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유 페르노 《거주지의 붕괴》






Beyrouth, 2020 ⓒMathieu Pernot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재단에서는 다큐멘터리 사진에 기여한 작가를 선정하여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2년마다 개최되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Prix HCB)상으로 전시, 홍보, 카탈로그 등 작가가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으며, 35 000유로의 상금이 수여된다. 2019년 수상자인 마티유 페르노(Mathieu Pernot)의 전시 《La ruine de sa demeure》(3.8-6.19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재단)가 있어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마티유 페르노는 베이루트에 도착해 조부모와 아버지가 어린 시절 거주했던 집을 찾아 며칠간 생활하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조부모와 아버지가 거주했던 집을 첫 방문한 그는 현관, 거실, 침실 등에서 할아버지가 촬영했던 흑백 사진을 참고하여 같은 장소 같은 구도로 재촬영한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보이는 이 주거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과거와 현재의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개인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중동 사회의 집단기억과 연결하려는 의도로 읽혀진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중동의 어제와 오늘’에 대면하여 그의 선조가 남긴 ‘가족 앨범’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Beyrouth, 2020 ⓒMathieu Pernot





Homs, 2020 ⓒMathieu Pernot





이번 작품은 작가의 가족 앨범에서 찾은 사진으로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할아버지가 베이루트, 시리아, 이라크를 여행하면서 촬영한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지극히 사적인 개인사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단순히 당신의 가족사를 보여주는 작품 또한 아닙니다. 다양한 종파, 민족, 정파, 지역 간 갈등으로 오랜 기간 내전을 겪고 있는 중동의 현실과 가족사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갔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의 개인적인 가족사가 출발점이 되어 중동의 몇몇 국가들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할아버지가 베이루트 아파트에서 거주할 때 촬영했던 가족사진들로 전시장 입구와 카탈로그 첫 페이지를 장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소소한 사적인 이야기는 고대의 찬란한 역사를 지닌 중동의 오늘날 현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프로젝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할아버지가 여행했던 곳을 찾아다니며 찬란한 고대의 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곳이 오늘날 어떤 문제가 있기에 예전처럼 담아낼 수 없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여행했던 1926년도 당시의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내전으로 고통받는 시리아의 모습은 당시에 상상할 수 없었지요. 이웃 국가 간의 잦은 전쟁으로 인해 중동의 정치 지형에 심각한 변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Mossoul, 2019 ⓒMathieu Pernot




Alep, 2021 ⓒMathieu Pernot



집안 내력을 보면 사진작가 출신입니다. 증조 할아버지 Léon Pernot는 유명한 사진작가 Nadar의 조수였고요, 할아버지는 아마추어 사진작가였죠. 그리고 아버지는 프로 사진가는 아니었지만, 사진을 취미로 하셨죠. 당신의 작품을 보면, ‘가족’과 ‘거주 공간’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중요해 보입니다. 집시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의 사적인 가족사를 20년간 촬영했던 작품에서도 가족과 그들의 주거 공간은 특별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서도 당신의 ‘가족 앨범’이 시발점이 되어 직접 현장에 가서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였습니다. 이렇듯 가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사진가로서 ‘가족’과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나요?
지금까지 제 삶과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이 자서전 성격의 첫 작품인거죠. 전쟁과 내전으로 방치된 채 반쯤 허물어진 건물, 폐허 속에서 ‘가족’과 ‘개개인’들이 어떻게 삶을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는지 그 현실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물 촬영 시 클로즈업보다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의 삶의 모습에 프로젝트의 초점을 맞췄습니다.

