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Life④ - 이 사물을 보라 Still Life. Obstinacy of Thing

오스트리아 Kunst Haus Wien에서 열리고 있는 (2018.9.13.-2019.2.17.)전시는 현대정물사진이 어떻게 현실세계와 사물을 탐구하고 재현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전시는 “약 400년이 넘는 정물화의 전통과 바니타스의 도상은 여전히 현대 정물사진에 유효한가? 현대 예술가들은 왜 사진을 통해 사물을 재발견하는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얀 그로버Jan Grover, 크리스토퍼 윌리암Christopher Williams, 레오 칸디 Leo Kandl,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등 26명 작가들이 찍은 현대정물사진을 통해 “작가들이 우리를 둘러싼 사물의 세계를 정확히 감지하고, 어떻게 거기로부터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추함, 의미를 끌어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Andrea Witzmann, In the Wealth of Time 4, 2012 Ⓒ Andrea Witzmann



Andrzej Steinbach, untitled (wet jacket), Aus: ordinary stones, 2016 Ⓒ Andrzej Steinbach

먹고 남은 조개껍데기, 겉이 말라가는 자몽, 아무렇게나 놓인 플라스틱 포크와 젓가락... 누군가 막 식사를 마치고 떠난 듯, 식탁 위에 남겨진 사물들은 부드러운 색조의 빛으로 감싸여 있다. 안드레아 위츠만Andrea Witzmann의 ‘In the Wealth of Time 4’ 사진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통적인 정물화에서는 그림 속 사물들, 꽃, 조개, 진주, 유리잔 등이 각각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꽃은 한 순간의 아름다움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쇠락하고, 거울은 인간의 허영에 대해 경고하며, 먹다 남은 음식들은 탐욕에 대해 경계한다. 이처럼 정물화는 단순히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각 사물이 상징하는 바를 통해 유기적인 의미를 구성한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는 인생무상을 상징하는 ‘바니타스 정물화(Vanitas’ still life)’ 장르가 발달했다. 바니타스 정물화의 주요개념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화가들이 실제 사물을 얼마나 실물처럼 표현하는지, 어떻게 빛의 가감을 잘 조율하여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드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David Hockney, Roses for Mother, 1995 Ⓒ David Hockney. Courtesy Galerie Kaess-Weiss, Albstadt



Hans-Peter Feldmann, Flower Pots, 2009 Ⓒ Hans-Peter Feldmann / Bildrecht 2018. Courtesy Jan Windszus, Berlin, und Bildrecht, Wien


바니타스 정물화의 도상은 현대정물사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거나, 새롭게 재해석돼 적용되는데, 안드레아 위츠만의 정물사진이 그러하다. 다만 그의 사진에는 정교한 구도로 사물이 배치된 정물화와 달리, 누군가 먹다 남은 식탁 위를 찍은 듯 한 자연스러움이 있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빛과 색조를 통해, 17세기 정물화나 바로크 시대의 회화를 연상케 한다. 보는 이는 이 사진이 단지 먹다 남은 식탁 풍경을 우연히 찍은 것인지, 아니면 치밀한 작가의 의도 하에 조개껍데기나 컵과 자몽이 배치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일상의 풍경인지, 혹은 바니타스 정물의 재현인지 알 수 없는 그 애매모호함이 이 사진의 매력이다. 사진이란 결국 일상적인 모든 사물에서 작가가 무엇을, 어떻게 주목했는지를 보여주며, 관객은 사진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유추하고 어떻게 사진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가를 살피게 된다.

