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서 예술까지, 패션사진 100년 ①

패션사진은 어떻게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왔을까? 이번 스페셜 이슈에서는 에드워드 스타이켄부터 허 브리츠, 기 부르뎅까지 지난 100년 동안 패션사진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작품들과, 현재 패션계와 예술계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미국 작가 에릭 메디간 헥의 회화 같은 패션사진을 통해 패션사진이 예술계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해 왔는지 살펴본다.
 
 

Ⓒ Glen Luchford, Kate Moss, negative 1994; print 2017, 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Gift of Glen and Tanya Luchford
 

현대 패션의 스타일을 창조한 프랑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패션은 옷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패션은 하늘에도, 거리에도 있으며, 인간의 생각, 살아가는 방식,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패션은 우리 일상 곳곳에 편재해 있으며, 패션 사진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무엇을 입는지는, 우리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에 대한 자의식의 연장이며, 패션사진은 미(美)에 대한 욕망의 정점에 있다. 한 장의 패션사진에서, 우리는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상 뿐 아니라, 작가 개개인의 예술적 지향점 등 다양한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게티 센터(Getty Center)의 J.Paul Getty Museum에서는 이런 패션사진의 100년사를 돌아보는 <스타일의 아이콘: 패션 사진의 1세기 Icons of Style: A Century of Fashion Photography, 1911-2011>(2018.6.26.~10.21)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1911년부터 2011년까지 지난 100년간의 패션사진 역사를 정리하며, 패션사진가 80명의 사진작업 160점과 함께 실제 의상, 페인팅, 의상, 드로잉, 잡지, 뉴스 아카이브, 영상물 등을 전시한다.

 


ⒸGuy Bourdin, Untitled, for Charles Jourdan, Spring 1977, 1977, Image copyright The Guy Bourdin Estate 2017, Courtesy of Louise
Alexander Gallery



ⒸDavid Sims, Yohji Yamamoto, Autumn/Winter 1995, 1995, ⒸDavid Sims


전시의 연대기를 1911년부터 2011년까지 100년을 잡은 것은, 현대적인 패션사진이 1911년부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1911년 프랑스 편집자 루시앙 보겔(Lucien Vogel)은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 1879-1973)에게 최초로 예술적인 패션사진을 의뢰했다. 1911년 이전의 패션사진들은 당대 인기 있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폴 아이립(Paul Iribe)이나 에르떼(Erté)의 일러스트를 좀 더 현실적으로 구사하는데 그쳤지만, 루시앙 보겔과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처음 시도한 예술 패션사진들은 이후 패션사진의 양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렇다고 패션사진이 바로 지금과 같이 예술작업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패션사진은 태생부터 상업적인 의도로 만들어졌으며, 지나치게 섹슈얼리티나 물질욕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혹은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은, 이상화되고 만들어진 신체상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의 여성을 왜곡하고 억압한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비판에 직면해왔다. 패션사진이 10대 아이들의 방이나, 미용실에만 존재한다는 비아냥을 멈추게 한 것은 리차드 아베돈, 어빙 펜, 기 부르댕, 헬무트 뉴튼 등 독자적인 스타일로 시대의 획을 그은 거장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7, 80년대 리차드 아베돈(Richard Avedon)은 내러티브가 있는 패션사진으로, 어빙 펜(Irving Penn)은 완벽하게 계산된 구도와 섬세한 화면 구성을 통해 패션사진의 예술적인 스타일을 확립했다. 리차드 아베돈은 그의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어빙 펜은 정물 사진 시리즈로, 이들은 각자 패션사진과는 별개로 개인작업을 통해 자신들의 작업세계를 인정받았다.