수차례 전쟁과 무력 충돌이 반복되는 중동 지역을 코로나 펜데믹 시기에 방문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는데요. 그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요? 컨셉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계획, 과정 등이 궁금합니다.
실제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오래된 내전과 종교적 갈등이 심한 시리아는 국경 접근조차도 힘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리며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세계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사실상 모든 나라의 국경이 닫히면서, 2020년 시리아에 도착하고 나서 불과 4일 만에 그 곳을 떠나야만 했거든요. 2021년 10월과 11월에 다시 시리아로 들어갔는데, 국경이 닫히고 18개월이 지나서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에서 현재까지 중동의 역사와 현실을 보다 심도있게 알기 위해 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촬영된 다양한 사진집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애초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컨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현지에서 시리아인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중동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앨범 사진, 과거에서 이어온 현재 모습까지 중동의 역사와 현실을 촬영한 사진, 이라크 Mossoul 도시의 폐허된 집에서 발견된 한 가족의 일상적인 삶의 사진 기록물, 이렇게 3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 한 작품으로 구상하셨지요?
전시장과 카탈로그는 가족의 일상적인 삶의 기록물인 가족앨범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는 제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시각적 계보인 가족앨범으로, 할아버지께서 1940년부터 1954년까지 베이루트에서 거주하시면서 촬영한 가족의 일상적인 삶의 기록물입니다. 다른 하나는 폭격으로 무너진 이라크의 Mossoul 도시의 폐허 속에서 발견한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가족의 앨범사진입니다. 전쟁과 비극적인 역사가 생기기 이전의 평온하고 풍요로우며 찬란했던, 이 지역의 역사를 관객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의미로 전시장과 카탈로그 시작과 끝을 때 묻지 않은 어린 아이들의 사진으로 배치했습니다. 1941년도 베이루트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누님의 팔에 안겨 있는 제 아버지의 어릴 적 모습과 이라크 2대 도시인Mossoul의 내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찾아낸 2명의 어린이의 웃는 얼굴 사진입니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오늘날 전쟁의 참상이 빚어낸 비참한 현실과 대조됩니다.

당신의 사진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서 질문하자면, 넓은 의미에서 이번 시리즈는 고고학과 관련되어 있어 보입니다. 《La ruine de sa demeure》전시는 숱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제외되거나 망각된 기억과 어느 날 우연히 묻혀 있던 흔적이 발견되고 이들의 역사가 밝혀지는 듯합니다. 당신의 이번 프로젝트에서 ‘폐허’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폐허’ 라는 개념를 통해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개인적인 경험은 무엇인가요?
무정부 상태와 내전이 지속되고 있고, 중동분쟁의 확산 우려가 재차 고조되고 있는 과도기적 시기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지역이 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데 제 작품 제작 기간은 그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죠. 내전으로 생산 기반의 전반이 파괴되고 붕괴된 건물의 복구 등 무차별 포격으로 ‘폐허 전과 후’ 사이의 역사의 현장을 가까이서 목격하고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관객과 관련된 질문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군의 민간인 살상과 민간구역에 포격을 가하는 모습을 실시간 뉴스로 접하고 있습니다만, 관객을 의식하고 작업을 하진 않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특징은, 붕괴된 건물의 복구 건설 현장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내전 속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주체가 아닌 주변부에 배치됩니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있었던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의 폭발 사고와 잦은 전쟁으로 인한 중동지역의 분쟁은 전 세계 주요 언론사를 통해 오늘날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사진 접근 방식과 포토저널리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포토저널리즘은 자칫하면 언론사의 이념적 또는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제 작품이 세계 유수의 언론들과 차이가 있다면, 저는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업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시할 사진의 크기와 배치 방법 등 전시장의 공간구성에 고심을 많이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딥티크(diptyque)형태로 전시장에서만 가능한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종래의 양식이나 구도에 구애받지 않는 이러한 시도는 카탈로그로 보여주는 작품집과는 분명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냅니다.


이전 작품을 보면, 이주민 혹은 난민같은 국경 너머로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며 오랜 시간 카메라로 담아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당신은 사건-사고현장을 찾아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포토저널리스트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는 당신의 몸이 주체가 되어 촬영 장소를 계속해서 이동했습니다. 컴포트 존(Comfort zone)을 벗어난 것이죠.
안 그래도 그동안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제 자신을 더 단련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던져 바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열정과 의욕이 충만한 초보자처럼 말이죠. 다른 사진가들과의 비교는 불필요했습니다. 단순히 저의 가족사를 들여 다보는 기회가 되었고, 오늘날 잦은 내전으로 수많은 도시가 이미 폐허가 됐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고대의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이곳을 여행하고 싶었습니다.




 


Mossoul, 2019 ⓒMathieu Pernot




Alep, 2021 ⓒMathieu Pernot




Beyrouth, 2020 ⓒMathieu Pernot


 





 


인터뷰어 김영준 특파원
해당 기사는 2022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