가령 안드르제 스테인바흐Andrzej Steinbach의 ‘untitled(wet jacket)’를 보면 그저 방바닥에 놓인 평범한 점퍼로 보인다. 누군가 입다가 바닥에 던져 놓은 것 같은 점퍼지만, 자세히 보면 바닥에 물기가 젖었다가 마른 자국이 있다. 관객은 이 사진을 보며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이 점퍼의 주인은 어디를 다녀왔기에 이렇게 흠뻑 젖었을까? 그가 젖은 점퍼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황급히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퍼는 얼마나 이렇게 바닥에 놓여있었을까? 사진 속 찍힌 대상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점퍼지만, 이 점퍼를 통해서 관객은 상황의 앞뒤 맥락을 유추해 볼 수 있다.

 


Annette Kelm, Pizza Pizza Pizza, 2016 Ⓒ Annette Kelm. Courtesy KÖNIG GALERIE Berlin/London



Sharon Lockhart, No-No Ikebana. Arranged by Haruko Takeichi, 2003 Ⓒ Sharon Lockhart. Courtesy neugerriemsschneider, Berlin



Elad Lassry, Tomatillos, 2010 Ⓒ Elad Lassry. Courtesy Pomeranz Collection, Wien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Roses For Mother’(어머니를 위한 장미)는 정물화와 대상의 관계를 흥미롭게 제시하는데, 사진 속에는 꽃병에 꽂힌 장미와 장미가 그려진 회화가 함께 등장한다. 이 사진 속에서는 세 가지 시간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실제 존재하는 장미로 이 장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시들어 갈 것이다. 반면 회화 속 장미는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이며, 회화와 실제 장미를 함께 찍은 이 사진도 정지된 한 순간이다.  사진만을 봤을 때는 이 회화가 사진 속 장미와 꽃병을 보고 그린 것인지, 아니면 회화 속의 장미와 꽃병을 보고 누군가 회화를 재현해 실제 장미와 꽃병을 배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사진 한 장 속에는 중첩된 시간과, 중첩된 사건의 선후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실제와 회화, 사진의 표현 양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변화가 한 장의 사진에 담겨있다.

로라 레틴스키Laura Letinsky의 Untitled#117 작업도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업처럼 매체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제시한다. 그의 사진 속에서는 전통적인 정물화처럼 흰 테이블 위에 포도송이가 있고, 포도알이 주변에 흩어져 있다. 얼핏 보면 윗 부분에 거울이 달린 것인지, 혹은 회화 작품이 걸려 있는지 혼란스럽다. 위에 걸린 거울, 혹은 회화 안에는 조그맣게 유리병과 포도알 몇 알이 보이며 앞에 놓인 포도송이와 대비된다. 어느 쪽이 실제이고, 어느 쪽이 회화 속 이미지, 혹은 거울에 비친 허상일까?


 


Annette Kelm, Welcome, 2016 Ⓒ Annette Kelm. Courtesy KÖNIG GALERIE Berlin/London



Andrzej Steinbach, untitled (wet jacket), Aus: ordinary stones, 2016 Ⓒ Andrzej Steinbach

이렇게 현대 정물사진은 단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샬런 코튼은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에서 “정물화의 문맥에서 시점을 가장 극적으로 사용하는 예는 사진작가들이 우리가 주변의 사물을 보거나 (보지 않게 되는) 방식을 특별히 강조하는 데에서 볼 수 있다. 부분적으로, 환경 속에 담긴 사물들보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탐구의 대상이 된다”고 언급했다. 정물 사진에서 관객이 주목하는 부분은 각각의 사물과 형태의 조합으로, 대상의 물질성이 얼마나 섬세하게 포착됐으며, 동시에 사진을 통해 평범한 사물들이 어떤 시각적 의미와 상상의 가능성을 갖게 되는지 여부다.

누군가 버린 휴지나, 손때가 묻은 LP 턴테이블, 피자 박스 등도 사진에서는 중요한 오브제가 될 수 있다.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물이라도, 그것이 사진을 통해 얼마나 특별해 질 수 있는지를 살피는 것, 그것이 바로 정물사진의 매력이다. 이런 정물사진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 세계를 재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석현혜 기자  이미지 제공 Kunst Haus Wien
해당 기사는 2019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