 진부함에 빠질 수 있는 동어반복적 기획을 원치 않았다. 동시대 담론의 전시화라는 익숙함 대신 사진 매체라는 생경함을 택했다. 1970년대 전후 거대한 현대미술의 무질서 안으로 묻혀버린 사진의 매체성을 ‘다시’ 보고, 사진의 강력한 ‘힘의 원천’에 대해 사유하기를 원했다.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빠르고 새롭게 확장되어 가는 사진 이미지의 가능성은 여전히 빛과 장치라는 사진의 본질적 요소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새롭게 환기할 수 있는 사진들로 집약했다. 그리하여 주제전 《사진의 영원한 힘》은 오래된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 새로운 것으로부터 가려진, 사진만의 ‘정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자 한다.

본 전시는 기술 진보가 삼켜버린 사진 매체의 고유한 본질을 중심 가치에 놓고, 사진의 강력한 힘으로 우리의 시지각을 매혹시키는 동시대 현대사진을 소개한다. 사진의 기계적 재현성은 이미 당대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사진을 이해하는 것이 곧 보편적 서사를 살피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순수미술의 타자에서 현대미술의 주체로 그리고 표현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새롭게 구사하는 사진 자체에 대해 성찰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생성 과정, 형식에 천착하기보다는 사진이 다양한 형태로 ‘지금, 여기’에서 아직도 유효하게 작동하는 능력의 원천에 방점을 둔다. 이번 전시는 사진의 탄생 이후 우리의 시감각에 끊임없이 간섭하고 압도하는 매체인 사진이란 무엇인지를 자문하고 사유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리나 웨르닝, 마호 1983-2011, 부에노스 아이레스, 백 투 더 퓨처 연작_Irina Werning,
Majo 1983-2011, Buenos Aires, Back to the Future series, 1983-2011, 17×50cm, Archival Pigment


클로이 로써, 형태 4, 5_Chloe Rosser, Form 4, 5, 2013, 35x52.5cm or 119x79cm, Archival pigment print


아사코 나라하시, 물 속에서 절반은 잠들고 절반은 깨어 있는 연작_Asako Narahashi, Kawaguchiko #06,
“half awake and half asleep in the water” Series, 2003, 80x120cm, Archival pigment print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사진 ‘자체’가 무엇인지, 그것은 어떤 본질적인 특징에 의해서 [다른 재현] 이미지의 공동체와 구분되는지 알고 싶었다.”1) 사진의 존재론을 향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이와 같은 욕망은 《사진의 영원한 힘》전을 관통한다. 바르트는 저서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에서 사진의 특수성이 무엇인지를 추적하며, 사진이 왜 기존의 재현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인지를 밝히고자 했다. 바르트는 사진을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스투디움(studium)과 감정에 ‘찌르는 듯한’ 외상을 불러일으키는 푼크툼(punctum)의 이원성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스투디움과 푼크툼만으로 사진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에 따르면 사진만의 고유한 특성은 카메라 앞 지시대상이 ‘필연적으로 현실적인 것’이었다. 대상을 가장할 수 있는 회화와 다르게 ‘그것이-존재-했음(ça-a-été)’은 오직 사진만이 가진 제약이었다. ‘그것이-존재-했음’이라는 불변의 사실은 촬영하는 자, 지시 대상, 카메라 장치가 어느 특정 시점에 그 자리에 있었던 실재를 증언한다. 지시대상의 존재 그리고 그것의 실재가 부정할 수 없는 ‘사진의 힘’이라는 것이다.

주제전 《사진의 영원한 힘》은 사진의 특수성을 열 가지 특정 ‘힘’으로 구성해 열 개의 방에서 전시한다. 제1전시장은 기계적 객관성과 복제성을 담보로 증언에 대한 일반의 믿음을 확보한 사진들을 ‘증언의 힘’이라는 소제 하에 소개한다. 두 작가 에두아르 타우펜바흐(Edouard Taufenbach)와 바스티안 뿌르투(Bastien Pourtout)의 <피라미드>(p.65)는 사진의 과정을 단순하게 집약해 보여준다. 카메라라는 장치, 장치 앞의 지시체 그리고 둘 사이의 상이한 두 시점은 사진의 주체와 찍히는 대상 그리고 장소의 관계를 다루는 사진 행위의 선포와 다름없다. ‘빛의 힘’은 사진의 근원이 빛에 있음을 공표한다. 빛은 세계를 움직이고 창조하는 근원적 질료이며 빛에 의하지 않으면 사진은 존재할 수 없다. 참여 작가들은 신체와 빛, 공간과 빛, 오브제와 빛의 관계를 불안의 징후, 몽환적 분위기, 무의식적 형상 등 다양한 재현으로 귀결시키며 빛의 미학을 탐닉한다. 순수하게 빛의 움직임만으로 김규식의 <진자운동 실험>(p.66)은 빛에 의한 절대적 현시를 보여준다. 그의 빛의 미학이 쾌감을 주는 것은 라즐로 모홀리 나기(László Moholy-Nagy)에 따르면, 물질성을 드러내는 타 매체와 다르게 ‘비물질적 발산처럼 보이는 것’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힘을 수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시키 하세, 노란 커튼 풍경, 데셍 연작_Yoshiki Hase,
Landscape with a Yellow Curtain, Dessin Series, 2019, 98x140cm, Archival pigment print


마리암 피루치, 은폐 연작_Maryam Firuzi, Concelment series, 2016-18, 80x80cm, Archival pigment print