한편, 기 부르댕(Guy Bourdin), 헬무트 뉴튼(Helmut Newton)은 폭력적일 정도로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에로티시즘을 부각시킨 사진으로 유명하다. 물론 그들이 단지 금기시된 페티시즘이나, 에로티시즘을 다뤄서 화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대개 패션사진의 이면에는 은밀하게, 혹은 직접적으로 성적 욕망과 소비욕을 자극하는 섹슈얼리티가 내포돼있지만, 헬무트 뉴튼과 기 부르댕의 작업이 3,40년이 지난 지금도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치밀하게 계산된 구도와 생동감, 우아함 등 시각적 요소가 빼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기 부르댕은 섹슈얼리티를 초현실주의적 요소들과 결합시킨 독창적인 스타일로 주목 받았는데, 그의 1977년 ‘Charles Jourdan’ 광고사진을 보면, 비행기와 여성의 하이힐을 클로즈업해 병치시키며 성적(性的)인 암시를 강하게 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비행기와 로켓 등의 형체는 남근(男根)을, 하이힐은 여성 성기를 상징한다고 풀이해서, 이런 식으로 각 오브제들을 초현실주의적으로 배치하며, 보는 이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한다.

 


Ⓒ Edward Steichen, Perfection in Black; Model Margaret Horan in a Black Gown by Jay Thorpe (left), 1935, Edward Steichen, Vogue, Ⓒ CondéNast



Sheila Metzner, Uma in Dress by Patou, 1986, 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Purchased with funds provided by the Photographs Council



Hiro, Black Evening Dress in Flight, New York, negative 1963; print 1994, 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Purchased with funds provided by the Photographs Council


한편 이러한 패션사진의 흐름은 1990년대 들어서며 다양해졌다. 낸 골딘, 래리 설튼 등 이미 예술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은 사진작가들이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패션사진을 선보였으며, 볼프강 틸만스, 유르겐 텔러, 라이언 맥긴리 등의 다음세대 사진가들에게는 미술관과 패션 잡지에 동시에 사진이 소개되는 일이 더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고급 패션 브랜드는 예술가들의 스타일을 빌려, 그들과의 협업 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예술가들은 더 이상 미술관이나 갤러리에만 머물지 않고,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창구로 이를 활용했다.

패션사진계의 또다른 변화로는 패션사진이 패션 뿐 아니라,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중은 이제 ‘특정 브랜드의 옷’을 사는 것이 아닌, ‘특정 브랜드가 지향하는 스타일과 삶의 방식, 그 자체’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패션사진은 옷의 형태와 시각적 아름다움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금기에 대한 도전이나 새로운 세대의 슬로건 등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글렌 루치포드(Glen Luchford)가 1994년 케이트 모스를 촬영한 사진을 보면, 카메라를 향해 잽을 날리는 케이트 모스의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이미지는 카메라를 통한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에 대한 위계구도에 정면으로 주먹을 날리며, 수동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새로운 여성상을 드러낸다.

2000년대 들어 온라인 SNS와 카메라의 대중화를 기반으로, 스트리트 패션사진도 패션사진계의 주요한 흐름으로 부각됐다. 스콧 슈만(Scott Schuman)은 길거리에서 그대로 스쳐지나가는 인물들의 패션을 스냅 샷으로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어떤 환상도, 연출도 없이, 순간적으로 찍은 일반인들의 패션사진은, 그 자연스러움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의 패션 블로그는 웬만한 패션 미디어보다 더 파급력이 강해졌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자신의 패션을 SNS에 올리는 시대에, 지금도 스트리트 패션사진은 대중들에게 더 친근하고,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처럼 패션사진은 초기에는 패션 일러스트의 아류작으로 인식됐다가, 근 100년의 역사를 거치며 예술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게티 뮤지엄의 Timothy Potts 관장은 “예전에는 미술관과 예술 컬렉터들이 패션 사진을 상업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간과했지만, 오늘날에는 20세기 가장 창조적인 예술작품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며 “패션사진이 미술관의 문턱을 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100년간 창조된 패션사진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다”고 전했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J.Paul Getty Museum
해당 기사는 2019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