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루프 개인전


Thomas Ruff, Installationsansicht K20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aus der Serie Fotogramme Foto Achim Kukulies. ⓒVG Bild-Kunst Bonn 2020


사진을 통하여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보다는 ‘이미지’란 개념 자체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의 개인전이 2020년 하반기 겨울, 독일 서쪽 도시 뒤셀도르프 K20 Stiftung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2020년 9월 12일~2021년 2월 7일)에서 열렸다. 180여년 전 사진의 역할이 순간을 포착하여 현실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면 오늘날 사진매체는 제작하는 장비부터 작품이 완성되어 표현되고 감상자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까지 완전히 다른 영역처럼 확장되고 발전되었다. 토마스 루프는 이 전시를 통해 지난 백년동안 변화한 사진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 동시대의 기술과 함께 다루어지는 사진 및 미디어의 지위를 마주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를 총 지휘한 큐레이터 팔크 폴프(Falk Wolf)는 ‘작가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한 작품은 거의 없다’라고 소개하였다. ‘Jpegs’, ‘Nudes’, ‘press++’, ‘ma.r.s’ 등의 기존 시리즈와 함께 새 시리즈 ‘Tableaux Chinois’가 감상자에게 처음으로 선보인다. 최근 20년동안 발표된 이 시리즈들의 공통점은 타인에 의하여 1차적으로 촬영된 사진을 수집하여 작가가 디지털 기술로 크기 및 픽셀을 변경하거나 이미지를 복사하고 잘라내는 등의 추가적인 작업을 더하여 ‘조정’된 이미지이다.

 


Thomas Ruff Installationsansicht K20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aus der Serie ma.r.s Foto Achim Kukulies. ⓒVG Bild-Kunst Bonn 2020


Thomas Ruff Installationsansicht K20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aus der Serie jpgs Foto Achim Kukulies. ⓒVG Bild-Kunst Bonn 2020


Thomas Ruff Installationsansicht K20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aus der Serie tableaux chinois Foto Achim Kukulies. ⓒVG Bild-Kunst Bonn 2020


Thomas Ruff Installationsansicht K20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aus der Serie tableaux chinois Foto Achim Kukulies. ⓒVG Bild-Kunst Bonn 2020


신작인 ‘Tableaux Chinois’ 시리즈 역시 인터넷이나 신문, 포스터, 잡지 등과 같은 선전 매체에 공개된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정치 체제를 이야기하는 내용의 장면들과 중국의 상징적인 인물인 마오쩌둥의 초상사진 등 어디에서 한번쯤 본듯한 익숙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일반 신문이나 선전매체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마치 낮은 해상도의 이미지를 확대하였을 때 나타나는 것처럼 부분적으로 부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픽셀(Pixel), 즉 이미지를 구성하는 점들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토마스 루프는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정치적 역할이 주어진 프로파간다 이미지에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작가만의 방식으로 응용을 더함으로써 일차적으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범주가 겹쳐짐을 보여준다. 또한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합성된 이미지를 통하여 오늘날 최첨단 디지털화 된 중국의 모습과 정치적 목적으로 선전 매체를 조종하며 대중의 통제를 시도하였고 이를 당연시 여겼던 1960년대 중국의 분위기를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신작에서 이미 잘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이미지가 촬영된 후 디지털 방식으로 수정되고 보안되는 사진의 제작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토마스 루프는 오브제의 표면만 포착하는 이미지 자체의 정확도가 아닌 사진이란 특정 의도에 따라, 또는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 무한하게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꾸준히 매체의 한계를 실험한다. 이러한 사진의 역할과 개념에 대한 접근은 이미 약 20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Jpegs’ 시리즈가 있다.

이미지 데이터를 저장하고 표현하기 위한 파일형식 중 하나인 ‘Jpegs’가 제목인 이 시리즈는 말 그대로 사진의 디지털화를 주제로 접근한 초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로켓이나 폭파, 재난과 연관된 사진을 찾아내어 크기를 확대한다. 마치 저화질의 화면같이 거대한 픽셀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사진은 디지털 사진이란 픽셀로 구성되어 압축된 이미지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픽셀의 구조를 시각화하고 픽셀은 인위적으로 제작된 공예품과 같으며 이것이 디지털 사진의 본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온라인에 떠도는 포르노그라피 사진을 이용한 ‘누드(Nudes)’시리즈 역시 디지털 사진의 본질에 관한 연구가 확장된 작업이다.
단정한 인테리어의 컬러풀한 작업 ‘m.n.o.p’ 시리즈에서 작가는 색에 집중하였다. 이 역시 자연스러운 사진이 아닌 특정한 의도 아래 추가적으로 색을 조작하였다. 벽과 바닥, 가구 등을 컬러풀하게 채웠지만 벽에 걸린 액자 속 작품은 흑백의 예술작품이 걸린 색이 가득한 실내 공간이다. 관객에게 예술과 이미지에 대한 개념과 인식을 상기시키며 작업을 감상한 후 슬며시 웃음짓게하는 작가의 재치가 느껴진다.

신문 사진을 인용한 ‘프레스(press++)’ 시리즈에서는 편집자가 특정 시각과 의도를 지니고 사진을 조정할 수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문의 내용에 맞추어 적절하게 수정되어야 했던 이미지의 제작 과정이다.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어떻게 전달될 것인지 판단하고,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휘 아래 색감을 줄이거나 크기를 변화시키고 부분적 이미지 수정을 요구하는지 등과 같은 내용이 이미지위에 적혀있다. 이러한 과정이 담긴 노트를 통해 작가는 신문에 실리는 사진 자체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배경을 표면으로 끌어내고자 하였다.

 


Thomas Ruff jpeg ny01 2004 C-Print Edition 11AP 256×188cm ⓒVG Bild-Kunst Bonn 2020


Thomas Ruff press++21.11 2016 C-Print Edition 0204 260×185cm ⓒVG Bild-Kunst Bonn 2020


Thomas Ruff m.n.o.p.01 2013 C-Print, Edition 0106 47.3×60cm ⓒVG Bild-Kunst Bonn 2020


토마스 루프는 2016년 나사에서 촬영한 화성 표면사진을 이용하여 ‘ma.r.s.’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디지털 기술의 3D안경을 쓰고 더욱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으며 동시에 안경 없이도 관람이 가능하다. 작가는 관객에게 하나의 동일한 이미지를 3D안경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다른 방식으로 보게끔 연출하였으며 이 두개의 이미지가 어떻게 오버랩되어 보이는지 스스로 실험하게 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디지털 사진의 개념에 대해 질문하며 자연스레 사진의 역사를 되짚는 작가의 태도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빛의 역할이 중요한 1920년대와 30년대 사진 테크닉을 재현한 ‘포토그램’ 시리즈는 네거티브 사진의 오마주로 온전히 컴퓨터로 제작하여 재현하였다. 그는 완벽하게 계산된 계획 아래 이미지의 구성 방식뿐 아니라 색상도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삽입하였으며 항상 요구되는 새로운 기술 적용의 경계를 시험하는 것이다.

 

글 조희진 독일 특파원
해당 기사는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