다음으로 ‘순간 포착의 힘’과 ‘지속의 힘’은 시간과 사진의 이원적 관계를 통해 관람객을 몰입시킨다. 이고은의 <사라지고 존재한다>(p.67)는 바르트가 강조하는 ‘시간의 부동화’, ‘정지의 본질 자체’에 몰입한 작품이다. 고속 촬영으로 흩어지는 파편을 붙잡지 않는다면 이 순간은 곧바로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질 운명에 묶여있다. 덧없이 소멸할 순간을 침묵 속에 낚아채 둔 것은 바로 사진이다. 반면에 요시키 하세(Yoshiki Hase)의 <노란 커튼 풍경>(p.70)은 장노출 기법으로 ‘사라지고 존재하는’ 시간의 ‘겹침’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카메라의 열린 셔터 안으로 오랜 시간 노출된 오브제는 흐릿한 효과를 만들며 자연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인간중심적 자연관’ 혹은 ‘도구주의적 자연관’에 대한 재인식을 촉구하고 있다. 바르트가 강조했듯이 타 재현 체계와 사진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지시대상’에 있다. 대상을 모방하는 회화와 다르게 사진은 카메라 앞에 대상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사진은 나와 세상 사이의 한정적, 고정적, 상투적 시각을 과감하게 해체하는데, ‘시점의 힘’, ‘확대의 힘’, ‘연출의 힘’, ‘관계의 힘’은 이러한 사진의 특수성을 독창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사진을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사코 나라하시의 <물속에서 절반은 잠들고 절반은 깨어 있는>(p.69), 이자벨 샤퓌(Isabelle Chapuis)의 <살아 있는 것, 몸의 제전>(p.72) 그리고 클로이 로써(Chiloe Rosser)의 <형태 4, 5>(p.68)는 고정되지 않은 자유로운 시각, 풍경의 새로운 지형, 시각의 색다른 충격과 화면의 미학 그리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보여준다. ‘비교의 힘’과 ‘변형의 힘’은 여러 시간대로 대상을 반복, 비교, 변형하는 사진의 확장성을 다룬다. 익명의 어떤 과거를 재현한 이리나 웨르닝(Irina Werning)의 <백 투더 퓨처> 연작(p.68)은 이미 사라진 동시에 사라질 시간의 중첩인 시간의 푼크툼을 재현하고, 카이론 듀옹(Chiron Duong)의 <말 없는 영웅들의 땅으로 가는 여행>(p.74)은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는 자연의 섭리를 시각적 환상으로 구현해낸다.


 



이자벨 샤퓌, 살아있는 것, 몸의 제전_Isabelle Chapuis, Vivant, le sacre du corps (Living, The Consecration of the Body), 2015-2022, 120x80cm, Archival Pigment Print


프란체스코 쥬스티, 분실을 대비하다 연작, 방글라데시 출신 이민 노동자들이 전쟁 피해를 피해 리비아를 떠나 튀니지로 국경을 넘어갈 때 가져간 유일한 가방에 붙였던 신분증 사진. 2011년 3월-4월 / 리비아-튀니지 국경 및 쇼카 난민촌, 튀니지_Francesco Giusti, In Case of Loss series, ID’s photos attached by migrant workers from Bangladesh on their only bag when passing the border into Tunisia, escaping war torn Libya. March-April 2011 / Libya-Tunisia border and Choucha refugee camp, Tunisia, 2011, 46.5x70cm, Archival Pigment Print


장용근, 37.5˚C_Younggeun Jang, 37.5˚C, 2020, 105x140cm, C-print


본 전시는 사진을 ‘영원한 힘’으로 이끄는 본질을 빛, 시간, 지시대상, 시점, 연출, 변형 등의 10가지 특수성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은 사진 자체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바깥의 우리 삶과 우리의 삶이 속한 사회적 풍경을 반영한다. 마리암 피루치(Maryam Firuzi)의 <은폐>(p.71)는 베일 대신 자연으로 신체를 둘러싼 이란 여성의 초상 사진으로 여성을 향한 “가부장적, 계급적 구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프란체스코 쥬스티(Francesco Giusti)의 <분실을 대비하다>(p.73)는 전쟁과 이주 노동자의 처참한 현실을 고발한다. 킹가 부로나(Kinga Wrona)(p.66), 장용근(p.73)은 화산 분화, 팬데믹을 거울삼아 환경 파괴와 자연 재난에 대한 심각성을 부각시킨다. 그 밖에도 대도시의 사회학적 이해, 일상 속의 전통 의식, 자본주의 신화 등 동시대의 다양한 측면을 비시류적 방식, 사진만의 어휘로 다루고 있다.

 



카이론 듀옹, 떠오르는 바람, 말 없는 영웅들의 땅으로 가는 여행 연작_Chiron Duong, The Rising Wind, Journey to the Lands of Silent Heroes series, 2021-2022


바르트는 사진을 어두운 상자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가 아니라 밝은 방,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로 명명했다. 사진의 이미지에서 대상은 숨김없이 전달되는 명백함으로, 그것이 보임에 대한 확실성으로, 해석 이전에 지시체의 실재성으로 사진을 밝은 방에 비유한 것이다. 제9회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주제전은 사진의 본질을 10개의 밝은 통로를 따라서 깊이 있게 파고든다. 그리하여 그것의 내재적 힘은 기술 진보 시대에 이르러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증폭함을 명백하게 입증해 보이고 있다.
 

글 김소희 뮤지엄한미연구소 학예연구관
해당기사는 2023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